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사랑한다고 말했잖아.
이제 더 이상 사랑을 하기는 싫다. 이미 아플만큼 아프고, 힘들만큼 힘들었다. 이제 더 이상 너에게 다시 지치기는 싫다. 제발 나에게 그렇게 다가오는 척 하지 말아주라. 부탁이야. - by 민정
모든 땅, 하지만 마지막 남은 너의 땅. 미안하지만, 나를 위해서 조금만 이용되어 주면 안 될까? 민정아, 그 때는 네가 나에게 상처를 주고 아프게 만들었으니까. 그 정도 도움은 줄 수 있는 거 아니니? - by 민용
준이는요. 민용이라는 아저씨가 싫어요. 나는 우리 아빠가 좋아요. 민용이라는 사람 왠지 나쁜 사람 같아요. 그냥 준이는 그 아저씨가 너무나도 싫어요. 그런데, 요즘 왜 이렇게 준이는 졸린 걸까요? - by 준이
준이의 몸이 심상치 않다고? 하지만 그 어린 애가 설마, 그런 악독한 병에 걸렸을까? 그럴 리가 없다. 만약 준이가 그런 병에 걸렸다면, 우리 민정이 누나는 불쌍해서 어쩔까? 아닐 것이다. 준명히 아닐 것이다. - by 승현
준이가 자꾸만 아프다고 말을 한다. 항상 속으로만 삭히는 속 깊은 아이였는데, 이렇게 아프다고 말을 할 줄이야. 진짜 아플 것이다. 준이 같은 아이가 아프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데 내가 해줄 게 없다. - by 찬성
내 몸이 이렇게 진행이 되고 있는 줄 몰랐다. 천천히 나의 온 몸에 감각이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 결국에 죽고 말겠지? 그런데, 하늘섬에 온 이후로 더 살고 싶어졌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남고 싶어졌다. - by 윤호
“식사하세요.”
“네.”
윤호가 식탁에 앉는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준이도 윤호를 따라서 힘차게 인사를 한다.
“킥.”
민정이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쨍’
그 때 윤호가 수저를 놓쳤다.
“!”
윤호의 안색이 어둡게 변해버렸다.
“어린애처럼, 그런거나 놓치고.”
민정이 타박을 준다.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어린애도 아니고.”
오른 손에 힘이 잘 쥐어지지 않는다, 제길 어느 새 이정도란 말인가?
“아빠.”
“왜?”
“우리 밥 먹고 개울에 가요.”
“개울에?”
준이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우리 고기 잡아요!”
“고기?”
내가 잡을 수 있을까?
윤호는 작게 주먹을 쥐어보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와!”
“윤호씨, 피곤하면 안 해도 되요.”
민정이 윤호를 말린다.
“괜찮습니다.”
“그, 그래도...”
윤호가 싱긋 웃었다.
“아들이 가자는대요?”
“헤헷, 역시 우리 아빠야.”
준이가 싱글거리면서 윤호 옆에 찰싹 붙는다.
“고맙습니다.”
민정이 싱긋 웃는다.
“부부 사이에, 고맙습니다가 뭐냐?”
윤호가 지나가는 말 처럼 툭 내뱉고 방 밖으로 나갔다.
“아빠 같이가!”
준이도 같이 뛰쳐 나갔다.
‘쾅’
“!”
그제야 얼굴이 붉어지는 민정이다.
“서, 설마 프로포즈?”
민정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렸다.
“휴.”
윤호도 얼굴이 붉어져 있기는 매한가지다.
“아빠, 어디 아파?”
“아, 아니...”
어느 새 준이와 함께 한 시간이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아!”
그 때 갑자기 준이가 배를 움켜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준아 너 왜 그래?”
“아, 아니야. 아빠.”
준이가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냥 배가 조금 아파서 그래. 빨리 가자”
“진짜 괜찮아?”
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업어줄까?”
“응!”
준이가 신이나서 윤호의 등에 업혔다.
“이거 이거, 지금 보니까 업히고 싶어서, 꾀병 부린거지?”
윤호가 준이를 놀린다.
“아니야! 아빠.”
준이가 도리질을 하면서 부정을 한다.
“그렇다고 치지요.”
윤호가 싱긋 웃었다.
“저 사람들 어디 가는 거지?”
저 사람들 자꾸만 눈에 보인다. 민정이의 아이... 그렇다면 내 아인걸까?
“이, 준?”
그래. 내 아이일 것이다. 민정이랑 내가 잔 적이 있으니까, 민정이에게 차이고 난 밤. 강제였지만 민정이랑 몸을 섞었으니까.
“거긴 내 자리야.”
민용이 작게 읊조린다.
“너는 사라져.”
“안녕하세요?”
“어, 할아버지.”
옆집에 사시는 이순재 할아버지가 민정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어쩐 일이세요? 순창이 아버지는 어디 가시고요?”
“다, 서울 가버렸어요.”
“!”
민정은 급히 할아버지의 집으로 가봤지만, 아무런 세간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 사실을 모른 자신이 바보 같았다.
“다 갔어요?”
“네, 다 갔어요. 초코파이 줄까요?”
할아버지를 두고 가다니, 이렇게 치매 걸린 노인네를.
“할아버지, 저희 집에 오세요.”
민정이 순재의 팔을 붙잡았다.
“안 돼요. 여기 있어야 해요. 나쁜 놈들 나타나요.”
순재가 대청에 걸터 앉았다.
“할아버지, 가면 초코파이 이만큼 드릴게요.”
민정이가 양팔을 가득 벌렸다.
“고맙습니다.”
순재가 마루에 앉아서 초코파이를 뜯는다.
“맛있으세요.”
“네, 맛있어요. 초코파이 드실래요?”
“아, 아뇨.”
민정이 밝게 웃으며 손사래 친다.
"대신 이거 만들어 드릴게요.“
민정이 순재 옆에 앉아서 쪼물딱 거리면서 꼬빌을 만든다.
“여보, 윤호 어딨는지 알아냈어!”
“그걸, 왜 알아내?”
해미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당신은, 윤호자식 보고 싶지도 않아?”
“우리가 찾아가면 윤호가 좋아할 것 같아?”
해미의 말에 머쓱해진 준하다.
“그래도, 죽기 전에 얼굴은 한 번 더 봐야 할 것 아니야!”
“...”
해미가 입을 다물었다.
“여보!”
준하가 다시 해미를 불렀다.
“몰라,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해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휴.”
한숨을 쉬면서 식탁에 앉아있는 해미
‘탁’
그 때 무언가 투명한 글라스가 내려진다.
“어머니, 드세요.”
범이가 생글거리면서 지금 막 간, 시원한 키위 주스를 내민다.
“고마워.”
“뭘요. 당연히 며느리로써 해야할 일인데.”
범이가 싱글 거렸다.
“그나저나, 무슨 고민 있으세요?”
“윤호,”
“아, 서방님이요.”
해미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지내나 궁금한데...”
“그럼, 저랑 그이랑 다녀올게요.”
“둘이서?”
해미가 고개를 들었다.
“신혼여행 다시 가는 셈 치죠.”
“그래 줄래?”
해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늘섬?”
“응, 자기에 되게 멋있게 들리지.”
민호는 별로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 바다 싫은데.”
“어머니 대신 윤호도련님 보러 가는 거란 말이야.”
범이가 민호를 살짝 쳤다.
“윤호자식?”
“응.”
“그래 가자.”
“준아! 뭐해!”
찬성이도 다리를 둥둥 걷고, 상의를 벗고 개울로 뛰어들었다.
“고기 잡아!”
“나도 잡자!”
세 남자가 웃통을 벗은 채 이리저리 물을 밟아댄다.
‘퍼드득’
아직 깨끗한 하늘섬의 개울에서 물고기는 물만큼 많았다.
“우와!”
한 한시간 잡았을까? 물고기가 두 양동이가 넘었다.
“한 양동이는 풀어주자.”
준이가 물고기들을 보며 말했다.
“얘네도, 엄마 있을 거잖아.”
“알았습니다. 우리 준이.”
찬성이가 싱긋 웃으면서 물고기들을 붓는다.
“자, 그럼 집으로 갈까요?”
찬성이 준이를 무등 태워준다.
“윤호형님은, 그 양동이 들고 오십시오.”
“알았습니다.”
윤호가 싱긋 웃었다.
‘탁’
그러나, 양동이를 쥔 순간, 윤호는 모두 엎고 말았다.
“아, 형님 칠칠 맞게.”
찬성이가 준이를 내려놓고 윤호에게 달려갔다.
“아, 형님. 아 놔!”
찬성이가 투덜거리며 생선을 모두 담는다.
“이걸 어떻게 먹습니까?”
“미, 미안.”
윤호가 머리를 긁적인다.
“제길.”
혼자서 방벽에 기대 눈물을 흘리는 윤호이다.
“제발. 제발...”
이제 점점 손에 힘이 없어진다.
“이렇게, 이렇게 되는 건가?”
윤호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륵 흘러내렸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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