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Season 4
- 일곱 번째 이야기 -
“쳇.”
‘깡’
주연이 길거리에 빈 깡통을 발로 걷어 찬다.
“엄마도 그렇고, 선재 씨도 그렇고.”
주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두 사람 모두 나를 바보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뭐야?”
주연이 울상을 짓는다.
“정말 싫다니까.”
주연이 우연히 맥도날드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발견한다.
“
뚱뚱했고, 지금은 다소 통통해졌다. 하지만 남들이 생각하는 그런 미모의 여성은 아니었다. 그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준 첫 사람이 바로 선재였다. 다른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바로 선재였다.
“엄마는 왜.”
그런 선재를 믿지 못하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주연은 한숨을 쉬며 아래 입술을 물었다.
‘꼬르륵’
순간 주연의 배에서 배꼽시계가 울린다.
“흐음.”
주연이 자신의 지갑을 열어 본다. 돈은 겨우 5000원 남짓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지갑을 왜 들고 나온 건지.
“쳇.”
주연이 한숨을 내쉬며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선재 군.”
화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로 주연이를 사랑하시는 건가요?”
“네.”
선재가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그리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제가 여태까지 알게 된 사람들 중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주연 씨입니다. 다른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입니다. 절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래요.”
화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선재 군의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어요.”
“네?”
선재가 화영을 바라본다.
“그게 무슨?”
“솔직히 말을 하지만 주연 씨가 그렇게 예쁘게 생긴 외모는 아니잖아요.”
화영이 미소를 지으며 주연의 사진을 바라본다.
“솔직히 내 딸이지만 참 미울 때도 있어요.”
“어머니.”
화영이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먹지 말라고 할 수가 없어요.”
화영이 미소를 짓는다.
“선재 군.”
“네.”
“주연이가 언제부터 그렇게 뚱뚱해졌는 지 아세요?”
“네?”
선재가 고개를 갸웃한다.
“잘 모르겠습니다.”
“지 아빠 떠나고 그렇게 되었어요.”
“!”
“나는 일을 다니지, 지 동생들을 돌봐야 하지. 그 어린 것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결국 그렇게 되어 버렸어요.”
화영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런데 솔직히 주연이가 예쁜 외모가 아니라는 것은 알아요.”
화영이 선재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선재 군.”
“네.”
“정말 주연이를 사랑하는 것인가요?”
“네.”
선재가 힘주어 대답한다.
“진심으로 주연 씨를 사랑합니다.”
“그래요.”
화영이 미소를 짓는다.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만일 주연이와 헤어지게 된다고 해도, 절대로 상처를 주지 말고 헤어져 줘요.”
“어머니.”
“내 부탁이에요.”
선재가 고개를 끄덕인다.
“헤어질 일은 없겠지만, 정말, 정말 만일 헤어진다고 하면 어머니 말씀대로 주연 씨에게 상처를 하나도 주지 않고 헤어지겠습니다.”
“고마워요.”
화영이 미소를 짓는다.
“선재 군.”
“예.”
“우리 주연이 정말로 사랑해줘요.”
화영의 눈에 간절함이 묻어 난다.
“물론입니다.”
선재의 눈에도 간절함이 묻어 난다.
“힝 배고파 죽겠는데 엄마랑 선재 씨는 도대체 언제 이야기를 끝낸다는 거야? 빨리 끝내야지 뭘 먹든지 하지.”
주연이 울상을 짓는다.
“하여간 두 사람 모두 센스가 제로라니까. 분명히 저녁 준비를 하면서 집에 오다가 그 사단이 난 건데, 그렇다면 나는 아무 것도 못 먹었다는 게 뻔한 거잖아. 그런데 어떻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을 수 있어?”
주연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으려는 순간.
‘딩동’
주연이 허겁지겁 액정을 확인한다.
‘주연 씨 어서 들어와요 – 내 사랑’
주연이 싱긋 웃는다.
“저 어머니.”
화영이 선재를 바라본다.
“무슨 일이지요?”
“저녁 안 드셨죠?”
화영이 고개를 갸웃한다. 선재가 싱긋 웃으며 소매를 걷는다.
“제가 부엌을 좀 사용해도 괜찮을까요?”
“후우.”
대연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갸웃한다. 지금이면 들어가도 되려나.
“형아.”
“응 정연아.”
“형아 나 졸려.”
그러고보니, 정연의 얼굴에 졸음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대연이 정연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정연아 우리 집에 들어가자.”
“헤헤.”
정연이 싱긋 웃으며 대연의 손을 꼭 잡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지연의 얼굴이 어두워져 있다.
“분명 아버님께 무슨 일이 있는 것인데.”
분명 아까 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연이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나도 많은 것을 지연에게 숨기고 있는 아버지였다. 아무리 겉으로는 어린 지연이라고는 하더라도 이미 속으로는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되었는데 도대체 왜 자꾸 어린 아이로만 보는 건지. 지연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너무나도 아쉬운 지연이다.
“아버님.”
지연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오늘따라 별이 더 밝다.
“어머니는 그 곳에서 잘 지내고 계신지요.”
자신이 어릴 적 이미 돌아간 어머니, 지연은 그런 어머니의 얼굴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머니의 그 따뜻한 품만은 여전히 기억을 할 수 있다.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연을 낳고 앓다가 돌아가신 것이라고 하니 지연은 그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더욱 애틋하였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도대체 어디를 다녀 오신 건지, 지연은 아버지를 맞이하기 위하여 일어나려다가 주춤 한다.
“휴우”
아버지의 한숨 소리였다. 아버지가 그토록 지키려고 아둥바둥하다가 결국 잃고 말았던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아버지가 한숨을 쉬는 일은 없었었다. 항상 아무리 힘든 일이 있다 하더라도 지연을 보면 미소를 지어주시던 아버지셨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다시 한숨을 쉬시다니. 지연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
어떤 일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면 어느 정도 그 마음의 짐을 덜어 놓을 수도 있을 텐데, 도대체 왜 그렇게 혼자서 그 짐을 끙끙 안고 가시려는 것인지, 지연의 마음은 아리다.
“여보.”
그의 눈에 굵은 눈물이 맺혀 있다.
“미안하오.”
그의 손에 통장이 하나 들러 있다. 그 통장에는 학자금 통장이라는 말이 써있다. 지연의 어머니인 자신의 부인이, 자신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절대로 이 돈만큼은 손을 대지 못하게 했던 사람이었다.
“미안해요.”
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흐른다.
“지금은 이 돈을 쓸 상황인 것 같소.”
통장에 적혀 있는 몇 개의 숫자. 지금 자신과 지연을 지켜줄 수 있는 마지막 부적이었다. 지금 그는 그 부적의 효험을 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럴 수는 없었지만, 이 통장을 위해서 그의 부인이 얼마나 노력을 한 지 알기 때문에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그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더 이상 지연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자신의 무능력 때문에 자신의 어리디어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신의 소중한 딸이 상처를 입어 버렸다. 더 이상은 그 여리고 고운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자신과 자신의 부인이 악착같이 벌어 놓은 이 몇 푼의 돈을 써버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 돈을 써버리게 된다면 지연의 학자금이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지연을 지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나중에 문제는 나중에 어떻게든 해결 방법이 있을 터였다. 그는 눈물을 훔쳤다.
“후우.”
그가 부인의 사진을 엎어 둔다. 더 이상 그의 부인의 눈을 마주보기가 두려웠다, 이토록 자신이 무능력하다는 것을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기는 너무나도 두려웠다.
“아버지.”
문을 조심스럽게 열던 지연이 도로 문을 닫고 뒷걸음질 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신겁니까?”
지연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 고인다.
“무슨 일이시길래, 무슨 일이시길래.”
자신의 아버지는 언제나 강인한 사람인 줄만 아셨다. 종가를 잃을 때에도 의연하게 모든 것을 견뎌내시던 분이셨다. 그런 분이, 그렇게 강인하시던 분이 지금 눈물을 흘리고 계시다.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으셨다는 아버지가 지금 눈물을 흘리고 계시다.
“아버지.”
정확히 무슨 일인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과 관련이 있는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는 지연이었다. 다만, 그 일의 자세한 내용까지는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한 노릇이었다. 자신이,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리고 정말 절실하지 않은 일이라면 지금 아버지를 말리면 되는 것일 텐데, 그런 것일 텐데. 지연도 지금 아버지가 들고 있는 통장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지연이 어릴 적 지연을 무릎에 앉혀두고 자랑을 하던 통장이었다. 나중에 자신이 대학을 가게 되면 쓰게 될 돈이라며 언제나 기분 좋게 보던 통장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통장을 보며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고 계시다. 분명, 분명 지금 아버지가 저 통장을 쓸 일이 생기게 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자신과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이다.
“아버지.”
아무리 자신이 아버지를 헤아린다고 해도 절대로 모든 것을 헤아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연이었다.
“네?”
은행 직원의 눈이 커다래졌다.
“해지하시겠다고요?”
“예.”
그가 쓸쓸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몇 년만 더 두시면.”
“해지해 주시오.”
그의 목소리가 낮고 굵게 울린다.
“부탁입니다.”
그의 깊은 울음이 섞여 있는 목소리에 은행원이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며 통장을 해지했다.
14살. 남자
키도 크고 잘 생기고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는 완벽한 중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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