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단편 소설

시선

권정선재 2011. 1. 12. 07:00

시선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아니, 사람들은 이미 커다란 무리를 지은 채 둥그렇게 모여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은 살짝 머뭇거렸다. 이미 예약을 해놓은 장소에 시간이 늦어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궁금했다. 도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있기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일까? 내가 머뭇거리자, 그녀의 애인이 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보고가지.

?

저거.

싫어.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아까부터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름대로 많은 것을 준비했는데, 이상한 데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서 가자.

그래도 궁금해.

그녀의 애인까지 그리 말을 하자, 결국 그녀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녀 역시 궁금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우리 세 사람은 조심스럽게 사람들을 뚫고 들어갔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거야? 사람이 누워있대. 죽은 거야? 죽은 건가? 사람이 죽어 있다나봐. 어머, 그런데 왜 다들 신고를 안 하고 있는 거야?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 아닐까? 그러게. 요즘 죽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잖아. 그래도 신고는 해야 할 거 아니야. 아서, 괜히 나섰다가 일만 복잡해지고 머리만 아프고 말 테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너는 모르니? 그런 거 신고하면 괜히 경찰서도 왔다 갔다 해야 하고 안 좋아. 머리만 복잡하다니까, 애초에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이 좋다니까? 그래도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신경을 쓰지 않기가 좀 그렇잖아. 좀 그렇기는, 그렇게 오지랖이 넓으면 오히려 너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지도 몰라. 그러니까 괜히 신경 쓰지 말고, 가자. 맞아 2차 가야지. 가자. 괜히 기분이 좋지 않은데. 기분이 좋지 않을 게 뭐가 있냐? 저 사람이랑 우리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고. 상관이 없는 건 아니잖아. 우리가 저 사람을 발견을 한 거니까 말이야. 우리만 발견한 것이 아니잖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모여 있는데 굳이 우리가 나설 필요가 뭐가 있겠느냐는 말이야. 공연히 나섰다가 일만 그르치지 말고 아무 것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니까? 괜히 너만 복잡해지고 그래. 맞아. 아서, 괜히 나섰다가 꼴만 우스워지면 어쩌려고. 그냥 가야 하는 걸까? 그냥 가야 하는 걸까? 가 아니라. 그냥 가야 하는 거라고. 얘가 진짜 속없는 소리를 해요. 오빠 미안해. 얘가 워낙 착한 애라서 그런 거니까 오빠가 이해를 해라. 사람이 착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될 거 있냐? 그래도 가지. 이런 곳 있어서 좋을 건 하나도 없으니까 말이야. 그래, 알았어. 그런 표정을 짓지 마. 마치 억지로 끌려가는 동물 같은 표정을 지으면 우리가 나쁜 사람 같다고. 너보고 나쁜 사람이라는 말 단 한 번도 한 적 없어. 맞아. 당신이 지금은 과민 반응을 보이는 거야. 내가 과민 반응을 보이는 거라고? 이건 인정을 해야해. 정말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좋아. . 지금 가도 이미 늦은 시간이란 말이야.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알았어. 어서 가자. ? 나도 가고 싶어. 그런데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단 말이야.

 

하지만 나는 거기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해싿. 마치 무언가가 단단히 나를 붙잡고라도 있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전혀 움직일 수가 잆었다. 그래, 발에서 뿌리가 나와서 단단히 대지를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런 것 보다는 단단한 뿌리가 나의 발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냥 내 발이 쩍하니 붙어서 움직일 수가 없는 그러한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너 뭐하는 거니? 어서 가야 하는 거라고, 빨리 움직이지 않을 거야?

움직일 수가 없어. 너에게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여지지가 않아.

우스운 말 하지 마. 여기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말이나 되니? 어서 가자. 여기 이상해.

그녀는 미간을 모으며 나를 노려봤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나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사랑하는 애인이 그녀보다, 먼저 나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녀는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나처럼 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너무나도 잔인한 상처를 주었다.

정말로 못 움직이는 것 같은데? 조금이라도 움직여봐. 도와줄게.

도와주기는. 오빠 얘 지금 쇼하는 거야. 우리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미안한데, 쇼가 아니야. 정말로 내 몸을 내가 조작할 수가 없다고. 그냥 굳었어.

나의 목소리는 나도 모르게 떨리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두려웠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슨 일인지 전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지금 마치 꿈에, 아니 마법에라도 걸린 사람인 것처럼 온 몸이 꽁꽁 묶여 있었다. 나는 거미의 신선한 먹이가 되어 있었다.

잠깐만, 누군가가 나를 잡고 있어. 그래, 저 사람이 잡고 있는 것 같아.

? 누가 잡고 있다는 거야? 저기 저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너를 잡고 있다고?

그녀는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도 죽은 사람이 보인다고 말을 하는 나 때문에 그녀는 긴장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저 사람이, 누가 보더라도 분명히 죽은 것 같은 사람이 잡고 있다고 말을 하니 두려울 터였다.

분명해. 이 사람이 잡고 있는 거야. 이봐요. 일어나 봐요. 어서, 어서 일어나 보라고요! 왜 나를 붙잡고 있는 거죠? 도대체 왜 나를 붙잡고 있는 거냐고요! 어서 말을 해보라고요!

미친 소리 하지 마! 저 사람은 너에게 아무런 것도 하고 있지 않아. 그저 바닥에 누워 있어.

그녀는 경멸의 시선을 내게로 던졌다.

너는 미쳤어. 거기에 뭐가 있고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지?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어. 너를 붙잡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단 말이야. 절대로 네가 두려워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는데 왜 그러는 거야!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저 더러움이고 추악함뿐이란 말이야!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쏟아졌다. 그리고 바닥에 엎어져서, 마치 죽은 것 같은 사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참을 누워있었는데 이제야 겨우 일어났군요.

그게 무슨 말이죠? 이제야 겨우 일어나다니?

여태까지 잡혀 있었거든요. 이제야 겨우 일어날 때까지.

무엇에 잡혀 있었다는 거죠? 이제야 겨우 일어날 수 있도록 잡은 게 뭐예요?

시선에요. 시선에 잡혀 있었어요. 이제야 겨우 일어날 수 있도록 잡은 건 시선이에요.

시선이라고요? 이제야 겨우 일어날 수 있도록 붙잡던 것이 겨우 시선이라고요?

, 시선이요. 이제야 겨우 일어날 수 있도록 붙잡던 것은 시선이에요.

어떻게 시선에 잡혀 있죠. 겨우 일어날 수 있도록 잡혀있었다고요.

잡혔으니까요. 그러니 겨우 일어날 수 있었던 거죠.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요. 겨우 일어날 수 있다니요?

여기에 있는 거죠. 겨우 일어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런 식의 농담을 좋아하나요?

이런 식의 농담을 사랑합니다.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군요.

별로 말을 통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어서 나를 풀어줘요.

내가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럼 뭐죠?

저 사람들. 저 사람들이 하는 거예요.

저 사람들이라니?

관객들 말이에요.

 

그는 비릿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향해 하얀 이를 드러냈다. 마치 식인 상어의 이빨과도 같이 커다랗고 날카로운 그 치아는, 보름달을 반사시켜 더욱 음흉하고, 흉측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당신을 쳐다보기 때문에 당신은 움직이지 못하는 거예요. 내가 쳐다보고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못 움직였어요. 거짓말이라고.

아니.

그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당신을 쳐다보고 있었어.

이거 뭐야?

그녀는 서서히 울상을 짓고 있었다. 나의 몸만 굳은 것이 아니라, 그녀, 그리고 그녀의 애인까지 몸이 굳어 버렸다. 세 사람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정쩡한 자세로 그 자리에 있을 수 밖에 없었따.

이거 도대체 무슨 짓이냐고?

저 사람 짓이야.

내 짓이 아니라니까.

사내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표정에는 정말로 억울하다는 것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내 짓이라면, 내가 그 자리에서 그러고 있었겠습니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데 가만히 있으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 진정해.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딱히 화를 토해낼 곳이 없자, 그녀는 다시 내게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네가 여기서 꾸물대지만 않았어도 괜찮았잖아! 도대체 왜 여기에 멈춰 있다가 이런 일을 당하는 거야?

진정해.

오빠도 그래. 내가 뭘 어쨌다고, 자꾸 나에게 진정을 하래. 내가 뭘 하기를 했니? 나는 가만히 있었을 뿐이라고!

그래 너 가만히 있었어.

그런데 왜 나에게 화를 내?

아무도 너에게 화를 낸 적 없어.

지금 내잖아.

아니야.

맞잖아.

그만!

사람들이 조금씩 가깝게 우리에게로 모이고 있었다. 아무런 것도 담겨 있지 않은 눈으로, 가만히 우리를 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고 있었다.

지금 우리끼리 싸우고 그럴 때가 아니라고. 저 사람들이 계속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있단 말이야.

자극하지 마세요.

뭐라고요?

자극하지 마시라고요.

사내는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면서 여유롭게 대꾸했다. 그의 모습은 방금 전까지 바닥에 누워있던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모습이었다.

저 사람들은 자극을 하면 더욱 반응을 보일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반응을 보이면 더더욱 벗어날 수 없겠죠.

이게 도대체 뭐야.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 같았다. 거미줄에 걸린 것은 아니었지만, 거미줄과 마찬가지인 사람들의 시선이 거칠게 우리를 옭아매고 있었다.

그럼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가보죠.

이봐요! 해결책은 알려주고 가야 할 거 아니에요.

사내는 재빨리 사람들의 틈을 뚫고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가까이 오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흩어질 생가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빽빽하게, 마치 숲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책임을 지라고. 너만 아니었다면, 너만 아니었다면 괜찮았을 거야.

이게 왜 내 탓이야?

네 탓이지.

그녀는 울먹이면서 사람들을 쳐다봤다. 사람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 사람들은 너무나도 잔혹한 사냥꾼들로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조만간 사냥꾼은 포식자가 되어 우리를 삼킬 터였다.

오빠, 그런데도 쟤가 좋았니?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거야?

억울하잖아.

그녀는 움직일 수만 있었더라면 발이라도 동동 구를 기세였다.

내가, 천하의 내가 겨우 저딴 게이 새끼 때문에 마음 고생을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우습잖아.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그녀의 애인은 잔뜩 미간을 모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네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야. 나는 저 녀석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그저 관심이 간 것 뿐이라고.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질투 같은 거 가지지 마.

좋아.

그녀는 겨우 심호흡을 하면서 화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여전히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었고, 몸은 그대로 굳어 있ᄋᅠᆻ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움직여야지.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요?

나의 눈에 우리 모두의 모습이 이상해져 있었다.

우리 조금 낮아진 것 같지 않아요?

낮아졌다고?

확인을 해 봐.

실제로 우리는 약간 더 땅에 가까이 가 있었다. 마치 우리도 모르는 무엇인가가 우리를 위에서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ᄁᆞ 그 사람도 바닥에 엎드려 있었던 건가?

이거 뭐야? 정말 싫어.

그녀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을 우리를 두고 벌이고 있는 거냐는 말이야. 우리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우리가 잘못한 건 없어.

그녀의 애인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너무나도 차분한 태도에 그녀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빠는 정말 대단해.

내가 뭘?

사람이 감정이 없니?

감정이랑 이게 무슨 상관이야?

이런 상황이라면 응당, 사람이 겁을 내거나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란 말이야. 저거 보라고. 점점 다가오고 있단 말이야.

그녀의 말처럼 실제로 관객들은 우리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그들과 우리의 거리는 이제 5미터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주 천천히 그들은 우리도 모르게 우리에게 다가서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것들은 왜 자꾸 다가오는 거야?

이봐요.

나는 조심스럽게 그들을 향해 말을 걸어봤지만, 그들은 전혀 대꾸가 없었다. 마치 석상 같이 단단히 굳어 있었다.

이봐요!

내가 거칠게 소리를 치자, 모든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쏟아졌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힘이 갑자기 위에서 나를 누르기 시작했다.

너 왜 그래?

갑자기 뭐가 절 누르고 있어요.

애써서 버티려고 해봤지만, 거대한 압력이 나를 누르고 있는 것처럼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압박하고 있ᄋᅠᆻ다.

너 괜찮아?

괜찮아 보여?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자꾸만 더 짓눌리자, 그녀는 입을 가렸다. 이 모든 일이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나에게 원망스럽게 말을 건네던 그녀 역시도, 이렇게 나를 감당할 수 없는 내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오빠 어떻게 좀 해봐요.

나도 노력하고 있어.

그녀의 애인은 열심히 몸을 움직이려고 하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모양이었다. 학교를 다닐 때 운동부였다고 말을 하고, 매주 등산도 하는 그였지만 이것은 그러한 것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

사람들 눈에 초점이 없어.

정말로. 아무런 것도 없네.

텅 비어 있었다. 색 있는 렌즈라도 낀 것처럼 뿌연 눈동자가 흰자의 한 가운데 떡하니 박혀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

저 사람들 우리를 쳐다 보는 것이 맞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

그녀의 애인은 조심스럽게 아랫입술을 물었다.

저 사람들 말이야. 우리가 있는 쪽을 보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말이야. 꼭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그러면요?

그냥?

그냥 이라고요?

그냥 이 쪽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맞아.

맞다니?

사람들을 봐.

사람들이 뭐?

사람들은 특이한 것이 없었다. 그저 아까보다 조금 더 우리에게 다가왔다는 것, 그 정도 점이 눈에 보이는 특별함이었다.

금방이라도 우리를 잡아 먹을 것처럼 굴고 있는데, 도대체 어디를 보라고 말을 하는 거야? 저 사람들이 어떤데?“

우리를 보고 있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환희 같은 것도 담겨 있었다.

저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럼 무엇을 보고 있는 거지?

그냥 이쪽을 보고 있는 것 뿐이야.

이쪽을 본다고요?

, 그냥 이 방향만 주시하고 있는 거야. 정확히 여기에 뭐가 있는 지는 모르고, 그냥 이러로 향한 거야.

그저 이리로 향한 거다.

두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정말로 사람들은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향하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잖아요. 금방이라도 우리를 잡아먹을 것처럼 다가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요?

그러게.

그게 문제네.

미안해.

네가 뭘?

내가 가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거잖아.

아니야. 내가 짜증만 내지 않았더라면, 더욱 빨리 가거나, 아예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두 사람 모두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오빠.

내가 잘못이야. 괜히 걷자고 그랬어. 네 말처럼 그냥 차를 타고 갔으면 편했을 텐데 말이야. 내가 고집을 부린 거야.

제가 머뭇거려서 그래요.

우리끼리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도중에도 사람들은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우리에게 오는 것이 어떤 숙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두들 비상한 표정을 하고는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우리는 왜 못 움직이고요?

사람들이 쳐다봐서 아닐까?

?

그녀의 말에 나와, 그녀의 애인 모두 그녀를 바라봤다. 쳐다봐서 움직이지 못하다니? 그런게 어디에 있는가?

왜 그렇잖아.

뭐가?

사람들이 쳐다보면 몸이 굳는 거.

긴장?

.

우리가 긴장할 것이 뭐가 있어?

모르지.

그녀는 아랫입술을 물며 다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모두 우리를 바라보고 있잖아. 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는 거, 그 사실에 몸이 굳는 거 아닐까.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다.

그녀의 애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몸이 굳었다. 실제로, 그들이 우리를 바라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이럴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쓰러져 있던 사내가 나를 바라보면서 내 몸이 굳었고, 그런 내게 신경질을 내는 그녀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우리에게로 쏟아졌다. 마치 거대한 그물이 우리에게 던져진 기분이었다. 절대로 달아날 수 없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아주 촘촘하고 억센 그물이 우리의 머리 위로 고스란히 던져진 기분이었다. 마치 잔멸치가 된 것 같은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달아나는 방법도 빤하지 않아?

빤하다고?

.

어떻게?

시선을 피하는 거야.

그러니까 어떻게.

좋아.

그녀의 애인은 비장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내가 저들의 이목을 끌 거야.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이론이 맞는 거라면, 너희의 몸은 풀리게 될 거야.

그 다음에는요?

너희 중 한 사람이 다시 소리를 질러서 이목을 끄는 거지. 그런 식으로 점점, 이 사람들에게서 멀어지는 거야.

그게 통할까요?

통하길 바라야지.

하아. 방법이 없네.

점점 숨도 가빠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천천히 우리의 목줄도 죄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주 천천히, 정말 아주 천천히 숨이 조여오는 것이 느껴지는데,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방법이 없네요.

방법이 없지.

그럼 어서 해요.

그녀는 다급히 우리를 다그쳤다. 지금 이 상황이 끔찍하리만큼 싫을 것이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니까.

일단 오빠가 먼저 하시는 거죠?

그래.

그녀의 애인은 비장한 각오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긴장감이 느껴졌다.

잘못되면 어쩌죠?

?

우리 너무 가까이에 있지 않니?

내 말에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변했다.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아무리 오빠가 소리를 친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다시 우리를 볼 거라는 거야?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네 말이 지금 그런 거잖아.

흥분 가라 앉혀.

그녀의 애인은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와는 다르게, 지나칠 정도로 침착한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다소 부끄러운 느낌 역시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우리들이 너무나도 어린 아이처럼 굴고 있는 것과 다르게, 그는 명확하게 어른처럼 행동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방법은 없어. 내가 소리를 질러서, 우리 세 사람에게 모두 시선이 쏟아져서, 저 사람들이 더욱 빠르게 우리에게 접근을 하는 거라면, , 결국 어떻게 해서라도 해결이 생길 거야. 저 사람들이 우리에게 다가서면, 그것대로 끝이라고. 그리고 만약에 내가 하는 이야기가 그대로 성공을 하면 그것도 그대로 좋은 거야. 그냥 그런 거니까 두 사람 그만 싸워. 그리고 우리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저 사람들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멈추는 것은 아니잖아? 사람들은 점점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있어. 우리도 모르는 사이 벌써 이 만큼이나 다가왔단 말이야. 이 자리에서는 만일, 우리가 움직일 수 있다고 해도 달아날 수도 없어. 너무나도 촘촘한 사람들의 그물이 우리를 보고 있으니까 말이야. 우리를 덮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저들을 공격을 해야 하는 거야. 우리는 아주 커다란 물고기가 되어 버리는 거지. 그물에 채 걸리지도 전에, 용감하게 그물을 뚫고 나가야 하는 거야. 그리고 그물을 뚫기 위해서는, 어쩌면 물고기 한두 마리의 희생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건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게 왜 오빠의 희생이어야 한다는 건데? 굳이 오빠가 희생을 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 도대체 오빠가 왜. 왜 우리를 위해서 희생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하는 거야? 오빠가 도대체 뭔데? 오빠가 희생을 할 이유는 전혀, 전혀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오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그런 거 할 생각은 하지 마. 결국 오빠에게 안 좋은 일이 되고 말 테니까 말이야. 우리 모두 다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을 해야 하는 거잖아. 그리고 굳이 누군가가 희생을 해야 한다면, 오빠가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우리가 이렇게 된 이유를 제공을 한 사람이 여기에 있는데, 왜 우리가 대신 그 죄를 뒤집어 써야 하는 거냐고. 나는 용납 할 수 없어. 아니 용납 안 할 거야. 절대로 용납을 하지 않을 거라고.

이 상황에서 그런 걸 따져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어. 저 녀석을 네가 아무리 싫어한다고 하지만, 너도 알고 있잖아? 너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라는 사실을 말이야. 저 녀석이 나를 유혹을 했건, 내가 그 유혹에 응했건, 네가 감히 용서할 수 없는, 세상에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일을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잖아. 우리의 곁에 아무렇지도 않은 연인인 것처럼 그대로 머물러 있잖아. 그런 너를 바라보면서 오히려 내가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 내가 그런 건데. 다 내가 그런 건데, 이런 생각이 우선 들고 있으니까 말이야. 너에게 너무나도 미안해. 하지만 할 수 없어. 너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니까. 이렇게 하겠다. 이런 맹세도 할 수 없고 말이야. 저 녀석과 만났을 때는,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정말로 저 녀석에게 끌렸었고, 단순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정말로 소중한 무엇인가를 찾은 그런 느낌이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네가 이해를 해. 더 이상 저 녀석을 미워하지 말라고. 저 녀석은 그저 자신의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평범한 남자치고 저 녀석의 유혹에 그렇게 쉽게 반응을 하는 사람은 없어. 아니, 오히려 쉽게 반응을 하는 사람이 더욱 이상한 사람일 거야. 그런 취향이 아니고서야, 저런 취향의 녀석이 하는 유혹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법이거든. 그러니까 네가 누군가를 미워해야 한다면, 그건 저 녀석이 아니라, 바로 나여야 한다는 거야.

끔찍해. 너무나도 끔찍해. 지금 저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전혀 움직이지 못 하고, 절대로 달아날 수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는 현실이라는 덫에 그대로 걸린 모양이야. 내가 오빠를 연인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그런 오빠의 애매한 취향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야. 아니, 너무나도 신경을 썼다는 것이 오히려 맞을 거야.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오히려 지금 이 상황에서 피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오빠, 오빠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해.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 그 더럽고 추악한 짓을 모두 다 내가 봤으면서 내가 오빠의 곁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 말이야. 이것만으로도 오빠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어? 그 사람은 분명히 나라는 걸. 그렇다는 걸 오빠는 정말로 모르겠니? 내가 이렇게 오빠의 곁에서 담담하게 서 있는데, 그런 더러운 짓을 한 오빠의 곁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서 있는데 말이야.

그런 소리들 그만해. 꼭 내가 무슨 전염병 환자라도 된 것 같네. 거듭 말을 하지만, 나는 그저 다른 사람들하고 취향이 다른 것뿐이야. 그저 개인의 취향일 뿐이라고. 내가 네가 마시는 커피를 보고 뭐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너 역시 내가 누구와 잠을 자건, 누구와 입술을 맞추건 전혀 신경을 쓸 부분이 아니란 말이야. 너에게 봐달라고 말을 하지 않았어. 너에게 보여주지도 않을 거야. 너라는 사람은 나의 친구라고 말을 하면서, 정작 나에 대한 이해를 전혀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니까 말이야. 너무나도 잔인한, 너무나도 잔혹한.

어떻게 이해를 하니? 그 상황에서 이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우스운 거 아니니? 그 상황에서 이해를 한다는 말이 더 우스운 거 아니니? 가식이고 거짓이야. 가식이 아니고, 거짓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해를 할 수가 있어? 내가 네가 아니고 네가 내가 아닌데 말이야. 우리 두 사람은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결국에는 이해를 받을 수 없는,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사이야. 나는 너를 이해를 할 수 없고, 너는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나를 이해를 할 수 없는 거잖아. 그런데 네가 나에게 뭐라고 할 자격이 있니? 결국에는 똑같은 걸. 네가 누군가를 좋아해서 내가 너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야. 그래서 내가 너에게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야. 말처럼 그건 네 취향이야. 네가 가지고 있는 개인의 취향의 문제라고. 하지만 너는 그것을 마치 불쌍한 것인 것처럼 사용을 하고 있는 것이 문제야. 오빠와 같이, 그 짓을 할 때도, 그 더러운 짓을 할 때도 오빠에게 불쌍한 척, 연약한 동물인 척, 그렇게 행동을 한 거잖아. 내가 그것도 모를 것 같니? 내가 그렇게 바보로만 보이는 거니?

 

, 다들 그만. 여기서 우리가 싸울수록, 알 수 없는 일이 자꾸 다가올 거야.

그녀의 애인의 말에 우리 두 사람은 입을 꼭 다물고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건 없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그럼요? 그냥 이대로 죽자는 거예요?

아니, 죽지 않아. 내가 먼저 할 거야. 그래야 해.

그녀의 애인은 엷게 미소를 지었다.

그게 방법이니까.

오빠, 안 돼.

그녀의 슬픈 표정과 다르게 그는 밝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은 그에게 쏟아졌고, 우리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 순간 우리는 그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우리는 그에게서 달아났고,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서 이순신 동상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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