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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사랑은...... [1장: 4화]

권정선재 2012. 8. 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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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백설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 식으로 은하에게 뒤를 맞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도대체 한 번도 이 나라를 지배할 야욕을 가지지 않던 그녀가 도대체 왜 그렇게 변한 것인가?”

흑렵 탓이 아니겠습니까?”

흑렵.”

.”

적호의 말에 백설은 숨을 들이쉬었다. 흑렵이 곁에 서고 나서 은하가 당당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조금 더 그녀에게 많은 말을 하기 시작했고 백성을 걱정한다는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내가 그 자를 없애야 하는 건가?”

없애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공주님의 편으로 만드십시오.”

그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가?”

왜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그 자는 그 여자의 사람이다. 아버지께서 계실 적에도 조금씩 가까워지더니 지금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가까워졌어. 어릴 적부터 동무라고 하였지. 그런 자를 어찌 내 편으로 만들라는 것이냐?”

거울입니다.”

거울?”

백설은 눈썹을 올리면서 적호를 응시했다. 적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백설은 볼을 실룩하더니 포도를 입에 넣고 굴렸다.

거울이 도대체 무엇이 어떻다고 그러는 것이냐?”

말하는 거울입니다.”

말하는 거울?”

이 궁에 내려오고 있는 전설이 있지 않습니까? 말하는 거울이 있다고. 그래서 다들 그것을 보면 진실을 알게 된다고.”

그런 것은 모두 거짓이다.”

정말 거짓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뭐라고?”

진실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백설은 가만히 적호를 응시했다. 그리고 코웃음을 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포도를 송이채 들어서 손으로 쥐었다. 적색 과즙이 백설의 새하얀 피부를 타고 흘러서 그녀의 드레스를 적셨다.

아직도 그렇게 허무맹랑한 전설을 믿는 사람이 있었던 말인가? 그것도 나라에서 제일 간다는 의인이?”

진실이니 그렇습니다.”

무엇이 진실인가?”

황금 사과.”

황금 사과?”

그것을 봤습니다.”

무어라?”

백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만지게 되면 모든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그 황금 사과를 적호가 보았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네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는 것인가?”

저도 목숨이 하나입니다. 그리고 저도 공주님께 바라는 것이 있으니 지금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바라는 것?”

.”

그것이 무엇인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혼인은 절대로 안 될 일이다.”

거울을 보고 진실을 알아내면 되시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사과를 내놓아라.”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고얀!”

백설이 고함을 지르면서 옆에 있는 쇠로 된 과일 바구니를 적호의 머리로 던졌다. 아슬아슬하게 적호를 스친 바구니는 단단히 돌로 만들어진 바닥에 생채기를 내고 벽에 부딪쳐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네가 그런 것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지. 숲에나 사는 천한 종족이 그런 것이 어찌 가질 수 있겠느냐?”

숲에 사는 천한 종족이기에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가질 수 있었던 겁니다.”

뭐라고?”

황금 사과는 직접 자신이 주인을 선택합니다. 그것을 개인의 탐욕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다니는 겁니다.”

그럼 지금 네 손에 없다는 것은?”

저를 위한 탐욕으로 사용을 했지요.”

백설은 손톱으로 손잡이를 두드리며 가만히 적호를 응시했다.

행여나 그것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나에게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지?”

한 번 자신이 떠난 주인을 다시는 찾지 않는 법이니. 결국에는 공주께 사과가 가게 될 겁니다.”

왜 나에게 온다는 거지?”

순수한 욕망.”

순수한 욕망이라.”

백설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만히 적호를 응시했다. 적호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 대담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지? 사람들은 모두 나만 보면 피하려고 난리인데 말이야.”

결국 그대도 인간이 아닙니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것은 온갖 요물이 아니라 사실은 인간이라는 이야기를 잊고 있는 건가?”

인간이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럼?”

자신이 두려운 거죠.”

백설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적호에게 다가오더니 그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공주님.”

한 번만 더 그 입을 놀렸다가는 죽여 버릴 거야. 네가 아무리 대단한 의인이라도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 온 국민들이 나에게 돌을 던져도 상관이 없다. 결국 그들은 내 밑에 고개를 숙이게 될 테니까.”

그래서 권력이 필요하신 겁니까? 진정으로 이 나라에 애정이 있어서 그러신 것이 아닙니까?”

애정?”

백설은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웃 나라처럼 대단히 돈이 많이 나는 나라도 아니고, 인재가 많은 나라도 아니다. 이런 나라에 애정을 품으라고? 아니. 나는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하지 않아. 일단 내가 사는 것이 우선이야.”

그래서 폐하를 일단 살리겠다는 거군요.”

영리하네.”

백설은 적호의 턱을 놓고 그를 뒤로 밀쳐냈다. 휘청거리던 적호는 벽에 기대고 나서야 겨우 바르게 자세를 고쳤다.

지금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리는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 공주께서 그렇게 행동을 하시고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 있는 거겠죠. 대단하십니다.”

내가 대단하다는 것은 다들 아는 일이지.”

곧 위기에 빠지실 겁니다.”

위기?”

.”

도대체 무슨 위기?”

왕비께서 나설 테니까요.”

백설은 가만히 적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빛이 잠시 녹색으로 변하자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다시 적호의 눈동자는 붉어져있었다. 적호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럼 물러나겠습니다.”

그래라.”

적호가 나가고 백설은 엄지를 깨물었다.

저 자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지?”

 

국왕께서 숨을 쉬시는 것이 이전보다 편해지셨다고 합니다. 궁 안팎에서 왕비께서 제대로 된 의인을 데리고 왔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어디 내가 한 것인가?”

말은 이렇게 하더라도 은하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스쳤다. 일단 백설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늘어야 했다. 백설은 지금 미쳤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만큼 미쳐있었다.

그나저나 흑렵 그대는 괜찮은 것인가? 백설이 그대를 위협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일곱 사내들만 하겠습니까?”

공주의 침소는?”

아무런 일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은하를 보는 흑렵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뭐라고 하건 은하는 백설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대가 아무리 걱정을 하더라도 공주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실 분입니다. 그러니 포기하시고 직접 권력을 잡으세요. 그게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렇지 않다가는 결국 여왕의 목을 달아나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라고 하세요.”

마마.”

공주가 내게 가지고 있는 원망이 그렇게라도 조금이나마 달래진다면 나는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그들을 주시해야 합니다.”

은하는 입을 꼭 다물고 흑렵을 응시했다.

일곱 사내들이 궁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거야 당연히 자신들의 신분을 조금이라도 높여보려는 생각이 아니겠습니까? 지금의 방법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궁에서 의인으로 있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겁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이것 이상이 아닐 테네, 절대로 그대가 걱정을 할 것은 아닙니다.”

아니요.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것보다 더욱 커다란 것이 분명합니다. 고작 그것만 가지고 궁에 들어올 이유가 없어요.”

마마.”

흑렵. 그대는 알고 있습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궁에 숨겨진 것들.”

궁에 무엇이 숨겨져 있습니까?”

궁이라는 공간은 참으로 비밀스러운 공간입니다. 백성들은 높이 봐야 하는 공간이지만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는 아무도 알 수 없죠. 소식이 밖으로 전해지기는 하나 그 모든 것은 구에서 바라는 방향으로 꺾이고 왜곡이 되어버린 후의 소식들입니다. 결국 궁은 독립된 공간이고, 섬입니다. 고고하게 우뚝 솟은 섬. 이 섬에는 섬 자체의 비밀을 지키기 위한 것들을 여럿 있습니다. 내가 있는 이 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방은 모든 빛이 들어오고, 모든 빛이 나가는 곳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흑렵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은하의 침소에서 단 한 번도 빛을 구경한 적이 없는 흑렵이었다. 빛이 한 점 들어오지 못하도록 설계가 되었고 내실이었기에 그 어디에도 빛을 만들어둘 수도 없는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에 빛이 들어오다니, 은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벽난로 위의 그림 귀퉁이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무언가 아귀가 제대로 맞지 않는 소리가 들리면서 갑자기 방이 환해졌다.

이게 무슨.”

내가 알고 있는 비밀입니다.”

천장의 천사가 들고 있는 사과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유리가 생겼고 그리로 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바닥을 비추고 왕비의 거울을 비추니 방안에 밝게 빛이 번졌다. 은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흑렵을 살폈다.

이런 것들이 궁에 많습니다.”

이런 것들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진기한 것들도 모두 사실일 수 있단 말입니다.”

진기한 것들이요?”

.”

어떤 것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거울이나 사과, 뭐 이러한 것들을 말을 하는 거죠. 그런 것들도 모두 사실일 수 있다는 겁니다.”

흑렵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도 궁 밖에 있었을 때 들었던 신비한 소문들이었다. 하지만 궁에 들어오고 그런 것들이 실제로 끼어들 자리는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더 이상 소문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은하는 아니었다. 은하는 이 소문들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증거도 있었다.

그렇다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 것들은 거짓이 아닙니까?”

그대는 내가 그런 것도 보지 못했다고 생각을 하는가? 흑렵도 나를 믿지 못하는 거군요.”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진귀한 물건들이 궁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스워서 그러는 겁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나도 그랬어. 폐하도 나에게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으셨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 알았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이미 폐하는 알고 계셨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이유는 나랑 공주 모두 이 나라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랬다는 것을.”

그런데 마마. 외람된 말씀이지만 어이하여 저에게 존칭을 쓰곤 하시는 겁니까?”

그대가 낯설어졌다.”

은하는 가만히 흑렵의 눈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이전까지 그대는 그저 나의 말을 들어주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숲에 다녀오더니 그대의 태도도 변했어.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된 거지.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저는 오직 왕비 한 사람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비께서 이 나라에 아무 것도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의 권한이 공주에게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무슨 말을 하려는 거요!”

공주의 것이 아닙니다.”

그대 무슨 불경한!”

공주는 결국 결혼을 하면 이 나라를 떠나게 되어있습니다. 아주 먼 나라로 공주를 시집을 보내면 그만입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나는 공주를 그렇게 먼 사지로 보내지 않을 거야. 자기 편 하나 없이 냉기가 흐르는 궁에서 사는 일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얼마나 심장에 칼을 꽂고 또 꽂는 일인지 내가 알고 있다. 내가 그런 일을 만들지 않을 게야. 공주는 내가 지킬 거다. 적어도 내가 그렇게 만들지 않을 거야.”

마마.”

흑렵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은하를 응시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모한 행동을 하려고 하는 은하를 말릴 수 없는 자신이 더욱 한심했다.

그래서 그들을 믿지 못하신다는 겁니까?”

그래요.”

어찌 하여야 믿으시겠습니까?”

믿지 못합니다.”

그게 무슨.”

흑렵 그대가 아니고서 내가 궁 안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그대야. 그들이 아무리 뛰어난 의술을 펼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들을 믿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없다. 아니 믿을 수가 없어. 그들의 얼굴을 보았는가? 모두 표정이 없었다. 입가는 웃고 있었지만 표정이 없었다.”

흑렵은 순간 아차 했다. 그들의 말씨는 공손했지만 은하의 말처럼 모두 어딘가 어색한 분위기가 풍겼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미 궁의 이곳저곳을 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가졌습니다. 흑렵 그대의 말처럼 그저 명에를 드높이기 위한 거라면 적호 혼자서 궁에 들어오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들어온 것은 궁에서 그들이 찾아야 할 물건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거죠.”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만히 지켜보도록 하세요.”

?”

나도 찾을 물건이 있으니 말입니다.”

은하의 말에 흑렵은 입을 꼭 다물었다.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더 이상 물어봐서는 안 될 거였다. 흑렵은 고개를 숙이고 은하의 침소를 벗어났다. 은하는 문이 닫히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시 빛을 가렸다. 그 다음 촛불을 끄니 그녀의 침소는 다시 완벽한 어둠으로 잦아들었다. 은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를 가시는 길입니까?”

, 안녕하십니까?”

녹호와 청호는 흑렵을 보자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흑렵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눈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이 시간에 궁을 돌아다니실 이유가 없다고 생각이 되는데 말입니다.”

출출하여 뭐라도 찾을까 하고.”

그렇다면 궁녀를 부르면 될 일이죠.”

저희처럼 미천한 자들을 위해서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아무렴요. 저희들이 먹을 것은 저희가 찾을 수 있습니다.”

이곳은 궁입니다.”

흑렵은 한 발 앞으로 내딛으면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흑렵의 위협적인 행동에 녹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궁에 계시는 분께 이것이 위협이 되는 행동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국왕 폐하께서 저리도 편찮으신데 사내들이 이리도 함부로 궁을 돌아다닌다고 하면 누가 마음을 편하게 생각을 하겠습니까?”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허나 흑렵도 생각을 다시 하셔야 합니다.”

무어라?”

청호.”

아니 그렇지 않은가요? 형님.”

청호는 싸늘한 미소로 흑렵을 바라봤다.

우리 일곱 사내들을 누가 과연 사내로 본단 말입니까? 혹여나 적호 형님과 홍호 형님, 그리고 황호 형님 정도의 외모는 되어야 사람들이 걱정을 하거나 그러할 것이 아닙니까? 저희는 사내도 아닙니다.”

누가 그렇게 말을 하더이까? 내 그자의 목을 베죠.”

누가 그런 말을 해야 해서 아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 그들의 눈에 그러한 것이 다 보이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눈에 보인다.”

흑렵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흑렵의 손이 검에 향하자 녹호는 황급히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청호의 앞에 섰다.

이 시간에 궁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궁에서 사시는 분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지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알았더라면 조금이라도 주의를 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시종을 보내지요.”

아닙니다. 시장기가 달아났습니다.”

혹여나 무엇이라도 찾으시려는 겁니까?”

고개를 숙이고 스쳐 지나가는 두 사람 뒤로 흑렵의 말이 꽂혔다. 녹호는 걸음을 우뚝 멈추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무리 생각을 하더라도 그대들이 궁에 들어올 이유가 따로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도대체 궁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 혹여나 압니까? 저에게 이야기를 하면 저도 도와드릴지 말입니다.”

무슨요. 절대로 그런 것이 없습니다. 행여나 그러한 생각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는 지금 이 궁에 들어온 것만 하더라도 감지덕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이 궁은 그대들이 생각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흔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희들처럼 천한 것들이 올 곳이 아니다.”

지금 뭐라고!”

청호가 고함을 지르면서 주먹을 날리자 흑렵은 날렵하게 그것을 피하고 뒤로 한 발 물러선 후 손으로 청호의 팔을 쳐서 꺾은 후 다리를 걸어서 뒤로 넘어뜨린 후 그의 가슴을 무릎으로 찍고 오른손으로 단검을 뽑아서 그의 목에 가져갔다. 청호는 잠시 후에야 자신의 상황을 파악했다.

이게 무슨.”

내가 이 궁에서 왕비의 곁에 있는 것이 그저 장난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절대로 아니야. 궁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궁의 안전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을 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를 모독하더라도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쉽게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거니까. 그런데도 그대들이 이렇게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은 아직 미련하다는 것이군.”

아직 어려서 그렇습니다.”

어리다.”

흑렵은 가만히 청호의 얼굴을 살폈다. 잔뜩 찌푸려지고 일그러진 얼굴에 앳된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정확한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존재였다. 흑렵은 단검을 쥐고 있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대 하나 죽는다고 하여서 이 궁에서 나를 추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니, 오히려 그대가 무슨 문제를 가지고 있기에 내가 그대에게 칼을 들이댄 것이라고 생각을 하겠지. 이런 것을 하나도 모르는 것인가?”

죽여라.”

청호!”

죽이란 말이다!”

정녕인가?”

그래.”

청호의 눈에서 분노가 이글거렸다. 흑렵은 싸늘한 미소를 짓더니 단검을 뒤로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차갑게 청호를 노려봤다.

너희들이 숲에서 얼마나 대단한 존재였는지는 모르지만 이곳은 숲이 아니라 궁이다. 그대들이 살고 있던 곳이 아니기에 이전처럼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특히나 내가 있는 곳에서는.”

주의하겠습니다.”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지 말게. 황호.”

.”

어둠 속에 있던 황호가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제가 있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진짜 형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서로를 걱정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군. 내가 이 녀석에게 칼을 가져가니 그대의 숨이 잠시 멈추었다.”

그것이 들킨 거로군요.”

주의를 주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흑렵이 어둠 속으로 멀어지자 황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청호를 노려봤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형님들께서 말씀을 하신 거울을 찾으려 했을 따름입니다.”

저 자의 눈에 어긋났다가는 모든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을 모르는 것인가? 이 궁에서 그나마 우리의 편이 되어서 들어올 수 있게 해준 자다. 저 자의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될 거야.”

이미 적호 형님이 공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나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도 저희가 이래야 하는 겁니까?”

아직 멀었다.”

황호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이 궁에 얼마나 많은 비밀이 있는지 궁에 사는 자들도 모른다. 궁에 사는 자들은 각자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그 비밀을 모두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청호는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늦은 밤에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공주님.”

백설을 발견한 흑렵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 백설은 로브로 몸을 가리는 척 하면서 일부러 가슴께를 내보였다. 달빛에 뽀얀 그녀의 젖가슴이 빛났다.

어머니의 명령인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에 왜 돌아다니는 것이지?”

궁을 경호하는 것이 저의 임무입니다.”

하지만 그런 적이 없지 않은가?”

그렇지 않습니다. 공주님께서 주무실 적에 저는 궁을 경호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주무시고 계시던 터라서 모르신 모양입니다. 하긴 궁에서 제가 경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무엇이냐?”

?”

어머니가 찾는 것 말이다.”

찾는 것이라뇨?”

나를 우습게 보는 것이냐?”

백설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래. 그대는 처음부터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봤지. 천하고 미천한 것이라고 말이야. 그 시선을 내가 기억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거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대만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이 아니기에 잊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대가 나를 가장 처음 그런 눈으로 봤다는 것이다.”

공주님.”

내가 겨우 열 살일 때였다. 그 시절부터 그대는 나를 그런 눈으로 보았었지.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인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를 사모하는가?”

공주님!”

그럼 나를 사모하는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를 사모하여라.”

백설은 한 발 흑렵에게 다가서서 그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왔다. 흑렵은 손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대에게도 정해진 인연이 없고, 나도 혼자인데 도대체 뭘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인가? 그대가 바라던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니던가? 이 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원하던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녕 아니야?”

백설은 흑렵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순간 흑렵의 목으로 무언가가 넘어가고 백설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를 자신의 방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공주의 침소는 어두웠다.

 

흑렵!”

잠에서 깬 은하는 흑렵을 찾았다. 하지만 늘 그녀의 곁에 있던 흑렵이 오늘은 곁에 없었다. 은하는 무릎을 안고 가볍게 몸을 떨었다.

어디에 있는 겐가?”

그 누구도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궁은 쓸쓸하고 외로운 곳이었다. 국왕과 결혼을 하고도 이런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이가 바로 흑렵이었다. 아버지 같기도 하고 오누이 같기도 했다.

그대가 없는 궁은 너무 쓸쓸하고 아린 곳이다. 그대가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흑렵 그대가 필요하다.”

은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늘 그녀가 나쁜 사람이었다. 게다가 궁에 알 수 없는 사내들이 비밀을 알아내려 돌아다니는 것이 분명했다. 혹시나 흑렵이 무슨 일이라도 난 것이 아닌지 은하는 두 손을 모았다. 은하의 뺨을 타고 굵은 눈물이 한 방울 떨어져서 은하의 허벅지를 적셨다. 은하는 끊임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그리고 아침이 왔다는 기척이 오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늘 있어야 할 흑렵이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은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