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뭐?”
민정이 전화기에 대고 소리친다.
"고모 괜찮아?“
“그럼.”
고모가 담담하게 대꾸한다.
“그런데 어쩌지?”
“뭐가?”
“내가 못 가서.”
“걱정 하지마.”
민정이 다부지게 대답한다.
“내가 잘하면 되지.”
민정이 미소를 짓는다.
“고모가 다쳤어요.”
“!”
윤호의 얼굴이 굳는다.
“얼마나요?”
“모르겠어요.”
“...”
“약속이라서, 고모에게도 가지 않고 왔어요.”
“!”
“우리 이야기 해요.”
“...”
“오늘은 내 이야기 좀 들어줄래요?”
민정이 미소를 짓는다.
“네.”
윤호가 대답한다.
“조금 길어요.”
“괜찮습니다.”
민정이 일어나서 커피를 내린다.
“아저씨도 드실래요?”
민정이 커피를 세 잔 내린다.
“내가 인터넷에서 윤호씨를 검색해봤어요.”
“!”
“참 잔인하더라.”
민정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더라.”
“?”
“그거 윤호씨가 안 한 거 알 꺼 같아.”
“!”
“그래도 윤호 씨가 했다니까.”
민정이 빙긋 웃는다.
“믿어줄게요.”
“...”
“윤호씨 세 명 죽였댔죠?”
“네.”
윤호가 조금 무겁게 대꾸한다.
“나는 세 번 자살을 시도했어요.”
“!”
민정이 슬픈 눈으로 윤호를 본다.
“아마, 윤호씨가 나 대신 그 사람들 죽여줬나봐.”
“!”
“그래서 내가 사나봐.”
민정이 커피를 마신다.
“나 어릴 적 강간 당했었어요.”
“!”
“나보다 12살 많은 사촌 오빠였어요.”
“...”
“오빠는 결혼했었는데.”
민정이 커피잔만 내려다본다.
“나를 이층으로 올라오라고 했어요.”
“...”
“되게 우리 친했었거든요.”
“...”
“그래서 아무 의심없이 오빠 서재로 올라갔어요.”
민정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리고 너무 아팠어요.”
“...”
“정말 너무 아팠어요.”
“...”
“고등학교 2학년생이 버티기에는 너무나도 아프고, 몸도 아프고, 마음도 너무나도 아픈 상처였어요.”
“...”
윤호가 차분히 민정을 바라본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돼서 집으로 갔어요.”
“...”
“그런데 맞았어요.”
민정이 어이없는 웃음을 짓는다.
“!”
“다 큰 년이 얼마나 꼬리를 쳤으면, 그랬냐고, 맞았어요.”
민정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내가 헤퍼서 그랬다고.”
“...”
“어머니랑 오빠한테 맞았어요.”
“...”
“그랬어요.”
윤호가 민정의 손을 잡는다.
“!”
민정이 흠칫 놀란다.
“그리고 남자를 믿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내 차분해진다.
“아니 어른을 믿지 못했어요.”
“...”
“그 날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했어요.”
“...”
“욕조 가득 따뜻한 물을 채웠어요.”
간수도 민정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속으로 들어갔어요.”
“...”
“손목을 그으면, 추울 것 같았거든요.”
“...”
“피바다 속에서 구출 되었대요.”
민정이 눈물을 닦는다.
“웃기죠?”
“...”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
“왜 살렸나몰라?”
민정이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나는 삐뚤어졌어요.”
“...”
“아니 삐뚤어졌다고 믿었어요.”
민정이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도대체 왜 그랬어?”
고모가 엄마를 차가운 눈으로 본다.
“...”
“민정이 아직도 그 일로 아파하는 거 알아?”
“...”
“엄마잖아.”
“...”
“무슨 일이라도 딸 편을 들었어야지!”
“...”
엄마는 할 말이 없었다.
“아직도 민정이 잘못이라고 생각해?”
“아니요.”
엄마가 차분히 대꾸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는 그게 옳다고 생각했어요.”
“...”
“그래서 그랬어요.”
“...”
고모는 그냥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어요.”
“...”
“그 집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까.”
“...”
“그 도움 버릴 수 없었으니까.”
“...”
“어쩔 수 없었어요.”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나도 너무 힘들었어요.”
“...”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
“난 엄마였으니까요.”
엄마가 고모를 바라본다.
“고모는 모를지도 모르겠네요.”
“...”
“미혼모라는 거.”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쉽지 않아요.”
“...”
“특히나 대한민국에서는.”
“...”
“그 집 없었으면 민정이 살지도 못했어요.”
“그래도.”
‘알아요.“
“...”
“내가 잘못한 거.”
“...”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
“나는 내 자식들 입에 당장 밥이 들어갔어야 하니까.”
“...”
“당장 밥을 먹여야 했으니까.”
“...”
“그게 엄마의 일이었으니까.”
고모가 엄마의 손을 잡는다.
“알아.”
“그래서 그래요.”
“?”
“그래서 민정이에게 모질게 말해요.”
“...”
“미안하니까.”
“...”
“너무 미안하니까.”
“...”
“이제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미안하니까.”
고모가 엄마를 안는다.
“힘들었겠네.”
“...”
“힘들었겠어.”
엄마가 고개를 끄덕인다.
“민정이도 알 꺼야.”
“...”
“엄마 마음.”
“...”
“알고 있을 꺼야.”
고모가 엄마의 등을 토닥인다.
“알아요.”
“...”
“엄마도 어쩔 수 없었을 거라는 거.”
민정이 커피를 한모금 마신다.
“엄마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거.”
“...”
“우리 집이 그 집에 얻어먹은 게 많았거든.”
“...”
“그래서 엄마도 그랬을 꺼야.”
민정이 슬픈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
“그래서 다 아는데 밉더라.”
민정이 눈물을 흘린다.
“아는데 그러더라.”
“...”
윤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민정을 안아준다.
“!”
“힘들어하지 마요.”
“...”
“민정씨가 잘못한 게 없으니까.”
“...”
윤호가 미소를 짓는다.
“앞으로는 죄채감 느끼지 마요.”
“...”
“알았죠?”
민정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면 됐어요.”
“...”
“그리고 아프지 말아요.”
민정이 고개를 끄덕인다.
“시간 끝.”
민정이 시계를 본다. 두 시가 한 참 지나있다.
“!”
“말 끊을 수가 없어서.”
간수 아저씨가 머리를 긁적인다.
“...”
“고마워요.”
민정이 싱긋 웃는다.
“정말 고마워요.”
“...”
간수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제 갈게요.”
“네.”
민정이 고개를 끄덕인다.
“안녕.”
“...”
윤호의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안녕.”
“안녕.”
두 사람의 서로를 애틋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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