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Season 4
- 여덟 번째 이야기 -
‘치익’
화영은 조심스럽게 부엌으로 향했다.
“!”
그리고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식재료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다? 아니, 날아다니지는 않는다. 다만 선재라는 사람의 손 끝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정말 훌륭한 요리 솜씨였다.
“어디서 그런 요리들을 배운 거예요?”
“에? 보셨군요?”
선재가 머리를 긁적인다.
“어디서 그런 훌륭한 요리들을 배웠냐고요?”
“에,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꽤나 부끄럽지만.”
선재가 계속 요리를 하면서 화영의 말에 대꾸한다.
“저희 어머니 요리 솜씨가 조금, 아니 많이 부족해서 말이에요.”
“?”
“저희 어머니 아침 식사도 항상 제가 준비를 했었고, 제 밥도 물론이고요. 그래서 요리 솜씨가 조금 발전했네요.”
선재가 쑥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가정부 같은 건 없었어요?”
“당연하죠.”
선재가 단호하게 말한다.
“저희 집은 그런 사람들을 쓰지는 않았어요. 물론 집사 아저씨랑, 운전 기사 아저씨도 계시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정부를 사용하지는 않았어요. 우리 가족의 소소한 일들까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선재가 검지로 코를 비빈다.
“그나저나 잡채 좋아하세요?”
“형아. 힘들어.”
정연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정연아 다리 아파?”
“응.”
그도 그럴 것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는 하나 오늘 동생을 꽤나 많이 걷게 만들었다.
“으유 그 돼지 때문에.”
대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모든 것이 전부 주연의 탓이었다. 물론 주연의 일을 어머니에게 말을 한 자신의 잘못도 있지만, 애초에 그런 짓을 한 주연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대연이다.
“정연이 못 걷겠어?”
“못 걷겠는 건 아닌데.”
정연이 울상을 지으며 대연을 바라본다. 단 한 번도 어리광을 부린 적이 없는 정연이었다.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빨리 깨우치고, 아무도 가르친 적은 없는데 항상 모든 것을 다 해내려고 하는 아이였다. 대연은 그런 동생이 너무나도 안쓰럽고 미안했다. 자신도 아이지만, 자신보다 더 어린 아이가 그렇게 혼자 상처를 감안해 내려는 모습은 정말로 미안했다.
“정연아.”
“응?”
“형아가 업어줄까?”
“진짜로?”
대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연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응.”
“킥.”
대연이 쪼그려 앉아서 자신의 등을 내민다.
“우리 예쁜 정연이 어서 앉아.”
“꺄아.”
네 살. 터무니 없이 어린 아이였다. 대연은 조금은 무거워진 정연을 업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 아이도 하루하루 커가기는 하는 거구나. 조금만 더 있으면 자신의 도움은 필요가 없겠구나.
“정연아.”
“응.”
“코 자. 형이 집에 가서 내려 줄게.”
“응.”
그리고 곧 잠을 자는 소리가 들렸다.
“잡채 같은 것도 할 줄 알아요?”
화영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 정도야 기본이죠.”
선재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다.
“제가 잡채를 무지하게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가장 먼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칼 질을 하고 나서 가장 먼저 배운 요리가 바로 잡채였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는 잡채거든요.”
선재가 씩 웃는다.
“어머니도 잡채 좋아하시죠?”
“네.”
화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나저나 참 놀랍네요.”
“네?”
“잡채도 할 줄 알고 말이에요.”
“잡채가 어려운 요리도 아닌 걸요?”
선재가 당근을 볶기 시작한다.
“그냥 이것저것 쓰고 하면 되는 거니까요. 아참, 냉장고에 있는 고기는 제가 써버렸어요. 돼지 고기가 없어서 쇠고기를 쓰기는 했는데, 그 쇠고기를 어디다가 쓰실 일이 있으실 까봐, 나머지는 도로 냉장고에 넣어 뒀어요.”
“아!”
화영이 입을 가린다.
“?”
선재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화영을 바라본다.
“무슨 일 있으세요?”
“그게.”
화영이 입술을 꼭 깨문다.
“오늘이 주연이 아빠 기일이라서요.”
“!”
선재의 얼굴이 굳는다.
“내가 너무 경황이 없어서 잊고 있었네.”
화영이 허둥지둥 한다.
“선재 군 정말 미안한데. 집으로 돌아가주겠어요. 오늘 우리는 제사를 지내야 하거든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집 안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이에요. 이렇게 멋대로 오라고 하고 가라고 해서 너무 미안해요.”
“그냥 있겠습니다.”
“네?”
화영이 선재를 바라본다.
“무슨?”
“저도 이제 사위가 될 사람인걸요.”
선재가 씩 웃는다.
“저도 늦었지만 이제야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서, 선재 군.”
“그리고 혼자 요리를 하시는 것 보다는 제가 도와드리는 편이 훨씬 빨리 끝날 거 같은데, 안 그래요?”
“그렇네요.”
화영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내가 염치 불구하고, 선재 군에게 조금 도움을 요청해도 될까요? 아까 보아하니 요리 솜씨가 꽤나 좋던데.”
“물론입니다.”
선재가 경례를 한다.
“어머니가 시키시고 싶은 만큼 부리십시오.”
“킥.”
화영이 웃음을 터뜨린다.
“참 싹싹하네.”
“헤헤.”
대연과는 다소 다른 아이인 듯 하였다.
“그럼 무엇부터 할까요?”
팔을 걷고 있는 선재가 참 예뻐 보이는 화영이다.
“지연아.”
이부자리를 깔고 자려고 하는데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네.”
지연이 황급히 방을 나간다.
“후우.”
아버지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아버지가 애써 미소를 짓는다.
“지연아.”
그리고 지연을 부른다.
“네.”
언제나처럼 공손한 지연이다.
“이리 좀 건너 오너라.”
“예.”
지연의 사뿐사뿐한 발걸음이 느껴진다. 단 한 번도 가르침을 흐트른 적이 없는 아이였다. 자신의 아이였지만 참 예쁜 아이였고, 자신 뿐 아니라 아직 종가가 활발할 때에는 모든 문중의 어른들이 참 예뻐라 하는 아이였다. 아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손 감으로 딱이라는 소리도 들었던 아이였다.
“부르셨습니까?”
지연이 다소곳하게 그를 바라본다.
“그래.”
그가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지연아.”
“네.”
“너도 이제 다 큰 게지?”
그가 지연의 눈을 바라보자, 지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하옵니다.”
“그래.”
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지연에게 던진다.
“이, 이것이 무엇입니까?”
“안을 보거라.”
지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조심스럽게 그가 던진 봉투를 열어 본다. 그리고 그 내용물을 확인한 지연의 얼굴이 굳는다.
“아, 아버님.”
“미안하구나.”
그가 고개를 숙인다.
“이 애비가 너무나도 무능력하여서, 너를 자꾸만 고생을 시키는 구나.”
“아닙니다.”
지연이 고개를 젓는다.
“저를 낳아주시고 이제까지 길러주셨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런데 지연아.”
“예.”
“네 학자금에 손을 대기로 했다.”
“!”
“너를 보아하니 단 한 순간도 그 아이가 없이는 살지 못하겠더구나.”
“아, 아버지.”
지연의 눈이 커다래진다.
“무, 무슨.”
“너와 대연 군은 정말로 잘 어울리더구나.”
그가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학자금을 쓰기로 했단다. 하지만, 네 돈이니.”
그가 미소를 짓는다.
“너에게 허락을 받아야 겠지.”
“하지만 그 돈은.”
그가 고개를 젓는다.
“이 돈은 네 어미가 마련한 돈이다.”
“그러니 말입니다.”
“그러니, 너를 위해서 써야 한다.”
“!”
그가 슬픈 눈으로 지연을 응시한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너를 위해서 모은 돈이니까 말이다.”
“아버님.”
지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린다.
13살. 여자
종가의 마지막 딸. 아버지를 끔찍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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