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Season 4
- 일흔네 번째 이야기 -
시간은 흘렀다. 조금은 빠른 속도로.
“아빠 무슨 약을 드시는 거예요?”
“비타민.”
태경이 자신이 먹는 약의 통을 들어서 지연에게 보여준다. 미리 의사에게 부탁을 한 덕분에, 약 통은 진통제라는 말이 쓰여져 있는 대신에, 종합 비타민제라는 말이 쓰여져 있었다. 어느 새 지연은 퇴원을 할 때도 되었다. 하지만 아직 퇴원은 하지 않고 있었다. 화영과 그리고 대연은 이 퇴원이 미루어지는 이유가 지연 때문에 아니라 태경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연 군과 함께 퇴원을 하고 싶었는데.”
“아니야.”
대연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내가 면회를 올 거니까, 꼭, 지연 양도 퇴원을 하지 않아도 좋아. 오히려 지연 양이 여기에 있는 편이 더 오랜 시간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좋은 걸?”
“그런 가요?”
지연이 미소를 짓는다.
“응.”
대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그냥 여기 있는 게 좋을 거 같아.”
“뭐, 그러죠.”
지연이 싱긋 웃는다.
“어차피 곧 다 나을 테니까요.”
“그래.”
대연이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좀 괜찮아요?”
“응.”
태경이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보다 암이라는 녀석이 나를 괴롭히지는 않는 모양이야. 담당 의사도 항상 나를 보고 놀라더라고, 다른 사람들이라면 암이 나 정도 진행이 되었다면 정말 아파서 서 있을 수도 없다고 하는데 나는 너무나도 멀쩡하다고 말이야.”
“아버지니까요.”
화영이 슬픈 표정으로 말한다.
“아버지니까.”
“그래.”
태경이 수긍이 간다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아버지라서 그런 모양이다.”
“후우.”
화영이 한숨을 내쉰다.
“지금도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 오빠의 병을 당장이라도 지연이에게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루에 열 두 번, 아니 그게 뭐예요? 정말 수십 번, 수백 번도 생각을 하고 있어요. 지연 양은 알 권리가 있으니까, 그런 거니까. 하지만 오빠의 말 때문에, 오빠가 말리니까, 늘 참고만 있어요.”
화영이 슬픈 눈을 하고선 태경을 바라본다.
“정말 지연이에게는 전혀 말할 생각이 없는 거예요?”
“응.”
태경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히려 빨리 알게 되면 알수록 아파하는 시간이 길어질 뿐이야. 나중에 알게 되면 그 충격은 클 지 몰라도 그 고통의 시간은 길지 않을 거야. 하지만 지금 내가 지연이에게 말을 해준다면, 지연이는 지금부터 괴로워 할 게 분명하다고, 부모가 죽는다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 한 문제는 아니니까,. 지금부터 괜히 지연이가 고민을 하며 아파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
“하아.”
화영이 가슴 속 깊숙이서 한숨을 내쉰다.
“정말 오빠라는 사람이 미워요.”
“나는 미워해도 지연이는 미워하지 마.”
태경이 화영을 바라본다.
“알았지?”
“알았어요.”
화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안 할 게요. 그렇게는 안 할게요.”
“그래.”
태경이 미소를 짓는다.
“고마워.”
태경이 화영에게 손을 내민다.
“악수 하자.”
“오빠.”
“이제 언제 이 손을 잡을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화영이 그 손을 잡는다. 하얗고 커다랗지만 깡말라서 핏줄이 다 보이는 가녀려 보이는 손, 태경의 손이었다.
“왜 이렇게 말랐어요?”
“그런가?”
태경이 고개를 갸웃한다.
“이상하게 요즘에는 배가 고프다거나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더라고, 그래서 밥을 잘 안 먹어서 그런 가 보네.”
“후우.”
화영이 미소를 지으며 태경을 바라본다.
“건강하라는 말은 우습겠죠?”
“응.”
태경이 고개를 끄덕인다.
“마지막까지 적게만 아프길 바라요.”
“고마워.”
태경이 미소를 짓는다.
“다음에 다시 보자.”
“네.”
화영도 고개를 끄덕인다.
“가자.”
“응.”
대연이 조금은 아쉬운 표정으로 지연의 병실을 바라다 본다. 하지만 자신이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지연의 아버지, 그러니까 태경의 병 명을 알고 나서 대연은 예전처럼 지연을 독차지 하려고 하지 않았다. 조금은 더 많은 추억을, 조금은 더 많은 아버지와의 추억을 지연에게 주고 싶었다. 그게 대연이 해줄 수도 없고, 지연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갈 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엄마 가요.”
“그래.”
대연은 그렇게 퇴원을 했다.
“헤헤.”
“푸핫.”
주연과 선재는 너무나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비가 온 뒤에는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한 번 헤어짐의 고난을 겪었던 두 사람은 헤어져 봤었기에, 더욱 단단하고 강한 연인이 되었다.
“이번 주말에 부모님이 오신다고 했죠?”
“네.”
가인과 Dr.Jason의 계획은 두 사람이 원하던 것과는 조금 틀어져 버려서, 지지난 주에 오려던 계획이 무려 2주나 밀리고 말았다. 오늘이 월요일이니 몇 날만 더 지나면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나도 보고 싶어요.”
“네.”
선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야죠.”
‘Rrrrr Rrrrr’
그 순간 전화 벨이 울리고 주연이 전화기를 꺼낸다.
“잠시만요.”
“네.”
주연은 전화기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
“성기야.”
“뭐 해?”
“그냥 있어.”
“그래?”
주연은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왜 전화한 거야?”
“그냥.”
주연은 허무함에 미소가 흘러 나올 뻔 했다.
“나 지금 선재 씨랑 같이 있어.”
“그렇구나.”
“내가 다시 연락할게.”
“저 주연아.”
“응?”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오늘 저녁?”
주연이 살짝 고개를 갸웃한다.
“별 다른 일이 없긴 한데.”
“그래?”
성기의 목소리에는 작게나마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그러면 그 때보자.”
“서, 성기.”
하지만 전화기는 끊겨 있었다.
“하여간 이 버릇은.”
주연은 고개를 저었다.
“훗.”
성기는 낮게 웃었다.
“내가 쉽게 포기할 거 같아?”
오랜 만에 만난 이상형이었다. 비록 주연에게 애인이 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포기를 할 수는 없었다. 그 동안 사람을 만나면서 그랬던 적이 한 번도 없던 성기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미 자신 때문에 두 사람이 흔들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성기는 더더욱 자신감이 붙었다. 두 사람 사이는 자신의 생각했던 것보다 다소 허술할 지도 몰랐다.
“
가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무얼 할까요?”
“저녁에요?”
주연이 고개를 들자 선재가 고개를 갸웃한다.
“왜요? 약속 있어요?”
“약속이 있는 건 아닌데.”
주연이 살짝 말 끝을 흐린다.
“약속이 생길 거 같아요.”
“그래요?”
선재가 고개를 끄덕인다.
“미안해요.”
“아니요.”
선재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주연 씨가 약속이 있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래도요.”
주연이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선재 씨 오랜만에 본 건데, 그래도 함께 있어줘야 하는 거잖아요.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오늘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정말 힘들게 있다가 다시 만났으니까 앞으로 함께할 날이 많잖아요.”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말아요.”
“고마워요.”
“그러면 일어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직은 괜찮아요.”
주연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우리 점심은 다 먹어요.”
“그래요.”
선재가 주연에게 자신의 스테이크를 덜어 준다.
“왜요?”
“주연 씨가 저보다 더 많이 먹잖아요.”
선재가 씩 웃는다.
“그, 그래도.”
주연이 얼굴이 빨개지자 선재도 싱긋 웃는다.
“부끄러워하지 말아요.”
선재가 주연을 바라본다.
“나는 이렇게 잘 먹는 주연 씨가 너무나도 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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