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날의 판타지
오! 나의 공주님
스물네 번째 이야기
“그래서, 지금 자신들의 목숨이 중하다고, 그 인어가 다른 인어를 해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바라보시겠다는 것입니까?”
은해 부의 애타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모두 침묵을 지켰다.
“하아.”
은해 부는 허탈했다.
“어찌, 어찌.”
“이게 인어일세.”
해동 부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내 손에 있는 것, 그것을 절대로 잃을 수는 없네. 그것을 잃는 다는 것은 정말로 바보 같은 짓이지. 지금 내 손에, 내 앞에 있는 그 목숨이 없어질 수도 있는데 어찌 감히 덤빌 수 있겠는가?”
“하.”
은해 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라도 맞서겠습니다.”
“그만 두시게.”
장로 하나가 고함을 질렀다.
“이미 노 장로님이 돌아가셨네.”
“허나.”
“기다리지.”
여성 장로도 슬픈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할 일은 없네.”
“뭐라고요?’
시종의 말을 들은 은해의 눈이 커다래졌다.
“누, 누가 죽었다고요?”
“노 장로님이요.”
“하.”
은해가 이마를 짚었다.
“은해 씨 괜찮아요?”
“네.”
은해가 겨우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얼굴 표정이 하나도 괜찮아 보이지 않아요. 지금 은해 씨 얼굴이 어떤 지 알아요? 완전 놀라서 얼굴이 새 하얘요.”
“좋은 분이었어요.”
은해가 아래 입술을 살짝 물었다.
“우리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너무나도 좋았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무조건 할아버지라서 좋은? 그 사람이라서 무조건 좋은, 그런 거 말이에요. 알아요?”
“네, 알아요.”
성오가 은해의 앞 머리를 쓸었다.
“그런 거 나도 잘 알고 있어요.”
“할아버지는 내게 그랬어요.”
“어서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요.”
은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인어는 죽으면 천천히 녹아요. 아주 천천히, 결국에는 다시 사라지게 되죠. 그래서 우리는 바로 물에 띄워요.”
“죽은 인어를요?”
“네.”
은해가 성오의 손을 잡았다.
“물 속으로 돌아가라고.”
“언제 보내는데요?”
“죽음을 알리고 난 직후요.”
은해가 겨우 아래 입술을 물었다.
“우리는 죽은 자에 대한 그런 기대나, 희망, 혹은 소망 같은 것이 없어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인어는 죽으면 녹아서 물에 간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전생 그런 거 안 믿어요?”
“우리에게는 없어요.”
은해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인간들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은해 씨.”
“후우.”
은해가 미소를 지으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어차피 누구나 한 번 태어나면, 반드시 죽기로 정해져 있는데, 제가 너무 감상적으로 굴었던 것 같아요. 누구나 다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 씩 잃게 되어 있어요. 그게 누구든, 그렇게 크게 아파할 일은 아니에요.”
“거짓말.”
성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울고 싶죠?”
“네?”
은해가 눈을 깜빡였다.
“무, 무슨?”
“은해 씨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지금 은해 씨의 눈에 모든 것이 다 보이고 있어요. 나 정말로 울고 싶어요. 누가 제발 내 어깨 좀 두드려줘요. 누가, 누가 제발 좀 날 달래줘요. 내 숨이 다해서, 내 목숨이 다해서 정말 죽어버릴 것만 같아요. 그러니 누가 날 안아줘요.”
“성오 씨.”
은해의 목소리가 가늘게 흔들렸다.
“그래 줄 수 있어요?”
“물론이죠.”
성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은해 씨가 해달라는 건, 그 어떤 것이던지 다 해줄 수가 있어요. 나는 그런 존재에요.”
“고마워요.”
은해가 부드럽게 성오의 품에 안겼다.
“정말 고마워요.”
“은해 씨.”
“네.”
“아프면 아파해요.”
성오가 부드럽게 은해의 손에 깍지를 꼈다. 조금은 더 따뜻해진 은해가 성오의 마음을 온기로 채워 주었다.
“슬프면 슬프해요.”
“네. 그럴게요.”
은해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해동 모의 얼굴이 굳었다.
“해, 해동아.”
“크르르”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앞에 있는 것은 그녀의 소중한 아들이 아니었다. 그저 야수, 그 뿐이었다.
“하아, 하아.”
해동 모는 뒤로 물러섰다.
“크르릉.”
해동은 한 번 위협을 한 후 날래게 집 밖으로 나섰다.
“해동아.”
해동 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모든 것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은 제가 더욱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모든 것을 잃게 둘 수는 없습니다.”
해동 부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저는 은해와 그 인간의 진정한 언약을 반대합니다.”
“허나.”
은해 부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어떻게 인어들에게 해가 간다는 것인가? 그러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전혀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모를 일이라고?”
해동 부가 기이한 목소리를 냈다.
“위험할 거야!”
“그래서 외면하자고?”
은해 부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우리 인어의 동족일세! 자네는 지금, 지금 동족들이 위험에 빠지는데 그걸 그냥 보고만 있자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야? 우리의 동족을 지금, 그냥 버리자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야?”
“동족?’
해동 부가 코웃음을 쳤다.
“자네의 딸이라 그런 것은 아니하고?”
“무어?”
은해 부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그, 그게 무슨?”
“지금 야수가 되어 버린, 괴수가 되어 버린 그 인어는 바로 나의 아들이라는 말일세. 내 아들이라고.”
“말도 안 돼.”
“어머나.”
수많은 장로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해동 부는 차가운 눈으로 그런 장로들을 천천히 노려 보았다.
몇몇 장로들을 제외하고는 그저 나이가 많기에 그저 그러한 이유로 이 자리에 오르게 된 인어들이었다. 그 인어들은 아무런 능력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할 줄 아는 것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지금 제 목숨만 지키면 그만인 것들.
“다들 이제 좀 두려우십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늙은 여성 장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그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면, 그대 역시 그대의 아들이기에 아무 것도 해서는 아니된다, 그리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까? 아니면, 이 늙은이가 아둔하여, 잘못 들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해동 부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상대는 제 아들입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제 자식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아비는 없습니다. 아니, 만에 하나라도 그런 아비가 있다고 하더라도 저는 절대로 그러지 아니할 것입니다.”
“비켜서!”
은해 부가 날카롭게 외쳤다.
“내가 죽일 거다!”
“못 물러선다.”
해동 부가 당당히 맞섰다.
“상대는 내 아들이란 말이다!”
“무어라?”
은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 지금 무어라고 이야기를 전하였느냐? 야수가, 야수가 지금 이리로 오고 있다 그 말이더냐?”
“예.”
시종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것이.”
“그것이 왜?”
은해가 눈썹을 모았다.
“그것이 실은, 해동 도련님이라고 하옵니다. 해동 도련님이 괴수가 되어서 이리로 오고 계시다 하옵니다.”
“하.”
“은해.”
은해가 무너지려 하자, 성오가 재빨리 은해를 붙잡았다.
“그게 도대체 무엇이에요?”
“마음의 소리.”
은해가 아래 입술을 물었다.
“인어들에게는 자의식이라는 것이 두 가지가 있어요. 숨겨져 있는 자의식, 드러나는 자의식. 지금, 해동 그 아이는 숨겨져 있는 자의식을 꺼내 버린 거예요. 폭력적이고, 무자비하고, 또 본능적인.”
“하.”
성오가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어찌해야 합니까?”
“도리가 없습니다.”
은해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죽어야만 하는 겁니다.”
“죽어요?”
“네.”
은해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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