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너무 늦어 버린 때에는, 가만히 닫아두는 것이 더 좋을 지 모른다.
고맙습니다.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이토록 찬란히 아름다운 세상에 저를 잠시나마 머물게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당신께서 저의 아이를 건강히 낳게 도와주실 것을 알기 때문이죠. 고맙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가 죽기 저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그 무엇인가를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자로써 어머니가 된다는 것 만큼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요? 그리고, 저에게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인 민정이를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진짜로 고맙습니다. - by 신지
신지야. 설마, 너 아니지. 너 죽는 거 아니지? 그러면 안 돼. 내가 너무 나쁜 년이 되는 거잖아. 나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하잖아. 신지야. 제발 돌아와. 네 아들 네가 잘 돌봐야 할 것 아니야. 신지야. 반드시, 반드시 꼭 살아나야 해. 그래서, 그래서 다시 웃어야 해. 신지야. 부탁이야. 제발, 다시 돌아와줘. 내가, 내가 더 이상 미안하지 않도록, 신지야 부탁해. 신지야 네 아들 준이 네가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보살펴 줘야 할 것 아니야? 신지야, 제발 돌아와. 준이 얼굴 볼려고라도 돌아와. 제발 신지야. 제발 죽으면 단 돼. - by 민정
자신이 없다. 솔직히 자신이 없다. 이런 수술 해 본적도 없고, 불가능 할 것이 뻔하다. 갈라보면 암 덩어리가 온 몸에 번져있어서, 다시 봉합이 불가능 할 것이다. 지금의 수술은 이 여자를 살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아이를 건강히 살려내고, 잠시나마 이 여자가 의식을 되 찾아,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고 죽는 것. 그리고 민정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게 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제발 그 때까지만이라도 이 여자가 살 수 있게, 하늘이 도와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잠시만이라도, 딱 5분만이라도 하늘이 여유를 주었으면 좋겠다. - by 해미
“마취는 어떻게 할까요?”
“30분짜리.”
해미의 말에 간호사들이 멈칫한다.
“네?”
“못 들었어? 30분짜리.”
간호사들이 해미를 바라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 간호사가 해미를 바라보았다.
“뭐가 무슨 말이야?”
해미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꾸한다.
“어서, 마취해.”
“그 시간 너무나도 촉박합니다!”
그 간호사가 해미에게 말했다.
“알아, 아는데. 이 여자. 분명 죽어.”
“...”
간호사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아기는 볼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겠어?”
“...”
간호사들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해미만을 보고 있다.
“우리는, 지금 사람을 살리는 수술을 하는 게 아니야.”
“...”
“한 여자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있는 거야.”
해미는 미소 지었다.
“어서 마취.”
“예.”
한 간호사가 신속하게 신지의 팔에 마취제를 꽂았다.
“고맙습니다.”
신지가 미소를 지으며 해미를 바라보았다.
“꼭, 아이 얼굴 봐야 해요.”
신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잠으로 빠져들었다.
“신지야...”
민정은 아까부터 너무나도 걱정이 된다. 신지의 마지막 말이 너무나도 걱정이 된다.
“죽으면 안 돼.”
죽으면 안 된다. 그렇게 착하고, 순수하고, 맑은 미소를 지닌, 신지가 죽는 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신지는 꼭 살아야만 한다.
“휴.”
“마취 끝났습니다.”
마취제를 투여하고 한 일분여가 흘렀다. 더 이상 신지의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신지의 입가에는 미소가 보였다.
“메스.”
간호사가 메스를 집어서 해미의 손에 쥐어준다.
“표시도 하지 않고 자르실겁니까?”
한 간호사가 다시 제지했다.
“지금, 급해. 그런 거 따질 시간 없어.”
해미가 일단 신지의 배를 가른다.
“제길.”
예상외로 암의 진행속도가 너무 빨랐다. 피가 피가 미친듯이 터져나온다.
“썩션! 어서 썩션 준비해!”
해미가 간호사들을 향해 소리친다.
“어서 이 피들 모두 빨아드려!”
“예.”
간호사들이 신속히 썩션을 통해 신지의 피를 빨아드렸다. 피가 끈임없이 흘러 나왔다. 이대로 두면 무조건 사망이다.
“당장 수혈 팩 꽂아.”
간호사가 수혈 팩을 신지의 양 팔에 꽂았다.
“그걸로 부족해!”
해미가 호통을 쳤다.
“이마에도 꽂아.”
“!”
간호사의 표정이 굳었다. 그 것은 정말 위급한 환자에게만 하는 것이었다.
“당장 꽂아!”
간호사가 수혈 팩을 꽂는 것을 보고 난 후 해미가 다시 신지의 뱃속을 들여다 보았다. 암이 군데군데 퍼져 있었다.
“제길.”
기회는 딱 한 번이었다.
“썩션 때!”
해미의 말이 끝나자 간호사들이 썩션을 치웠다. 그러자 피가 미친듯이 다시 솟구쳐 올라왔다.
“읏.”
해미가 재빨리 신지의 뱃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미 시야는 피로 인해 보이지 않은지 오래이다. 이제 순수하게 해미의 촉각에만 의존해서 신지의 자궁을 찾아내야만 한다. 어서 찾아야만 한다.
“제길.”
만져지지 않는다.
“썩션!”
해미가 다시 썩션을 찾는다. 이윽고, 피가 어느정도 줄어든다.
“제길.”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되었다.
“흣.”
해미가 자궁에 매스를 가져다 댔다. 자궁이 갈라지고 양수가 터져나왔다. 그 속에서 작은 무언가가 보였다.
“하얏.”
해미가 한 손으로 아이의 다리를 두 개 다 붙잡고, 한 바퀴 돌려서 신지의 몸에서 빼 냈다. 아이는 사내아이 였다.
“성간호사.”
“네.”
해미가 아기를 다른 간호사에게 맡기고, 다시 신지의 배를 바라보았다. 이미 꼬매는 것은 불가능 했다.
“어떡하죠?”
한 간호사가 물었다.
“해 봐야지.”
해미가, 바늘과 실을 가지고 신지의 배를 꼬매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꼬매지지 않는다. 자꾸만 상처가 더 벌어진다.
“제길.”
“도와드리겠습니다.”
한 간호사가 밖으로 흘러 나오는 신지의 장을 억지로 몸 안에 우겨 넣었다. 그래도, 자꾸만 신지의 내장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혈압이 자꾸만 떨어지고 있습니다.”
“도파민, 어서!”
해미가 다급히 외쳤다.
“최간호사는 나가서 서민정 데리고 와. 어서!”
한 간호사가 재빨리 수술실을 뛰쳐 나갔다.
“어쩌죠?”
“일단 썩션으로 피를 모두 뽑아내.”
간호사가 해미의 말대로 피를 빨아들인다.
“수혈 팩 더 꽂아.”
신지의 팔에 하나씩 수혈팩 바늘이 더 꽂혔다.
“제발, 잠시만 눈을 떠요.”
해미의 간절함이 눈물로 변했다.
“신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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