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살다.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이,
입술을 뗀 민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지, 지금 네가 한 일이 무슨 짓인지는 하고 있는 거야? 지금 네가 뭐 했는 지는 알고 있어?”
“네.”
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하.”
민정이 코웃음을 쳤다.
“윤호야 너 왜 이러니?”
“사랑한다고요.”
윤호의 눈이 너무나도 슬프게 빛이 났다.
“선생님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다고요.”
“윤호야. 네가 이러면 이럴수록 선생님 너무나도 힘들어. 네가 이러면 선생님 많이 힘들어.”
“애써 부정하니까 그러죠.”
“뭐?”
“그 마음을 부정하니까 힘이 드신 거라고요.”
윤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지금 선생님의 마음이 두근거리고 있다는 그 사실을 인정하세요. 그렇다면 단 하나도 힘들지 않을 거예요.”
“아니.”
민정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힘이 들 거야?”
“어째서요?”
윤호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해도 힘들다는 거예요?”
“우리니까.”
민정이 쓸쓸하게 웃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두 사람이니까 말이야.”
“!”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이해할 수 없어요.”
윤호가 고개를 저어 민정의 말을 부정했다.
“왜, 왜 지금 선생님의 마음도 흔들리면서 제 말을 인정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왜 인정하지 못하시는 거냐고요. 그냥 제 말처럼 떨렸다. 설렜다. 그 말 한 마디만 하면 되시는 거잖아요.”
“아니, 안 그랬어.”
민정이 고개를 저었다.
“나 안 그랬다고, 나 하나도 안 떨리고, 하나도 안 설렜어. 오히려 불쾌하고 역겨웠다고.”
“불쾌하고 역겨웠다고요?”
윤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래. 너무나도 기분 나빴어. 나 솔직히 너에 대해서 너무나도 설레고 그러는 마음 있었어. 항상 네가 학생으로만 보인 거 아니었어. 그 사실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지금 인정할게.”
민정이 윤호의 눈을 바라봤다.
“하지만 지금의 키스는 너무나도 불쾌하고 역겨웠어.”
“어째서요?”
윤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도 눈을 감았잖아요. 선생님의 마음이 두근 거리는 그 소리가 나의 귓가까지 들렸었는데, 선생님의 양 볼에 발그레 떠오른 그 홍조까지 내 두 눈으로 보았는데 역겨웠다고요?"
윤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민정이 윤호를 바라봤다.
“내가 원하지 않았잖아.”
“네?”
“내가 원해서 한 키스가 아니잖아.”
“!”
윤호의 눈이 흔들렸다.
“나는 지금 키스를 원하지 않았어.”
“하, 하지만.”
“좋아.”
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키스 정말 황홀해.”
민정이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키스는 그저 폭행일 뿐이야.”
“다, 당신.”
“그리고, 나를 존칭어로 써 줘.”
민정이 심호흡을 했다.
“아무리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한다고 해도 나는 네 선생이었고, 선생이고 선생일 거야. 그 사실은 아무리 우리의 관계가 변한다고 하더라도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과거를 뒤집을 수는 없잖아.”
“좋아요.”
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뭘?”
“선생님 곁에 서고 싶어요.”
윤호의 눈이 너무나도 간절했다.
“저 진심으로 선생님 옆에 서고 싶어요.”
“윤호야.”
“안 된다는 말 하지 마세요.”
민정이 살짝 아래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선생님도 흔들렸다고 말씀 하셨잖아요.”
“그건 그거야.”
민정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네가, 나를 사랑해준다고 해도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어.”
“어째서요?”
“네가 잘 알잖아.”
민정이 윤호의 눈을 바라봤다.
“너는 이 선생님 조카야.”
“그게 뭐 어때서요?”
윤호가 슬픈 눈을 하고서는 되물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사실인가요?”
“응.”
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사실은 너무나도 중요한 사실이야. 아무리 네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너무나도 중요한 사실이라고.”
“어째서요?”
“뭐?”
“어째서 그게 중요해요?”
윤호가 너무나도 슬픈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과 나, 우리 두 사람의 마음만 같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우리 두 사람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니에요?”
“아니야.”
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두 사람이 사랑한다고 해서 우리 두 사람이 사랑을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데?”
“왜 자꾸 다른 사람들 신경을 써요!”
윤호가 고함을 쳤다.
“선생님의 인생이라고요. 다른 그 누구의 인생도 아닌
윤호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자꾸 다른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려고 해요? 왜 자꾸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다칠까 봐 걱정을 해요? 그러니까,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마음만을 신경 쓰니까 지금 선생님의 마음은 산산이 조각나 버렸잖아요. 그러니까 선생님의 마음은 갈갈이 헤져 버렸잖아요. 그런데도, 그런데도 왜 자꾸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러려고 그래요? 왜 자꾸 다른 사람들을 돌아봐요?”
“그게 나니까.”
민정이 슬픈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으려고 해도, 곧 돌아보게 돼. 그게 나인 가 봐.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그 사람들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는 그런 바보, 내가 다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다치는 모습은 죽어도 못 보는 그런 맹추가 바로 나
민정이 씩 웃었다.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바보처럼 행동할래. 모두가 한심하다고 말을 해도 그냥 이렇게 바보처럼 굴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답답해 보이고 한심해 보여도 나는 편하니까, 나는 이게 좋으니까, 나는 그냥, 나
“내가 싫어요.”
윤호가 민정에게 한 발 다가갔다.
“선생님은 선생님이 어떻게 보이든지 아무런 상관 없겠죠.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 대신 자신이 상처를 받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겠죠. 그런데 그거 아세요? 선생님이 그러시면, 그렇다면, 나는 너무나도 아프다는 거 말이에요. 선생님 혼자만 상처를 받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나도, 저 역시도 선생님이 상처를 받으면 그것과 똑 같은, 아니 그 이상의 상처를 받아요.”
윤호가 아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러니까 저 아프게 하지 말아주세요.”
“윤호야.”
민정의 눈이 반짝였다.
“왜 이렇게 나 힘들게 하니?”
“선생님.”
“싫어.”
민정이 윤호의 시선을 피했다.
“나 싫다고.”
“어째서요?”
“이건 나빠.”
“뭐가 나빠요?”
“너는, 너는.”
민정이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선생님 조카잖아.”
“삼촌 사랑해요?”
“뭐?”
민정이 윤호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직도, 말이에요.”
윤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직도 삼촌 좋아하세요?”
“!”
민정이 눈이 커다래졌다.
“혹시나 저를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가,”
윤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삼촌 때문인가요?”
“그, 그건.”
민정은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선생님!”
윤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서 말해주세요.”
윤호가 민정의 눈을 바라봤다.
“제가 안 되는 이유가 삼촌 때문인가요?”
윤호가 민정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선생님 마음 속에 삼촌이 너무나도 크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제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그래서 그런 건가요? 그래서 지금 제가 선생님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 안 받아주시는 건가요?”
“윤호야.”
“그냥 답해주세요.”
윤호가 민정의 입을 바라봤다.
“선생님.”
“하아.”
민정이 한숨을 토해냈다.
“대답 못 해.”
“어째서요?”
“네가 아플 테니까.”
“그 말은?”
“아니야.”
민정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거야.”
“선생님.”
“
두 사람의 눈이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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