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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여덟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9. 3. 13. 19:03




 #8. 엄마는 아이를 죽일 수가 없다. 엄마이니까.




시간이 하루하루 흐르면 흐를 수록, 점점 더 루게릭이라는 놈은 나의 몸을 먹어 들어가고 있다. 이러다가 마침내 폐가 굳어 숨을 쉬지 못해서 죽어 버리고 말 것이다. 벌써부터 점점 피곤해지고, 힘들어진다. 그래도, 조금의 시간은 더 있어야, 추억을 만들텐데. 누워서도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고, 괴롭지 않도록, 작은 추억이라도 미리 만들어 둬야 할텐데. - by 윤호


 나에게 온 아이를 어떻게 지워? 내 몸 속에, 그래도 나를 엄마라고 붙들고 있는 이 아이를, 암은 내가 암이지 이 아이가 암은 아닌 거잖아. 도대체 이 아이가 무슨 죄라고, 이 세상을 볼 자격도 없이 죽어야 하는 거야? 절대, 나 이 아이 죽일 수 없어. 내가 지켜줄 수 없다라도, 이 세상의 맑은 빛과 공기는 단 한 번만이라도 느끼고 살아가게 도와주고 싶어. 나는 엄마이니까. - by 신지


 휴우, 아이를 지워야 하는데. 아니면 신지가 죽는데, 오랜, 아주 오랜 친구인 내 친구 신지가 죽을 텐데. 지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준이는 다시 신지의 뱃속에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신지는 이제 더 이상 없는데. 어쩌지? 신지가, 본인의 몸을 챙겼으면 하는데... - by 민정




“휴우.” 


 다행히 배에서 내릴 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으차.” 


 뒤에서 선장이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선장님.”


 “예?” 


 선장이 윤호를 바라보았다.


 “여기 숙박 시설 같은 게 있습니까?”




 “아이는... 낳고 싶어.”


 오랜 침묵을 깨고 신지가 말을 했다.


 “...” 


 이번에는 민정이 침묵을 지켰다.


 “이 아이, 나에게 살려달라고 온 아이잖아. 그런데, 내가 멋대로 이 아이를 죽여버릴 수는 없는 거잖아. 그거는 너무나도 잘못하는 거잖아.”


 “...” 


 신지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린다.


 “내가 죽더라도, 이 아이가 있다면 나는 죽은 게 아니잖아. 민정아 나 이 아이 낳고 싶어. 너도 이모잖아. 이모가 조카가 죽는 걸 보고 싶은 건 아니지? 그러니까, 나의 선택 말리지 말고, 너는 내 편이 되어주길 바래. 꼭 너만은 내 편을 들어주고, 내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으면 좋겠어. 민정아.”


 신지의 말에 민정의 눈에 가만히 눈물이 고인다.


 “제발.” 


 “...” 


 민정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그래.” 


 두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고마워.” 


 “고맙습니다.” 




 “선배, 아이 낳겠대.”


 민정이 선배에게 신지의 의사를 밝혔다.


 “민정아, 다행히 방법이 있을 것 같아.”

 해미가 미소를 지으며 민정의 앞에 앉았다.


 “방법?” 


 민정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이를, 열달이 다 차기 전에 수술로 끄집어 내자.”


 “!” 


 그래, 일단 두 달 정도 준이를 먼저 꺼내면, 신지는 여유가 있다. 이르면 일곱달만에도 아이를 꺼낼 수가 있다.


 “그리고, 항암치료 하자.”


 해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될 거야.”


 “...” 


 민정의 주먹이 작게 쥐어졌다.


 “어떻게 할래?”


 해미의 물음에 민정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둘 다 살리는 거야?”


 해미가 멍하니 민정을 바라보았다.


 “너도 알지?”


 “...” 


 “이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는 거.”


 해미의 말에 민정이 입을 다문다.


 “너도, 한 때는 의학도였잖아.”


 “...” 


 “알잖아. 수술에는 완벽함이 없다는 거.”


 민정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아.” 


 해미가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최선이라는 것은 있어.”


 해미의 손이 민정의 손을 잡는다.


 “나 최선을 다할게.”

 “선배.” 


 민정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나 꼭 네 친구 살려낼게, 민정아.”


 “언니.” 


 해미의 따뜻함에 가슴이 뭉클해 오는 민정이다.


 “고마워.” 


 “고맙기는.” 


 민정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신지야, 금방 보자.”

민정이 밝게 웃으며 신지의 손을 꼬옥 잡았다.


 “민정아, 고마워.”


 신지가 밝게 웃었다.


 “고맙기는.” 


 민정이 신지의 머리카락을 쓸어준다.


 “고마워.” 


 “치.” 


 신지의 얼굴이 수척하다. 병은 사람을 수척하게 만들었다.


 “정말 고마워.”


 신지가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 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고맙습니다.” 


 “비켜주세요.” 


 간호사가 민정을 밀었다.


 “아...” 


 신지가 무언가를 중얼 거렸다.


 “고맙습니다. 안.. 녕?”


 민정의 눈이 멈칫했다.


 ‘쾅’ 


 수술실의 문이 닫혔다.


 “신지야...” 


 민정의 눈에 눈물이 차 올랐다.


 “신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