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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다섯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9. 3. 13. 19:01



#5. 눈물이 앞을 가릴 때, 마음으로 본다.




 신지에게 말을 해줘야 하는데, 도저히 신지에게 말을 해줄 수가 없다. 아이를 가져서 너무 행복하다는 신지에게, 암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전해 줄 수가 없다. 아이를.. 아이를 꼭 낳고 싶어 했던 신지인데... 이제 아이를 죽여야 할 것이다. 아니, 죽이지 않더라도 저절로 죽을 것이다. 항암치료에 견딜 태아는 없다. 결국 준이는 죽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 by 민정




해미의 울음이 아직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윤호이다.


 “휴.” 


 마음이 너무 무겁다.


 “택시!” 


 그래도,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 나는 이윤호다.


 “어디로 모실까요?”


 “항구로 가주세요.”


 윤호의 눈이 빛난다.




 “민정아, 안 자고 뭐해?”


 신지가 부엌에서 사과를 가지고 나오면서 묻는다.


 “어?” 


 이제 신지의 배는 누가 봐도 임산부처럼, 어느정도 불러있었다.


 “아니야.” 


 민정이 밝게 웃는다.


 “아무 것도.”


 “그런데 뭘 그렇게 심각하게 앉아있냐?”


 신지는 별 신경 안 쓰며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휴.” 


 이제 내가 할 일은 없는 걸까?


 “아!” 


 그 때, 서울에 있는 의사 선배가 떠오른 민정이다.




 “선배!” 


 “오, 이게 누구야? 민정이 아니야?”


 민정이 밝은 얼굴로 해미의 진료실 문을 열었다.


 “오호, 민정이가 여긴 어쩐 일일까?”


 해미가 반갑게 민정을 맞아준다.


 “언니, 나 언니에게 물어볼 게 있어.”


 “어머? 나한테?”


 해미가 미소를 짓는다.


 “앉아.” 


 “응.” 


 민정은 해미가 가리킨 의자에 앉는다.


 ‘삐’ 


 해미가 테이블에 버튼을 누른다.


 “무슨 일입니까? 원장님.”


 “커피 좀 타줘요.”


 “예.” 


 ‘삐’ 


 “그래, 무슨 일이야?”


 해미가 민정을 바라본다.


 “그 하늘섬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인데, 이렇게 달려왔을 리는 없고, 무슨 일 있잖아. 어서 말해.”


 해미를 속일 수는 없다.


 “휴.” 


 “오호, 정말 뭐가 있나보네. 어서 말해봐.”


 민정은 한숨을 쉬었다. 가슴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선배.” 


 “응?” 


 “암에 걸린 사람이, 아이를 낳을 수 있어?”


 “!” 


 해미의 눈동자가 멈췄다.


 “뭐라고?” 




 “아가야.” 


 신지가 사랑스럽게 배를 어루만졌다. 아이가 뛰어놀았다.


 "우리 준이 놀기도 잘 노네. “


 신지가 미소를 지었다.


 “건강해야 할텐데.”


 나날이 아이가 건강해지는 게 느껴지는 신지이다.




 “음, 답부터 말해줄까?”


 민정이 해미를 본다.


 “안돼.” 


 “뭐? 왜?”


 민정이 해미의 말에 대꾸한다.


“암을 치료하려면, 수술이든지 화학치료이든지 받아야 하는데, 그러면 아이는 죽고 말 꺼야. 안 그래?”


 역시나, 민정이 우려했던 그대로였다.


“지금 몇 개월이니?”


 “6개월.” 


 민정이 찻잔만 바라본다.

 “애를 먼저 낳으면 안 되나?”


 “음, 넉달 안에 엄마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거야.”


 “!” 


 해미가 걱정어린 눈으로 민정을 본다.


 “왜? 무슨 일 있어?”

 “아.. 아니.”


 민정이 애써 미소 짓는다.


 “나 가볼게.”


 “그래, 다음에 한 번 놀러와.”


 민정이 슬픈 눈으로 진료실을 나온다.


 “무슨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