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영화] 부곡 하와이, 천천히 스미다.
[부곡하와이] 언론배급 시사회에 다녀와서 쓰는 리뷰입니다.
Good – 잔잔한 영화가 좋은 사람
Bad – 영화에서 명확한 답이 내려지기 바라는 사람
평점 - ★★★★
제목부터 독특한 [부곡 하와이]. 뭔가 지극히 한국적인? 영화이면서 적당히 사랑스러운 영화일 것 같기도 했는데요.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사실에 사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걱정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이후의 느낌은 정말 좋다. 이거였습니다. 그리 긍정적인 영화도 아니고, 행복한 결말을 내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도 그냥 좋다. 이런 느낌이 들었거든요. 정신병동에서 탈출한 두 여성의 로드 무비인 만큼 이 영화는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고 더욱 섬세하게 다가옵니다. 사실 감독님이 남자라는 사실은 굉장히 신기한 부분이었습니다.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서 관람한 영화인지라 감독님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드신 거구나. 여성의 입장을 그리기 위해서 얼마나 큰 고생을 하신 건지 어렴풋이 알 수 있어서 이런 작품이 나왔구나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신기합니다. 게다가 요즘 충무로에서 정말 만나기 어려운 여성 중심의 영화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뭐 영화에서 나오는 남성들이 너무 부족하고 모자라게만 나오기는 하지만, 뭐 그것도 반대로 남성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여성들이 겪는 일과 같으니 말이죠. 여성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리고 세밀하게 그려냈기에 [부곡 하와이]는 더욱 아름답습니다.
사실 [부곡 하와이]의 제목을 들었을 때 그 장소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미지는 오직 하나 [무한도전]에서 나왔을 때 뿐이었습니다. 그 만큼 낯선 이 장소가 주는 느낌이 색다릅니다. 영화에서 ‘부곡하와이’라는 장소는 두 여자가 가야만 하는 이상향으로 그려집니다. 실제로는 낡고 허름한 곳이라도 아름답게 말이죠. 그런데 이 낡고 허름한 곳, 이 환상과 같은 곳이 주는 느낌이 색다르고 묘합니다. 아름다울 수도 있고, 가장 꿈과 같은, 그리고 한때 아름다웠던 곳. 결국 두 여주인공이 가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웠던 과거로 향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죠. 두 여자의 여정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정말 별 것이 없습니다. 아, 이게 로드무비이구나. 로드무비란 이렇게 찍는 거구나. 하고 그냥 그 모든 여정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여정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것이 참 신기하고 묘하게 다가섭니다. 억지로 꾸며낸 길이 아닌, 정말로 두 여자가 직접 움직이는. 그러면서도 차량이 계속 변화하기에 새롭게 다가올 수 있는 장소로 그려지거든요. 아름답고 세밀한, 그리고 묵묵히 지나야 하는 오랜 여정이 풍경처럼 스쳐갑니다. 창녕이라는 낯선 장소를 배경으로 택한 것 역시 영화를 더욱 그림처럼 만들어주는 부분입니다.
까칠하고 투박하지만 은근히 잔정이 있는 것 같은 ‘자영’ 역은 ‘박명신’이 맡았는데요. 그 동안 여러 장소에서 만났던 그녀를 다시 만난다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특히나 그녀가 거의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상태로 드러낸 민낯의 힘이 강해서 더욱 놀랐습니다. 이미연이나 최지우 같은 피부는 아니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고 빛나는, 정말 이게 사람이구나. 이런 느낌을 주는 피부였거든요. 검게 그을리고 주름까지도 세세하게 그려진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됩니다. 이게 가짜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 같은 느낌을 주거든요. 상처를 입은 채로 정신없이 걸어가는 그녀가 안쓰러운 것은 그녀가 정신병동에 갇힌 것이 그녀의 의지가 아니라는 점 때문일 겁니다. 그 누구보다도 모성애가 강한 한 여자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반기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정신병동에 갇혀 있는 거죠. 자신을 찾아야 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자영’은 자신을 찾지 못한 채, ‘자영’이라는 존재 그 자체에 의미를 갖기 보다는 누군가의 남편이고, 누군가의 어머니인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가녀린 그녀의 존재에서 큰 힘이 나오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기는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더 약하고 금세 뿌리를 드러내게 됩니다.
순수하면서도 까칠한, 그리고 왠지 외로워보이는 소녀 ‘초희’ 역은 ‘류혜린’이 맡았습니다. [써니]에서 욕쟁이로 나왔다던 그녀는 전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낯설었습니다. 정말로 어린 아이 같은 그녀의 모습을 보다 보면 정말로 안쓰럽고 꼭 안아주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녀 역시 자신의 의지로 정신병동에 갇힌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의지로. 그것도 자신을 내치기까지 하는 어머니의 의지로 정신병동에 갇혔기 때문이죠. 제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 것인지 개인적으로는 ‘자영’보다는 ‘초희’의 입장이 더욱 공감이 가고 안타까웠습니다. 정신병동 원장에게 강간까지 당하면서 살아가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가장 약한 존재. 가장 보호를 받아야 하는 어린 소녀는 결국 세상에서 그 누구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고 자신 혼자서 버티고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맙니다. 말도 안 되는 나이에 말이죠. 아직 충분히 사랑을 받고.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나이에. 그 어린 나이에 홀로 서야만 하는 그녀가 ‘자영’을 만나고 자연스럽게 그녀와 같이 떠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동행이라기 보다는 모성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됩니다. 가녀린 존재, 안쓰러운 존재로의 ‘초희’가 더욱 안타깝고 손을 꼭 잡아주고 싶은 존재입니다.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처를 입은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나아가는 이야기. 그렇지만 행복하기만 하지 않은 이야기. [부곡하와이]는 대충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묘한 서러움이 이 영화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부분일 텐데요. 이미 망가진 세상, 자신들의 꿈이 되기에는 어렵고, 자신들을 보호해주기도 어려운 이상향을 위해서 향해가는 가련한 두 존재의 모습을 보면 세상에 과연 누가 그들의 편인가? 하는 가장 안쓰러운 물음이 던져집니다. 그리 화려한 영화도 아니고, 우리가 쉬이 아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도 아니지만 [부곡하와이]를 보고 나니, 아 이런 영화를 정말로 우리가 봐야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잔잔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두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길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동행하는 모습은 한국 영화에서 쉬이 발견할 수 없는 감정이었으니까요. 특히나 여성을 중심으로 내세우면서 정말 여성이 주인공이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 역시 [부곡하와이]가 지닌 미덕일 겁니다. 오늘날 수많은 남자 영화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테니 말이죠.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무엇보다도 쓸쓸한, 사라진 신기루 같은 이상향을 향해 가는 영화 [부곡하와이]였습니다.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다음 우수블로거 권순재 ksjdoway@hanmail.net
Pungdo: 풍도 http://blog.daum.net/pungdo/
맛있는 부분
하나 – 세발자전거?를 타고 떠나는 여행
둘 – 성인용품 판매 집사에 통쾌한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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