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Season 4
- 일흔여섯 번째 이야기 -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한 게 없구나?”
태경이 씩 웃는다.
“울보.”
“시끄러워.”
영우가 태경을 바라본다.
“왜 그렇게 고집을 피우는 거야?”
“돈이 없어.”
“일단 살아. 그리고 나서 돈을 생각해도 되는 거 아니야?”
“응, 아니야.”
태경이 미소를 짓는다.
“너는 나랑 달라서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정말 아니야. 나는 그렇지 않아. 그럴 수가 없어.”
“어째서?”
“너도 알잖아.”
태경이 슬픈 미소를 짓는다.
“지연이?”
영우가 코웃음을 친다.
“너 정말 지연이 때문에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이렇게 고집을 피우고 있는 거냐? 그런 거냐?”
“그래.”
“그래?”
영우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너 알고 있냐?”
“뭘?”
“지연이 네 아이 아닌 거?”
영우의 말에 태경은 살짝 당황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그래.”
태경의 대꾸에 영우는 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 너는 너를 희생하겠다는 말이 나오냐?”
“당연하잖아.”
태경이 미소를 짓는다.
“내 딸이니까.”
“그래.”
영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너는 그랬어? 언제나 자신은 뒤로 한 채, 다른 사람들을 챙기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고는 했었지. 하지만 이거는 그런 거랑은 달라! 네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라고! 네 피가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그런 여자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네 목숨을 버리는 그런 바보 짓을 도대체 왜 하려고 하는 거야? 저 여자 아이의 엄마도 죽었다며? 이런 네 마음 누가 알아줘?”
“내가.”
“!”
“내가 알아줘.”
“하.”
“내가 잘 알아줘.”
태경이 영우를 바라본다.
“너는 이해를 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는데, 지연이는 내 딸이야?”
“어째서?”
“어째서냐고?”
“그래.”
태경이 미소를 짓는다.
“내 딸이니까.”
“하.”
“내가 길렀어.”
태경이 병원의 하얀 벽을 바라본다.
“그 아이 내가 길렀어, 13년이라는 기간 동안.”
“그게 대수야?”
영우가 태경의 눈을 바라본다.
“요즘에는 자기가 낳은 친자식도 버리고 가는 부모가 태반이고, 수두룩해! 그런데 너는 네 자식도 아닌 여자 아이를 여태까지 길렀어. 그 정도면 충분해! 더 이상 네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할 필요도 없잖아.”
“아니야.”
태경이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돌겠네.”
영우가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린다.
“그래, 돈은 내가 어떻게든.”
“너는 아직도 나를 모르냐?”
“
“울보 영우야.”
태경이 영우를 살짝 안는다.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나 한 번 아닌 거, 절대로 아니라는 거, 그 사실 너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잖아.”
“병신 새끼.”
“영우야.”
태경이 영우의 등을 두드린다.
“지연이에게는 말을 하지 말아줘.”
태경이 몸을 떼고 영우의 눈을 바라본다.
“그 사실을 알면 그 아이 너무나도 놀랄 거야.”
“이 미친 놈아, 어떤 걸 말하지 말까? 어떤 사실을?”
영우가 너무나도 원망스럽다는 표정으로 태경을 바라본다.
“네가 친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 네가 암이라는 사실? 어떤 거?”
“둘 다, 모두 다, 아무 것도 그 아이에게는 말을 하지 말아줘, 제발.”
“아주 성인군자가 났구나? 미친 놈 여기 하나 났구나? 아주 돌았어. 정말. 미쳤어.”
“그 아이를 위해서는 어떤 사람 소리를 들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어. 나는 정말 괜찮아.”
태경이 영우를 향해서 슬픈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런 태경의 얼굴은 지친 기색이 만연하다.
“내가 낳은 아이는 아니더라도, 그 사람이 내게 잘 부탁한다고 맡기고 간 아이잖아. 그러면 내 아이야.”
“어떻게 제 자식도 아닌 자식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부모가 있어?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서? 그래서?”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 그래, 그게 맞는 말이겠다. 아니, 그건 조금 아니고, 그래, 가슴으로 키운 아이, 그게 지연이야.”
“가슴으로 키우건, 네 손으로 키우건, 그런 건 아무런 상관이 없어. 내가 네 친구가, 내가 의사고, 너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영우야.”
태경이 그의 어깨를 강인하게 잡는다.
“너도 아버지잖아.”
태경의 눈이 슬프게 빛난다.
“아버지는 알게 될 거야.”
“제길.”
아버지. 아버지.
“하아.”
영우가 한숨을 내쉰다.
“어서 가 버려. 마음 변하기 전에.”
“그래.”
태경이 고개를 끄덕인다.
“고마워.”
“너는 언제나 그 고집 가져 갈 거냐?”
“그럴 거야.”
영우가 다시 한 번 태경을 슬픈 눈으로 바라본다.
“알았습니다.
그리고 의사로 돌아온 영우다.
“약은 꼭 챙겨 드십시오.”
“네.”
환자로써 태경은 영우의 방을 나온다.
“하아.”
영우는 슬픈 눈으로 시계를 바라본다.
“나 괜찮아?”
“그래.”
혜지가 병환의 넥타이를 만져준다.
“왜 그렇게 긴장을 하고 그래?”
“긴장이 안 돼냐?”
“긴장 될 게 뭐가 있냐?”
혜지가 싱긋 웃는다.
“어차피 우리 엄마 알잖아?”
“그래도.”
병환의 얼굴이 살짝 창백하기까지 하다.
“그냥 과외 선생님이고, 남자 친구로 어머니를 뵙는 거랑, 사위 되겠다고 인사 드리는 거랑은 한참 차이거든요? 하늘과 땅 차이라고.”
“엄살은.”
혜지가 귀엽게 눈을 흘긴다.
“우리 엄마 나쁜 분 아니잖아.”
“알아.”
병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긴장이 되는 걸 어떻게 하냐?”
“킥.”
혜지가 작게 웃음을 짓는다.
“오빠 떠는 거 오랜만이야.”
“그렇지?”
병환이 자신의 팔을 문지른다.
“아마도 어머니 처음 뵈었을 때 조금 떨었었나?”
“그럴 걸?”
“후우.”
병환이 한숨을 내쉰다. 우리나라에서 명문으로 쳐주는 K대를 다니고 있고, 드디어 첫 과외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상대는 고등학교 1년생, 아직 어리니까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병환은 자신에게 그럴 것이라고 최면을 걸면서 애써 미소를 지으며 집의 벨을 눌렀다.
‘딩동’
“누구세요?”
“오늘부터 과외 하기로 한
‘철컥’
“어서 와요.”
조금은 깐깐해 보이기도 하는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 주었다.
“아, 안녕하세요?”
“앉아요.”
“아, 네.”
병환은 아주머니가 권해주는 자리에 앉았다.
“우리 딸이 아직 오지 않아서.”
“아직이요?”
“네.”
병환이 자신의 손목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일요일
“요즘 우리 애가 논술 학원을 다녀요.”
“아.”
병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논술 중요하죠.”
“그렇죠?”
“네.”
아주머니가 반갑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다니기 싫다고 얼마나 칭얼 대는 지.”
“그 맘 때는 다 그렇죠.”
“그러니까요.”
아주머니가 답답한 표정을 짓는다.
“다 지 잘되라고 그러는 건데.”
“나중에 알 겁니다.”
“그렇겠죠?”
“네.”
병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철컥’
그 순간 문소리가 들린다.
“우리 애 왔나 봐요.”
병환은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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