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원’의 [유예]를 읽고
[유예]는 전쟁 당시의 잔혹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한 사내의 독백과도 같은 어조로 진행이 되고 있는 이 소설은 ‘의식의 흐름’이라는 특별한 구성에 기초하여 서술되고 있습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담담하게 진행이 되고 있는 어조는 독자로 하여금 더욱 효과적으로 주제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마치 연극과도 같은 주인공의 모습은 전쟁이라는 것이 가져온 한 사람의 죽음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차가운 눈에 흘리는 붉은 피는 휴머니즘의 감성 역시 담고 있습니다.
특히나 중간에 누군가가 죽으러 가는 것을 목격하는 시선이, 누군가를 목격하는 시선이 곧 자신에게 닥칠, 죽음의 모습과 겹쳐서 보이는 부분은 신선하면서도 씁쓸한 느낌이 가득 묻어나는 듯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이라는 것을 두렵게 느끼지 않고, 어쩌면 당연하게 자신에게 닥칠 수도 있는 일이라고까지 느끼는 것 같은 주인공의 모습은 초연한 의지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지나칠 정도로 죽어가는 순간을 상세하게 묘사를 하면서, 하나하나 설명을 하는 부분 역시 강하게 다가옵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무섭거나 두렵다는 느낌을 상세한 설명을 함으로 인해서, 그리 낯설지 않은 그저 담담한 하나의 행위로 보여주는 것은 신기한 모습입니다.
그 누구도 악역이 아니라는 점 역시 [유예]를 특별하게 만드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이 부분은 영화 [로빈 후드]와도 닿아 있는 느낌입니다. 분명히 누군가는 살인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돌려서 보면 살인을 하고 있는 사람 역시 피해자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아이러니의 모습이 전쟁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끔찍한 모습과 결국 인간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해서 그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을 죽인 후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불을 쬐러 갈 인민군의 모습을 보노라면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결국 자신의 입장이 주인공의 입장과 똑같이 처하게 된다면 죽음의 앞에서 공포를 느끼거나 초연할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에게 죽음이라는 것을 선사하는 가해자의 자리에 있기에 너무나도 덤덤하고 무신경한 모습을 보이기에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선명한 색의 대비 역시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장점입니다. 새하얀 눈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깨끗하다는 느낌도 있겠지만, 반대로 두려운 느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가에는 사람이 없고 발자국도 남아 있지 않은, 그저 하얀 눈만이 소복이 쌓여있는 공간은 따뜻하게 대지를 덮어주는 이불과도 같은 눈의 모습이 아닌, 사람의 자취 자체를 감추고 있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흘리고 있는 끈적거리는 피 역시도, 눈이 계속 내리게 된다면 시체를 덮고 아무렇지 않은 척 그 흔적을 지우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한 쓸쓸한 모습이 선명한 색의 대비를 통해서 더욱 주제가 극대화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가장 큰 주제는 역시나 전쟁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쓸쓸함입니다. 아무래도 작가가 소설을 쓴 시기가 전쟁이 막 끝난 후라서 그러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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