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우리, 사랑해! [완]

우리, 사랑해! season 4 - [쉰일곱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8. 10. 8. 23:02

 

 

우리, 사랑해! Season 4

 

- 쉰일곱 번째 이야기 -

 

 

 

어디가 안 좋은 거예요?

 

화영이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태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오빠.

 

위암 말기래.

 

!

 

화영의 얼굴이 굳는다.

 

, 그게 무슨 말이에요?

 

무슨 말이긴.

 

태경의 표정이 쓸쓸하다.

 

곧 죽는 다는 이야기지.

 

, 오빠가 왜 죽어요?

 

화영의 얼굴이 창백하다.

 

오빠가, 오빠가 왜 죽어요?

 

그러게.

 

태경이 쓸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지연이를 위해서 죽으면 안 되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건데. 죽는다네.

 

, 정말이에요?

 

.

 

태경이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나도 정말 아니길 바랐거든. 정말, 정말 아니길 바랐는데, 아닌 게 아니라고 하네.

 

!

 

정말 암이래.

 

.

 

화영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신은 없는 거군요?

 

?

 

오빠마저 없으면 지연이는 어떻게 해요? 오빠만 보는 그 지연이, 그 여린 아이는 어떻게 해요?

 

그래서 부탁이야.

 

?

 

화영의 눈이 동그래진다.

 

, 그게 무슨.

 

지연이 네가 좀 키워줘.

 

!

 

화영의 눈이 커다래진다.

 

, 오빠.

 

내 위로 형님이 한 분 계셔, 하지만 그 분은 지연이를 키우시지 못할 거야. 그 분 형편 안 좋은 거 내가 더 알아.

 

하지만 저도.

 

그리고.

 

태경이 화영의 말을 막는다.

 

그리로 가면 지연이와 대연이 만나지 못해.

 

!

 

아직 어린 날의 풋사랑이라 그 사랑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저 두 아이는 인연이야. 누가 뭐라고 부정 할 수 없는 확실한 인연, 내가 그 하나 그 사실은 말하고 싶어.

 

하지만 오빠.

 

미안해.

 

태경이 미소를 짓는다.

 

나 너에게 밖에 이런 부탁을 할 사람이 없다.

 

!

 

화영아.

 

하아.

 

화영이 한숨을 내쉰다.

 

왜 그래요?

 

화영의 눈에 원망의 기색이 가득하다.

 

도대체, 도대체 왜 그래요? 나보고 뭘 어쩌라고? 나도 애가 셋이에요. 나도 혼자인데 애를 셋 기르고 있어요.

 

태경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렇다고 오빠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는 거잖아요. 그렇잖아요. 정말, 오빠 정말 왜 그래요?

 

화영아.

 

미치겠어요.

 

화영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정말, 정말 오빠 때문에 미치겠어요.

 

화영이 태경을 바라본다.

 

그러면 오빠도 하나만 약속해주면 안 돼요?

 

?

 

태경이 화영을 바라본다.

 

무슨, 약속?

 

치료해요.

 

!

 

지연이, 지연이 내가 키울 테니까, 그렇게 할 거라고 내가 오빠에게 약속 할 거니까, 오빠는 치료 받아요.

 

아니.

 

태경이 고개를 젓는다.

 

그럴 수 없어.

 

왜요?

 

화영이 되묻는다.

 

왜 치료를 받을 수 없어요?

 

돈 낭비일 뿐이야.

 

오빠.

 

싫어.

 

태경이 단호한 표정을 짓는다.

 

그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살아날 확률이 높은 것도 아니고 거기에 들어가는 돈도 어마어마 해, 그 돈, 내가 그렇게 살 가망성도 없는 치료를 해서 버리는 것 보다는 그 돈 너에게 주어서, 네가 지연이를 더 잘 보살펴 주는 거, 그게 더, 나에게는 그게 더 중요한 거야. 그런 거야.

 

하아.

 

화영이 한숨을 내쉰다.

 

오빠가 그렇게 돈을 주지 않아도, 나 지연이, 지연이 정말로 잘 보살필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치료 받아요.

 

화영아.

 

오빠.

 

두 사람의 눈이 부딪친다.

 

그 고집은 변하지 않는 군요.

 

너도.

 

태경이 작게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전에도 항상 내가 이겼잖아.

 

오빠.

 

그러니까, 그러니까.

 

태경이 씩 웃는다.

 

이번 한 번만 내가 더 이기자.

 

싫어요.

 

화영이 고개를 젓는다.

 

오빠가 항상 그렇게 다 이겨온 거잖아요. 나에게 항상 오빠가 다 이겼잖아요. 그러니까, 한 번만 져주면 안 돼요?

 

.

 

태경이 고개를 끄덕인다.

 

안 돼.

 

오빠.

 

미안해.

 

태경이 미소를 짓는다.

 

너에게 너무 큰 부담을 줘서 정말 미안해.

 

하아.

 

하지만,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내가, 내가 힘이 될 사람은 지금은, 지금 이 상황에서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너니까, 내가 믿고 의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단지 너 뿐이니까.

 

오빠.

 

화영이 태경을 바라본다.

 

언제나 당차고 멋있던 오빠가 왜 이렇게 변했어요?

 

시간.

 

태경이 화영을 바라본다.

 

아이.

 

태경이 미소를 짓는다.

 

그런 것들이 나를 변하게 만들었어.

 

오빠는, 오빠는 언제나 같을 줄 알았어요.

 

어떻게 그래?

 

그러니까요.

 

화영이 미소를 짓는다.

 

그게 말도 안 되는 거 알고 있는데, 그래도, 그래도 오빠라면, 내가 아는 태경 오빠라면 다를 줄 알았어요. 어릴 적부터 아무도 그 종가 맡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발버둥을 치고 짜증을 낼 때, 알아서, 자기 입으로 언제나 내가 종가를 맡을 거라고, 잘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오빠가 대단해 보였어요. 부럽고 정말 멋있어 보였어요. 나는 아무리 그러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아이였거든요. 언제나 당당하고 멋있는 오빠가 부러워 보였어요. 하지만, 하지만.

 

화영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이제는, 이제는 아니에요. 지금의 태경 오빠 모습은 전혀 닮고 싶은 모습이 아니에요. 지금 태경 오빠는 너무나도 약하고 여려 보이기만 하다고요. 예전에 그 강인하고 다부진 오빠의 모습이 아니에요. 세상과 맞서 싸워도 지지 않을 거라는 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오빠가 아니에요.

 

그랬구나.

 

태경이 미소를 짓는다.

 

네가 기억하는 나는 그렇구나.

 

오빠.

 

나는 단순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

 

태경이 씩 웃는다.

 

그 종가라는 거, 형은 정말로 맡기 싫어했거든. 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형은 종가와 맞지 않는 체질이었어. 어딘가에 그렇게 고루하게 박혀 사는 거 못 하는 사람이었거든. 그 때는 무슨 자만이었는 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걸 할 수 있을 거 같았어.

 

태경이 미소를 짓는다.

 

물론 망하고 말았지만.

 

오빠 탓이 아니에요. 오빠가 아무리 잘 했어도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하니까 오빠는 어쩔 수 없었던 거예요.

 

정말 그럴까?

 

?

 

정말 그런 걸까?

 

.

 

화영이 확실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그래.

 

태경이 미소를 짓는다.

 

그렇구나, 그러면 정말 다행이야. 나는 내가 너무나도 부족해서 그런 건 줄로만 알았거든.

 

오빠.

 

다행이야.

 

태경이 미소를 짓는다.

 

그나저나 커피 다 식어 버렸네.

 

태경이 자신의 잔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다시 시켜줄까?

 

아니요.

 

화영이 고개를 젓는다.

 

괜찮아요.

 

하지만 식으면 맛이 없잖아.

 

사랑은 식어도 변하지 않아요.

 

!

 

커피도 마찬가지에요.

 

화영이 어설프게 미소를 짓는다.

 

오빠.

 

?

 

그러면 내가 지연이 엄마가 되는 거죠?

 

!

 

이런 생각하면 안 되는 거 아는데, 그런 거죠?

 

그래.

 

태경이 고개를 끄덕인다.

 

넌 지연이 엄마야.

 

그리고 오빠는.

 

화영이 미소를 짓는다.

 

지연이 아빠인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