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낙엽이 떨어지다.]
-시대의 선택과 버림을 받은 ‘허균’에 대해서-
허균은 누구인가?
허균(許筠, 1569년 음력 11월 3일~1618년 음력 8월 24일)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학자이자 정치가였다. 허균의 본관은 양천,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 또는 성소(惺所)로 불렸고, 후에는 백월거사(白月居士)로도 불렸다. 광해군 때 반역을 도모하려했다는 밀고로 능지처참되었다.
광해군은 누구인가?
조선의 제 15대 왕으로 이름은 혼(琿). 선조의 둘째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세자로서 난의 수습에 힘썼으며, 즉위 후에는 자주적·실리적 외교로써 명·청 교체의 국제 정세에 대처했다. 또한 공납제의 폐단을 개혁하기 위해 경기지역에 대동법을 실시했다. 대북파의 집권에 불만을 품은 서인세력의 반정으로 폐위되었다.
허균을 선정한 이유?
허균은 당시대에 앞서나가던 인물로 ‘광해군’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지만 반역이라는 이유로 사형을 당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여기에 몇 가지 의문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이이첨’이 처음에는 도와주었으나 그가 사형을 당할 때 그를 버렸다는 것, 정말로 광해군은 이를 몰랐을까? 에 대해서 궁금증이 일었다. 그에 소설로써 그 이유를 상상해보고 설명해보고자 한다.
“더 이상 허균을 두고 보시면 안 됩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쏟아지는 말도 안 되는 비난에 광해군은 미간을 모았다. 허균에 대한 모함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기에 더 이상 무어라 할 힘도 없는 그였다.
“분명히 나라에 해가 될 사람입니다.”
“폐하, 폐하께서 계속 허균이라는 사내를 총애하시는 것은 말에 날개를 달아주시는 일이 될 것입니다. 폐단입니다.”
광해군이 전 날과 다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서인들은 자신들의 말이 광해군에게 먹힌다고 오해라도 하는 모양인지 점점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반대로 동인들은 허균의 편을 들지도 못 하고 가만히 자신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었다.
“폐하, 허균은 더 이상 두고 봐서는 아니 되는 자입니다. 분명히 이 나라에 해를 입힐 것이 분명합니다.”
“어허!”
얼굴도 알지 못하는 서인마저 자신이 총애하는 허균을 모함하려들자 광해군의 미간에 가느다란 주름이 잡혔다. 그에게 아무런 효과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 서인들이 왜 포기하지 않고 이리도 달겨드는지 광해군은 모조리 다 쓸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았다.
“과인이 분명히 말했소. 물론 그대들이 왜 허균을 모한을 하는지 그리 말을 하는지 알고는 있습니다. 허나 지금은 온 조선이 불타 버린 후입니다. 어서 빨리 재건을 해야 하는데 힘을 써야지 다른데 신경을 쓸 도리는 없단 말이오. 그러니 제발, 이런 이야기는 하지 마시오.”
서인들은 한 마디 더 하려고 하였으나, 광해군의 강인한 표정을 보고 모두 입을 다물었다. 광해군은 가만히 신하들을 바라보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할 말이 많았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기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폐하. 폐하.”
“아. 교산인가?”
허균을 보자 광해군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머리 아픈 소리에서 벗어나 신하보다 더 가까운 사랑하는 벗을 만나니 저절로 마음이 풀렸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응?”
평소와 다르게 진지한 그의 표정을 보면서 광해군은 적잖이 긴장을 했다. 그의 얼굴에는 늘 미소가 번져있었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늘 여유가 있는 사내였다. 비록 자신보다 나이가 몇 년 위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자신과 동갑내기처럼 보일 만큼 늘 편안함을 유지하려고 하는 사내였다.
“그대 어찌 그리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인가? 그대가 그런 표정을 지으니 내가 두려워지지 않는가?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한 것인가?”
“들어가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래.”
광해군은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는 먼저 발걸음을 옮기고 허균은 가만히 그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그저 서로의 손이 닿았다 떨어졌다 스치기를 반복하면서 가만히 뒤를 따를 뿐이었다.
“어찌 제가 이러시는 겁니까?”
“어찌?”
허균의 당찬 목소리에 이이첨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자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너무 급해서 어쩔 수 없어 이 자를 가까이 했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이 자를 믿을 수는 없었다.
“네가 나의 자리를 너무나도 많이 앗아갔다는 것을! 진정 모르고 그리 말을 하는 것인가?”
“그런 일을 한 적 없습니다. 대감께서 그리 생각을 하셨다면 오해를 하신 겁니다.”
허균은 너무나도 억울했다. 자신이 믿는 것 자신이 따르고자 하는 것에만 노력을 했을 뿐, 제 목숨 구해주었던 사내의 뒤를 치는 비열한 짓은 그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네의 세력이 커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저 동무들일 뿐입니다.”
이이첨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허균의 집에 많은 자들이 기거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들은 후였다. 게다가 계속하여 많은 자들이 그의 집에 들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자신 뿐 아니라 많은 자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집에 그리도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면서 그것이 다른 이유라고 하다니 영악한 자였다.
“객이 늘었다고 하던데, 정말 동무일 뿐인가?”
“다들 재주가 좋아서 사귀는 자들입니다. 제 세를 불리거나 하는데 이용을 하려던 자들이 아닙니다. 한 가지 재주들이 있기에 모두 그저 즐기고 싶어서 함께 있는 자들일 뿐입니다.”
“역모라지?”
“대감!”
허균은 더 이상 참지 못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이 무어라고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것은 수위가 높았다. 물론 이이첨이 자신에게 점점 멀어지려고 하고 있다는 것은 허균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점점 고립되고 있었다.
“어불성설이시고 헛된 고집이십니다.”
“그 분도 그리 생각을 하실까?”
허균의 얼굴이 살짝 굳는 것을 보자 이이첨은 자신의 말이 제대로 들어갔다는 것을 알았다.
“폐하는 걱정이 되는 것인가? 다른 것은 걱정이 되지 않고 폐하는 걱정이 되는 것이야?”
“무슨, 무슨 걱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혀균은 뒤늦게 냉정을 찾으려고 했지만 이자의 머리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깨달았다.
“대감을 도울 겁니다. 저를 몰아내지 않으면 제가 바로 대감을 도울 거란 말입니다.”
“나를? 나를 돕는다.”
이이첨은 차가운 시선으로 허균을 바라봤다. 솔직히 말을 하자면 참 버리기는 아까운 사내였다. 영특했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내였다. 확실히 곁에 있다면 자신에게 득이 될 사람임에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반대로 그러하였기에 자신을 위협하는 사내였다. 분명히 자신을 넘을 사람이었고 곧 그를 넘게 될 수도 있었다. 왕의 총애를 받는 명실공히 최고의 권력이었다.
“절대로 대감의 등에 칼을 꽂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부디 대감도 저를 벼랑 끝에서 밀지 마십시오. 범도 제를 구해준 자는 돕는다 하였습니다.”이이첨은 여기서 쉬이 결정을 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허균을 궁지에 몰려면 조금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했고, 아직까지도 그를 버려야 할지 확신을 하지 못 한 그였다.
“곧 다시 이야기를 하지.”
“알겠습니다.”
급히 떠나는 이이첨을 보면서 허균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제 편이 하나 없는 궐 안에서 그나마 자신의 측근이라 믿었던 사내였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아니었다.
“어찌 해야 하는 것인가?”
의지할 곳 하나 없는 그의 마음에 우연히 한 이름이 떠올랐다. 떠올려서는 아니될 이름이
“허균은 대감의 목을 조를 것이오. 왕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낫다 하였소. 뱀도 오래 묵으면 이무기가 되고, 다시 여의주를 물게 된다면 용이 되는 법이니, 대감은 그의 목을 하루라도 치시는게 유리하실 듯 하오.”
“흐음.”
이이첨은 가만히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바라보았다. 확연히 제 편이기는 하나 멍청했다.
“이 자리를 잃으셔도 좋습니까? 허균의 세는 대감이 생각하시는 것 이상입니다. 저 쪽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상소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를 내리라는 말도 하고 있지만 대감은 그 말들을 듣지 않으십니다. 이미 두 사람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습니다. 이 이상 대감이 세를 늘리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역적으로 그를 몰아 단숨에 몰아쳐서 살아나더라도 다시는 일이 그르치지 않게 두셔야 합니다.”
“역적?”
이이첨의 목소리가 가늘게 흔들리고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를 한 번에 몰아세울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역적이라는 방법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다들 압니다. 지금 모셔야 합니다.”
“왕께서 거절하실 것이야.”
“서인들과 손을 잡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냥 일을 하십시오.”
이이첨이 두려운 눈으로 자신의 심복을 바라봤다. 허균을 처음 봤을 때 그 눈빛이 자신의 심복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주상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행동을 하란 말인가?”
“서인들은 누구 하나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를 악 무십시오.”
서인들과 손을 잡는다. 자신도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나도 위험한 생각이었고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될 수도 있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이 자리를 놓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이 자리에서 내려갈 수 없었다.
“자리를 주선하게.”
“알겠습니다.”
이이첨은 결국 이 일이 자신의 발목도 잡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잡히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그들은 재물을 요구할 것이고 자신은 자신 대신 허균을 내놓으면 될 일이었다.
“오늘 내로 마련을 하게.”
“예?”
심복은 놀란 눈을 하더니 곧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한성에 오랜만에 피바람이 부는 날이 될 성 싶었다.
“그래 할 이야기가 무엇인가?”
허균의 눈은 깊고도 아름다웠다. 그런 깊은 눈이 자신을 바라보자 광해군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으나 중심을 잡고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이리 나를 찾아온 것인가?”
“저를 죽이십시오.”
비장한 허균의 어조에 광해군은 그의 눈이 아닌 그의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아끼던 사내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많이 단단했다. 그러나 지금 그가 하고 있는 말은 그로써도 이해를 할 수 없는 말이었다.
“무슨 말인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서인들이 저를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빌미로 폐하를 욕보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앞장서셔서 저를 죽이셔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그래야지만 페하의 입지가 서고 폐하께서 목소리를 높이실 수 있습니다.”
“그만!”
광해군은 사나운 음성으로 그의 목소리를 눌렀다. 허균에게까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노력을 해서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다.
“도성에 범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한 번 들으면 전혀 믿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이가 다시 이야기를 해주면 살짝 귀가 동하게 된다. 그리고 세 번 들으면 그 말을 믿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대가 위험하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믿은 적이 없다. 그대를 믿고 있기에 그대를 살릴 것이다. 그러니 제발 그런 말을 하지 마라. 내가 너를 살릴 수 있는데 어찌 그리 자꾸만 그대의 목숨을 내놓으려 하는 것인가?”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
허균은 비장한 눈으로 광해군을 바라봤다. 제 목숨 하나 구하자고 여럿을 죽일 수는 없었다. 자신이 일단 사라진다면 서인들의 날뜀이 어느 정도 줄 것이 분명했다.
“그대가 살려달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내가 반드시 그대를 살릴 것이다. 그대가 원하기만 한다면 과인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대를 살릴 것이야!”
광해군은 슬픈 눈으로 허균을 바라보며 외치는 어조로 말했다. 가장 아꼈던 사내를 이대로 보내는 것은 그로써도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비록 그의 힘이 많이 약해진다고 한들 그러한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허균이라는 사내만 살릴 수 있다면 그는 무슨 일이라도 할 자신이 있었다. 그의 목숨은 자신의 힘보다 중요했다.
“폐하, 이미 저는 한 번 살아난 목숨입니다. 이이첨 대감의 도움으로 살아난 이후 이미 제 목숨이 아닌 것을 살고 있는데 어찌 다시 한 번 제가 욕심을 낼 수 있단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도 공연히 저를 가지고 위험한 줄 위에 오르실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저를 지금 죽이는 것이 오직 폐하를 위한 일입니다.”
“그럴 수 없으니, 내가 그럴 수가 없으니 이러는 것 아닌가?”
광해군의 목소리도 어느새 많이 젖어있었다. 그런 왕을 보면서 허균도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알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저를 죽이셔야 폐하가 살고 나라가 삽니다. 지금 이 나라의 모습을 보면서 폐하도 많이 마음이 아프시지 않습니까? 저는 동생도 잃고 처도 잃고 오직 폐하만 바라보고 살 뿐입니다. 폐하마저 저보다 먼저 떠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를 폐하를 위해 이용을 해주십시오.”
“그대가 없는 세상에 단 하루도 산 적이 없다. 과인은 교산, 아니 허균이라는 사내가, 지금 내 앞에 있는 내가 이 세상의 그 어떤 존재보다 소중히 생각을 하는 사내보다 하루라도 더 긴 생을 산 적이 없단 말이다. 그런데 나보고 그대보다 오래 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어찌 그러는 것인가?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인가?”
“다들 저를 죽이려고 일을 꾸미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저를 죽이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군가가 반드시 저를 죽일 것입니다.”
“막을 것이야!”
광해군은 고함을 질렀다. 그의 얼굴은 붉어졌고 눈에는 핏발이 섰다. 그러나 무섭다기 보다, 강해보인다기 보다 안쓰러웠고 안아주고 싶었다.
“폐하.”
그리고 허균은 자신도 모르게 광해군을 안았다. 국법이 지엄하여 그럴 수 없을 진대 자신도 모르게 따스히 그를 안고 말았다. 유일하게 자신이 의지를 할 곳이었기에 그를 안았다.
“대감께서 어찌 이곳까지 찾아오신 겁니까?”
“허균을 몰아내주시오. 역적으로 몰아내주시오.”
이이첨의 말에 서인들의 무리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를 의심하려고 들었지만 그의 표정은 너무나도 진실되었다.
“그대의 세력이지 않습니까? 동인인데 지금 그를 죽이라는 말입니까?”
“그렇소.”
이이첨은 단호히 대답했다. 그 누구의 동의도 얻지 못했다. 그러니 몰아야만 했다.
“그의 집에 무리가 있소. 역적으로 몰아주시오.”
“하.”
서인들의 사이에서 웃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딘가 유쾌하면서도 비릿함이 가득한 웃음이었다. 그들의 눈은 도깨비불처럼 희번덕거리기 시작했다.
“죄인 허균은 오라를 받아라!”
집에 막 들어선 허균은 뒤를 돌아보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지금 이것들이 무슨 짓인가!”
“무슨 짓?”
이이첨이었다. 자신이 믿던 사내였으나 결국 이리도 빠르게 자신의 목을 치려들었다.
“그대가 지금 역적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대의 목을 쳐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역적?”
허균의 뒤에도 허균의 집에서 기거하던 사내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양 측은 서로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긴장된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이이첨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인들의 무리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에 맞서 허균의 동료들도 움직이려 하자 허균은 그들을 막아섰다.
“내가 가겠소. 그러니 이들에게는 아무런 짓도 하지 마시오.”
“교산!”
냄새를 잘 맡아 허균의 곁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산 후치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허균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내 발로 가겠소.”
“그래, 그럼 어서 앞장을 서지.”
이이첨은 도대체 허균이 왜 이렇게 행동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기에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죄인이 스스로 움직이겠다는데 무어라 할 이유는 없었기에.
“폐하! 폐하!”
가만히 달 구경을 하던 광해군이 고개를 돌렸다. 호위무사들이 막아선 사내는 어딘가 낯이 익은 사내였다. 허균의 곁에서 그를 참 많이 도와주던 사내였다. 마음을 표했어야 했는데 그 동안 아무런 것도 이야기 하지 못 하였다. 그런데 그 자가 예까지 무슨 일일까?
“어이하여 늦은 시간에 궐에 온 것인가?”
“허균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무, 무어라?”
광해군의 눈이 흔들렸다. 그토록 자신이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였는데 결국 그들이 일을 저지르고 만다는 것인가?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광화문 앞에서 허균을 산채로 찢어죽이겠다 다들 모여있습니다.”
“앞장 서지!”
광해군이 발걸음을 옮기자 궐안의 바람도 그를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죄인 허균은 역모를 인정하는가?”
“인정하지 않습니다.”
허균은 바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서 정신을 흐트린다면 바로 저 아귀들의 먹이가 될 것임에 분명했다. 여기서 버텨야했다.
“제가 역적을 저질렀다면 제 집에서 반항을 할 일이지 예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따라왔겠습니까?”
“때를 놓친 것이지.”
이이첨의 말에 허균은 당황했다. 동인이 동인이 공격을 할 것이라고는 알았지만 이이첨이 이 상황에서까지 이리도 앞장서서 자신의 목에 칼을 꽂으려고 할 줄은 몰랐다.
“대감께서는 많은 것을 알고 계신 모양입니다.”
“무, 무어라?”
허균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이첨을 함께 물고 늘어야 함을 깨달았다. 그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이이첨의 낯을 살폈다.
“모두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이첨 대감과 저는 같은 편입니다. 같은 파란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역모를 한다는 것을 대감께서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당장 저 놈을 찢어 죽여라!”
이이첨은 당황한 나머지 흥분을 하고 말았다. 허균은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자신에게 유리한 패가 돌아올 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상 전화 납시오!”
순간 허균의 고개가 돌아갔다. 광해군이 오고 있다는 소리였다. 모두들 바닥에 엎드리고 주상이 나타났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광해군의 얼굴은 아파보였지만 결심이 선 것이 분명했다. 허균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지금 이것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역적 죄인을 심문하는 중입니다.”
“역적?”
왕은 훌륭한 연극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아서는 이이첨을 불러 허균을 직접 취조하라 명을 내렸다. 이이첨은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다르지만 허균의 곁으로 다가섰다.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인가?”
“한 번 목숨을 구하면 저는 대감을 구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제가 이번에는 구하겠습니다.”
“무어라?”
허균은 빙긋 미소를 짓더니 목청을 높였다.
“폭군은 들어라! 온 나라가 피폐한데 궐 공사를 하고 어머니를 폐하며 동생을 죽인 폐륜아는 당장 목숨을 내놓아라!”
광해군은 그의 외침을 들으면서 그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부던히도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렸지만 더 이상 그의 외침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광해군은 눈물이 흐르려고 하는 것을 느끼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들 마음대로 하여라.”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린 광해군의 눈과 허균의 눈은 부딪혔다. 함께하지 못 한 마지막 하늘을 지켜보지 못한 한 사내의 눈이 광해군에게 힘을 주고 있었다. 광해군은 거기서 시선을 돌리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이첨도 무어라 하기 전, 서인들이 고용한 자에 의해서 허균은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가 묶였다. 허균은 잇새로 신음 한 번 흘리지 않고 가만 웃었다.
소설을 마치며.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이기에 소설로 자유로이 담을 수 있었다. 동성애적인 코드를 어렴풋이 담기는 하였으나 광해군이 허균을 생각을 하는 마음과 허균이 광해군을 생각을 하는 마음은 다르게 표현을 하고자 했다.
역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용인될 수도 없는 설정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두 가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머리에서 떠올린 생각이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여러 자료를 찾아보니 이이첨이 마지막 서명을 하지 않았다는 자료도 찾을 수 있었다. 결국 그 역시 고민을 하였던 것이라 생각이 되고 죽음은 허균 스스로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내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행동을 하였다 생각을 하기에 이러한 모습의 소설을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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