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살다.
스물네 번째 이야기
“내가 너를 억압했다거나, 네가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게 했다, 뭐 그런 의미로 하는 말이야?”
민용이 당황하며 말하자 신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이 아니야. 오빠는 나에게 너무나도 잘 해주었어. 오빠는 정말 최고의 남편이었어.”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응?”
신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오빠의 반응 되게 웃긴 거 알아?”
“뭐가 웃긴데?”
“킥.”
신지가 입을 가리고 웃음을 지었다.
“마치 내가 오빠에게 이혼을 하자는 말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있잖아. 오빠가 말을 했으면서.”
“!”
민용의 눈이 흔들렸다.
“나는 오빠를 힘들게 한 적 없어.”
신지가 미소를 지었다.
“오빠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왜 이민용의 남편 신지가 아닌, 그냥 신지로 살고 싶다, 뭐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 동안 네가 네 이름을 살지 못했다는, 그런 그 비슷한 말이라도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응.”
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 봐. 그 동안 내가 신지로 살았다고 생각하니? 그건 솔직히 오빠도 아니라고 생각하잖아. 그 동안 내가 살아온 걸 봐. 애미야. 준이 엄마. 나는 단 한 번도 나이지 않았어.”
“다른 여자들도 다 그렇게 살아.”
“나는 싫어.”
“왜 너만 다르려고 그래?”
민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너만 특별하려고 하냐고.”
“나니까.”
신지가 미소를 지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니까.”
“하.”
민용이 코웃음을 쳤다.
“너 정말 이해 안 가.”
“내가 이해가 안 가는 건 바로 오빠야.”
신지가 민용의 눈을 바라봤다.
“지금 내가 이혼하자는 말을 꺼냈니?”
“!”
민용의 눈이 흔들렸다.
“오빠가 이혼을 하자고 말을 한 거잖아. 나는 오빠에게 아무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오빠가 내게 이혼을 하자고 말을 해 놓고서는 왜 나에게 이러는 거야? 오빠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오빠가 먼저 나에게 모든 것을 다 끝내자고 말을 해 놓고서는 이렇게 미련을 가지고 있는 거야? 이런 오빠 정말 이상하고 어색하다는 거 알아? 지금 너무나도 웃기다고.”
“그래. 인정해.”
민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지금 내가 왜 이러는 지 모르겠어?”
“오빠는 어린 아이야.”
신지가 미소를 지었다.
“그게 무슨 의미야?”
“오빠는 지금 나도 사랑하고, 민정이도 사랑하고 있어. 어느 한 사람을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거지.”
신지의 목소리가 다소 허스키하게 흘러 나왔다.
“양 손에 두 개의 떡을 쥐고 어느 것이 더 맛있을 까를 저울질하는 그런 어른의 마음은 아니야. 그저 순수하게, 정말 순진하게 양 손에 올려져 있는 두 마리의 햄스터를 모두 사랑하고 있는 거야. 어느 한 마리를 더 사랑하지는 않아. 오빠에게 그 두 마리는 모두 똑 같은 햄스터니까 말이야. 다만 다른 사람들이 오빠에게 선택을 자꾸만 강요하고 있는 거야. 네가 보기에는 어떤 햄스터가 더 귀여워? 어떤 햄스터를 가지고 싶어? 한 마리 뿐이야. 그러니 선택해.”
신지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다시 말을 이어갔다.
“오빠는 그저 그 결정을 내리고 있지 못할 뿐이야. 오빠는 우리 두 사람 중 그 어느 사람도 잃고 싶어 하지 않아. 그 점은 지금 오빠가 내게 하는 행동들을 보면 알 수 있어. 마치 민정이를 선택한 것인 것 처럼 말을 해 놓고도 막상 내가 오빠를 떠난다고 하면 너무나도 싫어하잖아.”
“그건.”
“아니야.”
민용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신지가 고개를 저으며 민용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
“내가 하는 말이 맞아. 오빠는 지금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못해서 이렇게 힘들어 하고 있는 거라고.”
신지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내가 오빠에게 선택을 조금 더 쉽게 해주게 하려고 하는 거야. 물론 그 선택이 민정이어서는 안 돼.”
“어째서?”
“민정이는 더 이상 오빠가 없으니까.”
“뭐?”
민용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오빠는 아직도 모르는 구나. 그 때 민정이가 오빠를 일본이 아닌 러시아로 가라고 했을 때, 그리고 오빠가 그 민정이의 말을 거절하지 않고 그대로 러시아행 티켓을 손에 쥐었을 때, 러시아 행 비행기를 타는 탑승구에서 민정이를 두고 그대로 게이트로 들어간 그 순간들에 모두. 민정이는 오빠를 지웠어.”
“하아.”
민용이 한숨을 토해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어떻게.”
“여자란 그래.”
신지가 민용의 눈을 바라봤다.
“남자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떻게 그 깊은 마음을 다 지울 수 있을 까 생각들 하곤 하지만 여자란 생물이 원래 그런 생물들이야. 여자들이 원래 그렇게 쉽게 마음을 지울 수 있다고, 남자들은 하지 못하지만 여자들은 할 수 있어. 그게 바로 여자이니까 말이야. 그게 여자니까.”
“여자들 무섭구나.”
“무서워.”
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무서워.”
“나는 몰랐어.”
“그럼 다행이네.”
신지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말이야.”
“정말 확실해?”
“응.”
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지 더 이상 오빠에게 마음 없어. 내가 보증 할 수 없어. 오빠도 알다시피 민정이 너무나도 깨끗한 사람이잖아. 민정이 너무나도 맑은 사람이잖아. 민정이 눈을 통해서는 다 보여. 민정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지금 민정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 말이야. 다 보인다고 그런데 지금 민정이 눈 속에는 말이지, 오빠가 더 이상 비춰지지 않아. 오직 윤호만 보여.”
“!”
민용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윤호?”
“응.”
신지가 걱정스러운 듯 민용을 바라봤다.
“괜찮아?”
“응.”
민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야?”
“오빠도 이미 느끼지 않았어?”
“!”
민용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민정이가 더 이상 오빠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거 말이야.”
“하아.”
민용이 한숨을 토해내자 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구나?”
민용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애써 숨기려 하지 마.”
“시끄러워.”
“오빠.”
“닥치라고.”
민용이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 거렸다.
“네가 어떻게 알고 서 선생 마음을 하나로 정하려고 해?”
“하.”
신지가 코웃음을 쳤다.
“오빠는 뭐 다르니?”
“뭐?”
민용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의미야?”
“오빠도 윤호에게 그렇게 말을 했잖아.”
신지가 민용의 눈을 바라봤다.
“오빠가 민정이에 대해서 파악하는 거 그 이상으로 나는 민정이를 파악하고 있어. 그러니까 오빠만 민정이의 마음 알고 있을 거라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장담해.”
“하아.”
민용이 한숨을 토해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뭘?”
“서 선생 말이야.”
“하아.”
신지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토해냈다.
“오빠 정말로 잔인한 사람이구나?”
신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걸 나에게 묻는 거야?”
“그, 그건.”
“됐어.”
신지가 시선을 외면했다.
“정말 다시 한 번 확인해주는 구나?”
신지가 아래 입술을 깨물었다.
“오빠가 잔인하단 걸.”
“!”
민용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신지의 얼굴을 바라봤다.
“뭐가?”
“나에게 그런 걸 묻는 거니?”
신지의 눈에 눈물이 툭 하고 맺혔다.
“나에게?”
“!”
민용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미, 미안해.”
“정말 오빠라는 사람은.”
신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는 구제 불능이구나?”
“뭐?”
“화가 나니?”
신지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게 그런 걸 물어놓고도 화가 나니?”
“!”
“가 버려.”
신지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더 이상 오빠 얼굴 보기 싫으니까 나가!”
“너!”
민용도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어디다가 대고 소리를 지르는 거야?”
“악마.”
“!”
“세상에서 가장 독한 악마에게.”
신지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괴이하게 흘러나왔다.
“그러니 당장 꺼져.”
“하.”
민용이 이마를 짚으며 몸을 돌렸다.
“후회할 거야.”
그리고는 병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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