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영화] 나의 독재자, 아버지와 자장면
Good – 영화를 보고 나서 울림이 있기 바라는 사람
Bad – 두 배우의 연기 대결이 있지 않겠어?
평점 - ★★★★ (8점)
솔직히 말해서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영화였는데 오히려 보고 나서 아. 하는 느낌이 묻어나는 영화가 바로 [나의 독재자]였습니다. 김일성 흉내를 내는 역할을 한 사람이 있었다. 사실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다 못해서 대학교에서 발표를 할 때도 어떤 질문이 들어올지 미리 파악을 해보니까요. 그리고 미리 예상 답안을 마련하는 면접 준비와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의 독재자]는 다릅니다. 평생을 ‘김일성’이라는 사람에 붙들려서 사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바라만 봐야 하는 한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의 현대사 역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 안에서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아버지의 모습 역시 서글프게 다가옵니다. 누군가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 그리고 거기에 미쳐 사는 한 존재의 모습. 이것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와 결국 닮아있는 부분일 겁니다. 아들하고 친밀하기 어려울 지언정 그들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한 것 말입니다. 자기가 무엇이건 옳다고 말을 하는 아버지지만 결국 아들을 가장 사랑했다는 것. 그 묵묵한 진실을 덤덤하게 담아낸 영화가 [나의 독재자]입니다.
세련되고 화려한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서 조금 지루할 수도 있지만 그 지루함 넘어서 가슴을 탁 치는 무언가가 담겨 있는 영화입니다. ‘설경구’와 ‘박해일’ 두 배우가 아버지와 아들 역을 맡았는데 극은 자연스럽게 1부와 2부로 나뉘는 느낌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소 걸리는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살짝 지루한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도대체 이 영화를 통해서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뭐야? 라는 질문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특히나 두 배우, 그 중에서도 ‘설경구’에게 너무 많은 것을 몰아가는 것 아닌가? 생각이 될 정도로 그에게 모든 것이 집중됩니다. 그러다 보니 극이 조금은 어그러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모든 덜컥거림은 마지막으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됩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진실을 바라보게 되고, 그 동안 ‘설경구’가 보인 모든 모습이 과연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기게 되기 때문이죠. 완벽하지는 못하더라도 부족하지는 않은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거기에 묻어납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 곁에 없었지만 늘 우리 곁에 있었던 우리들의 보편적 아버지의 모습과도 닿아있습니다. 늘 곁에서 우리의 버팀목으로 지지하던 이들 말이죠. 조금은 촌스럽지만 그렇기에 더욱 큰 울림을 줄 수밖에 없는 영화 [나의 독재자]입니다.
‘설경구’는 열정만 지닌 채로 인기 없는 무명의 연극쟁이 ‘성근’역을 맡았습니다. 진실로 자신이 원하는 연기를 하고자 하는 서글픈 예술쟁이의 모습이 묻어나는데요. 정말 사랑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자랑스럽게 보일 수 없는 모습이기에 아파하는 존재입니다. 사실 모든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이럴 겁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서 가족이 행복하기 바라지만 아들이 보기에 그리 멋지기만 할 수 없을 테니 말이죠.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 하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커다란 사람입니다. 자신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가짜 ‘김일성’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살을 찌우고 그의 생각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진짜 연극을 위해서. 아들 앞에서 멋지게 보일 수 있는 바로 그 연극을 위해서 말입니다. 과연 ‘설경구’가 아니었더라면 이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생길 정도로 그는 완벽하게 ‘성근’을 표현합니다. 특히나 장년과 노년을 한 사람이 맡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설경구’는 완벽하게 이를 소화하고 납득가는 연기를 선사합니다. 평생 하나의 배역에 미쳐서 살게 되는 배우. 자신마저 잃어버리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아들을 위한 연극이었음을 깊이 표현하는 것은 ‘설경구’가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극의 후반부를 끌고 가는 살짝 껄렁거리는 날라리 ‘태식’ 역은 ‘박해일’이 맡았습니다. [모던보이]에서를 제외하고는 이런 느낌을 준 적이 없어서 신기했습니다. 늘 정적이고 반듯한 느낌을 주던 ‘박해일’이 껄렁거리면서도 어른에게까지 불손한 역할이라니. 물론 극이 진행이 되면서 아버지의 부재가 어린 ‘태식’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고 그를 힘들게 했었는지가 나오기에 그의 껄렁거리는 모든 행동이 납득이 갑니다.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를 받아주지 않고 오롯이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해야만 했던 어린 아이의 모습이 고스란히 묻어나거든요. 어른이 되어서도 어른이 되지 못한 채로 아이처럼 철없이 행동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참 한심하다. 생각이 되다가도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그에게 어떤 식으로 사랑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의 투정이라는 것이 보이기에 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건만 그녀를 어떤 식으로 사랑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 역시 아버지에게서 올바른 모습을 보지 못했던 어린 아이의 잘못된 성장 탓이니 말이죠. ‘박해일’의 또렷또렷한 발음과 순박한 얼굴이 ‘태식’을 고스란히 표현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지만 그저 사랑을 받고자 하는 그런 아이의 모습이 귀엽게 묻어나기 때문이죠.
보면서는 이게 도대체 무슨 영화야? 뭐가 이렇게 지루해? 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보고 나서는 아. 하는 느낌이 꽤나 크게 울리는 영화입니다. 영화 자체를 넘어서 생각할 무언가를 던지는 거죠. 게다가 묵묵히 그 자리에 있는 아버지를 연기하는 ‘설경구’가 있기에 이 영화는 더욱 완벽하게 스크린에서 되살아납니다. 그저 북한의 수령 역할을 하는 한 연극쟁이의 이야기가 아닌, 평생 아들에게 가장 완벽한 연극배우로 남고 싶어 하던 당당한 아버지의 모습이 되살아나니 말입니다. 노인의 모습도 어울리는 ‘설경구’와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여전히 어린 ‘박해일’의 모습을 보는 것 역시 가슴을 울립니다. 천천히 아버지를 이해하면서 그의 모든 행동이 왜 그랬는지가 풀려나가는 것은 마치 [빅 피쉬] 안에서 아버지의 거짓말이 사실은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 있었음을 확인하는 것과 비슷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아들에게 늘 멋진 아버지이고 싶었던 그런 그의 고집이 있는 거죠. 마지막 순간까지, 정신을 잃고 아들에게 짐이 되더라도 멋진 아버지이고 싶은 그런 욕망은 모든 아버지들이 가지고 있는 꿈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들에게 사랑받고 존경받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들의 든든한 울타리고 모범이고 싶은 그런 무언가 말이죠. 진짜 아버지와 아들, 결국 우리 모두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나의 독재자]입니다.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다음 우수블로거 권순재 ksjdoway@hanmail.net
Pungdo: 풍도 http://blog.daum.net/pungdo/
맛있는 부분
하나 – 아들에게 딱지를 건네받은 ‘성근’
둘 – 마침내 ‘태식’에게 연극을 보여주는 ‘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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