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잘못된 자존심
“이걸 왜?”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서정에게서 교복을 받은 아정은 입을 내밀었다. 이걸 도대체 왜 가지고 가라고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내가 이걸 배달을 하더라도. 왜 가지고 가는지. 그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너는 몰라도 돼.”
“뭐라고?”
아정의 반응이 영 미덥자 서정은 아정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이 정도면 되는 거지?”
“이상해.”
아정은 볼을 잔뜩 부풀리고 서정의 손을 밀어냈다.
“오빠 내가 그렇게 용돈을 달라고 해도 늘 무시했잖아. 이거 도대체 뭔데? 이거 갑자기 왜 학교에 가지고 가라고 하는 건데?”
“너 무슨 말이 그렇게 많니?”
엄마가 팔짱을 끼고 나타나자 아정은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늘 오빠 편이지.”
“잘 하니까.”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엄마가 미간을 모으자 아정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아중은 가방을 챙겨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이 좋은 모자 두고 갑니다.”
“너는 무슨 말을?”
“가요.”
아정이 집을 나가고 엄마는 차를 마시며 고개를 저었다.
“쟤가 왜 저래?”
“엄마랑 나 질투하는 거지 뭐.”
“질투는.”
엄마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사람에 그토록 관심이 없는 우리 아들이 무슨 일일까? 그렇게 교복을 주고 싶었어?”
“뭐.”
서정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혀를 살짝 내밀었다.
“그냥 열심히 하는 애한테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고 하니까 그냥 해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냥 내가 하면 되는 거니까. 엄마는 내가 교복을 준 게 싫은 거예요? 설마?”
“그냥.”
엄마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웃었다.
“그래도 우리 아들이 입던 교복인데. 차라리 돈을 주면 줬지. 굳이 그 교복을 줘야 하는 건가 싶어서. 그것도 추억인데.”
“아정이에게 다시 가지고 오라고 해?”
“됐어.”
엄마는 서정의 어깨를 가볍게 때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럼 엄마는 출근.”
“네. 다녀오십쇼.”
서정은 장난스럽게 경례를 붙이고 씩 웃었다.
“그거 뭐야?”
“우리 오빠 교복.”
“뭐라고!”
지수가 놀라서 목소를 높이자 아정은 미간을 모았다. 그리고 입술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는.”
“아. 미안.”
지수는 입을 막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냥 신기해서 그러지.”
“신기할 일도 없다.”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저었다.
“이거 학교에 가져가래.”
“왜?”
“모르지.”
“뭐지?”
지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씩 웃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거 나한테 팔아라.”
“뭐?”
“아니. 학교에 가서 그냥 오빠가 안 주기로 했다고 하고. 그냥 그거 나한테 팔면 안 되는 거야? 응?”
“아니. 뭐.”
지수가 이렇게 말하니 아정은 괜히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도대체 왜 가지고 가는 건지도 말을 해주지 않고 이렇게 심부름을 하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 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진짜?”
“응. 진짜.”
아정은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너는 아직도 교복 안 입니?”
“죄송합니다.”
과학은 혀를 차며 원희를 한 번 보고 고개를 돌렸다. 원희는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윤 선생. 그 자기 반 학생. 걔 교복 안 입어?”
“아. 그거요.”
담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무리 말이야. 그런 식으로.”
“선생님!”
과학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담임은 곧바로 미간을 모았다. 그제야 과학은 교무실이라는 사실에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렇다고.”
“네. 알겠습니다.”
담임은 겨우 미소를 지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혀를 살짝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아정아. 서정이가 교복 안 줬니?”
“네? 교복이요?”
아정은 괜히 뜨끔한 기분이 들었다. 담임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주위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게 원희를 줘야 하거든.”
“전학생이요?”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고.”
“아. 네.”
“걔가 형편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라서. 뭐. 이제 고 3인데 교복을 새로 사는 것도 되게 이상하고.”
“그렇죠.”
아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거 그러니까.”
그냥 지수에게 줬다고 말을 해야 하는 건데 그렇게 말을 했다가는 지수에게도 그다지 좋지 않을 거 같았다.
“제가 버렸어요.”
“뭐라고?”
“오빠랑 사이가 안 좋아서요.”
“그래?”
담임의 얼굴에 안타깝다는 시선이 지나갔지만 아정은 그냥 밀고 나가기로 했다. 다른 말을 할 것도 없었고.
“그래. 알았어. 오빠에겐 고맙다고 하고.”
“네. 알겠습니다.”
아정은 담임의 뒷모습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저기.”
교실을 나가던 원희는 아정을 보고 미간을 모았다.
“할 말 있어?”
“미안.”
아정의 사과에 원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아니. 그게.”
아정은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토해냈다.
“오빠 교복 내가 가지고 오기로 했는데 안 가지고 온 거거든.”
아이들의 공기가 달라진 것을 들으면 원희는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후 아정을 응시했다.
“그게 뭐?”
“어?”
“나랑 상관이 있나?”
“아니.”
“그럼.”
원희는 그대로 아정을 비켜서 나갔다 .아정은 당황스러웠다. 어차피 담임에게 듣기 전 사과를 하려는 건데 무슨 태도가 저런 건지. 왜 저렇게 자신에게 냉정하기만 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야! 전학생!”
아정의 소리에 복도 전체가 조용해졌다.
“너 뭐야?”
“뭐가?”
원희는 천천히 돌아섰다.
“무슨 태도가 그래?”
“뭐라고?”
아정의 말에 원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정을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미간을 모았다.
“너는 늘 사랑만 받았네.”
“뭐라고?”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네.”
“뭐라는 거야?”
“됐어.”
“미안하다고!”
아정의 고함에 원희는 다시 돌아서려다가 멈칫했다.
“그 교복 내가 사줄게!”
이상한 자존심. 아정의 외침에 원희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아정을 응시했다.
“뭐라고?”
“그거 교복. 우리 오빠 거 입기로 했다며. 그거. 그거 내가 사준다고.”
“됐어.”
원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됐다.”
원희가 그대로 다시 돌아서자 아정이 그를 쫓아갔다. 그리고 원희의 앞에 서서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저었다.
“너 뭐가 그렇게 잘났어?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잘나서 혼자 그렇게 도도하게 행동하는 건데? 내가 미안하다고 하잖아. 그러면 적어도 무슨 말이라도 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너 이상해.”
“아이고 고맙습니다.”
“무슨?”
갑자기 원희가 빈정거리며 고맙다고 하자 아정의 눈이 흔들렸다. 원희는 싸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 지금 뭘 했어?”
“뭘 하다니?”
“여기 안 보여?”
“어?”
“여기 복도 안 보이느냐고.”
원희의 말에 그제야 아정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수업 전. 복도의 수많은 아이들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래. 나 축구 하다가 엄마 아프고. 아버지 일하러 가셔서 여기에 전학 왔어. 더 운동할 돈이 없어서 왔어. 그래. 나는 그런 거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그런데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는 싫어. 그래서 말을 하지 않았어. 그런데 네가 그걸 이 아이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한 거야.”
“그건.”
아정은 무슨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일부러 말을 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거야 네가 내 말을 무시하니까.”
“그래. 내 탓이겠지.”
원희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그런 애니까.”
“뭐라고?”
“너는 절대로 잘못하지 않는 애잖아. 네가 잘못해도. 실수해도. 늘 다른 사람 핑계를 대는 거잖아. 너는 지금도 네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내 핑계를 대고 있어. 내가 잘 못해서 그러는 거라고 말이야. 그런데 애초에 네가 나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관심을 갖지 않았으면 되는 거 아닌가?”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주먹을 말아쥐었다. 분했다. 모두 다 원희의 말이 옳아서 더욱 분했다.
“뭐. 덕분에 이 학교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지겠네.”
원희는 아정의 가슴의 명찰을 보고 고개를 끄더경ㅆ다.
“고마워. 윤아정.”
원희는 그대로 돌아섰다. 아정은 원희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런 아정의 손을 지수가 먼저 붙잡았다.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다른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뭔가 억울했다. 잘 하려고 한 건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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