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2, 연인의 다툼
그러니까 이 사람하고만 있으면 자꾸만 머리가 아프다 이 말입니다. 아니 사람의 말을 어떻게 이렇게 곡해를 할 수가 있나요? 나는 그저 좋은 마음으로 그녀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한 것인데 그 사람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니 네가 어디 성형을 하면 괜찮냐고 물었잖아?”
“그래, 그랬지.”
“그래서 대답을 한 것뿐이잖아.”
너무나도 억울했습니다. 아까는 기차에 자리가 없어 입석이라고 짜증을 내고, 또 방금 전에는 왜 지하철을 타지 않았냐? 따지기도 하고, 게다가 열차카페에 오징어는 왜 이리 질기냐? 구운 계란은 왜 냄새가 나느냐? 철권 같은 게임을 누가 하느냐? 그렇게 쏘아붙여서 바나나우유에 사이다와 호두과자까지 사주었는데도 그녀의 기분은 계속 저기압이었습니다.
지금은 또 왜 화를 내고 있냐고요? 아니 본인이 본인 입으로 본인이 어디 성형을 하면 괜찮을 것 같냐고 묻는 겁니다. 그래서 미련하게 대답을 했냐고요? 아닙니다. 물론 처음에는 너는 너무나도 완벽해서 절대로 고칠 곳이 없다. 그렇게 대답을 했죠. 그런데 또 묻는 겁니다. 자기가 이런 일에 화를 낼 여자 같이 보이느냐? 절대로 아니니까 솔직히 말을 해봐라.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죠. 사실 이 사람 눈이 살짝 부족하거든요. 쌍커플도 없는데다가 너무나도 작은 눈이라서 그 동안 아쉽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눈을 조금 다듬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을 했더니 여태까지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 겁니다.
“너 대단하다. 여태까지 이렇게 못 생긴 여자 좋아해서. 우리 외할아버지는 나랑 쏙 닮은 외할머니랑 잘 살았어.”
“누가 뭐래?”
영등포역을 출발하고부터 연결부분에서 계속 다투고 있었으니, 아마도 많은 분들이 혀를 차면서 지나가셨을 겁니다. 방금 지나간 그 여자분도 그렇겠지요. 저 싸우는 커플이 너무나도 한심하다고 하면서 지나가셨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너는 창피하지도 않아?”
“뭐? 창피?”
그녀가 눈을 뒤집습니다.
“너는 지금 내가 창피하니? 네 여자친구라고 네 옆에 있는 내가 창피해? 그래서 부끄러워?”
“그런 말이 아니잖아.”
오늘 분명히 그 날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신경질을 내는 것일까요? 정말로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지금 신호 대기 관계로 열차가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이거 봐! 이거 보라고!”
안내 방송이 나오기가 무섭게 그녀가 펄쩍펄쩍 뛰면서까지 나에게 덤벼들고 있습니다. 잠시 그녀의 노랑 브라에 시선을 빼앗겼던 저는 다시 그녀를 바라봤습니다.
“이거 뭐?”
“안내방송.”
“안내 방송이 왜?”
“딜레이 된다고 하잖아. 전철을 탔으면 딜레이 같은 거 되지도 않을 텐데 왜 기차를 타자고 해서 이 고생이야.”
어이가 없습니다. 전철이 기차보다 한참이나 느린 걸요.
“기차가 더 느리잖아. 아니 빠르잖아.”
“불편하잖아!”
“아우 뭐가 불편하냐?”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연못, 아니 늪에 푹 빠지는 느낌입니다.
“이러지 말자. 응? 우리 오늘 좋은 날이잖아. 우리 오늘 기념일인데 오늘까지 이렇게 싸우는 거야?”
“네가 싸우게 만들잖아.”
그녀는 속상한 듯 저를 노려봅니다. 아니 도대체 제가 뭘 그렇게 잘못을 했다고 저에게 이러는 걸까요?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이런 일이 생기면 남자가 무조건 접고 들어가야 합니다.
“내가 무조건 다 잘못했어. 응? 그러니까 제발 화 좀 풀어라. 자꾸 그렇게 화를 낸다고 바뀔 것도 없잖아.”
“정말 너 때문에 속상해.”
“알아. 다 알아.”
내가 더 속상하다는 것을 그녀는 모르는 것일까요?
“카페 가서 뭐 좀 더 사올까?”
“너는 내가 돼지로 보이냐! 자꾸 그렇게 뭘 먹이려고만 그러게.”
아니 평소에 제가 챙겨주지 않을 때는 정말로 돼지처럼 보이게 열심히 먹어대는 그녀이면서 또 이런 순간에는 이렇게 화를 내고 있습니다.
“아니 네가 돼지라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말라서.”
“웃기시네.”
거의 화가 풀린 줄 알았는데 다시 진행이 되는 모양입니다. 도대체 이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요?
“또 화가 나는 거야?”
“어머 내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래? 너 자꾸 나 이상한 사람 만드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아니야.”
“누가 너 이상하대?”
그럼 네가 이상하지? 안 이상하냐? 금방이라도 이렇게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리고 이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지 말고 화 풀어. 천안 우리집에 놀러 가기로 해놓고 그렇게 자꾸 화를 내면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어머 너는 그런 것까지 다 걱정을 하니?”
새치름한 그녀의 말투에 또 당혹스러웠습니다. 아니 내가 또 무슨 잘못을 한 것인가요? 도대체 왜 또 이렇게 불만스럽게 말을 하는 것이죠?
“내가 그렇게 매일 사고만치는 사람으로 보이나보지?”
“아, 아니.”
재빨리 손을 흔들었지만 이미 늦은 모양입니다.
“나 다시 집으로 돌아갈래.”
“뭐?”
당혹스러웠습니다. 이미 집에 그녀와 인사를 가겠다고 다 이야기를 해두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나오다니요?
“인사 드리러 가기로 했잖아.”
“아프다고 해.”
“어떻게 그래?”
우는 소리도 해보았지만 그녀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단단히 삐친 모양입니다. 도대체 무엇에 삐친 것인지 모르기에 더더욱 답답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습니다.
“왜 서운한 건지 말을 해 봐. 응? 내가 고칠게.”
“아니야.”
그녀는 쌀쌀맞은 어조로 대꾸했습니다.
“내가 말을 한다고 해서 네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나 그렇게 남자 이리저리 바꾸려는 여자도 아니고 말이야. 괜히 그런 이상한 여자 취급을 받는 것도 싫고 그러니까 그냥 네가 알아서 하라고.”
아마도 한참은 갈 모양입니다.
“일단 우리 어디에 앉자.”
“자리도 없는데 어디에 앉아!”
짜증스러운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 저도 모르게 같이 짜증을 내려고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저까지 짜증을 부린다면 이별을 하자는 말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겁니다.
“열차카페 있잖아.”
“빈자리 없는 거 아까 봤잖아.”
“아.”
오늘따라 기차에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인지? 아까 열차카페에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보아하니 지금 이렇게 유리창을 통해서 살펴도 빈자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인터넷 PC 자리에 인터넷이라도 한다고 비키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미 모두가 인터넷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 객실로 가볼까?”
“쪽팔리게. 거길 왜 들어가?”
“그래도.”
살짝 애교를 부리면서 말을 하자, 그녀의 얼굴이 샐죽하니 변하더니 살며시 미소까지 짓습니다. 딱 보니 이렇게 시끄러운 곳 말고 조용한 곳에 가자는 의미였군요. 그걸 여태까지 모르다니 저도 참 바보입니다.
“자리 없으면 내가 억지로라도 만들어줄게.”
“거짓말.”
“진짜라니까.”
호기스럽게 말을 하면서 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습니다. 있는 힘을 다 써서, 문을 여는데 문이 열리고 무언가 툭하고 뒤로 넘어집니다. 아까 우리를 보고 지나간 여자인데, 왜 이렇게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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