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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듯 다른 듯, 동화의 재해석

권정선재 2008. 10. 31. 12:15

 

닮은 듯 다른 듯, 동화의 재해석

 

 

 

 

동화라는 것은 참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도 그 동화 속의 공주님처럼 아름다워지고 싶다. 동화 속의 왕자님처럼 멋진 남자가 되어서 나의 여자를 구하고 싶다. 이런 꿈들을 말이죠. 그런데 이러한 동화들이 최근 뜯어 고쳐지고 있습니다.

흔히들 동화로 대변이 되는 백설공주, 인어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이 네 동화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바로 동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수동적이라는 것입니다. 동화 속의 나오는 여성들의 삶은 대다수가 매우 불우하게 그려지곤 합니다. 그리고 그 삶 속에서 고난과 역경을 겪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손으로는 아무 것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결말은 모두 비슷하게 멋진 왕자님을 만나서 해피 앤딩을 맞는 것, 이것이 동화의 정석이라고 할 정도로 천편일률적인 동화들의 결말입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동화들이 변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남성들에게 휘둘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서로를 헐뜯고 미워하는 여성들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개척적이고 서로를 미워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로 말입니다.

그 대표적인 동화가 바로 두 편이 있습니다. 한 편은 1988년에 국내에서도 출간이 된 동화 <백설공주의 계모는 어떻게 되었나?>이고 다른 한 편의 동화는 국내에서도 커다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흑설공주 이야기>라는 동화입니다. 그런데 이 두 편의 동화는 굉장히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두 편의 동화가 모두 <백설공주>라는 고전을 바탕으로 두고 있지만 정작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편이하게 다릅니다. 바로 동화를 보고 있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백설공주의 계모는 어떻게 되었나?>는 여성의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동화 속에서 백설공주라는 존재는 크게 부각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에 가득 차 있는 추악한 한 여성의 모습만이 부각되고 있을 뿐입니다. <백설공주>속에서 계모인 여왕이 자신의 어린 딸에게 질투심을 느끼며 악랄한 마녀로 부각이 되었다면, <백설공주의 계모는 어떻게 되었나?> 속의 계모는 전 나라를 대상으로 그 아름다움을 시기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자신의 아름다움이 부각되게 하기 위해서 강물을 흐리고, 얼음을 덮고 하는 그녀의 모습은 <백설공주> 속에서처럼 잔인하고 사악하고, 악랄하다기 보다는 아름다워지고 싶지만 아름다워지지 못하는 한 여인의 불쌍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듯 합니다.

<흑설공주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많은 분들이 아시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한 동화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흑설공주 이야기> <백설공주>와는 다른 서사 구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설공주>속의 계모가 백설공주의 아름다움을 질투하여 그녀를 죽이려고 온갖 술수를 다 부리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면, 바바라 G. 워커가 지은 <흑설공주 이야기>속의 계모는 백설공주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설공주> 속에서처럼 미모를 두고 서로를 겨누는 상대가 아닌 말 그대로 여성으로써의 우정과 연대로 똘똘 뭉쳐 있는 아름다운 모녀의 사이를 그리고 있습니다.

똑 같은 원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모습을 그리고 있는 <백설공주의 계모는 어떻게 되었나?> <흑설공주 이야기>는 모두 새로운 동화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으면서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조금은 다릅니다. 아마 이 점은 이 동화들이 나온 그 당시의 시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백설공주의 계모는 어떻게 되었나?>가 출간된 시기는 아직 20세기가 끝나지 않았던 남성의 목소리가 더 큰 사회였습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하고 그녀들의 운동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정작 사회 속에서 그녀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며, 그녀들이 설 자리는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들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왜곡되어 있으며, 그녀들의 진실된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그 속까지는 변화할 수 없었기에 아직은 크게 변화하지 않은 동화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흑설공주 이야기> 20세기 말에 출간된 동화로써, 여성의 목소리가 <백설공주의 계모는 어떻게 되었나?>가 쓰여질 당시보다 높았고, 여성의 사회 진출도 더 활발했으며, 여성이 설 자리도 더 넓었습니다. 이에 따라서 <흑설공주 이야기> <백설공주의 계모는 어떻게 되었나?>와 다르게 여성의 모습을 조금 더 진솔하고 진실되게 그릴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 이상 미모라는 것을 무기로 싸우는 여성이 아닌, 서로가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함께 사회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는 여성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동화가 쓰여지고 동화 속에 그려진 여성들의 모습이 다르다고 해도 아직 이 동화들이 가진 한계점을 깬 것은 아닙니다. 최근 이러한 동화의 재해석이 뜸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 동화가 과거의 동화들처럼 교훈을 주지 못하고, 단지 동화를 재해석하고 여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데에만 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 동화가 재해석 되는 것은 긍정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동화를 재해석하는 것이 단순히 여성의 모습에 대한 욕구의 불만으로 그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교훈을 지닌 과거의 동화들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 동화로 변화를 하여야 진정 이 동화들이 가진 의미를 더욱 더 잘 살릴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진정 여성들을 위한 여성들의 동화가 탄생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