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장. 그들의 선택 3
“왜 그러죠?”
“당연한 거 아니에요?”
지아의 반문에 진아는 미간을 모았다.
“그게 우리가 구조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인데. 그걸 당신이 그냥 가지고 가는 건 안 되는 거죠.”
“그냥 가지고 간다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 섬은 구조를 받을 가능성이 낮으니까 다른 섬으로 가지고 단다는 거고요.”
“아니요.”
진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지아를 보며 서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너무 막무가내 아니에요?”
“뭐라고요?”
“왜 그렇게 혼자 다 하려고 해요?”
“성진아 씨.”
“나는 이 섬의 사람들을 지킬 거예요. 그건 강지아 씨도 이해를 해야 할 상황인 거 같은데요?”
“왜 그래?”
지웅은 진아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이 섬에서는 더 이상 전파가 터지지 않는 거 진아 씨도 알잖아. 그러니까 강지아 씨가 이 전화기를 가지고 가서 다른 섬에서 실험을 해야 하는 거야. 그래야 우리가 구조가 될 가능성도 커지고.”
“아니요.”
진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진아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태도를 취하자 지웅은 입을 꾹 다물었다.
“사무장님. 지금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모르시는 거예요? 그걸 잊으시면 안 되는 거죠?”
“잊는 게 아니라.”
“저는 반대에요. 무조건 반대에요.”
진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지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그렇게 그냥 왔어요?”
“네. 어쩔 수 없죠.”
윤태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우리는 이 섬에서 나가려는 사람이니까. 이 섬에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거죠.”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어쩔 수 없죠.”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이 섬에서의 생활은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 않으면 이어나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자신도 이들에게 절대로 강요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저도 이미 알고 있고 이윤태 씨도 알고 있잖아요. 섬의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이 있다는 걸요.”
“그렇죠.”
“그러니까 이해를 해야죠.”
지아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태는 그런 지아의 손을 꼭 잡았다.
“왜 그래?”
“뭐가요?”
“성진아 씨.”
“사무장님이야 말로 이상해요.”
지웅의 물음에 진아는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시는 거예요? 자칫 잘못하다가는 모두가 죽을 수도 있다고요.”
“이 섬에 나가는 사람들이 꼭 가지고 가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신호를 제대로 받을 수 있다고요.”
“누가 나갈 수 있다고 해요?”
“뭐라고요?”
“못 나갈 수도 있잖아요.”
“그건.”
진아의 지적에 지웅은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이었다. 섬을 나가다가 죽을 가능성도 제로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걸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죠.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사람들이 그래야죠.”
“그럼 우리는 왜 가지고 온 겁니까?”
“뭐라고요?”
“우리도 전화기를 가지고 온 거잖아요?”
“그건.”
진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웅의 말이 옳았다. 자신들도 이것을 가지고 오면 안 되는 문제였다.
“우리는 가지고 와도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가지 못하게 하는 건 뭐죠?”
“그래도 여기는 섬에 남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
“그건 모르죠.”
“네?”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진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지웅의 말처럼 이 섬을 나가는 사람의 수가 늘어난다면 자신이 더 이상 우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그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성진아 승무원이 지금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도 두려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새로운 가능성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가능성. 그게 우리를 여기까지 살게 했으니까요.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여기가 미국 땅인 것도 몰랐을 겁니다.”
“그게 달라지는 건가요?”
진아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모든 상황이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는 것 같았다.
“현명하게 생각하세요.”
“아니요.”
“선배님.”
“여기에서는 현명이 없어요.”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저 본능이죠.”
“본능이라니.”
진아는 머리에 손가락을 넣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 그대로입니다. 본능이요. 여기에서는 더 이상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는 사무장님은 왜 그러시는 건데요?”
“사무장이니까.”
지웅은 검지를 들고 씩 웃었다.
“나는 최후의 보루에요.”
“사무장님.”
“그만.”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런 문제가 벌어진 상황에서는 더 다툴 것도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우리는 그저 이 사람들을 도우는 것이 전부인 거죠.”
“하지만 우리는 승무원이에요.”
“그렇죠.”
지웅은 입을 내밀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웅의 너무나도 여유로운 모습에 진아는 한숨을 토해냈다.
“선배님이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지금 승무원들이 선배님을 존경하는 거 모르세요?”
“어?”
“그렇게 오너 딸하고도 싸우신 분이. 지금은 왜 이렇게 순순히 포기하시는 건지. 이해가 안 가요?”
“그럼 뭘 할까요?”
“뭐라도 해야죠.”
“아니요.”
지웅은 고개를 저었다. 이 상황에서 뭐라도 하는 사람은 지아였다. 자신들은 그저 그들을 방해하지 않는 것. 그게 전부였다. 그들을 방해하는 것은 그나마 가능성까지도 망가뜨리는 거니까.
“자기가 왜 화를 내는 건지도 알고 있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알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서 물러날 수는 없어요. 나는 승무원이고. 승객들과 싸울 수 없어요. 승객들을 도와야죠.”
“승객들이 잘못된 생각을 해도요?”
“그걸 누가 압니까?”
“그건.”
진아는 침을 꿀걱 삼켰다. 아무도 모르는 거였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사실을 가지고 지웅이 말을 하는 거였다.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아는 한숨을 토해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떻게 할 거에요?”
“선배님은 그들을 도우실 거죠?”
“네.”
지웅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옳아요.”
“옳다니.”
“승무원이니까.”
지웅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나도 한 사람의 승객이라면 말릴 거예요. 하지만 나는 승무원이니까. 이런 일을 가지고 승객들이랑 싸울 수 없어요.”
“다른 승객들이 말리면요?”
“몰래 줘야죠.”
“몰래요?”
진아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지웅의 말이 옳아도 이건 아니었다. 너무 위험한 거였다.
“그러다 우리의 전화기가 사라지면요?”
“그게 있다고 달라지나요?”
“네?”
“하나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진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지웅의 말이 옳았다. 우리가 지금 전화기를 들고 있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었다.
“만일 누군가가 우리를 구조하러 올 거라면 올 겁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메시지를 받은 것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누가 우리를 구조하러 오지 않을 거라면 우리가 전화를 해도 오지 않을 거에요.”
“정말로 그럴까요?”
“그럼요.”
진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님 뜻을 따르죠.”
“고마워요.”
지웅의 인사에 진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뭐가 더 옳은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선배가 이해가 안 가요?”
“왜?”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 승객을 챙겨요?”
진아는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위험하잖아요.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우리가 우선이어야 하는 건데. 도대체 왜 그러세요?”
“승무원이니까.”
“하지만.”
“비행기 사고니까.”
지웅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눈을 찡긋했다. 진아는 한숨을 토해냈다. 승무원. 자신도 승무원이었다.
“승무원은 승객의 안전이 우선이어야 하니까.”
“그렇죠.”
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승객들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 진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선배는 대단하시네요.”
지웅은 가만히 어깨를 으쓱했다. 진아는 한숨을 토해냈다. 너무 답답했지만 지웅의 말이 옳았으니까.
“할아버지.”
“왔니?”
영애가 오자 대통령의 장인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왜 왔는지 아시죠?”
“그래.”
대통령의 장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애는 그런 할아버지를 보고 입을 내밀고 자리에 앉았다.
“아빠를 도와줘요.”
“재희야.”
“부탁이에요.”
이런 부탁을 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왜 그러니?”
“아시죠?”
“뭘?”
“엄마요.”
이미 다 알고 온 것일까?
“무슨 말이냐?”
“할아버지.”
대통령의 장인은 미간을 모았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침을 꿀걱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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