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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의 [사이코]를 보고

권정선재 2010. 10. 28. 03:44

 

 

인간의 욕망에 대하여

 

- ‘히치콕감독의 [사이코] -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히치콕이라는 사람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영화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사람 중 히치콕감독의 [사이코]라는 영화를 본 사람은 얼마 없을지 모르더라도, 샤워 부스 안에서 살해를 당하는 유명한 장면을 알지 못 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단 한 장면이 이토록 강력하게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영화는 [사이코]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개봉한 지 50년이 다 되어 가는 영화이지만 미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시트콤 등에서 패러디도 하는 등,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못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당시로는 너무나도 파격적인, 그리고 지금 봐도 너무나도 파격적인 살해 장면에 있다. 슬래셔 무비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칼을 이용해서 사람을 여러 번 찌르는 장면은 그 잔인함에 그저 즐거움만으로 영화를 즐길 수 없게 만든다. 지금으로 보면 조잡함을 넘어서 조악한 그 장면은 당시로서는 커다란 충격이었고 너무나도 잔인한 장면이었다.

 

샤워 부스 안에서 살해를 당하는 장면은 70개가 넘는 컷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컷은 빠르게 흘러가거나, 느리게 흘러가거나를 반복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긴장을 느끼게 만든다. 각자의 장면은 최대한 많은 수의 앵글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당시의 영화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또한 여자 배우의 신체의 부위를 하나씩만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마치 이 사람이 토막나 있는 것 같도록 느끼게 만든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관객은 더욱 더 생생하게 살인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당시로는 너무나도 파격적인 죽음인 [사이코]는 이렇게 파격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감독의 배려아닌 배려 역시 살짝 담겨 있다. 이전의 작품도 컬러 영화로 찍었던 히치콕감독은 유독 [사이코]만은 흑백으로 찍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너무나도 잔인할 것을 염려하여서, 잔혹성과 잔인함을 낮추기 위해서 컬러가 아닌 흑백으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강렬한 죽음을 묘사한 히치콕역시 어느 정도 그 죽음의 수위를 낮추는데 고심을 한 흔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히치콕은 이미 죽은 인물이지만 아직까지도 전 세계 영화인들에게 살아있는 거장이다. 그의 영화 [사이코]1999년 리메이크 되었고, 이후 [사이코 2][사이코 3]등의 속편까지 배출하는 등 미국 영화계의 가장 큰 흐름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의 다른 영화 [][현기증], [이창]등 모두 아직까지도 많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관심의 중심에 있다.

히치콕스타일의 영화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로, 그의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들은 그의 스타일과 닮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고, 또한 만들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의 스타일이 남아 있는 영화들은 그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전히 그를 추억할 수 있는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아직까지 히치콕의 영화가 인기를 끌 수 있는 것일까? ‘히치콕감독의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특징이 있다. 관객들은 그의 영화를 보면서 자신이 마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불안함을 느끼게 되고,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사이코]는 그 범인이 누군지에 대해서 마지막까지 꽁꽁 숨겨 둠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더욱 긴장하게 만든다.

[사이코]에 나오는 사이코는 오늘날의 영화들에 등장하는 사이코의 모습과는 다소 다르다. 오늘날의 영화에 나오는 사이코나 사이코패스의 모습은 타협할 부분이 없는 잔혹한 살인범으로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사이코] 속의 사이코는 너무나도 여린 모습도 가지고 있으며 그 존재에 대해서 무조건 미워하기만 할 수 없는, 타협의 모습 역시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의 행동은 어쩔 수 없는 행동으로 느껴지기도 하며, 그의 그러한 잔혹함은 그가 가지고 있는 병 때문일 뿐, 그 이상 그 이하의 느낌은 아니다.

[사이코]는 오늘날의 영화들과 범인의 존재를 노출하는 방법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오늘날의 영화들의 경우 어느 정도 범인의 존재를 부각시키면서 관객이 드러나는 존재에 대해서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사이코]의 경우 그 범인의 정체를 마지막까지 제대로 드러내지 않으며, 관객들은 그저 그 불쾌한 긴장감을 즐기면 될 뿐이다.

 

주인공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역시 [사이코]가 가지고 있는 매력 중에 하나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흔히 관객들이 빠지게 되는 오해 중에 하나가 영화의 중반까지 나오는, 살해를 당하는 금발의 미녀가 주인공이 아닐까? 라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는 오직 영화의 중반 그녀가 살해를 당하기까지에서 끝마쳐지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은 사이코에게로 맞춰지게 된다.

그러나 [사이코]의 주인공은 사이코로 볼 수 없다. 사이코는 이야기를 진행을 시키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시 후반으로 넘어오게 되면, 자신의 자매를 찾기 위해서 현장을 찾아나서는 피해자편의 사람들의 시선으로 다시 이야기가 진행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몇 안 되는 인물을 집중적으로 부각을 하면서 그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지만, 모두가 주인공으로 느껴질 수 있는 효과를 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이코]의 이야기가 산만하게 흐르는 것은 아니다. [사이코] 속에서 인물의 시선이 옮겨가는 과정은 너무나도 매끄럽게 전개가 되고 있으며, 관객은 시선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다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그 자체에만 포커스를 맞추기가 더욱 쉬워진다.

 

[사이코]를 오늘날까지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게 하는 요인 중에 또 다른 하나는 바로 배경 음악 때문이다. 실제로 똑같은 일이 일어나더라도 배경 음악이 있음과 없음에 따라서 기억에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간의 특성상, [사이코]의 배경음악은 너무나도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에 당연하다.

버나드 허만이 만든 이 기괴한 바이올린 곡은, 원래 아무런 음악도 삽입하지 않고 살인 장면을 편집하려던 감독의 결심을 바꾸게 된다. 그리고 그의 음악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 살인 장면을 절대로 잊지 못 하게 만들고 있다.

이 역시도 다른 영화와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감독은 단순히 음악만을 삽입해서 관객들을 긴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칼질과 주인공의 비명 소리 등을 어긋나게 배치를 하면서 그 효과를 더욱 배가시키고 있다.

 

어떠한 면에서 보자면 [사이코]라는 영화는 오늘날의 눈으로 볼 때, 옴니버스 식 구성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피해자가 돈을 훔쳐서 도망을 치면서 벌어지는 긴장감에 대한 이야기가 첫 번째 부분이고, 살인이 일어나는 모텔에서의 일이 두 번째, 그리고 다시 살인범을 쫓는 이야기가 마지막 부분이다. 이 각자의 부분은 따로 떼어놓고 보고, 그 순서를 바꾸더라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로 독립적인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다만 그 효과에 있어서의 차이는 보이고 있으며, [사이코] 영화에서처럼 보일 때 그 효과가 가장 극대화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이 사이코라는 이야기만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다면, 약간의 편집을 가해서 완벽히 새롭게 창조하면, 또 그 나름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이코] 속에서는 여러 종류의 인간의 욕망이 그려지고 있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욕망은 피해자가 가지고 있는 욕망이다. 그는 아내가 있는 사내를 사랑을 한다. 처음에는 그저 주말에라도 그를 만나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지만 점점 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더 큰 것을 바라게 된다. 결국 그 사내와 더 오래 지내고 싶다는 생각에 빠진 그녀는 그녀의 회사에서 돈을 훔쳐 달아나게 된다.

사이코가 가지고 있는 욕망은 지금 자신이 알고 있는 현실에 그대로 안주하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의 어머니와 어머니가 만나고 있던 사내까지 죽인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그저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 있기를 바라고 있는 불쌍한 사내일 뿐이다. 그의 욕망은 자신이 안주하고 있는 평온이 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며 그 평온이 깨어지게 된다면 그는 그 불안함에 긴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피해자의 편에 선 자매와 그녀와 바람을 피던 사내 역시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상대들이다. 두 사람은 피해자의 살인을 파헤치는 일이 너무나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해서 쉽게 그 일을 피하지 못 하고 자신들이 알고자 하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사건의 중심으로 다가가려고 한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은 진실로 다가서려는 욕망이다.

이 같은 모습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을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한 순간의 짜릿한 일탈을 꿈꾸기도 하지만, 결국 가장 평온한 삶을 바라게 되는 인간. 하지만 그 평온한 삶 속에서도 다시 한 번 자신이 알지 못 할, 손도 대면 안 되는 선악과와 같은 것에 손을 대고야 마는 욕망을 그리는 것 같다.

 

인간의 심리를 그리고 있는 히치콕의 영화들은 인간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그리고 있기에 더욱 잔혹하고 가장 밑바닥에 있는 무언가를 간질이곤 한다.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것은 괴물이라거나 악마와 같은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 그 자체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 히치콕만큼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는 감독은 드물 것이다.

[사이코]라는 영화는 그 조악함과 낯선 공포감으로 인해서 아직까지도 살아 숨 쉬고 있으며 앞으로도 꾸준히 살아 숨 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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