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잔인한 사람
자꾸만, 자꾸만 손에 힘이 없어져 간다. 이상하게, 다리는 멀쩡한 것 같은데 손부터 멈춰가고 있다. 이러다가, 나 그냥 죽게 되는 것 아닐까? 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떠나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그러면 우리 준이. 아빠가 없어져서 어쩌지? 나라도 준이 옆에서 아빠 노릇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항상 실수 하고 넘어지는 우리 민정씨도, 내가 옆에서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할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리고 다시 어머니랑 아버지 얼굴도 한 번쯤은 봐야 하는데. 제길, 이렇게 되니까. 항상 싸움만 하던, 민호형 얼굴도 자꾸만 떠오른다. 사람은 죽기 전이 되면 이렇게 약해지는 걸까? 자꾸만, 자꾸만 힘들어진다. 하늘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어차피 날 죽일 거면서, 왜 이렇게 행복한 기억들을 자꾸만 남겨주는 것일까? 하늘아, 나 너무 행복하게 하지 마라. 나는 괜찮은데, 나랑 같이 행복했던 사람들이 내가 없어지면 슬퍼할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조금은 덜 행복해야 할 것 같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눈물을 생각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나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같이 보잘 것 없는 존재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모두들 내가 사라진다면 더 이상 나를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내가 죽으면, 내가 사라지면 그 순간부터 나의 기억들도 모두 잊어주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이 더 아프지 않게, 나를 생각하면서, 나를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나를 생각하면서, 나를 떠올리면서 아파하지 않도록, 그 사람들이 힘들어 하지 않도록. 그렇게 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아니 너무너무 행복하게 지냈지만 그 사람들이 잊어주었으면 좋겠다. - by 윤호
아빠도 이상하다. 준이도 아픈데 아빠도 아픈가보다. 자꾸만 아빠가 무언가를 놓친다. 그리고 아빠의 눈이 슬프다. 준이는 준이가 아프고 말지, 아빠가 아픈 거는 싫은데, 아빠가 아프면 준이 너무 아픈데. 아빠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느님, 우리 아빠 아프지 않게 해주시면 안 되나요? 준이는 아빠가 너무너무 좋은데요. 아빠가 아픈 거는 너무너무 싫어요. 하느님, 제발 우리 아빠는 아프지 않게 도와주세요. 엄마랑 아빠랑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하느님 준이가 이렇게 부탁할게요. 준이의 부탁 들어주실 꺼죠? 준이는 엄마가 웃는게 너무너무 좋아요. 엄마가 웃으면 마치 천사님 같아요. 하느님이 계신 곳에 함께 계신 천사님들 말이에요. 준이는 아빠랑 고기 잡는 것도 좋고, 엄마랑 밥 먹는 것도 좋은데, 엄마 아빠가 서로 보면서 웃는 게 더 좋아요. 그러니까, 하느님 차라리 준이를 아프게 만들고 아빠는 아프게 하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해주세요. 하느님. 준이가 이렇게 부탁할게요. 착한 준이가 빌게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크리스마스 선물은 필요 없어요. 아니 지금 제가 말한 게 제가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듣고 계시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제발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 - by 준이
형님이 이상하다. 요즘 들어 자꾸 무언가를 놓친다. 어디가 불편 하신 걸까? 그런데 윤호형님은 항상 속내를 숨기셔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사람이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윤호 형님은 자꾸만 숨기고, 혼자서만 가슴앓이를 하시는 것 같다.혼자서 힘들고, 속으로만 삭히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 윤호 형님이 조금이나마 그 짐을 나나, 민정이 누님에게 덜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윤호 형님의 그 미소가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형님의 그 미소를 보고 민정이 누님도 다시 미소 짓고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나의 바람은 너무나도 소박하다. 그 세 사람이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 세 사람이 행복한 삶을 보내기 원한다. 더 이상 민정이 누나가 혼자서 가슴앓이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민정누나의 아픔을 덜어내줄 사람은 오직 윤호 형님 그 분 한 분일 것 같다. 승현이에게 미안하지만, 누님은 윤호 형님과 더 잘 어울린다. 승현이 자식은 차라리, 유미간호사랑 더 어울린다. 두 사람 진짜 잘 되었으면 좋겠다. - by 찬성
준이의 행복한 미소를 보니 나도 너무 행복하다. 항상 그 자리는 내 자리라고 생각했은데, 이제 생각해보니 내 자리는 아닌 듯 싶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예뻐 보일 줄이야. 준이도 그렇게 행복하게 웃는데, 이제 내 자리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제길,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래도, 준이를 옆에서 지켜봐주는 것 정도는 해도 되겠지? 민정이 누나가 힘들 때, 잠깐씩 나타나서 도와주는 것은 괜찮겠지? 제길, 눈물이 왜 나지? 내가 이토록 민정이 누나를 좋아했었나, 휴우. 하지만 이제는 이 마음도 접어야 겠다. 내가 지켜줄 때 보다 그 사람이 지켜줄 때 민정이 누나의 입가에 미소가 더 많으니까, 나보다 그 사람이 더 행복하게 해주니까. 그래, 내가 양보한다. 나, 염승현이 남자답게, 멋있게, 쿨하게, 그렇게 민정이 누나 보내준다. 그래, 멋지게. 그런데 나 진짜 멋지지 못한 것 같다. 자꾸만 마음 한 구석이 아리다. 그래, 이러다가 그 아림도 사라지고, 이 감정도, 이 애틋한 감정도 혼자만의 비밀상자처럼 잠궈 둔 채 나중에는 잊어버리고 말겠지? 그 때까지, 그 때까지만 잘 버티면 될 것 같다. 더 이상 아프지 않으려고. - by 승현
요즘 들어 준이가 웃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모두 윤호 씨 덕분이다. 너무너무 고맙다. 그런데 요즘 윤호 씨가 이상하다. 점점 물건들을 놓치는 빈도수가 높아진다. 사람이 기가 허해서 그런가? 이번에 선주아저씨가 오시면 뭍에서 한약 좀 지어다가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윤호 씨는 젊은 사람인데 왜 이렇게 몸이 약한 건지, 하여간 여자인 나보다도 약한 것 같다. 아, 이번에 선주 아저씨께 부탁하는 김에, 소꼬리랑 사골도 사다 달라고 부탁해야 겠다. 그런가나 고아가지고, 먹이면 좀 나아지겠지? 일단 오늘은 우리 꼬꼬를 잡아야 겠다. 아! 순재 할아버지. 초코파이도 사야하는데. 휴. 이래저래 돈이 들어갈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구나. 그래도 요즘만큼 행복했던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이 행복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부모가 없던 내가 할아버지가 생기고, 날 사랑해주는 사람도 생기고, 예쁜 아이도 있고.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다. 이 순간 조금이나마 더 지속되기를 바란다. 이 행복한 순간이.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은 이 찬란한 기쁨과 행복의 순간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 by 민정
준이가 내 아이가 분명하다. 준이의 웃는 모습이 내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나를 닮았다. 하지만 민정이에게 다가갈 수는 없다. 너무나도 미안하다. 그렇게 여자를 버려놓고 단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니, 준이가 너무 예쁘다. 사랑스럽다. 이게 핏줄이 당긴다는 것일까? 이제 민정이의 땅만 매수하면 되는데, 자꾸만 머뭇거리게 된다. 민정이의 땅을 사기 미안해진다. 그런 일로 민정이에게 찾아가기는 너무 민망하다. 내 아이의 엄마에게 민망하다. 그나저나, 이제 모든 땅을 다 사들였다. 이제 이 하늘섬이 없어진다. 이 아름다운 삶의 공간이 사라진다. 나의 오랜 기억, 하지만 아픈 추억들이 모두 다 사라진다. 다행이다. 나의 아픈 기억들까지도 사라지니까. 이제 더 이상 이 하늘섬을 좋은 눈으로 볼 자신은 없다. 내가 볼 자신이 없으니 차라리 없어지는 것도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다. 하늘섬이라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관광지로 만들면 얼마나 예쁠까? 이 마을 사람들도 분명 그 편을 더 좋아할 것이다. 당연할 것이다. 이렇게 가난하고 힘든 생활대신 커다란 관광지가 되어서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더 클 것이다. 그래, 나는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나중에는 결국 나에게 고맙다고 말을 할 것이다. 하늘섬을 사줘서 고맙다고. 하늘섬을 이렇게 돈 잘 버는 섬으로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분명 나중에 사람들은 그렇게 말들을 할 것이다. 분명하다. 그래, 나는 그렇게 믿을 것이다. 사람들도 분명 나에게 고마워 할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결국에는 내가 옳은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를 믿을 것이다. 내가 틀릴 리는 없다. 나는 이민용이니까, 나의 선택은 항상 옳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조금씩 드는 이유 없는 불안감은 뭘까? 아니, 내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냥 가볍게 툴툴 털어버리면 된다. 이런 기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괜찮다. 결국에는 내가 옳은 것이 될 것이다. - by 민용
요즘 들어 민용이가 이상하다. 자꾸만 이 마을의 땅을 사들인다고 한다.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들의 땅을 사들인다고 한다. 무슨 일을 벌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 아들이니까. 지켜 봐줘야 할 텐데 왠지 불안하다. 우리 민용이에게 무슨 일이 닥칠 것만 같다. 민용이가 여기서 멈춰주었으면 좋겠는데, 민용이는 만족하지 못한 듯하다. 이러다가 우리 민용이가 다치면 어떻게 하지? 엄마인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는데, 이제 내가 민용이에게 해줄 일이 없는데. 민용아 무언가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것 안 아니지? 민용아 엄마가, 이 엄마가 너를 걱정 안 해도, 혼자서 잘 하고 있는 거지? 그런 거지? 나는 우리 아들만 믿고, 그렇게 믿고 있는다. 우리 아들 절대로 나쁜 일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꺼라고, 그렇게 믿는다. 귀도 막고, 눈도 막고 그렇게 믿는다. 제발, 아들아. 엄마의 기대. 져버리지 않도록 해주라. 민용아, 엄마. 엄마 부탁 좀 들어주라. 부탁한다. - by 문희
직접, 윤호를 보러 가고 싶지만, 윤호에게 너무 힘이 들 것 같다. 안 그래도 아프고 힘든 아이를 더 힘들게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내가 가지는 못하지만 나의 아들과 며늘아기가 가니까. 다행이다. 그 아이들이 윤호를 보고, 윤호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윤호의 남은 여생이 조금이나마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하늘섬이라는 따뜻한 공간에서... - by 해미
여보가 말리니까 가지 않았지만, 나도 윤호자식이 너무나도 보고 싶다. 아버지로써 아들을 너무나도 보고 싶다. 하지만 힘들어도 꾹 참고, 윤호 자식이 힘들어 할 게 분명하니까, 참아야 겠다. 윤호 자식 우는 거 볼 자신이 없다. 나는 아버지니까. 아들의 눈물을 보고 견딜 수가 없다. 나도 사람이니까. 나도 아버지니까. 윤호 자식을 아프게 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 그냥 믿고 싶다. 윤호는 내 아들이니까, 건강히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암. 나랑 내 여보 자식인데, 당연히 건강히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윤호는 좋은 아이니까. 그 곳에서도 마을 사람들이랑 행복하게 웃으면서 뛰어놀며 지낼 것 같다. 항상 밝게 웃으며... 그래, 윤호는 그럴 것이다. 강한 아이니까, 분명 강하게 잘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윤호야, 네가 어디에 있든 이 아빠는 네 편인 거 잘 알고 있지? 힘들면 언제든지 이리로 와. 윤호 네가 편히 쉴 수 있는 곳, 이 집에 내가 있을 테니까. - by 준하
항상 그렇게 싸웠던 윤호자식이 이렇게 없으니 왠지 허전하다. 항상 내 옆에 있던 반쪽이 사라진 느낌이랄까? 영혼이 잘라진 느낌이다. 내 애인 범이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또 다르다. 왜 그동안 형이 내가 윤호에게 그렇게 못해준 걸까? 윤호가 이렇게 아플 줄 알았다면, 진작 잘 대해주는 건데. 너무 후회 스럽다. 그동안 윤호에게 잘해주지 못한게 너무 후회스럽다. 진작 잘 대해줄것, 이렇게 윤호자식 아플 거 알았으면 잘 해줄껄. 왜 이렇게 나는 모진 형이였을까? 나는 왜 이렇게 바보같은 형이었을까, 내가, 내가 너무 밉다. - by 민호
윤호 도련님이 아프단다. 너무너무 아프단다. 그런데 어머니는, 윤호 도련님이 슬퍼하실까봐 갈 자신이 없으 시다고 한다. 나라도 대신 가야 하는데, 나랑 민호 씨가 대신 가는데, 나도 가슴이 자꾸만 무너지려고 한다. 윤호도련님을 볼 자신이 없다. 윤호도련님이 아파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항상 당당하게 나서던 윤호 도련님의 작아진 모습을 볼 자신이 없다. - by 범
초코파이 드실래요? 저는 요즘 너무 좋아요. 옆 집 사는 이쁜이가 자꾸만 맛있는 초코파이를 줘요. 서울 간 우리 아들내미 필요 없어요. 난 초코파이가 제일 좋아요. 초코파이 드실래요? - by 순재
“아저씨, 일어나세요!”
준이가 방문을 두드렸다.
“으.”
윤호는 머리가 깨지는 것 같았다.
“휴.”
소주병이 일곱병이 넘었다.
“내가 미쳤지.”
윤호가 고개를 저었다.
“식사하세요.”
민정이 콩나물 국이 있는 상을 내왔다.
“술 많이 드셨죠?”
“아. 네.”
윤호가 머리를 긁적인다.
“속 푸는 데 도움 될 거예요.”
민정이 윤호의 손에 숟가락을 쥐어준다.
“어서 드세요.”
“고맙습니다.”
“치, 부부 사이에 고맙다는 말 하는 거 아니라면서.”
민정이 지나가는 말처럼 대꾸했다.
“!”
윤호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러면 받아주는 겁니까?”
“우리, 원래 부부 아니었나요?”
“나 결혼해.”
“진짜?”
찬성의 눈이 동그래졌다.
“언제?”
“이번 주 일요일.”
민용이 쑥쓰러운 듯 말했다.
“윤호 형님.”
찬성이 윤호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순수한 척 하시더니 이미 작업을 다 끝냈던 거네요.”
“하하.”
윤호가 머리를 긁적인다.
“그러네요.”
“결혼?”
“그렇다니까.”
승현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왜?”
“아, 아니.”
“설마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거냐?”
“...”
찬성의 말에 승현이 묵묵부답이다.
“접으랬잖아.”
“접는 중이다.”
“!”
찬성이 고개를 들어 승현을 본다.
“그 마음 접는 중이라고...”
“...”
찬성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
갑자기 준이가 비명을 질렀다.
“준아, 왜 그래?”
준이가 배를 움켜지고 웅크렸다.
“아파. 아파.”
준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윤호씨!”
“윤호씨!”
민정의 다급한 목소리에 윤호가 뛰쳐나갔다.
“!”
“준이가 이상해요.”
아이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
그 동안 왜 몰랐던 거지? 아이의 오른쪽 배가 약간 부풀어 있다.
“!”
민정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승현씨에게 전화해요.”
“네.”
민정이 눈물을 흘리며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승현아!”
“누나?”
승현의 눈이 커다래졌다. 민정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무슨 일 있어?”
찬성이도 궁금한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이가 이상해.”
“!”
승현의 얼굴이 굳었다.
“준이가 아파!”
“알았어, 내가 금방 갈게.”
승현이 급히 전화를 내렸다.
“같이 갈꺼지?”
승현의 말에 찬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
승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거, 암 맞지?”
윤호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응.”
승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
민정이 단발마 같은 한숨을 내뱉고 무너졌다.
“준아...”
아빠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
윤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진다.
“어떻게 해야해?”
승현의 얼굴이 굳어있다.
“야! 염승현!”
찬성이 승현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퍽’
“어떻게 말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니야!”
찬성의 눈에서도 눈물이 끈임없이 흘러내린다.
“너무 늦었어.”
윤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형님!”
“아이의 배가 이정도로 부풀어 올랐다는 것은, 이미 암이 어느정도 진행이 되었다는 이야기야. 이미 늦은 거야.”
“!”
“...”
승현이 묵묵히 땅만 본다.
“당신 아빠 맞아!”
찬성이 윤호의 멱살을 잡는다.
“어떻게, 어떻게! 아이가 이렇게 될 때까지 몰라!”
윤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쩔 꺼야?”
승현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뭘?”
“얘, 뭍으로 보낼꺼지?”
민정이 윤호를 바라보았다.
“데려가."
"!"
"그리고,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다녀올게요!”
범이가 미소를 짓는다.
“어머니, 힘내세요.”
‘따르릉.’
“여보세요?”
해미 여사가 전화를 받는다.
“윤호야!”
범과 민호가 멈칫하다.
“뭐? 서울로 온다고?”
“!”
“병원, 수술! 준비?”
“!”
“알았다.”
해미가 전화기를 내려 놓았다.
“민호야.”
“네.”
민호가 재빨리 병원으로 뛰어갔다.
“괜찮으세요?”
“그래.”
해미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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