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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일곱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9. 3. 13. 19:03



 #7.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나도, 조금은 행복해도 되겠지? 이렇게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줄 정도의 소박한 여유는 즐겨도 되는 거겠지? 몸아, 조금은 더 견뎌줘. 조금은 나, 더 예쁜 기억 마음 속에 담아두게, 결국엔 폐까지 굳어버려 죽어버리겠지만, 그래도 잠시만은 행복한 미소 얼굴 가득 번지며 살고 싶어. 어차피 죽을 게 분명한데, 그렇게 아프고 힘들게 죽고 싶지는 않아, 마지막에 침대에 누워있을 밖에 없을 때, 행복하고 싶어. 무언가 추억을 하나 쯤 가지고 있고 싶어. 하늘아, 그 정도의 여유는 내게 남겨 줄꺼지? 그 정도의 여유는.. 그 정도의 사치는 즐겨도 되는 거겠지? - by 윤호


 나 어떡하지? 도저히.. 도저히 신지에게 말할 수가 없어. 우리 우정과 우리의 소박한 행복을 깨뜨려야해? 내 친구에게.. 그렇게 아픈 말 도저히 할 수가 없어. 나 상처 줄 수 없다고, 하지만 알려주지 않으면, 신지는 나를 원망할지도 몰라. 결국 말해줘야 하는데, 말해 줄 용기가 없어. 말하면, 분명 신지가 아파할 꺼야. 내 친구 내 오랜 친구 신지가 아픈 모습을 볼 수는 없어,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아픈 것은 볼 수가 없어, 신지에게 더 이상의 고통을 줄 수는 없어. - by 민정


 분명, 민정이가 무엇을 숨기기 있는 것 같은데, 말해주지 않는다. 혹시 내 몸에 이상이 발견된 것일까? 그래서, 민정이가 나를 위해서 숨기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냥 말해줘도 되는데. 오히려 말해주는 게 고마운 건데. 그러면, 민정이도 더 아프지 않고, 마음이 편해질 텐데. 민정아 말해줘. 나 이미 강해. 나 이제 어머니야. 제발 민정아 나에게 무엇이든지 말해줘. 그래야지 나도 진짜로 널 보면서 밝게 미소 지을 수 있는데, 설마, 너 아직도 민용씨 일이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가슴앓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그렇다면, 그렇지 않길 바라. - by 신지


 나는 엄마 자격이 없는 거야. 그렇게 아들 하나 지켜주지 못하다니, 나같이 부족한 엄마가 어딨을까? 아들 병 하나 못 고쳐주는 의사 엄마가 어딨어? 내가 의사니? 그깟 병하나 못 이겨서 아들을 죽여야 한다는 게, 그런 게 의사야? 나 너무 무능한 거 아니야. 내 아들 하나 못 살리는 나.. 너무 무능한 거 아니야? 자꾸만. 자꾸만 자신이 없어져. 나 의사를 하는 게 옳은 걸까? 나 이러다가 다른 사람들도 살리지 못하면 어떡해? 내 아들도 못 살리는 사람이 무슨 의사를 한다는 거야! - by 해미


 윤호 자식이 보고 싶다. 항상 아빠라고 매달리던 귀여운 우리 집의 막둥이, 그 녀석이 없으니, 집이 온통 냉랭하다. 항상 밝게 웃으며 집안을 헤집고, 다니던 착한 우리 윤호에게 그런 아픈 일이 생기다니,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하늘도 참 불공평하시지. 저기 있는 수많은 죄인들은 그냥 두시면서, 왜 하필 이렇게 착하게 사는 우리 예쁜 아들에게 그런 형벌을 내리시는 것인지... 우리 아들 이렇게 두면 결국 죽어버릴텐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너무 슬프고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다. - by 준하




 “뭐?” 


 신지가 멍하니 숟가락을 들고 있다.


 “너.. 암이라고.”


 ‘쨍’ 


 신지가 숟가락을 놓쳤다.


 “괜찮아?” 


 민정이 황급히 신지의 안색을 살핀다.


 “어. 어 괜찮아. 민정아.”


 신지의 표정이 사라졌다.




 “새우깡 하나요.”


 “여깄습니다.” 


 윤호는 빙긋 웃으며 새우깡 봉투를 열었다.


 “자!” 


 윤호가 새우깡을 내밀자 갈매기들이 새우깡을 집어갔다.


 “재밌네.” 


 이런게 아마 사는 즐거움 아닐까?


 “헤헤.” 


 윤호의 입가에 아이다운 미소가 걸렸다.


 “나, 조금은 행복해도 되겠지?”


 ‘끼룩 끼룩’


 윤호의 물음에 갈매기가 화답하듯 울었다.


 “그래, 고맙다.”


 윤호가 싱긋 웃었다.




 “그런거였구나. 암...”


 신지의 표정이 쓸쓸하다.


 “어쩔 거야?”


 민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뭘?” 


 신지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민정을 바라본다.


 “낙태 할래?”


 민정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신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네 몸을 위해서, 어차피 아이는 죽을 거야.”


 “...” 


 신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신지야.” 


 민정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신지를 바라보았다.


 “아니면, 네가 죽어.”


 “...” 


 “네가 죽는다고!”


 “...” 


 민정이 악을 써댔지만, 신지는 대답이 없었다.




“다른 사람은 더 없습니까?”

 하늘 섬으로 가는 배에는 윤호 혼자만이 탑승했다.


 “예.” 


 선주인 듯 보이는 사람이 시원스레 대답했다.


 “하늘섬은 일주일에 배가 딱 한 번 다니니께요. 한 번 뭍으로 나오면 일주일 있다가 섬으로 들어가고, 한 번 섬으로 들어가면, 일주일 있다가 뭍에 나올 수 밖에 없으니께, 사람들이 잘 안 오죠.”


 “네.” 


 윤호가 싱긋 웃으며, 배를 향해 뛰었다.


 “헛.” 


 윤호가 휘청거렸다.


 “아이고, 괜찮으십니까?”


 선주가 달려왔다.


 “여는 바다라 조까 흔들리지요.”


 “예.” 


 윤호가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괜찮으시죠?” 


 “네.” 


 선주는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방금 헛디딘 것은 배가 흔들려서가 아니었다. 배는 너무나도 평온했다.


 “휴우.” 


 예상보다 루게릭이라는 녀석이 더 빨리 내 몸을 공격하고 있는 것 같다. 벌써부터 이렇게 힘들다니, 루게릭이라는 녀석에게 질 수는 없는데.


 “갑니다.” 


 “예.” 


 배에는 선주와 윤호, 단 둘 뿐이었다.


 ‘뿌앙’ 


 배가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항구서 멀어졌다.


 “휴.” 


 맑은 하늘이 윤호의 마음을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