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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영화] 방황하는 칼날, 식어서 나온 음식

권정선재 2014. 4. 14. 07:00

[맛있는 영화] 방황하는 칼날, 식어서 나온 음식

 

Good 분노하는 영화를 기다린 사람

Bad -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을 기대한 사람

평점 - ★★★☆ (7)

 

[방황하는 칼날]은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성폭행 후 살해당한 딸의 복수를 감행하는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방황하는 칼날]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법이 얼마나 무른지, 그래서 수많은 피해자들이 여전히 그 억울함에 대해서 해소가 되지 못한 채로 살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법의 도움을 받지 않고 아빠의 손으로 딸의 복수를 하는 모습은 참 묘한 울림이 있습니다. 일단 이 영화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죠. 지금은 아이들이 죄를 지으면 아무런 벌도 받지 않습니다. 어른이 살인을 하건, 아이가 살인을 하건 같은 살인이지만 아이들이 살인을 하면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있는 실정이죠. 그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만 있더라도 더 이상 이런 식의 뉴스는 나오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영화에서도 이 부분이 적나라하게 그려집니다. 애들이 어른 죽인 것은 뉴스에 안 나와도, 어른이 아이를 죽인 것은 뉴스에 나온다는 것. 이게 바로 이 영화가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겁니다. 올해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들 중에 가장 먼저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영화임은 분명합니다.

 


방황하는 칼날 (2014)

8.1
감독
이정호
출연
정재영, 이성민, 서준영, 이수빈, 이주승
정보
스릴러 | 한국 | 122 분 | 2014-04-10
글쓴이 평점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를 해야 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부족한 이유는 그 과정에 어설픔이 있다는 겁니다. 영화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느낌이거든요. 게다가 지나칠 정도로 우연에 기초한 구성을 보이는 것 역시 아쉬운 부분이고, 영화가 지나칠 정도로 비어있습니다. ‘이성민정재영의 날카로움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거죠. 게다가 애끓는 아버지의 부정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분명히 그 절실함이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절실함이 살짝 무뎌지게 되는 거죠. 배우들의 연기가 그 어떤 영화보다도 빛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느낌이 나는 것은 뭔가 영화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겁니다. 영화는 정확히 무엇을 이야기를 할지 정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안에 담겨 있는 메시지의 부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동시에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면서 이 영화가 망가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한 아버지의 부성애를 그리는 것과 동시에 진짜 피해자를 지켜야 할지, 가짜 피해자를 지켜야 할지에 대해서 심각한 고뇌에 빠진 경찰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이 되기 때문일 겁니다. 차라리 이 둘의 감정의 부딪침이 조금 더 심했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괜찮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을 주는 영화입니다.

 

정재영은 사랑하는 딸을 잃고 복수를 감행하는 아버지 이상현역을 맡았습니다. 역시나 정재영은 연기를 참 잘 한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게 하는 배역이었습니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입니다. 이 영화에서 그의 배역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합니다. 분명히 딸을 사랑해서 행해야 하는 일들이 그냥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그에게 공감을 하고 그의 살인에 대해서 동조해야 하는데 그것이 그다지 쉽지 않습니다. [돈 크라이 마미]의 경우 엄마의 그 절절함과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괴로움이 너무나도 쉽게 드러나지만 [방황하는 칼날]에서는 그것이 그다지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죠. 물론 아버지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특수함이 그런 것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아야만 좋은 아버지라는 이야기를 늘 들으면서 살았던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 역시 자신의 아들들에 그다지 많은 애정을 쏟거나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말이죠. 아무튼 그러다 보니 다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왜 처음에 그렇게 딸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역시 궁금해집니다. 그렇게 애정이 많은 아빠는 아니지만 그래도 숨겨둔 부정이라도 제대로 그렸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정재영의 연기는 대단하지만 캐릭터가 흔들리다 보니 그의 연기 역시 흔들리고 맙니다.

 

이성민은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해서 고뇌하는 형사 장억관역을 맡았습니다. 차라리 이 역할이 중심이 되었더라면 영화가 전혀 달라졌을 겁니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고 훨씬 더 많은 주제를 드러내고 있었을 겁니다. 경찰이 하는 일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피해자가 범죄자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죠. 바로 이 부분에서 제발 원작과 다른 선택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는 원작과 같은 선택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경찰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일 겁니다. 감독이 이성민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가 눈밑에 지방이라고 했는데 이는 정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성민은 완벽하게 자신의 역할을 소화합니다. 강인한 경찰이지만 동시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믿는 정의에 대해서 제대로 싸울 수 없어서 답답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의만 찾을 수 없는 그런 지친 모습. 이 모든 것은 오직 이성민이기에 가능한 역할이었을 겁니다. 오히려 감정을 터뜨리는 정재영에 비해서 이 역할이 더욱 마음으로 다가온 것이 바로 배우의 효과일 겁니다. 이성민은 자신의 표정으로 무엇이 정의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서준영장억관의 부하직원이자 열혈 경찰 박현수역을 맡았습니다. 서준영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이 영화를 보고 분노할 수많은 관객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기 보다는 더 뜨겁게 끓어오를 수 있는 그런 역할로 말이죠. 하지만 그 역시도 결국 세상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정말로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가장 비열한 세상의 민낯을 보이기도 하는 인물일 겁니다. 그다지 큰 비중은 아니지만 오히려 악역을 맡은 아이의 불안한 심리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었습니다. ‘장억관과 부딪치기도 하고 이상현을 동정하기도 하는 그는 그래서 가장 현실적이고 아픈 인물입니다. 선한 마스크의 고뇌는 오직 서준영만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반적으로 괜찮은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답답하고 힘든 영화입니다. 소재 자체가 가볍지 않은데 영화가 지나칠 정도로 중심을 잡지 못하거든요. 물론 한 장면, 한 장면을 뜯어서 이야기를 한다면 또 다른 영화가 될 겁니다. 모든 부분에서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고 감독이 더 많은 것을 담고자 했다는 노력이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입니다. 그 이상의 메시지가 없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는 건지도 명확히 그려주지 못합니다. 가슴으로는 아버지의 편을 들게 되면서 머리로는 도대체 왜? 라는 질문이 떠오르게 만듭니다. 다소 애매한 그 부분만 제대로 정리가 되었었더라도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원작의 힘 덕인지 비어있는 부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힘은 분명 존재하는 영화 [방황하는 칼날]입니다.

 

20082009201020112012년 다음 우수블로거 권순재 ksjdoway@hanmail.net

 

Pungdo: 풍도 http://blog.daum.net/pungdo/

 

맛있는 부분

하나 - ‘정재영의 첫 살인

- ‘이성민이 후배 경찰 서준영에 분노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