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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간 - [열둘]

권정선재 2009. 3. 13. 23:35
 




 12화




 “!”


 민정과 고모는 눈을 의심했다.


 “할머니 이게 다 뭐예요?”

 고무 다라이 가득 떡이 담겨있었다.


 “떡 좀 줄라고.”


 고모가 슬며시 빵봉투를 뒤로 던졌다.


 “맛있겠다.”


 고모가 밝게 미소 지었다.


 “어서 가죠.”




 “!”


 들어오던 윤호가 멈칫한다.


 “할머니야.”


 고모가 미소를 지었다.


“네가 돌아가시게 만든 그 분 어머니.”


 “...”


 윤호가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안녕, 하십니까?”

 “아이고 이놈아!”

 

갑자기 할머니가 윤호에게 달겨들었다.


 “왜 하필 우리 딸이냐?”

 “...”


 “왜 하필!”


 할머니가 악을 썼다.


 “가난하고, 그렇게 힘들게 사는 아인데!”


 “...”


 “아픈데, 그 날도 아픈데, 약속이라면서 간 아이를!”


 “죄송합니다.”


 “아이고! 아이고!”


 할머니가 윤호의 가슴을 마구 두들겼다.


 “워짜, 그랴? 어떻게!”


 “...”


 윤호는 묵묵히 매를 맞았다.


 “어떻게.”


 할머니는 지쳐 바닥에 주저 앉으셨다.


 “할머니 앉으세요.”


 고모가 할머니를 자리에 앉혔다.


 “일부로 그런 건 아닙니다.”


 윤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너무 죄송합니다.”


 “...”


 “죄송합니다.”


 윤호가 눈물을 흘렸다.

 

“그래, 너도 어린데 그렇게 혼자 아파해서 무얼 하겠누?”


 할머니가 한탄스런 어조를 내뱉었다.

 

“그래, 떡이나 묵그라.”


 할머니가 떡과 함께 수정과를 올렸다.


 “그 짝의 아자씨도 좀 드이소.”


 “예.”


 소박하게 떡판이 벌어졌다.




 “그래, 네 가족은 있나?”


 윤호가 고개를 저었다.

 

“동생 하나 있었는데, 얼어 죽었습니다.”


“...”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랴, 이제 나를 할머니로 여기그라.”


 “!”


 고모가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내가 딴 날은 못 와도, 명절날은 꼭 올끼다.”


 “...”


 “대신 죽지 말그라.”


 할머니가 윤호의 뺨을 쓰다듬었다.


 “절대 죽으면 안 된다.”


 윤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긋자?”

 “네.”


 윤호가 입안 가득 떡을 넣고 눈물을 흘린다.




 “우리 갈게.”


 “예.”


 윤호의 눈이 부어있다.


 “할머니 가시죠.”

 

“그래.”


 할머니가 아쉬운 듯 자꾸 뒤를 돌아본다.




 “참 대단하세요.”

 

“내가 뭘요.”


 할머니의 볼이 붉어지신다.


 “어떻게 용서를.”


 “용서는 무신.”


 할머니가 슬픈 미소를 짓는다.


 “내도 기게 불쌍 시러버서 그카지.”


 “...”


 “나이도 어리 보이디마.”


 “...”


 “우야꼬. 우야꼬.”


 할머니가 연신 눈물을 찍어낸다.


 


 “대단하시지?”

 “응.”


 민정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못 그럴꺼야.”


 “그래.”


 고모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못 그럴 꺼야.”




 “하아.”


 민정이 침대에 누웠다.


 “용서?”

 그 일이 있은 후로 단 한 번도 용서라는 단어를 떠올린 적이 없다.


 “하아.”


 가능할까?


 “용서.”


 민정이 눈을 감는다.


 “안 될 것 같아.”

 

민정이 작게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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