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완결/천사입니다...만 [완]

[로맨스 소설] 천사입니다...만 [13장. 커피 한 잔]

권정선재 2018. 2. 23. 01:56

13. 커피 한 잔

이럴 거면 집에서 해도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조용히 좀 할래요?”

기연은 주위 눈치를 살피면서 미간을 모았다. 안 그래도 한 글자도 떠오르지 않아서 지금 여기에서 뭐 하고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상유까지 이리 말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누구는 안 쓰고 싶어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아요? 하려고 해도 잘 안 되니까 그러는 거지. 그쪽은 천사니까 이런 게 간단하게 보이지만. 이런 거 되게 어려운 일이거든요. 원래 창의적인 게 힘든 일이라니까?”

천사랑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아무튼.”

기연은 물끄러미 상유를 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쪽은 뭐죠?”

?”

어떻게 그 일을 해요?”

기연의 말에 상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그냥 취업이 되는 거죠?”

?”

억울해.”

기연이 곧바로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이자 상유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또 무슨 말인 건지.

억울하다니 무슨 말입니까?”

취업 걱정 안 하는 거잖아요. 천사로 태어나면 그냥 그 일을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천사가 되어서?”

설마 천사라고 해서 스트레스 같은 것을 전혀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죠? 나는 이런 말을 듣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상유는 귀를 손가락으로 후비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굳이 정기연 씨에게 할 필요는 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쪽도 나름대로 업무적으로 복잡한 문제 같은 것은 있습니다.”

그래요?”

그나저나 그렇게 말해도 되는 겁니까?”

?”

상유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하던 기연이 놀라서 입을 막았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중이었다.

. 나만 보이는 거구나.”

기연은 아랫입술을 물고 어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자리에서 계속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재빨리 짐을 챙겨서 카페를 나섰다. 카페를 나서기가 무섭게 상유를 노려봤다.

너무한 거 아니에요?”

뭐가요?”

상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기연은 입술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내가 행복해서 그 행복을 통해서 그쪽이 이득을 보는 거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게 내 행복과는 반대가 되는 결과를 낳는 거 아니에요? 그거 그쪽에게 득을 볼 건 없잖아요.”

해는 아니죠.”

상유는 간단하게 대답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나는 재미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뭐라고요?”

나는 지금 너무 재미있습니다.”

상유의 대답에 기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상유는 이내 한 바퀴 빙그르르 돌더니 기연의 눈을 응시했다.

이런 걸 써보는 거 어때요?”

뭐가요?”

. 나와 있었던 일을 너무 있는 그대로만 이야기를 한다면 위에서도 그다지 좋아할 것 같지는 않지만 적당히 가상으로 써내려가는 것. 그 정도를 가지고는 크게 뭐라고 하지 않을 텐데요.”

그래도 될까요?”

순간 기연의 눈빛이 변하자 상유는 무언가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다면 하는 거죠.”

좋아요.”

기연은 눈을 반짝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니 뭐라도 당장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말을 하더니. 지금 보니까 그런 쪽하고는 거리가 있는 거군요.”

, 당연하죠.”

상유의 지적에 기연은 울상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평생 일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해서 소설을 쓰게 될 수 있을 리는 없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지금 이틀 동안 멍하니 노트만 보고 있는 거. 그거는 조금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문제는 무슨 문제요?”

기연의 당당한 변명에 상유는 볼을 한 번 부풀렸다가 한숨을 토해냈다. 이랬다가는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거였다.

나 원래 이런 일 하는 천사 아니거든요.”

그럼 뭐 하는 천사인데요?”

위에서 심판.”

심판이요?”

기연의 의아한 표정에 상유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다 말을 해줄 이유는 없지만. 나는 인간 세상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요. 적이견 씨는 아마 전혀 모르고 있겠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그다지 좋은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욕심 같은 것이 가득해서 여기에 머물고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고요.”

그럼 나에게 오지 않았으면 되는 거잖아요. 왜 나에게 와서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 건데요?”

그러니까요.”

상유가 곧바로 대답하자 기연은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먼저 말을 꺼낸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왜 나에요?”

뭐가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또 그 이야기입니까?”

중요한 이야기니까요.”

상유는 아랫입술을 살짝 내밀었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하거나 상대가 생각을 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건 이쪽에서 그냥 간단하게 생각을 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정기연 씨가 알아야 할 이유가 없어요.”

그래도 궁금하잖아요. 나도 계약을 한 사람인데. 내가 그 당사자인데. 내가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요?”

안 될 건 뭡니까?”

?”

이미 한 거잖아요.”

하지만.”

그만.”

상유는 가볍게 박수를 한 번 치고 말을 끊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기연의 눈을 보더니 씩 웃었다.

정기연 씨. 지금도 충분히 내가 많은 것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도대체 뭐가 더 궁금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본인이 특별하다고 생각을 해요. 다른 인간들은 다들 그런다고요.”

그럴 수가 없어요.”

기연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특별하지 않으니까.”

기연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내가 알거든요.”

기연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애써 미소를 지어보려고 하지만 한쪽 볼이 가볍게 떨렸다.

나는 특별하지 않아요.”

기연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특별한 존재라면. 이런 일들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 거라고요.”

그건 다른 거죠.”

가만히 듣던 상유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런 건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을 할 일이 아니에요. 그런 말도 있잖아요. 하나님은 내가 더 강해지게 하기 위해서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준다. 대충 그게 위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죠.”

나 개신교 아니에요?”

아무튼.”

기연의 까다로운 반문에 상유는 인상을 구겼다. 개신교가 아니라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기연은 그런데 그의 말이 고민이 되었던 것인지 가만히 미간을 구기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정말 이상하잖아요.”

뭐가요?‘

나 불교에요.”

그런데요?”

그런데 왜 나에요?”

기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상유가 멍하니 있다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보통은 자신에게 이런 행운이 온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연은 그 뒤의 이유를 찾으려고 했다.

도대체 뭐가 알고 싶은 겁니까?”

이상하니까.”

기연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한숨을 토해냈다.

대한민국에 교회가 얼마나 많이 있는 줄 알아요? 적어도 누군가를 도와준다고 하면 그런 걸 믿는 사람에게 가야죠.”

그건 전혀 다른 겁니다.”

뭐가 다른 건데요?”

우리의 룰이 아니거든요.”

상유의 말에 기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들의 룰이라니. 무언가 다른 답을 더 원했지만 상유는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하지만.”

업무 상 비밀이라고요.”

상융의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는 순간 다른 말을 더 할 수가 없었다. 기연음 마지못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어렵네.”

혼자 카페에서 펜으로 노트를 두드리며 기연은 한숨을 토해냈다. 금방이라도 뭐라도 쓸 줄 알았다.

어떻게 한 줄을 못 쓰지?”

이 정도로 무능할 거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당장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냥 글을 쓰고 싶은 거였다.

한심해.”

스스로가 너무나도 가치가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고작 글 하나 쓰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구나.

힘들다.”

커피부터 마셔요.”

어디에 다녀와요?”

기연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가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상유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커피부터 마시라고요.”

하지만.”

그것부터 시작이에요.”

기연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마음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거 뭐야?”

거기서 시작하는 거예요. 커피를 마셨다.”

?”

그렇게 시작하라고요.”

상유의 말에 기연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무 것도 아닌 말을 가지고 그냥 시작을 하라고? 그런 말을 적는다고 소설은 아닌 거 같은데. 기연은 여러 말이 하고 싶었지만 상유의 표정을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펜을 들어서 상유의 말처럼 노트에 커피를 마셨다. 이 문장을 적었다. 그러고 나니 뭔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커피를 마셨다. 커피의 쌉싸래한 향이 혀끝에 맴돌고 멍한 정신이 조금은 드는 기분이었다. 내 앞에는 지금 천사가 있다. 아니, 적어도 자신이 천사라고 주장하며 나를 괴롭히는 사내가 있다. 그는 물끄러미 나를 응시하면서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계약할래요?

계약?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멍하니 있는 사이 그가 나에게 훅 다가왔다. 뭔가 알 수 없는 온기. 이상한 느낌. 침을 꿀꺽 삼키고 그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가볍게 볼을 꼬집었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통증. 현실이었다.

-무슨 계약이죠?

-당신을 위한 계약.

간단한 말. 그러나 많은 설명이 없는 말. 내가 그의 눈을 보는 사이 모든 게 이뤄지는 기분이었다.

이게 뭐예요?”

그쪽의 재능.”

상유는 하연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기연은 입술을 꾹 다물고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이런 재능을 가졌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 자신의 재능이었다.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다고요?”

그러네요.”

기연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신기했다. 그러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스스로 뭔가를 해내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