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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살다. - [스물두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9. 2. 13. 00:43

 

 

 

추억에 살다.

 

 

스물두 번째 이야기

 

 

 

나는 삼촌이 싫어요.

 

?

 

갑작스럽게 내뱉은 윤호의 말에 민정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고개를 돌려 윤호의 얼굴을 돌아다 봤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에요.

 

윤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모든 걸 다 빼앗아가잖아.

 

그런 거 아니야.

 

선생님.

 

?

 

민정이 살짝 침을 삼켰다.

 

?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

 

, 사랑하시나요?

 

!

 

민정의 눈이 커다래졌다.

 

, 윤호야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선생님께 진지하게 묻는 겁니다.

 

윤호의 눈이 민정의 눈을 바라봤다.

 

그 동안 선생님께 정말 수도 없이 여쭤봤지만 단 한 번도 선생님의 대답을 들어보지 못했어요. 정말 선생님의 대답이 듣고 싶어요. 진짜로 선생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궁금하다고요.

 

후우.

 

민정이 한숨을 토해냈다.

 

윤호야. 선생님 이런 거 싫어.

 

제발요.

 

윤호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쯤은 대답해도 되잖아요.

 

윤호야.

 

선생님.

 

윤호의 눈이 가늘게 흔들렸다.

 

제발 말씀 좀 해주세요.

 

윤호가 민정의 눈을 들여다 봤다.

 

단 한 번도 저를 사랑한 적 없으세요?

 

민정이 물끄러미 윤호를 바라봤다.

 

꼭 대답해줘야겠어?

 

.

 

윤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물러나지 않을 거예요. 더 이상 여기서 뒤로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을 거라고요. 말씀해주세요. 저를 단 한 번도, 저와 처음 만난 이후로 단 한 번도 저를 사랑한 적 없으신가요?

 

그래.

 

민정이 힘겹게 대답했다.

 

단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어.

 

하아.

 

윤호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군요.

 

너랑 나랑 자그마치 11살 차이야. 게다가 너는 학생이고 나는 선생이라고, 우리 두 사람 안 되는 거잖아.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

 

민정이 고개를 갸웃하며 윤호를 바라봤다.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이라니?

 

단순히 그런 겉으로 드러나는 이유 때문에 저를 사랑한 적이 없으시다는 거예요? 단순히요?

 

그래.

 

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너 되게 매력적으로 생긴 거. 키도 크고, 늘씬하고, 얼굴도 잘 생겼고. 하지만 안 돼.

 

민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는 아기라고.

 

. 나는 바보였네요.

 

윤호가 슬픈 눈으로 민정을 바라봤다.

 

선생님.

 

?

 

제 대학 갔어요.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육군사관학교나, 공군 사관학교 뭐 그런 데는 가지 못했지만. 고려대학교. 갔거든요.

 

!

 

민정의 눈이 커다래졌다.

 

오직 선생님이 다시 돌아오시면, 이 사실을 알고 얼마나 기뻐하실 까, 그 생각하나로만 열심히 공부했어요.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 다시 만나면 자랑스럽게 이야기 해야지 했어요.

 

윤호야.

 

하지만 다 헛 공부였네요.

 

윤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는 오직 선생님을 위해서 공부했거든요.

 

!

 

다른 이유는 없었어요.

 

윤호가 멋쩍게 웃었다.

 

그냥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그게 전부였어요.

 

윤호야.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윤호가 슬픈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민정에게 말했다.

 

저 그렇게 불쌍한 놈 아닙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잖아요.

 

윤호가 씩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께서 단 한 번도 저를 사랑하신 적 없다니요.

 

민정이 살짝 아래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면요 선생님.

 

?

 

제가 사랑했던 건 알고 계셨나요?

 

?

 

민정이 윤호를 바라봤다.

 

, 그게 무슨 말이야?

 

제가 선생님 좋아하고 있던 거 알고 계셨냐고요.

 

, 그건.

 

모르셨어요?

 

민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 건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요.

 

?

 

앞으로도 사랑할 거니까요.

 

윤호가 민정의 허리를 끌어 당겼다. 그리고 부드러운 입맞춤.

 

!

 

민정은 윤호를 밀쳐내려고 했지만 밀쳐지지 않았다.

 

후우, 후우.

 

잠시 후 윤호의 입술이 떨어지자 민정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 이윤호. 너 뭐하는 짓이야?

 

도장 찍는 짓이요.

 

윤호가 슬픈 눈으로 민정을 바라봤다.

 

더 이상 어린 애 아니라고요.

 

!

 

선생님도 눈 감았잖아요.

 

?

 

뒷꿈치 드셨잖아요.

 

, 그건.

 

선생님.

 

윤호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분했다.

 

저 이제 더 이상 풍파고등학교에 다니는 이윤호 아니거든요. 선생님 앞에 서 있는 한 남자거든요. 이런 저, 모른 척 하지 마세요. 더 이상 그렇게 무조건 외면하지 말아주시라고요. 아무리 선생님께서 외면하신다고 하더라도 저 제 마음 쉽게 안 접습니다. 아니 못 접습니다.

 

윤호가 민정의 눈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더 이상 피하지 마세요. 도망치지 마세요. 더 이상 선생님 놓치지 않을 겁니다.

 

이윤호.

 

당신의 향기를 따라서 언제든지 쫓아갈 거예요.

 

윤호의 목소리가 애절했다.

 

더 이상 나에게서 도망가지 말아요.

 

하아.

 

민정이 한숨을 토해냈다.

 

왜 이렇게 힘들게 하니? 왜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해.

 

당신이야 말로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거예요?

 

윤호야.

 

말했죠.

 

윤호의 눈이 이글거렸다.

 

나 더 이상 당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 그런 게 어디 있어?

 

계속 당신은 나를 학생으로 볼 테니까.

 

윤호가 민정의 눈을 바라봤다.

 

단 한 번도 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했죠. 이제는 아닐 거예요.

 

?

 

이제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 하나의 제약은 사라진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조금 더 사랑하기 수월해진 거 아닌가요? 나 절대로 당신 안 놓칩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바보 같은 짓 안 합니다.

 

이런 거 하지 마.

 

민정이 윤호의 시선을 외면했다.

 

어린애 장난 같아.

 

하아.

 

윤호가 한숨을 토해냈다.

 

아직도 그런 말씀입니까?

 

?

 

당신도 끌리지 않았습니까?

 

아니야.

 

민정이 도리질쳤다.

 

설렜잖습니까?

 

안 설렜어!

 

민정이 비명을 지르듯 대답했다.

 

윤호 너 이러는 거 너 답지 않아. 무서워.

 

나 다운 것.

 

윤호가 자신의 발 끝을 바라본다.

 

나 다우면 사랑해주시겠습니까?

 

?

 

나 다우면 사랑해주시겠냐고요.

 

. 그건.

 

민정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그렇다면, 이제 저는 이윤호가 아닙니다.

 

!

 

파티셰 이윤호 입니다.

 

윤호가 힘있게 민정의 손을 잡았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니란 말입니다.

 

, 이거 놔.

 

못 놓습니다.

 

민정은 팔을 빼어보려고 하지만 윤호의 아귀에서 빠져나오기란 불가능이었다.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겁니다.

 

이윤호.

 

사랑하니까.

 

!

 

민정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너무나도 사랑하니까.

 

윤호의 입술이 다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