☆ 소설 창고/우리, 사랑해! [완]

우리, 사랑해! season 2 - [스물한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8. 6. 30. 08:23

 

 

 

우리, 사랑해!

- Season 2 -

 

 스물한 번째 이야기

 

엄마와 아들. 하나

 

 

 

수상해.

 

도망갈 거 까지는 없는데. 주연은 고개를 갸웃한다.

 

아우 미치겠네.

혜지가 도망간 이유가 선재와 관련이 되어 있는 일 때문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는 주연이다.

 

하여간 잡히기만 해봐.

순간 주연의 눈동자가 커다래진다.

 

, 설마.

 

그리고 자신의 입을 가린다.

 

혜지 그 년 남자 생긴 거 아니야?

그리고 입 밖으로 낸 말에 이어서 주연의 머리 속에서는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보다 더 한 스토리가 전개 되고 있었다. 그리고 더불어 주연의 눈동자도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주 이글이글.

 

하여간, 애인 몰래 바람 피는 것들은 다 죽어야 해. 조혜지 내 손에 걸리기만 해 봐. 아주 작살이야.

 

 

 

어후.

 

혜지가 자신의 팔을 문지른다.

 

왜 이렇게 소름이 돋지?

주연이 쓸 데 없는 오해를 하고,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혜지다.

 

 

 

.

 

선재는 Dr. Jason을 바라본다. Dr. Jason 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Dr. Jason.

 

좋아.

Dr. Jason이 눈을 뜨더니 미소를 짓는다.

 

나 역시 바라는 바였어.

 

고마워요.

 

아니.

 

Dr. Jason 이 고개를 젓는다.

 

나야 말로 고맙지. 나를 얼마나 믿는다는 건가? 나를 믿기에, 가인을 독일로 데리고 가라는 거 아니야?

그렇네요.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Dr. Jason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고맙네.

Dr. Jason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

 

언제 떠나면 되려나?

 

아무 때나요.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저는 하루라도 빨리, 어머니가 제 어머니로써의 삶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라요. 정말 엄마의 삶 자체를 찾으시기를 바라거든요. 그러니까 하루라도, 단 하루라도 더 빠르게 Dr. Jason이 저희 어머니를 모시고 독일로 가주셨으면 해요. 그게 정말 저희 어머니의 행복을 위한 거니까요.


글쎄.

 

Dr. Jason이 고개를 갸웃한다.

 

?

 

선재가 반문한다.

 

, 그게 무슨?

 

그렇게 가인과 떨어질 작정이라면, 가인과 시간을 좀 더 보내도 되지 않겠나? 서로가 굉장히 그리울 텐데.

 

Dr. Jason.

독일까지 가는 것은 그리 급한 일 만은 아니야.

 

Dr. Jason 이 미소를 짓는다.

 

가인이 선재가 없어서 슬퍼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가지 않겠다는 게 아니야.

 

?

선재가 고개를 갸웃한다.

 

가인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

 

그래서 가인이 그 먼 곳에서도 외로워하지 않도록 말이야. 사람의 마음 속에 많은 추억이 있으면 덜 외로운 법이니까. 선재가 부디 가인에게 좋은 추억을 잔뜩 만들어주기를 바라. 부탁이야.

 

.

 

선재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버지.

 

후후후.

 

Dr. Jason이 미소를 짓는다.

 

아들.

헤헤.

선재가 검지로 자신의 코를 비볐다.

 

 

 

후우.

 

선재가 학교 잔디 밭에 털썩 앉았다.

 

젠장.

 

바보 같기는, 엄마를 위한다고 나선 일이기는 했지만, 정작 엄마를 위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엄마에게 더 창피한 일을 만들고 말았다. 사람들이 얼마나 엄마에게 손가락질을 하겠는가? 자식을 개망나니로 키웠다고 그럴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대연은 자신의 성격이 미웠다.

 

.

조금만, 조금만 참을 걸. 엄마는 그런 일을 정말 여유롭게 대처하실 텐데. 괜히 자신이 끼어들어서 일만 더 복잡해진 느낌이다.

 

젠장.

 

대연아.

 

대연이 고개를 돌린다. 담임이다.

 

, 선생님.

 

선생님 앉아도 돼?

 

담임의 물음에 대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몰랐었어.

 

담임이 멀리 느티나무를 바라본다.

 

대연이의 어머니가 급식 아주머니인 줄은 말이야. 대연이는 공부도 잘하고 반장이니까, 몰랐었어.

 

선생님.

 

?

대연이 낮은 목소리로 담임을 부른다.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되는 거죠?

 

?

급식 아줌마가 뭐가 어때서요?

 

?

담임이 당황한다.

 

, 선생님 말은 그 뜻이 아니라.

 

선생님도 똑같으시군요.

 

대연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선생님.

대연이 담임을 바라본다.

 

급식 아줌마라는 말은 없어요.

 

대연이 입술을 꼭 깨문다.

 

우리 엄마는요. 급식 아줌마가 아니에요. 우리 엄마는 조리종사원이세요! 조리 종사원이시라고요!

 

대연이 악을 쓴다.

 

, 미안해.

 

담임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너희 어머니를 욕할 생각은 없었어.


아니요.

 

대연이 울먹 거린다.

 

선생님도 똑같으세요. 급식 아줌마가 뭐가 어때서요? 급식 아줌마 없으면 선생님이 식사하실 수 있을 거 같아요? 그 분들 얼마나 힘드신 줄 알아요? 이 더운데 선풍기도 제대로 못 트세요. 바람에 불이 흔들린다고요. 선생님이 우리 엄마 발 본 적 없죠? 우리 엄마 발 하루 종일 장화 속에 있어서 퉁퉁 부어 계세요.

대연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 무거운 쌀, 식재료 매일 들고 다니시느라 발이 기형이 되어 가세요. 엄지 쪽 뼈가 점점 튀어나오신다고요. 나중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실 수도 있대요. 절뚝절뚝 걸으실 수 있대요. 선생님도 아까 가만히 두셨죠? 그래요. 선생님들도 급식 맛 없다고 투정하는 거 다 알아요. 그런데, 선생님들이 그러시면 안 되죠. 급식이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지는 지 아세요? 소금 한 번 치는데도 법이 있다네요. 선생님은 그런 거 모르셨죠?

 

대연아. 선생님은.

 

제 말 들으세요!

 

대연이 담임을 노려본다.

 

제 말 들으시라고요.

 

대연이 울먹울먹 하며 말을 잇는다.

 

지난 주에 저희 어머니 손을 다치셨어요.

 

!

 

밥 통 사이에 손가락이 끼이셨다네요. 그런데도, 그런데도 배식 계속 하셨어요. 어머니 일이시니까. 그리고 나서 애들 배식 다 하고 장갑을 벗으셨대요. 그런데 손목까지 검은 피가 가득 차 있었대요. 그 손을 가지고 설거지 하셨대요. 그리고 집에 와서 보니 상처가 다 벌어지고 쓰라려 하셔요.

 

대연의 어깨가 들썩인다.

 

선생님은 모르시죠? 그런 거 모르시죠?

 

담임이 대연을 꼭 안는다.

 

미안. 대연아 미안.

 

흐윽.

 

선생님이 몰랐어. 미안. 대연아 미안.

 

담임이 대연의 등을 토닥인다.

 

 

 

엄마.


. Son.

우리 이번 내일 놀러 갈까?

 

내일?

.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갑자기 왜?

 

갑자기는 무슨.

 

선재가 가인의 어깨를 안는다.

 

그냥 엄마랑 놀고 싶어서요.

 

어차피 여행 가잖아.

 

그건 Dr. Jason도 가는 거고.

 

선재가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다.

 

설마 엄마는 저랑 가기 싫은 거예요?

 

, 아니.

 

가인이 손사래 친다.

 

그럴 리가 있어.

엄마가 그러시면 서운해요.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우리 이번 주말에 그냥 가까운 공원이라도 가요.

 

그래.

가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 동네로 이사오고 이 동네도 제대로 구경한 적이 없네.

 

?


Call!

가인이 싱긋 웃는다.

 

도시락은 내가 쌀까?

 

가인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미소를 짓던 선재의 얼굴이 확 굳는다.

 

엄마, 아들 식중독 걸리게 하고 싶은 건 아니죠?

 

얘는 농담도.

 

가인은 높은 소리로 웃었다.

 

하하, 농담.

 

선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가인은 선재가 절대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그 이후로도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