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단편 소설

기차 0, 출발하기 전

권정선재 2010. 10. 4. 10:38

 

기차 0, 출발하기 전

 

 

(그리 부산하지 않은 기차 역사, 두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살짝 노려보고 있다. 당황하고 있는 남자와 다르게 손에 꽃다발을 들고 있는 여자 쪽은 여유로우면서도 살짝 상기된 표정이다.)

여자 :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야?

남자 : 뭐긴? 너에게 꽃을 주고 싶어서 꽃을 주는 거지. 좋아하는 사람에게 꽃을 주는 건데 다른 의미가 뭐가 있겠어?

여자 : 노란 색이잖아!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 노랑 장미를 줄 수가 있는 거냐고! 지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남자 : 노란 장미가 뭐가 어때서? 나는 아무런 의미 없이 꽃가게에 가서 가장 예쁜 장미를 들고 왔을 뿐이라고, 다른 의미나 의도는 전혀 없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괜히 나쁘게 받아들이지 마.

여자 : 어떻게 나쁘게 안 받아들여? 너도 노란색 장미의 의미가 뭔지 모르고 줬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 아니야?

남자 : 알기야 알지만.

여자 : 그런데? 그런데도 노란 장미를 주었단 말이야? 그 말은 나에게 헤어지자는 의미 말고 다른 의미가 있니?

남자 : 우리 두 사람 사이라면 그런 거 전혀 상관이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 네가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어. 우리 오늘 같이 놀러가기로 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싸우면 어쩌자는 거야?

여자 : 그러게.

남자 : 내가 나중에 다시 예쁜 꽃을 사줄게. ? 그러니까 일단 지금은 화를 풀어라. 기분 좋게 가야 하는 거잖아.

여자 : (가만히 남자를 위 아래로 살핀다. 그러더니 자신의 손에 들린 노란 장미를 보고 다시 입매무새를 꽉 다문다.)

남자 : (여자의 눈치를 살피며) 정말 이럴 거야? 내가 잘못했다고 그러잖아. ? 제발 그러지 마라.

여자 : 내가 뭘 어떻게 했는데?

남자 : 자꾸만 이렇게 화를 내잖아. (울상을 지으며 두 손을 모은다.) 오늘 우리 놀러가기로 진짜 오래 전부터 계획을 세운 거잖아. 이제 와서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하자는 건데? ?

여자 : 그러니까 지금 내가 나쁘다.

남자 : ,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여자 : 아니긴! 지금 네가 하는 말을 들으니까, 다 내가 잘못을 한 거라.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너는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고 할 거니? 너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남자 : 너 도대체 왜 이래? 우리 오늘 좋은 날이야. 서로 진 빠지게 할 필요는 전혀 없는 거잖아.

여자 : (크게 한숨을 내쉬며) 나 오늘 너랑 놀러갈 기분 아니야. 기분이 너무 나빠서 뭘 해야 할 지도 모르겠어.

남자 : 제발 그러지 마라.

여자 : 싫어. 안 가. (가방을 다시 어깨에 단단히 맨다.) 놀러 가려면 너 혼자 가던지 마음대로 하고 절대로 나 끌어들이지는 마. 나 너랑 같이 어디 갈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말이야.

남자 : !

여자 : (남자를 뒤에 두고 바쁘게 발걸음을 옮긴다.)

남자 : (잠시 가는 여자를 바라보다가 재빨리 여자를 쫓아가서 그녀의 팔을 붙잡는다.)

여자 : 이거 놔.

남자 : 내가 오늘 다 네 말 들을 테니까, 이러지 말자. ? 여기까지 와서 기분 망칠 거 뭐가 있어? 그냥 기분 좋게 하자. 내가 다 잘못했고, 다음부터는 생각하고 선물 가지고 올게.

여자 : 이미 늦었어. (거칠게 남자의 손을 뿌리친다.) . 안 놔?

남자 : (더 세게 옷을 잡으며) 못 놔.

여자 : 그래? (씩 웃더니) 사람 살려! 여기 이 남자가 사람 때리려고 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남자 : (당황해서 여자의 입을 막으며) 너 왜 이래?

여자 : (그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 살려주세요.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자 남자가 손을 떼고 가만히 여자를 노려본다.)

남자 : 너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지? 너 나중에 내가 붙잡아주기를 바랐네, 뭐네 해도 소용 없어.

여자 : 그래. 알아. (성큼성큼 걸어가서 기차표 자동화 기기에서 천안행 가장 빠른 기차표를 끊는다.)

남자 : (그런 여자의 옆으로 와서 같이 기계를 들여다보며) , 자리도 없다고 하는데 너 굳이 그렇게 굴 거야?

여자 : (표를 받으며) .

남자 : 모르겠다. 네 마음대로 해라.

여자 :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성큼성큼 기차를 타는 곳으로 내려간다.)

남자 : (그런 여자의 뒤를 재빨리 쫓는다. 그러다가 중간지점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놀란 눈으로 기차를 바라본다.) ! 너 어디 가!

여자 :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기차에 올라 탄다.)

남자 : (놀란 눈으로 가만히 기차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모습은 이미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 저 기차 뭐야?

(그 어디에도 없는 새까만 색의 기차가 플랫폼에 정차해 있고, 그 열차에 타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정말 스산한 기운을 내뿜는 이상한 사람들

이 그녀가 올라탄 곳의 옆 칸으로 꾸역꾸역 올라가고 있다.)

남자 : , 안 돼! (재빨리 기차로 뛰어간다.) 내려! 내리라고!

(하지만 남자가 채 기차에 몸을 대기도 전에 기차가 먼저 출발을 하기 시작한다. 남자는 불

길한 기분이 들어서 휴대전화의 버튼을 거칠게 누른 후 귀에 가져간다. 그러더니 곧 그 휴

대번화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밟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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