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3, 또 다른 시간
“그러니까 지금 가는 기차를 타면 무조건 죽는다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한 아가씨와 한 할머니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지금 가는 열차를 타지 않으면 제 시간에 도착을 하지 못 한다고요. 그래도 할머니가 책임을 지실 거예요?”
“그럼!”
할머니의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에 아가씨는 살짝 당황했다.
“어, 어떻게 책임을 지실 건데요?”
“확실한 건 아가씨가 그 기차를 타지 않아야, 앞으로의 삶도 있다는 거야. 그 기차를 타게 되면 모든 것이 끝이 난다고.”
“어째서 그렇다는 건데요?”
너무나도 낯선 노파임에 분명했지만,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는데 무조건 외면을 하기도 살짝 걱정스러운 그녀였다.
“무슨 사고라도 난데요?”
“그 열차는 원래 존재해서는 안 되는 열차야. 원래 이 시간에 그 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열차라고.”
너무나도 의미심장하게 이야기를 해서 무언가 특별한 것이라도 있는 줄 알았던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할머니, 여기 이렇게 표도 있잖아요.”
“네 눈에는 그게 표로 보이냐?”
“네?”
“이걸 어쩌냐?”
할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아가씨를 빤히 바라봤다.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결국에는 후회를 할 거야. 그곳에서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정말 한 열차에 하나, 둘. 잘 해야 셋이 겨우 살아날 수 밖에 없다고.”
“이 기차를 타도 새벽 두 시가 넘는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을 한다고요. 이거 놓치면 세 시나 되어야 도착한단 말이에요.”
“늦춰!”
할머니는 고함을 지르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가면 분명히 죽어. 너 분명히 죽는 법이니까, 그 열차 절대로 타면 안 되는 거라고! 이 멍청한 것아.”
“이 할머니 뭐야?”
아가씨는 차가운 눈으로 할머니를 노려봤다.
“미친 할머니 아니야?”
“미쳐?”
“그래요.”
아가씨가 큰 소리로 할머니의 말을 받아쳤다.
“아니 길을 가는 멀쩡한 사람을 붙잡으면, 그거야 말로 미친 할머니지, 뭐 다른 미친 할머니가 있어요?”
“은인을 몰라보네.”
“은인은 무슨.”
아가씨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할머니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허름한 그녀의 옷차림에 아가씨는 조소를 머금었다.
“보아하니 노숙자죠?”
“뭐야!”
“이런 식으로 구걸을 하면 사람들이 돈 좀 집어주나 봐요? 좋아요. 나도 할머니 이야기 재미있었으니까 돈을 주죠.”
아가씨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하나 꺼내서 할머니에게 건넸다. 그리고 지갑을 닫으며 도도한 눈빛으로.
“오늘 그 정도면 충분한 수익이 되었다고 보는데요. 공연히 다른 사람들은 괴롭히지 않았으면 해요.”
“누가 돈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
할머니는 소리를 빽 지르면서 아가씨를 노려보았다.
“정말로 아가씨에게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 생길 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그 열차에 타지 말라고 하는 거잖아!”
“이유를 말을 해야죠.”
아가씨는 차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할머니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조건 기차를 타지 말라고 하면 도대체 누가 그 말을 듣는다는 거죠? 제대로 이야기를 해봐요.”
“죽는 열차야.”
너무나도 음침한 할머니의 목소리에 아가씨는 살짝 주춤했다.
“주, 죽음의 열차요?”
“그래.”
할머니는 깊은 눈으로 아가씨를 살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나를 만난 것을 보면 꼭 죽을 팔자는 아닌 것이 분명해. 그러니까 그 열차는 피해야 해.”
“그런 무서운 말이 어디에 있어요?”
아가씨는 여전히 믿지 않는 표정을 지으면서 할머니를 바라봤다.
“그런 열차가 있다면, 여기 코레일에서 가만히 두고 있겠어요? 플랫폼에도 들어오지 못 하게 하죠.”
“그 열차와 관련이 된 사람들이 아니면 몰라.”
할머니의 목소리는 음침하게 펼쳐졌다.
“지금 출발하는 그 열차를 타고 죽을 사람이나, 혹시나 그 열차를 타고도 살아난 사람이 전부이지.”
“살아난 사람이 있다면 알려져야 하는 거잖아요.”
아가씨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런데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요?”
“살아남은 사람 중에 정상으로 살아 남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 같아?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이 사라지는데 다른 사람들은 관심도 갖지 않는 거예요? 사람이 죽는데 시체도 안 생긴다고요?”
“내가 말을 잘못했군.”
할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죽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이여.”
“사, 사라진다고요?”
아가씨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사라진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죠?”
“차가운 기운이 온 몸을 휘감고 지나가게 되면 더 이상 그 존재는 산 자의 숨을 가지지 못 하게 되지.”
“됐어요.”
아가씨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떨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요.”
“사람을 좀 믿는 건 어때?”
“믿을 수 있는 일이어야 믿지요. 기차가 뭐 대단한 공간이라고 사람이 죽었는데 아무런 소리가 안 난다는 거예요.”
“죽는 것이 아니라니까.”
할머니는 답답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곳은 죽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곳이라고.”
“아무튼요.”
아가씨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할머니랑 지금 말싸움 하느라 기차 탑승 시간 다 된 거 알아요? 이러다가 기차 놓칠 수도 있단 말이에요.”
“타면 안 되는 거라고.”
할머니는 다시 한 번 간절히 대꾸했다.
“그러다가 죽고 후회하면 늦어!”
“이 할머니 뭐야? 재수 없게.”
아가씨는 단단히 가방을 고쳐맸다. 더 이상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는 행동이 당차 보였다.
“자꾸 이러시면 역무원을 부를 거예요.”
“후회할 거야.”
할머니는 다시 한 번 간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의 표정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지만 아가씨에게 그러한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거 안 해요.”
아가씨는 새침하게 쏘아붙이고는 탑승장을 향해 걸어갔다.
“저런.”
할머니는 그런 아가씨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 운명도 모르는 멍청한 것.”
할머니는 시선을 돌린 채 또 다른 사람들을 찾아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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