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장. 떠날 준비 3
“미친 거야.”
“뭐가요?”
“재희야.”
대통령은 영애를 부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대통령의 반응에 영애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빠가 지금 너무 걱정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 이 상황. 저라도 나서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아요. 누구라도 한 사람. 아빠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더 있어야 하는 거라고요.”
“내가 할 수 있어.”
대통령은 힘을 주어 답했다.
“내가 이미 다른 방법을 생각을 했어. 굳이 네가 나를 돕겠다고 그렇게 너를 희생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니요.”
재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희생이나 뭐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거였다.
“어차피 아빠 딸인 거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다들 알고 있는 거고.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에 대한 문제인데. 저는 조금 더 현명하게 쓰려고요. 아빠를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걸 할 거예요.”
“딸. 그건 엄청 힘든 길이야.”
대통령의 말에 영애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정말 힘들어. 모든 것을 다 보여줘야만 하는 거야. 거기에서 네가 어떤 사람인지 그런 것을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아. 다들 그저 너를 먹잇감으로만 생각을 하고 괴롭힐 거야. 너도 알아야 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그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에요. 내가 할 수 있어요. 아빠도 알잖아요.”
“그건.”
대통령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이 상황의 반전은 누가 하더라도 쉬운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은 한숨을 토해냈다.
“네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아빠를 위해서 이래요.”
“뭐라고?”
“그리고 제 신념을 위해서 이러는 거예요.”
딸의 표정에 단호함이 떠오르자 대통령은 한숨을 토해냈다. 딸을 지지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네 할아버지는 왜 너를 돕는다고 하는 거니?”
“원래 저를 좋아하셨어요.”
재희는 눈을 찡긋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런 딸을 보며 대통령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네 엄마는?”
“저도 집을 나오려고요.”
“뭐?”
대통령의 얼굴이 곧바로 구겨졌다.
“돌아가.”
“아빠. 저도 이제 아이가 아니에요. 대학교도 졸업했고요. 이제 정말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해요. 설마 아빠는 제가 시집이나 가야 한다고. 뭐 그런 말씀을 하려고 하시는 건 아니죠?”
“누가 그런 말을 하려고 해? 그런 게 아니지만 너는 지금 네 입장이라는 게 있잖아. 무조건 나를 따르면 안 되는 거야. 그러다가 결국 네가 모든 것을 잃으면?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어.”
“아니요.”
재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엄마와의 관계를 잃더라도 지금 자신이 지닌 신념은 지켜야만 했다.
“저는 저를 믿어요.”
“딸.”
“그리고 아빠를 도울 거예요.”
영애의 말에 대통령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줄 사람이 생긴 거였다.
“그래도 큰 배로 가죠.”
“아니요.”
지웅의 제안에 지아는 고개를 저었다. 무조건 작은 배로 가야 했다. 그게 이 섬의 사람들을 위해서도 옳았다.
“몇 사람이 남을지 모르고요. 또 그 다음에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고요. 가장 작은 배면 충분해요.”
“하지만 이곳의 바다는 원래 우리가 있던 섬의 바다와 달라요. 조금 더 거치니까 위험할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우리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파도는 이상할 정도로 더 거칠어졌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어차피 가기로 한 거잖아요. 그런 거면 가야만 하는 거예요. 그건 사무장님도 동의하시는 거죠?”
“그럼요.”
지웅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우리는 미간을 모으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혀를 내밀고 심호흡을 했다.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이 섬에서 나가면 어떤 기회가 생길 거 같아요.”
“그럴 겁니다.”
지웅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아랫입술을 모았다. 긴장되는 일이었다.
“식량은 이게 전부에요?”
“네. 전부에요.”
윤태는 한숨을 토해냈다. 아무리 이전 섬과 상황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너무 안일한 준비일 수도 있었다.
“이러다가 무슨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우리들도 이미 알고 있잖아요. 이번 여정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걸요. 강지아 씨. 조금 더 준비를 하는 게 어때요?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다칠 수도 있어요.”
“아니요.”
지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전 섬에서 여기에 오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음 섬으로 가는 것 그렇게 힘들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이것으로도 충분해요. 그렇게 오래 표류하면 안 되는 거죠.”
“하지만.”
“나 못 믿어요?”
“믿어요.”
윤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아는 씩씩한 표정으로 짐을 실었다. 어차피 자신이 시작한 일이니 책임을 져야 하는 거였다.
“무조건 성공할 거예요. 무조건.”
“안 돼.”
“왜?”
“누나들 선택이 아니잖아.”
시우의 단호한 말에 시인과 시안은 침을 삼켰다.
“나는 나가려는 이유가 있어. 하지만 누나들은 그저 내가 나가려고 해서 나가는 거잖아. 그건 안 되는 거야.”
“왜 안 되는 건데?”
시안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왜 안 되는 거야? 우리도 가야 할 거 아니야. 우리도 네가 가서 무슨 일을 당할지 알아야지.”
“무슨 일은 무슨 일?”
시우는 화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물끄러미 시안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알고 있어. 누나가 나를 많이 아낀다는 거. 하지만 이거 오버야.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거라고. 그리고 어차피 강지아 씨도 있고 다른 사람들도 있어. 이 상황 그렇게 위험하지 않아.”
“아니 위험해.”
시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너무 위험하다고.”
“누나.”
“그러니 나도 갈 거야.”
“위험한데 도대체 왜 가려고?”
시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두 사람은 위험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간다는 거였다.
“누나들이 그러니까 내가 누나들과 같이 가고자 하지 않는 거야. 누나들은 나를 애로만 생각하니까.”
“애잖아.”
“아니.”
시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누나들과 이런 이야기를 가지고 입씨름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갈 거야. 그리고 누나들은 가지 않아. 이미 식량도 거기에 맞춰서 쟀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거야 더 하면.”
“배도 이미 정했어.”
시우가 말을 끊자 시안은 침을 삼켰다. 시우는 머리를 마구 헝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만 갈 거야. 나만.”
시우는 이 말을 남기고 멀어졌다. 시안은 머리를 헝클며 고개를 저었다. 시인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할 겁니까?”
“사무장님. 정말.”
진아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모았다.
“이 섬에 그냥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거. 저보다 사무장님이 더 잘 아시는 거 아니에요?”
“그럼 이 섬으로 왜 온 겁니까?”
“그건.”
진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원래 섬에서는 아무런 가망성도 없어서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이 섬으로 와서 그나마 여기가 어느 곳인지 안 겁니다. 다음 섬으로 간다면 또 다른 것을 알 겁니다.”
“그래도 너무 위험해요.”
“그럼 내가 가겠습니다.”
“뭐라고요?”
지웅의 말에 진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아가 당황하자 지웅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씩 웃었다.
“왜?”
“아니.”
“어차피 두 사람이 가야 해. 이곳에 더 많은 사람이 남는 것보다는 다른 섬에 가는 게 나으니까.”
“너무 위험해요.”
진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제가 남을게요.”
“안 됩니다.”
“뭐라고요?”
“여기 남는 사람들. 성진아 승무원이 다 감당할 수 없을 거예요.”
“그건.”
진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일단 태욱만 생각해도 혼자서 감당하는 것은 불편했다. 진아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럼 저랑 남으시면 되잖아요.”
“여기 섬이 네 개인 건 알죠? 일단 확인된 게.”
“네. 알죠.”
“그리고 승무원도 넷이고요. 우연처럼.”
진아는 한숨을 토해냈다. 지웅의 말이 옳았다. 승무원들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였다. 진아는 미간을 모았다.
“조금만 더 생각해도 돼요?”
“아니요.”
“사무장님.”
“생각할 시간 없습니다.”
지웅은 단호했다. 이런 단호한 지웅의 모습에 진아는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도대체 사무장님이 왜 그러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적어도 어떤 기회는 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무슨 기회요? 무슨 선택이요?”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지금 항공기 사고로 조난당한 게 어떤 이유가 있는 겁니까? 그런 거 하나도 없는 겁니다.”
“하지만 사무장님.”
“그런 거 따질 시간 없습니다. 그럼 내가 갑니다.”
진아는 한숨을 토해내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 섬을 떠나는 것 너무나도 위험한 거였다. 하지만 남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미치겠네.”
“부탁입니다.”
지웅의 말에 진아는 한숨을 토해냈다.
“사무장님 정말 미운 거 알죠?”
“네. 알고 있습니다.”
“선배라서 가는 거 알죠?”
“네. 알고 있어요.”
지웅의 미소에 진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없었다.
“나는 성진아 씨를 믿어.”
“믿어서 그런 거 맞죠?”
진아의 물음에 지웅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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