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정식의 사정
“그러니까 나를 그렇게 오랜 시간 좋아했다는 거죠?”
“네.”
우리의 질문에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답하는 정식은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왜 그렇게 봅니까?”
“신기해서요.”
“뭐가요?”
“팀장님 완전 무섭잖아요.”
“제가요?”
정식이 자신을 가리키면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자 우리는 입을 내밀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내가 언제요?”
“늘 그러셨어요.”
억울해하는 정식과 다르게 우리는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정식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 어때요? 이제는 이렇게 저에게 잘 해주고 완전 다정한 그런 분인데. 그거면 되는 거죠.”
“에이.”
정식은 우리의 손을 보면서 한숨을 토해냈다.
“내가 더 티를 낼 걸 그랬습니다.”
“그럼 이상하게 봤을 걸요?”
“네?”
“그때는 애인이 있었으니까요. 팀장님이 그렇게 나오면 분명히 저 팀장님을 이상하게 봤을 거라고요.”
“어렵군요.”
우리는 자세를 바꿔서 정식을 보면서 아랫입술을 물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정식은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왜 그렇게 웃습니까?”
“팀장님 양심도 없는 거 아시죠?”
“네.”
“어머. 알고 있었어.”
정식은 가볍게 우리의 팔을 밀었다.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정식의 품에 안겨서 그의 체온을 느꼈다.
“그런데 팀장님.”
“네? 말해요.”
“내가 왜 좋았어요?”
“그냥 좋았습니다.”
“에이.”
정식의 대답에 우리는 입을 내밀고 검지를 흔들었다.
“그런 게 어딨어요? 사람이 좋으면 왜 좋은지. 자꾸 그렇게 말도 안 해주고 피하려고만 하는 거 같아.”
“진짜니까요.”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냥 서우리 씨를 보면 좋았습니다. 도대체 왜 좋은 건지 모르겠는데. 그냥 보면 무조건 좋았습니다.”
“그게 뭐야.”
우리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괜히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아무런 이유도 없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이제 서우리 씨도 내가 좋습니까?”
“당연하죠.”
우리는 정식의 배를 만지면서 미소를 지었다. 정식은 살짝 몸을 옆으로 틀어서 우리를 품에 안았다.
“답답해.”
“좋다.”
“답답하다니까요?”
“편해요.”
정식의 나른한 목소리에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토해내고 정식의 가슴에 입을 맞췄다.
“다 얘기 해줄 수 있어요?”
“뭘요?”
“나를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뭐 그런 거요.”
우리의 말에 정식은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것까지 이야기를 하기에는 살짝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꼭 듣고 싶습니까?”
“네. 꼭 듣고 싶어요.”
우리가 힘을 주어 대답하자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하여간 바라는 거 많아.”
“그러면 안 돼요?”
“됩니다.”
정식은 우리의 어깨를 매만지며 입을 살짝 내밀었다. 우리는 싱긋 웃으며 그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입술도 예쁘고.”
“지금 나 유혹하는 거죠?”
정식이 자세를 고쳐 자신의 위로 올라가자 우리는 가슴을 가리면서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나를 왜 좋아했는지 그거부터 우선이에요.”
“이거 고문이야.”
“그렇죠?”
살짝 성난 아래가 느껴지자 우리는 더욱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정식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내가 언제부터 서우리 씨를 좋아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좋아한 건지 다 이야기를 해줄게요.”
“들을 준비 됐습니다.”
정식은 우리의 옆에 누워서 우리에게 팔을 내밀었다. 우리는 정식의 팔을 베고 누워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정식은 한숨을 살짝 쉬고 입술을 내밀면서 뭔가 생각하다가 웃음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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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젠장.
정식은 자신도 모르게 서우리라는 여자를 너무 오래 보고 있다는 사실에 미간을 모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자신도 왜 이렇게 멍청하게 행동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상한 것은 자꾸만 그 여자에게 눈이 간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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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거네.”
“뭐래.”
지웅의 말에 정식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 여자가 얼마나 어린 줄 알아? 스물넷이다. 스물셋이라고 했나? 아무튼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왔어. 그런데 내가 그런 여자를 좋아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냐? 말도 안 되지.”
“변태.”
“뭐래?”
“그렇게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거야?”
지웅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정식의 팔을 때렸다. 정식은 입을 내민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절대로 아니야.”
“뭐가 또 절대로 아닌데?”
“아무튼 아니야.”
정식의 대답에 지웅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너 진짜로 좋아하는 구나?”
“아니라고.”
“아니긴. 지금 눈에 다 보이는데.”
지웅은 웃음을 참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정식은 그런 지웅을 보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천하의 조정식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데 퍽이나 아니겠다. 좋아하면 좋아 한다고 하지 머가 문제야?”
“애인이 있어.”
“아. 애인이 있는 사람을 좋아해.”
지웅의 말에 정식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지웅은 한숨을 토해내고 입을 살짝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일단 나만 알고 있을게.”
“네가 퍽이나 그러겠다.”
“진심.”
지웅이 오른손을 들고 말하자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한심해.”
“뭐가 한심해?”
“애도 아니고.”
“뭐? 남자 나이가 삼십 대가 되면 짝사랑 못 한다고 해?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에 있다고 그러냐?”
“그래도 한심한 거지.”
정식은 소주를 들이켜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골키퍼가 있다고 공이 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오래된 키퍼가 있단다.”
정식은 쓴웃음을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귀었대.”
“대단하네.”
지웅은 정식의 눈치를 살짝 살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지?”
“그래서 포기한다고?”
“포기는 무슨.”
정식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소주를 한 잔 더 따랐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거야. 나랑 여덟 살 차이가 난다. 나를 뭐 남자로나 보겠냐? 내가 그렇게 말을 하면 뭐 그런 변태가 다 있나. 그런 생각을 할 거다. 절대로 그런 이미지를 주면 안 돼.”
“뭐래.”
지웅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맥주를 들이켰다. 정식은 혀로 이를 훑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조정식 네가 그런데 한 번이라도 나에게 여자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어?”
지웅의 물음에 정식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너 한 번도 네 속내 같은 거 오늘처럼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 녀석이야. 그런 녀석이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정말로 좋아한다는 거잖아. 일단 뭐라도 해보는 게 좋지 않아?”
“아니.”
정식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히 그러다가 서우리 씨가 더 이상하게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해? 이거 어차피 나 혼자만의 감정이야. 내가 그냥 모르는 척을 하고 넘겨버리면 되는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이 감정을 느끼게 할 생각이 없어. 그건 너무나도 이기적인 거니까. 나 혼자 마음이 편하려고 그러는 거니까.”
“오. 조정식 멋있어.”
지웅의 대답에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살짝 헛기침을 하고 술을 들이켰다.
“술이 달다.”
“달겠지.”
지웅은 입술을 꾹 다물고 정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원한다.”
“미친.”
“그 짝사랑 계속 유지해. 그럼 언젠가 무슨 기회가 생길지 누가 알아? 언젠가 기회가 생길 거다.”
“기회라.”
정식은 한숨을 토해내고 혀로 아랫입술을 훑었다. 언젠가 그런 기회가 생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회 같은 것이 그가 원한다고 생길 수 있는 것은 아닐 거였다.
“두 사람 정말 좋아 보이더라.”
“하여간. 이 새끼.”
정식이 힘이 없이 대답하자 지웅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회사에서 얼마나 티를 내는지 알아?”
“티도 내?”
“어.”
정식의 대답에 지웅은 자신도 목이 타는지 술을 들이켜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어.”
“뭐가 그럴 수 있어?”
정식은 웃음을 터뜨린 채로 고개를 숙였다.
“답답하다.”
“인간 조정식. 이제 첫사랑을 하는 구나.”
“첫사랑은 무슨.”
“너 이게 첫사랑이야.”
지웅의 말에 정식은 순간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내가 나이가 몇인데 이제 첫사랑이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
“네가 그 동안 연애를 하면서 이렇게 고민하고 그런 적 있어? 너 한 번도 그런 적 없는 거잖아.”
“그건.”
“아무튼 나는 네가 이제야 첫사랑을 하는 거라고 생각을 한다. 조정식 인생에 이제 첫사랑이 시작을 하는 거지.”
지웅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좀 다녀온다.”
“그러던지.”
정식은 술을 혼자 따랐다. 그리고 멍해졌다.
“첫사랑이라고?”
지웅의 말이 옳았다. 그 동안 연애를 하면서 이렇게 설레거나 그런 적이 없었다. 정식은 허무한 미소를 지었다.
“뭐야.”
애도 아니었다.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제 첫사랑이라는 게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도대체 뭐냐고.”
자신이 생각을 해도 이상했다. 그런데 이 순간에도 자꾸만 웃음이 나오는 게 신기했다. 자신은 정말로 서우리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였다.
“미친.”
정식은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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