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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고

권정선재 2010. 11. 11. 11:55

 

낯설고도 신선한 사람 이야기

 

 

- ‘홍상수[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홍상수'라는 감독의 이름을 들어본 것은 오래였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은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인 '고현정'이 그의 영화에 출연을 하면서 부터였다. [해변의 여인]을 처음 보고, 이어서 올해 칸에서 상을 받은 [하하하]를 봤다.

두 편의 영화로 만나본 '홍상수'라는 이름은 명랑하면서도 가벼움이었다. 얽히는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결국 사람이라는 것이 남아 있었고 그런 낯선 느낌이 좋았다. 한국 영화들에서 풍기고 있는 특유의 작위적인 냄새가 그의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영화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그런 '홍상수'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날 것의 느낌이 묻어나고 있었으며, 금방이라도 물 밖으로 끌려 나온 물고기처럼 신선하게 퍼득이고 있었다. 날 것의 냄새는 역하기는 했지만 그의 작품이기에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구효서'작가의 [낯선 여름]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도저히 원작이라고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창작을 가했으며, 다소 파격적인 스토리라인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원작의 세련되며 공감이 가던 주인공들은 모두 하나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소위 요즘 말로 '찌질이'로 돌변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봤던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가장 찌질한 인물들은 그의 영화를 낯설게 만들고 있었다. 이게 정말 '홍상수'감독의 영화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이기적이면서 이해를 할 수 없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낯설었으며 역겨웠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하면 각자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이 등장을 하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 욕망이라는 것은 거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풀어가고 있다. 그것은 '홍상수' 감독의 스타일이며 '홍상수'감독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사랑을 하고 있다. 그 사랑은 공감을 하기도 어렵지만, 이해를 할 수도 없었다. 그들 나름의 욕망에 충실한, 자신의 방식의 사랑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공감을 얻을 수도 없는 것이며, 이해를 받을 수도 없는 그들의 일방적인 방식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두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닿아야 하는 운명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은 지극히 비정상적이며, 비현실적이라는 점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단점이다. 특히나 지나칠 정도로 과장이 되어 있는 캐릭터들은, 영화에서 풍겨오는 부담스러움을 한층 더하고 있다.

특히나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남자 주인공 효섭의 행동은 불쾌하고 짜증을 불러 온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모든 투정을 하고 있는 삼류 소설가이다. 그의 모습은 현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이렇게 주위 사람들에게 모든 탓을 하면서 자신이 변할 줄 모르는 주인공은 갑갑하기만 하다. 지나치게 현실적이기에 효섭의 캐릭터는 부담스러운 것이다.

보경의 역할은 다소 답답하다. 분명히 여주인공의 역할을 맡고 있지만 극을 이끌어 나가는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 한다. ‘효섭의 행동이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환상을 가지지 못 하게 한다면, 적어도 보경의 역할에서 그러한 모습이 보여야 할 텐데,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속의 여자주인공은 그런 변화의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자신이 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서 대립을 하는 척 하며 그저 순응을 하는 느낌을 준다.

동우의 역할은 꽤나 신선하다. 오늘날의 영화에서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면 이렇게 담담한 캐릭터는 없을 것 같다. 현대의 영화라면 적당히 주먹다짐도 할 것이고, 멱살도 잡을 것이며, 고소를 하네, 경찰에 신고를 하네 하면서 싸울 텐데 동우는 지나치게 덤덤하고 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뒤에 있는 자신에 대한 후회와, 아내에 대한 실망감은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는 아내를 탓하기 보다는 자신을 탓하며, 최대한 아내에 대한 믿음을 지우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효섭을 좋아하는 역할인 민재는 꽤나 특이한 캐릭터다. 이 영화가 정말 1996년에 나온 것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현대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인데, 남자에 비해서 목소리도 크면서 돈도 챙겨주는,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나오는 칙릿 소설의 여자주인공과도 닿아 있다. 물론 극 중 너무나도 소심하게, 구시대적 여성처럼 구는 모습도 보이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모습은 구시대에서 현대로 내려오는, 과거의 모던걸과도 비슷한 면모를 보이는 듯하다.

 

위의 네 사람은 각자의 욕망에 충실하고자 하며, 자신이 바라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망설임도 가지지 않는다. 현실의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기 보다는 주변의 이목을 먼저 쓰고, 자신의 평판을 먼저 신경 쓰는 것과 다르게, 영화 속 인물들은 지금 이 순간 절실하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행동을 한다.

사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부러움도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런 것도 거리낌 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멋진 일일 것이다. 비록 그 모습이 누군가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나만을 위한 일이기에 가장 멋진 일이다.

누구나 자신의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그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쪽팔림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그들의 행동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민폐일 수도 있지만 자신들에게는 그만큼 절박하고 절실한 문제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누군가가 저렇게 절실하게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현실에 안주를 하고 있는 자신들을 대신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면서 영화를 감상하게 된다. 자신들은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을 영화 속 인물들은 너무나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 행동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누군가에게 지탄을 받을 일도 아니고, 손가락질 당할 일도 아니다.

 

물론 원작인 [낯선 여름]을 먼저 읽는다면 실망을 할 수 밖에 없다. 원작에서 등장하는 효섭이라는 인물은 팬트하우스에 사는 멋있는 인물로, 자신을 꾸밀 줄 알고 당당하게 살아갈 줄 아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보경역시 원작을 고스란히 영화로 옮겼다면 그녀의 애틋한 사랑이 더욱 크게 다가왔을 것이고, 더욱 감동적이게 느껴질 것이다.

민재동우역시 더 멋지고, 더 세련된 모습으로, 현대에 보더라도 전혀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으로 등장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에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관객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고, 관객들이 보면서 죄책감이나, 나는 저렇게 되지 못 할 거야, 라는 자책감에 빠지지 않게 도와준다. 원작과는 지나치게 낯설지만 그렇기에 더 새로워 진 영화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다소 갑갑한 모습도 가지고 있지만,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라는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할 영화이다. 그의 연출 스타일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자주 컷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드라마나 보통의 영화 같은 경우 대화를 나눌 때 계속 화자의 쪽으로 컷이 바뀌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홍상수감독은 멀리서 그것을 잡을 뿐, 더 이상 인공적인 느낌을 가하지 않는다.

이러한 스타일은 최근 개봉작인 [하하하]에서도 이어지고 있는데, [하하하]에서도 유준상김상경의 대화 부분에서 거의 화면이 변화하지 않는다. 실제로 사람들이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을 멀리서 잡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은 홍상수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며, 그의 영화를 편안하게 볼 수 있게 만드는 강점이기도 하다.

물론 이 날 것의 느낌은 오늘날의 영화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어느 정도 감추고 숨겨도 좋으련만, ‘홍상수는 그러한 인간의 가장 밑바닥 모습까지 다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제목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꽤나 상징적인 의미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다고 해서 우물은 오랜 시간 출렁이지 않는다. 이내 표면은 잔잔해지게 되고, 돼지가 우물에 빠진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 우물에 허리를 숙인 사람들은 곧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돼지를 구경하는 자신들의 추악함을 보는 것이다.

관객들 역시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이 영화를 보면서 혀를 차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지만 이내 이 영화에 빠지게 되고, 관객들 역시 자신이 이 영화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홍상수감독의 영화는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먼저 인정을 받아서, 역으로 한국으로 들어온 케이스다. 그의 영화에 대한 입소문은 슬슬 타고 있으며, 점점 한국에서는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와 욕망에 대해서 이토록 덤덤하게 풀어낼 수 있다면, 다소 찌질한 인물들이 등장을 하기는 하지만 이대로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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