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하늘섬이 너무 예쁘다.
오늘 새로운 손님이 나타났다. 한동안 숙박시설은 텅텅 비어있었는데, 다행이다. 우리 준이가 먹고 싶다는 과자도 마음 껏 사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윤호라는 저 사람,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도대체 왜 이런 섬에 들어와서 살겠다고 주장을 하는 거지? 하긴, 나야 뭐 그냥 돈 벌고, 남자도 집에 있으면 금상첨화지. 그 동안 나쁜 일 생길 까봐 얼마나 걱정했는데. - by 민정
헤헤, 오늘 우리 집에 어떤 아저씨가 왔다. 준이는 너무 좋다. 이 동네에는 아이들도 여자애 밖에 없는데. 그래 봤자 세 명이지만, 그리고 아줌마들이 아저씨들보다 많은데, 어떤 잘생긴 아저씨가 나타났다. 너무 좋다. 이제 나도 내 편이 생긴거다. 아저씨가 너무 좋다. - by 준이
이 동네 너무나도 정감 간다. 특히 내가 묵고 있는 이 숙사의 주인과 아들, 너무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완전 살아있는 상황 코미디이다. 어쩜 이리 한 순간 한 순간이 즐거운지... 내가 루게릭이라는 것을 마치 잊어버리고 살 것 같다. 정말 이러다가 내가 루게릭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나 분에 넘치는 사랑 마구 하고 싶어하면 어떡하지? 차라리, 빨리 죽는 것이 행복한 걸까? 그런 걸까? 아니면, 평생 사랑하는 이와 사는 게 즐거운 것일까? - by 윤호
내 가장 아픈 기억이었던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다니, 말도 안 된다. 하늘섬. 내가 떠나온 곳.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곳. 이제 그 상처에 들어가 그 상처에다가 삽질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상처에서 거대한 노다지를 발견해야만 한다. 그래야지만 내가 인정을 받는다. 세상에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모두들 사랑사랑 하지만, 실제로 돈 없으면 아무런 대우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돈이 좋다. 떵떵거릴 수도 있고, 자신 있어질 수도 있으니까, 나는 항상 음지에 숨어있는 버섯 같은 사람이었는데... - by 민용
민정 누나네 집에 외간남자가 들어왔다고 한다. 하숙이라고 하는데 왠지 자꾸만 불안하다. 보건소 일 때문에 매일 들여다 볼수는 없는데, 이러다가 선생님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겠지? - by 승현
이번 달에는 우리 준이나 보러 갈까? 민정이 누나도 어떻게 사는 지 궁금하다. 좋다. 준아, 서울 삼촌 내려갈게 - by 찬성
우리 윤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왜 오늘따라 민정이 생각이 나는 거지? 휴... 준이는 어떻게 지내나? 5년 전일인데 자꾸만, 자꾸만 생각이 난다. 윤호 같아서, 신지씨가 윤호 같아서 자꾸만 생각이 난다. - by 해미
“준아.”
“응?”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준이가 민정을 본다.
“오늘 온 그 형아 있지?”
“응.”
준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민정을 바라본다.
“하늘섬 구경 좀 시켜주고 와라.”
“하늘섬구경?”
“응.”
준이가 골똘히 생각한다.
“알았어.”
“고마워.”
준이가 옷을 입고 방문을 연다.
“휴.”
“여보, 왜 그래?”
해미가 걱정 어린 눈으로 준하를 본다.
“그냥,”
준하가 위스키잔을 해미에게 건넨다.
“그냥 윤호 걱정이 돼서 그래.”
해미가 위스키를 받는다.
“걱정은 윤호 다 컸는 걸.”
“그래도, 그 자식 되게 보고 싶네.”
준하의 눈이 쓸쓸하다.
“아빠 아빠 거리면서 매달리는 게 귀엽기는 했는데,”
“여보...”
준하의 눈에 굵은 눈물이 맺힌다.
“나는 왜 이렇게 무능력한 걸까?”
“...”
“어떻게 아들내미 하나 못 지켜 주는 거야?”
“여보...”
준하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이런 게 어딨니? 바보같이 이런 게 어딨니?”
해미의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나는 아빠도 아니야.”
“...”
“나는 너무 무능력해.”
해미가 말 없이 준하를 안아주었다.
“!”
“당신은 최고의 아빠야.”
해미의 눈에도 눈물이 떨어진다.
“휴...”
막상 간다고는 말을 했지만, 고민이 된다. 하늘섬.
“민정아.”
오래 전 자신과 민정이 있던 곳, 그리고 민정에게 차였던 곳이기도 하다.
“아직도 신지씨랑 사나?”
아직도 신지씨가 있으면 사과 하고 싶다.
“휴.”
그 때, 그 어설픈 객기를...
“미안합니다.”
실수로라도 절대 하면 안되는 일을 했던 것을 사과하고 싶다.
“슬슬 출발해볼까?”
짐을 꾸리는데 자꾸만 어깨가 무거워진다.
“휴.”
하늘섬을 꼭 사야하는 걸까? 이런 시끄러운 일 싫은데...
“엄마!”
그 때, 민호의 목소리가 났다.
“여보, 민호 자식 목소린데?”
“그러게?”
해미가 눈물을 추스른다.
“오~ 우리 아들!”
미국에 유학을 다녀온 민호가 까맣게 타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뒤에 민호의 애인인 범이가 있다.
“오, 우리 사위도 왔네.”
“엄마, 내가 남자거든.”
혜성이가 틱틱 거린다.
“맞아요, 어머님. 우리 민호씨가 제 신랑인걸요.”
“핏.”
두 사람의 닭살행각에 미소가 지어지는 해미이다.
“둘이 짐 풀고 있어.”
“네.”
“휴...”
민호와 범이를 보니 다시금 윤호생각이 드는 해미이다.
“엄마.”
“응? 왜 민호야.”
해미가 고개를 돌린다.
“윤호 어디 갔어?”
민호가 오이를 집어 먹으면서 물었다.
“응?”
해미의 눈이 흔들린다.
“아니, 방에 아무 것도 없길래.”
“!”
해미는 급히 윤호의 방으로 갔다.
“!”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듯, 윤호는 자신의 물건을 하나도 남기지 않은 채, 모두 치워버렸다.
‘똑똑’
“네.”
문이 열리고, 자그마한 아이가 보였다.
“누구니?”
“저는 준이라고 하고, 이 집 아들이에요.”
“그래?”
참 눈이 똘망똘망하고 예뻐보이는 아이였다.
“왜 온거니?”
“하늘섬 구경하실래요?”
“하늘섬 구경?”
윤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우와!”
이 곳이 왜 하늘섬이라 불리는 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멋있죠?”
“응.”
준이의 물음에 윤호가 대답을 했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섬. 바로 하늘섬이었다. 크지 않은 섬이 맑디 맑은 바다 위에 있었는데, 도대체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맑았다. 마치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우와.”
정말 아름다웠다.
“아저씨, 저거 보세요.”
준이가 무언가를 가리켰다.
“!”
하늘을 나는 물고기다.
“저게 날치에요.”
“날치...”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바다위를 나르는 날치들은.
“다녀오겠습니다.”
민용이 인사를 했다.
“그래요, 좋은 성과 바랍니다.”
민용이 고개를 숙였다.
“휴.”
결국 떠난다. 하늘섬으로...
“배가 없다고요?”
“네.”
판매원의 말에 망연자실한 민용이다.
“실례합니다만, 배를 구할 곳이 없을까요?”
“배요?”
“여긴가?”
민용이 판매원이 적어준 쪽지를 보고 긴가민가한다.
“실례합니다.”
“뉘슈?”
선주로 보이는 양반이 배에서 나타났다.
“이 배가 하늘섬 근처에서 고기잡이 하는 배인가요?”
“그런디요.”
민용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 저 부탁 좀 하겠습니다.”
“안 되요!”
“예?”
민용은 당황했다.
“혹시 돈이 적어서 그럽니까?”
“아닙니다.”
선주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하늘섬 근처에 파도가 높아서 안 되야요.”
“파도요?”
“어, 갑자기 날씨가 왜 이러지?”
“또 소나기 오려나봐요.”
“소나기?”
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섬은 하루에 한 번씩 비가 오거든요."
“그래?”
참 신기한 섬이었다.
“이제 갈까?”
“네.”
준이가 해맑은 미소로 윤호의 손을 잡았다.
“!”
“아저씨 손 따뜻해.”
“킥.”
윤호와 준이가 손을 잡고 달렸다.
“어, 슈퍼가 여기 있네?”
준이와 달려가던 윤호가 멈칫한다. 그러자 준이가 윤호를 바라본다.
“준아, 우리 슈퍼 들렸다 갈까? 준이 먹고 싶은 과자도 사주고.”
“네!”
“계십니까?”
“누구시래요?”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밖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아이구, 우리 준이 아녀?”
아주머니는 준이를 많이 귀여워하시는 모양이었다.
“이 아저씨 누구냐?”
“우리 집에 세들어 살아요.”
“외지인이시구만.”
“예.”
윤호가 밝게 미소지었다.
“여기서 당분간 살 계획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저야 말로 잘 부탁하죠.”
아주머니가 윤호의 손을 맞잡았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준이와 윤호가 나란히 인사를 했다.
“그려요.”
아주머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참 예뻐.”
괜스레 마음이 포근해지는 아주머니였다.
“헤헷.”
“그렇게 좋아?”
“네.”
준이의 입이 귀에 걸렸다.
“아저씨가 종종 사줄게.”
“헤헤, 고맙습니다.”
준이의 미소를 보니, 윤호의 마음에도 미소가 걸렸다.
‘후두둑.’
“비다!”
그 때 준이의 말대로 비가 내렸다.
“뛰자!”
“네!”
'★ 블로그 창고 > 블로그 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맙습니다. - [열네 번째 이야기] (0) | 2009.03.13 |
---|---|
고맙습니다. - [열세 번째 이야기] (0) | 2009.03.13 |
고맙습니다. - [열한 번째 이야기] (0) | 2009.03.13 |
고맙습니다. - [열 번째 이야기] (0) | 2009.03.13 |
고맙습니다. - [아홉 번째 이야기] (0) | 2009.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