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단편 소설

[동화] 할머니 솜사탕

권정선재 2014. 11. 28. 07:00

할머니 솜사탕

유나라! 손 씻어야지!”

아 만화 좀 보고.”

유나라!”

만화를 보다가 겨우 입을 쭉 내밀고 화장실로 갔어요. 뽀득뽀득 손을 씻으면서도 괜히 막 입이 나오고 속상했어요. 밖에서 좀 놀다 온 건데 엄마는 늘 이렇게 화를 내고 소리를 친답니다. 아빠가 그렇게 소리를 치지 말라고 해도, 엄마는 항상 같은 말이에요.

아니 나라가 이렇게 말을 안 듣는데. 당신은 늘 나라 편만 들어요?”

엄마가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면 결국 아빠도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해요. 우리 집에서 엄마가 제일 세거든요. 아빠는 입을 쭉 내밀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나처럼 말이에요.

유나라 숙제해야지!”

유나라 골고루 먹어야지!”

유나라 옷은 단정히 벗어야지.”

유나라 뽀삐 밥 주라고 했잖아.”

유나라 텔리버전 그만 봐야지?”

유나라 컴퓨터 얼른 끄고 안 잘 거야?”

엄마는 매일 나한테 잔소리만 해요. 우리 엄마는 내 친엄마가 아닌 것이 분명해요. 신데렐라의 계모나 백설공주에 나오는 못된 왕비처럼. 엄마도 계모인 것이 분명해요. 아마 계모라는 말은 나쁜 엄마를 이야기하는 건가봐요. 그렇다면 우리 엄마가 딱 맞는 거죠?

당신 나라 할머니 정말 괜찮겠어요? 나는 얘 혼자 집에 두는 것보다는 어머니가 계시는 것이 낫기는 하지만 그래도 노인네가 겪기에는 애 다루기가 쉽지 않을 텐데.”

우리 어머니도 나라 많이 보고 싶어하셔. 그리고 나라도 이미 다 컸는데 뭐. 안 그래? 나라 혼자서도 잘 하고 있으니까 어머니가 와도 걱정할 일 하나 없을 거야.”

당신 눈에는 나라가 다 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에요? 나는 아닌데.”

엄마랑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온다는 모양이에요. 나는 할머니가 별로 좋지는 않아요. 나에게 잘 대해주시기는 하지만 할머니는 냄새가 너무 많이 나거든요. 목욕을 한다고는 하시는데 그래도 냄새가 많이 나요.

유나라. 너 다 듣고 있었지?”

? . 그런데 할머니가 왜?”

너 학교 다녀 오고 학원 갈 때까지 혼자 있는 거 좀 그래서. 엄마도 이제 일 다니고 그러면 너 집에 혼자 있는 거 위험할 거 같아서 할머니 좀 오시라고 했어.”

나 혼자서 있을 수 있는데?”

그래도 요즘 너도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씀해주시지 않아? 나쁜 사람들이 자꾸 있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그냥 엄마 말 잘 들어요.”

알았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어디에서 자?”

나라 네 방에서 같이 주무셔야지? 우리 집에 방이 없잖아.”

. 나는 싫어. 이제 겨우 내 방을 가지게 되었는데. 할머니랑 같은 방을 쓰라고? 나는 정말 싫어.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절대 반대요. 알았어? 그렇게 할머니가 좋으면 아빠랑 한 방을 쓰라고 하시던가. 나는 내 방 절대로 할머니랑 같이 못 써.”

할머니가 아빠랑 어떻게 같이 자니? 코를 그렇게 고는 사람이데. 드르렁. 드르렁. 나라 너도 아빠랑 자는 거 안 좋아하면서 할머니한테 그러면 되겠니?”

. 아빠가 코를 너무 많이 골기는 하지. 앓았어요. 대신 나 가방 사줘요.”

가방은 무슨? 너 학교 갈 적에 잘 메고 다니는 가방이 있으면서 무슨 말이야?”

에이. 다른 애들은 다 새 가방 메고 다닌단 말이에요. 나 이거 초등학교 1학년부터 메던 가방이잖아요. 이렇게 오래 가방 메고 다니는 애는 없거든요. 엄마. 아빠.”

알았어. 할머니 계시는 동안 말 잘 들으면 가방 사줄게. 알았지?”

아니. 가방을 사주면 말 잘 들을게. 엄마 늘 그러고 약속 안 지켰잖아.”

당신이 나라에게 한 방 크게 먹었네.”

여보. 당신이 그러니까 나라가 이러죠.”

아빠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어요. 엄마는 이마를 짚고서 한숨을 푸우 크게 내쉬고는 입을 쭉 내밀고 겨우 고개를 끄덕였어요.

알았어. 유나라. 엄마가 가방을 사줄 테니까. 너 정말로 할머니 말 잘 들어야 해.”

당연하지. 내가 언제 엄마랑 약속하고서 어기는 거 봤어요? 한 번도 안 그랬지?”

늘 그러고 있어요. 너는. 엄마랑 약속 잘 안 지키고. 엄마는 마음에 안 들어.”

. 아무튼 나는 어떤 가방을 사야 할지 얼른 컴퓨터로 봐야지.”

유나라! 얼른 숙제를 해야지. 쟤는 또 무슨 가방을 산다고. 당신 탓이에요.”

그래도 어머니랑 친하게 지내면 좋지 뭐.”

아빠는 연신 싱글벙글 거리면서 밥을 먹었어요. 엄마는 다시 크게 한숨을 쉬고는 아빠의 앞에 앉아서 입을 쭉 내밀었어요.

 

아이고 우리 강아지도 마중 나왔나?”

. 할머니 오셨어요.”

할머니는 나를 다정하게 대하기는 하는데 저 냄새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목욕을 한참이나 하지 않은 냄새 같기도 하고, 콤콤한 냄새이기도 한데. 그래도 할머니가 좋으니까요. 아빠는 할머니가 가득 가지고 온 짐을 양 손에 번쩍 들고 차로 향했어요. 엄마도 평소에 나에게 말하는 것과 다르게 밝고 다정한 목소리로 웃어보였어요. , 평소에도 나한테 저런 표정을 좀 지어주지. 엄마는 나에게만 늘 도깨비 같다니까요?

힘든데 뭐 하로 다 나왔누. 그냥 있어도 되는 기를. 내가 혼자 택시 타고 가면 될낀데. 우리 귀여운 강아지까지 다 데리고 나왔나?”

엄마 힘들기는 뭐가 힘들어요? 그리고 나라가 엄마 더 많이 기다렸어요.”

맞아요.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 혼자 오시면 힘드시잖아요. 오호호.”

엄마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뭐 내가 우리 반 승민이 앞에서 조금 덜 뛰어다니는 거랑 비슷한 걸까요? 아무튼 그래도 엄마가 나한테도 저런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그러면 나도 엄마 말을 더 잘 들을 텐데 말이죠.

유나라! 너 정신 안 차릴래? 넘어질 뻔 했잖아.”

안 넘어졌잖아.”

이거 봐요. 엄마는 나에게만 버럭 화를 낸다고요. 입을 쭉 내밀고 아빠 뒤로 졸졸 따라갔어요. 그리고 나를 보며 머리에서 뿔이 난 엄마를 보고 메롱 하고 할머니 손을 꼭 잡았어요. 할머니 옆에 있으면 엄마가 절대로 나에게 화를 내지 않거든요.

 

유나라. 너 방에 안 있고 거실에서 뭐 해?”

? 그게.”

할머니가 와서 좋기는 했지만 할머니랑 단 둘이 방 안에 있는 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요. 할머니 때문에 방 안에 전부 다 냄새가 나는 것 같거든요.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기분은 별로 안 좋았어요.

할머니 냄새가 너무 많이 나잖아.”

유나라. 너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냄새가 나는 걸 어떻게 해?”

나는 입을 쭉 내밀었어요. 그렇다고 할머니가 미운 것은 아니지만, 냄새가 나는 것을 어떻게 하냐고요? 엄마에게 골을 내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오셨어요. 설마 내 말을 들은 것은 아니겠죠? 다행히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면서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어요.

아가 나라랑 같이 내가 잠시 밖에 다녀와도 되겠니?”

? . 어머니. 다녀오세요. 저도 같이 갈까요?”

아니야. 괜찮아. 나라야. 할미랑 산책 나가자. 우리 강아지.”

정말? 할머니 잠깐만요. 옷 좀 가지고 올게요.”

평소에 이 시간에 엄마는 절대로 못 나가게 하시는데 역시 할머니는 좋다니까요. 나는 엄마를 보고 혀를 낼름 내밀고 밖으로 나왔어요.

 

우리 나라는 할미 냄새가 많이 나누?”

? 할머니. 그게 아니라요.”

목욕도 깨끗하게 하고 왔는데도 우리 강아지한테 미안해서 어쩌누.”

그런 게 아니에요.”

할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시니까 괜히 막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아니 할머니 몸에서 냄새가 조금 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머니가 미운 건 아니거든요.

우리 나라 솜사탕 먹을려?”

안 돼요. 엄마가 화내요.”

괜찮아. 이 할미랑 있을 적에는 솜사탕 좀 먹어도 돼.”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돈을 내밀고 솜사탕을 건네주셨어요. 할머니께 솜사탕을 받으면서도 혹시나 엄마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나를 보고 있지 않나 궁금했어요.

이 할미가 우리 강아지랑 같이 안 살면 좋겠어?”

아니. 할머니는 이렇게 솜사탕도 사주니까. 같이 살면 좋겠어.”

이 할미가 냄새도 많이 나는데 어쩌누?”

괜찮아요. 우리 아빠도 발 냄새 많이 나는데 나는 사랑하거든요. 그러니까 나도 할머니 사랑할래. 아니 사랑해요. 대신 엄마 몰래 솜사탕 앞으로도 사주실 거죠?”

그라믄. 우리 강아지 먹고 싶다는데 내가 해줘야지.”

나는 할머니가 정말 좋아요. 콤콤한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를 정말로 사랑하니까요. 그리고 나도 우리 할머니가 정말 좋아요. 그리고 자꾸 맡아보니까 우리 할머니 냄새라서 냄새도 좋아요.

'☆ 소설 > 단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편] 워프  (0) 2014.12.10
[단편] 리안의 언덕은 언제나 푸르다  (0) 2014.12.10
[동화] 파란 물고기  (0) 2014.11.27
[동화] 멍뭉이  (0) 2014.11.26
[동화] 레몬 맛 사탕  (0) 2014.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