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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사랑은...... [1장 : 2화]

권정선재 2012. 8.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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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신의 사람마저도 목숨을 달아나게 만들면 그 누가 자신의 곁에 붙어있을 거라고 그리 하는 것인가?”

죄송합니다.”

그대의 죄가 아니지.”

지난 밤 백설이 몸종을 죽였다는 사실에 은하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 것인지 감이 하나도 잡히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이리도 어긋나는 것인지, 은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로 가시려는 겝니까?”

국왕을 뵈러 갈 것이다.”

아무런 의식도 없는 분을 어찌 그리 자주 찾아가신단 말씀입니까?”

그래도 내가 믿어야 할 분이 아니던가?”

은하의 말에 신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맨 처음 그 역시 은하와 국왕의 결혼을 반대했었다. 모든 것이 둘로 나뉘는 것은 말도 안 될 일이었다. 게다가 혹시나 은하가 왕자라도 낳게 된다면 나라의 후계 구도는 모든 것이 혼돈으로 빠질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결혼하고 나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나라는 더욱 부강해졌고 그 어느 나라의 침략도 받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국왕이 건강할 때의 일이었다.

국왕께서도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실 거다. 그리고 하루라도 빠르게 일어나시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계실 거야. 그러니 우리가 더욱 열심히 그 분의 말씀을 듣고 그래야 하는 것이겠지.”

아무리 왕비께서 그러시더라도 듣지 못하실 겁니다. 왕실의 의사들은 모두 뛰어난 능력을 지닌 자들입니다. 그 자들도 무슨 연유인지 알지 못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일어나실 수 있단 말입니까?”

흑렵을 보냈다.”

?”

유능한 의사가 숲에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곱 사내들 말씀입니까?”

그래.”

그 사내들이라고 한들 무엇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의사와 약사. 그들은 이 나라에서 가장 대단한 의료인들로 소문이 나지 않았는가? 흑렵이 가서 그들을 데리고 오면 무어라도 방법이 생길 거야. 하루라도 빠르게 국왕께서 일어나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오더라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애초에 그들은 이리로 오지 않을 겁니다. 국가에 부정하기 위해서 국가를 벗어난 이들입니다. 그들이 이리로 올 리가 없습니다.”

국가를 배신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국가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해서 그러한 것이지.”

여왕 페하. 언제까지 그렇게 생각을 하실 겁니까? 더 이상 국민들은 여왕 페하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무시하고 하루라도 빠르게 그 자리에서 내려오기를 바랍니다. 그런 이들에게 여왕의 능력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그러지 않다가는 여왕으로의 권위가 모두 사라지고 축출 당하실 겁니다. 모두 공주의 편이 될 겁니다.”

여왕이 아니라 왕비다.”

은하는 차분하게 대답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황금 잔에 출렁이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눈을 감았다.

여왕은 내가 아니라 백설 그 아이가 될 자리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는다면 모두 백설 그 아이의 자리를 노릴 거야. 그 아이를 노리고 자신이 왕이 되기를 바라는 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렇기에 내가 이 자리를 버티고 있어야 한다. 누구도 이 자리를 넘보지 못하도록.”

모두 왕비께서 탐욕에 철저히 가려졌다 생각을 합니다.”

그럴 지도 모르지.”

마마.”

아니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구나.”

은하는 소리가 나게 잔을 내려놓더니 고개를 저었다.

나도 이 자리가 영원히 내 자리라면 어떨까 생각이 들더구나. 하지만 곧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 이 자리는 영원히 내 것이 될 수가 없다. 결국 백설에게로 갈 자리고. 결국 국왕께서 돌아오실 자리다.”

그것을 사람들이 모른단 말입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마마. 어찌 그것이 중요하지 않단 말입니까?”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내 마음이 확실하니까.”

은하의 고집에 신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은하에게 할 이야기가 없었다.

하루라도 빠르게 모든 권력을 직접 잡으셔야 할 겁니다. 정말로 왕비께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이미 사람들의 다툼이 시작이 되었고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자네도 더 이상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고 백설에게로 제대로 줄을 서시게.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니.”

하지만 이미 패권을 잡은 것은 왕비십니다. 내 것이다. 그리 한 마디만 하시면 되는데 어찌 그 말씀을 하지 않으시려고 하는 겁니까?”

내 것이 아니니.”

마마.”

그만 물러나시게.”

알겠습니다.”

신하가 허리를 숙이고 나가자 은하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여전히 망설여지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누군가가 이미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애써 그것을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거였다. 원하지 않는 권력이었다. 하지만 백설에게 그 권력이 간다면 모두 백설을 노릴 거였다. 그 칼날이 모두 자신을 향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백설을 지키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삶의 목적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오직 그녀만의 생각이라도 괜찮았다. 그것이 진실이니.

백설 그 아이는 도대체 언제까지 그 미친 살육의 춤을 출 것인지. 결국 제 사람이 하나도 없어져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없어질 거라는 모르는 겐가?”

은하는 눈을 감았다.

 

흐음.”

인기척에 흑렵은 눈을 감고 허리에 찬, 칼에 손을 가져갔다. 인기척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단 이야기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누구냐?”

곧 인기척이 사라졌다. 흑렵은 숨을 들이쉬고 칼을 뽑아서 주위를 살폈다. 고요한 숲은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순간 나뭇가지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흑렵은 곧바로 그리로 칼을 가져갔다. 핏줄이 보일 정도로 하얀 피부에 노란색 머리카락. 그리고 깊은 눈에 샛노란 눈동자를 지닌 어린 사내의 목이 칼에 닿았다. 날이 잘 선 까닭에 곧바로 사내의 목에서 피가 어렸다.

도대체 누구이기에 나를 겨눈 것인가?”

칼을 내려주시죠.”

도대체 누구이기에 나를 겨눈 것이야!”

칼을 내리십시오!”

흑렵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칼을 거두지는 않은 채 가만히 사내를 노려보았다. 사내의 손에는 단검이 들려있었다.

너부터 칼을 내려라.”

제 목이 언제 달아날지 알고 단검을 내리겠습니까?”

그러는 나는 네가 나에게 단검을 날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기에 칼을 내려놓는다는 말이냐?”

의사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닙니까?”

순간 흑렵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사내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단검을 바닥에 툭 하고 떨어뜨렸다.

왜 내려놓은 것이냐?”

제가 도움이 될 테니까요.”

뭐라고?”

제가 그 일곱 사내들 중 하나입니다.”

흑렵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사내를 훑었다. 그 누구도 일곱 사내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흔적만 남기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소문에 따르면 모두 미남자라고 했었다. 흑렵은 조심스럽게 사내의 모습을 살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았고 이제 겨우 스물 남짓이나 되어보였다. 목소리도 여렸지만 손등에는 핏줄이 튀어나왔다.

내가 너를 믿어도 되는 것인가?”

국왕 때문 아닙니까?”

네가 이름을 올릴 분이 아니다.”

저주죠.”

뭐라고?”

. 저주는 아니고 아마도 독약이 그 분을 괴롭히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저에게 칼을 겨누시는 겁니까?”

흑렵은 칼을 거두고 칼집에 다시 넣었다. 사내는 씩 웃더니 흑렵에게 손을 내밀었다. 흑렵은 가만히 그 손을 응시했다.

내게 무얼 하라는 거지?”

제 이름은 황호입니다.”

나는 흑렵이야.”

대단한 사냥꾼이시죠.”

흑렵이 눈을 가늘게 뜨자 황호는 손을 들어보였다.

그렇게 보실 것은 없습니다. 워낙 소문이 자자하신 사냥꾼이니 저도 그 이름을 들어봤을 수밖에요. 게다가 저희는 숲에서 사는 이들이 아닙니까? 매일 흥건한 피가 바닥에 고이면 모두 흑렵의 솜씨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죠.”

그것은 내가 아니다.”

?”

단 한 번도 나는 누군가에게 피를 흘리게 한 적이 없다. 가장 아프지 않게. 그렇게 죽이는 것이 나의 방법이다.”

그렇군요. 하긴 아까 바로 목으로 칼이 들어오는 순간 아. 이제 죽은 거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제대로 들어오십니다.”

먼저 앞장서지.”

알겠습니다.”

황호는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흑렵은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발자국도 나지 않는 이가 자신의 소리를 냈다는 것은 일부러 자신을 맞은 거였다. 흑렵은 다시 칼에 손을 가져갔다.

무슨 일이지?”

?”

나를 찾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건 없습니다.”

내가 궁에 오래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멍청이는 아니지. 도대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러는 거지?”

기다렸습니다.”

누구를?”

당신을요.”

나를 왜 기다린 거지? 아니 어떻게 내가 올 줄 알고 기다린 거지?”

가시면 압니다.”

황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부지런히 걸었다. 흑렵도 모든 것을 체념한 채로 그를 따랐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서 자신을 맞았다는 것은 자신이 따라오지 않을 적까지 준비했다는 거였다. 한참을 걸어서 숲속에 있을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할 화려하고 웅장한 집이 보였다.

이런 집이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던데.”

다들 모르게 되어 있으니까요.”

뭐라고?”

저희 식구들의 피가 닿아야지 이 집이 보이죠. 그래서 일부러 다친 겁니다. 당신에게 이곳을 보여주어야 하는 거니까. 어서 들어오시죠. 적어도 이곳에서는 그대의 목을 달아나게 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아니 당신도 우리의 목을 달아나게 할 수 없을 겁니다. 칼이 소용이 없는 곳이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지?”

칼을 꺼내보시죠.”

흑렵은 미간을 모으면서 칼을 꺼냈다. 그 날카롭던 날이 어느새 무디고 녹이 슬어있었다. 흑렵이 당황한 표정을 짓자 황호는 자신의 단검을 내보였다. 은빛으로 반짝이던 단검은 붉게 변해있었다.

이곳은 모두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군.”

. 그래서 그 누구도 살인을 할 수 없죠. 들어오시죠.”

집으로 들어가니 천장이 높았고 커다란 샹들리에가 달려있었다. 계단은 까마득하게 높았고 파이프 오르간이 벽 한 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천장은 창이 많아서 햇살이 고스란히 로비로 들어왔다.

아름다운 집이군.”

다 녹호, 청호, 남호, 자호. 이렇게 네 동생 덕이죠.”

일곱 사내들 말인가?”

. 지금 적호를 만나로 오신 거죠?”

그 자가 의사인가?”

의사라기보다는 사람이 어디가 아픈지 완벽하게 아는 사람이죠. 그게 의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게 의사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의사란 말입니까? 그런 실력이라면 왕실에 있는 의사들보다 더욱 뛰어나군.”

그건 맞을 겁니다.”

그렇게 대단한 의사가 도대체 왜 사람들 곁에서 사지 않고 여기에서 살고 있는 겁니까? 알 수가 없는데.”

사람들은 우리를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황호는 한숨을 내쉬면서 햇살 아래 자신의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반짝이는 손끝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우리의 존재는 우리들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분명하죠.”

그런데 그들은 당신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도움은 받고 있죠. 하지만 우리와 같이 사는 것. 그것하고는 차이가 많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을 돕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들도 그렇게 된다면 당신들의 공을 알게 될 텐데.”

의사는 오직 적호, 한 사람뿐입니다. 나머지는 각자 하는 일이 다르죠. 홍호는 약초를 캘 줄 알고, 나는 길을 빠르게 다닐 줄 알죠. 나머지는 힘을 쓰거나 집을 짓는데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화재로 인해서 집을 잃은 백성들이 하루 만에 집을 얻었다는 것이 그것인가? 다들 알 수 없는 자들의 소행이라 하였는데.”

궁까지 소문이 났군요.”

이런.”

흑렵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들 헛소문이라고 이야기를 했고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눈앞에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이들 중 하나가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대들의 종류는 무엇인가?”

인간인지를 묻는 것입니까?”

그래.”

사람입니다.”

사람?”

.”

사람이 그렇다고?”

황금사과 덕입니다.”

황금사과?”

그런 것이 있습니다.”

곧 커다란 방 앞에 당도했다. 어딘지 모르게 차가운 느낌이 났지만 그 못지않게 아름답기도 했다. 황호는 문을 두드렸다.

적호. 사냥꾼이 왔네.”

들어오지.”

들어가십시오.”

그럼.”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황호와 마찬가지지만 머리카락이 붉은색인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역시나 걸음에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고 흑렵에게 다가와서 붉은 눈으로 가만히 흑렵을 응시했다.

많은 이들을 도륙한 적이 있군요.”

직업이 사냥꾼이니.”

하지만 최근에는 살육이 적군요.”

왕실의 호위관이니.”

왕 때문에 오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흑렵은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어딘지 모르게 압도적인 무언가를 가진 자였다. 적호는 고개를 빳빳이 들더니 흑렵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앉았다.

저희가 왕실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청하러 온 겁니다.”

저희 일곱이 모두 와야 합니다.”

순간 흑렵은 움찔거렸다. 일곱이나 되는 사내를 한 번에 들이기에는 위험이 컸다. 게다가 백성들이 그다지 선호하는 이들이 아니라는 사실도 부담스러웠다. 안 그래도 소문이 안 좋은 은하에게 타격이 클지도 몰랐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왕비에 대한 소문이 좋지는 않소.”

그렇다고 국왕을 살릴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으시겠죠.”

폐하를 살릴 수 있는 겁니까?”

살릴 수 있을 겁니다.”

흑렵은 깊은 심호흡을 했다. 너무나도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는 그가 미덥지 않았다. 수많은 왕실의 의사들도 안 된다고 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적호는 확신에 가득 차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입니까?”

제가 가면 가능할 테니까요.”

내가 말을 해줄 수 없는 겁니까?”

없습니다.”

흐음.”

흑렵은 미간을 모았다. 일단 은하와 이야기를 해야 했다. 이렇게 심각한 일은 그 혼자서 결정할 수 없었다.

곧 돌아오겠습니다.”

황호와 가시죠.”

이 자와 함께 말입니까?”

해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다시 이곳을 찾으러 오는데 도움이 되기도 할 테고 말이죠.”

알겠습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을 것 같았다. 흑렵은 대저택과 숨겨진 곳을 벗어나서야 겨우 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그 자의 정체가 뭡니까?”

형님이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흑렵께서만 그러시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도 형님을 대하다보면 이상하게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것을 느낍니다. 오직 자호만이 형님의 뜻에 반하죠.”

범을 만났을 적에도 이 정도로 긴장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내는 범을 만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습니다.”

저희도 알고 싶습니다.”

흑렵은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황호도 어렴풋이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상대방이 말을 하지 않는다면 묻지 않는 것이 예의였고, 흑렵이 아무리 묻는다고 해도 대답할 리가 만무했다. 이윽고 왕실에 도착하자 모든 사람들이 황호만 바라봤다.

왜 저리도 저를 보는 겁니까?”

아름다워서 그러는 겁니다.”

제가요?”

아마도 마을에서 그대를 배척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아름다워서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대처럼 선한 자가 일곱이나 있는데 그리도 그대들을 배척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오직 적호와 저만입니다.”

?”

우리 둘만 그렇다고요.”

서로 생긴 모습이 다른 겁니까?”

.”

그런 것은 몰랐습니다. 그러면 형제 중에는 사람들이 두려워 할 사람들도 있다는 거군요. 맞습니까?”

.”

흑렵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물을 것은 아니었다. 황호를 쉬게 하고 자신은 은하의 방으로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일찍 오셨군요.”

제가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요?”

.”

역시나 범상치 않은 자들이군요. 그래서 그들이 국왕 폐하를 도와주겠다고 말씀을 하였습니까?”

.”

그럼 그들 중 한 사람과 왔다고 하던데, 그것이 국왕을 도울 사람이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형제 중 하나입니다.”

형제 중 하나라.”

은하는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와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흑렵의 표정이 묘했다.

왜 그러십니까?”

?”

표정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내키지 않는 제안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무슨 제안입니까?”

모두 궁으로 오고 싶다고 합니다.”

그럼 오라고 하세요.”

?”

그게 문제가 되겠습니까?”

허나 밖에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왕비의 명성을 깎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사내를 한 번에 일곱이나 들인다는 것은 그들의 구설수에 빌미를 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에게 손해일 수도 있습니다.”

허나 국왕을 깨울 수가 있다고 하는데 그러한 것이 그리도 중요하단 말입니까? 나는 아닙니다.”

은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에 담긴 왕을 향한 애정에 흑렵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그러세요.”

다만.”

다만?”

그들의 외모가 평범하지 않을 겁니다.”

사람의 겉만 보고 평가를 하지 말라 배웠습니다. 흑렵. 그대도 그리 배우고 자라지 않았습니까?”

알겠습니다.”

흑렵은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은하는 바로 곁에 있는 국왕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폐하. 이제 곧 폐하를 깨울 수 있을 방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자들을 데리고 온다고 하였습니다. 흑렵이. 국왕께서는 그리도 믿지 못하시던 흑렵이 그 모든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부디 일어나셔서 흑렵에게 모든 영광을 내려주시와요. 흑렵이 모든 것을 다 해내고 있으니 말이죠.”

 

어떻게 되었습니까?”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다행이군요.”

황호는 두 손을 모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이야기를 하더니 그도 그다지 확신을 하고 있지는 않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

궁에 들어오려는 이유 말입니다.”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예를 갖추던 흑렵이었지만 그래도 황호에 대해서 모든 경계까지 풀어놓은 것은 아니었다.

폐하를 진료하기 위해서 그대들 모두가 이 궁으로 들어올 필요는 없을 거라고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모두 들어오려는 이유가 뭡니까?”

반란?”

흑렵은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역모?”

뭐라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흑렵의 칼날이 자신의 목에 닿자 황호는 미소를 지으면서 날을 옆으로 밀었다. 그의 길고 고운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 것을 꾀한다면 애초에 흑렵. 그대를 통하지 않고 우리가 알아서 궁으로 들어왔을 겁니다.”

알아서라고?”

.”

황호는 미소를 짓더니 손을 떼고 거기에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곧 피가 그치고 상처가 아물었다.

, 그게 무슨.”

황금 사과의 능력입니다.”

황금 사과.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기에 그대들에게 그렇게 특별한 능력을 주는 것이지? 그게 가능한 것인가?”

저희도 사실 더 이상 황금 사과의 능력을 알지는 못 합니다. 그것이 이제 저희의 손에 없으니 말이죠.”

황금 사과가 더 이상 그대들의 손에 없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엄청난 능력을 가진 물건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건 이미 왕궁의 소유입니다.”

뭐라고요? 그런 물건이.”

저희도 모릅니다.”

황호는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다만 그런 물건이 있어서 우리가 이런 것들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거죠. 아무튼 역모는 아닙니다.”

그 사과를 다시 가지고 가려는 건가?”

아니요.”

황호는 순간 얼굴에서 모든 표정을 지우면서 펄쩍 뛰었다.

절대로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황금 사과는 자신이 모든 것을 선택합니다. 절대로 누군가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지가 있다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튼 숲으로 돌아가지.”

.”

다시 숲으로 돌아가는 길은 유난히 어두웠다. 그리고 황호는 장난스럽게 미소를 짓더니 흑렵의 옆에서 칼을 빼앗았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왜요? 당신을 죽이기라도 할까 봐요?”

. 무어라?”

아닙니다. 다시 그대가 나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죠.”

황호는 묘한 미소를 짓더니 흑렵을 껴안고 칼로 자신의 목을 잘랐다. 곧 흑렵의 앞섶에 피가 떨어지고 바로 눈앞에 건물이 나타났다.

아마도 궁으로 가셨을 때 옷이라도 갈아입으셨던 모양입니다. 바로 앞에 왔는데도 눈치를 채지 못하셔서 말이죠.”

이런 일이 있다면 조금 얌전하게 알려주면 안 되는 건가?”

재미가 없지 않습니까?”

재미라.”

제 성격이 워낙 짓궂어서 말입니다. 저는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고는 이런 것을 그냥 알려주고 싶지 않거든요. 어서 들어오시죠. 이미 한 번 오신 것이니 그리 놀라시지는 않을 겁니다.”

그대가 나를 놀라게 하지.”

흑렵은 한숨을 내쉬면서 녹이 잔뜩 슨 칼을 허리에 꽂았다. 그리고 방금 전 황호의 숨결이 닿았던 순간을 떠올리다가 은하의 얼굴이 느껴져서 얼굴이 붉어진 채로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