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농담이 아니었어요?”
“당연하죠.”
“아니.”
그저 술자리에서 가볍게 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해나가.”
“해나 제 보호자 아니에요.”
“해나가 보호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도요. 아무리 그래도 그거 해나가 알면 편하게 생각을 하지 않을 거에요.”
“불편해요?”
“아무래도 그렇죠.”
서울의 말에 세인은 입술을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보니 서울이 이것을 지적하기 전에 세인은 전혀 그런 것이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전 해나랑도 불편하기 싫어요.”
“서우리 씨가 같이 산다고 해도 괜찮을 겁니다. 많이 불편하게 생각을 할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듭니까?”
“네. 그럴 거예요.”
해나가 가장 걸리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세인 씨도 마냥 편하지 않을 거고.”
“그런가.”
세인의 미소에 서울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일단 더 알아보고 나를 최후의 보루로 두죠.”
“그래요.”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 신기할 정도로. 서울은 그런 그를 보며 싱긋 웃었다. 뭐든 이런 게 생기는 건 고마운 거였다.
“한서울 얘기 좀 해.”
“미쳤어.”
갑자기 철수가 사무실로 들어오자 서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여길 왜 와?”
“말 좀 하자고.”
“할 말 없어.”
서울은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해도 이건 아니었다. 이건 폭력이었다.
“나는 내 보증금만 받으면 돼.”
“네가 혼자서 열내고 나간 거잖아.”
“뭐?”
“너 혼자서 결혼하고 싶어서 열을 내다가. 그렇게 나가버린 거잖아. 그런데 왜 이러는 건데?”
그걸 혼자서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뭐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헤어지자고 한 거야.”
“우리 잘 지냈잖아.”
“아니.”
서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거 같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넌 날 존중하지 않았어.”
“뭐?”
“지금도 그러고 있잖아. 안 그래? 어떻게 남의 직장에 이런 식으로 올 수 있어? 이건 아니잖아.”
“그거야.”
서울은 머리를 뒤로 넘겼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건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거 폭행이야.”
“무슨.”
“나가.”
서울의 단호한 말에 철수는 멍하니 있다가 돌아섰다. 다행히 바로 나간 것 같아서 서울은 자리에 앉았다.
“미친.”
서울은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서울 씨 멋있어?”
“네?”
그때 전혀 돕지도 않았던 역장의 말에 서울은 얼굴이 굳었다. 돕지도 않고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무슨.”
“너무 당당해.”
“뭐가요?”
서울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가 놓았다.
“역장님. 저 망할 인간 때문에 제가 사과는 드릴게요. 여기 사무실에 온 거. 그렇지만 그 이상은 아니에요. 그럼 저는 일하러 가겠습니다.”
서울은 이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거 뭐야?”
방에 들어가던 서울이 멈칫했다.
“아 그거 좋은 거래.”
“뭐?”
어디 이상한 곳이라도 다녀온 것인지. 허름하면서도 묘한 것 같은 물건들이 그의 방에 가득이었다.
“아 그리고 이거.”
“뭔데?”
“영수증.”
“뭐?”
이걸 왜 자신에게 주는 건지.
“이거 왜?”
“네가 좀 내.”
“내가 왜?”
“너는 딸이 되어서 이런 것도 안 하려고 해? 그리고 이런 거 다른 집 자식들은 다 해준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네가 이걸 사야지. 그리고 너 그 돈 모아서 뭐할 거야? 이럴 때 엄마에게 쓰는 거지.”
“아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런 걸 왜 가지고 와? 그리고 엄마가 산 것을 가지고 내가 도대체 왜? 이러면 나 엄마랑 못 살아.”
“너 어디 갈 곳이라도 있니?”
“뭐?”
“어디 가려고? 누가 너 받아나 준대? 철수하고도 그러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나 갈 곳 있어.”
“네가?”
춘자의 비웃음에 서울은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왜 엄마라는 사람이 자신에게 이러는 것인지.
“짐은 내일 가지고 갈게.”
“그거 얼마나 한다고 지금 가져가.”
서울은 바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춘자는 그런 그를 보며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저 망할 년. 성질은.”
“엄마. 도대체.”
“마음대로 해.”
서울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라는 사람에게 모든 걸 기대려고 한 자신의 잘못일 거였다.
“미안해요.”
“아닙니다.”
서울의 사과에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여기 쓰면 됩니다.”
“고마워요.”
세인은 그를 두고 거실로 나갔다.
“한서울.”
나이 서른이 되어서 어디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것이 슬펐다. 그나마 지인 찬스가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저기.”
언제 잠에 들게 된 것인지 모르겠는데 일어나서 나오니 세인은 집에 없는 모양이었다. 괜히 민폐인 건지.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뭐지?”
주방에 가니 식탁에 음식이 차려 있었다.
“대박.”
예쁘게 덮인 식탁보를 보니 묘한 기분이었다. 그릇들을 만지니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아마 자신을 위해서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옆에 쪽지가 보였다. 그가 먹으면 된다고 하는 것들. 미안했다.
“괜히 미안하게.”
서울은 자리에 앉았다. 고마운 사람이었다.
“지금 싱글인 거 맞잖아?”
“네. 그렇습니다.”
역장의 말에 서울은 살짝 억루이 굳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선 좀 봐.”
“네?”
“좋은 녀석이야.”
“아니요.”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이쪽이 싫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저렇게 끈질기게 저런 말을 하는 건지 답답했다.
“엄청 까다롭네.”
“그러게요.”
자신의 속도 모르고 부장은 다시 또 역장의 편을 들고 있었다. 왜 저렇게 한심하게 구는 건지.
“요즘 여자들이 말이야. 너무 까다로워.”
“그러니 말입니다. 자신들이 뭐가 그리 대단한 건지 왜 그렇게 유세를 부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는 말도 있는데 말이죠. 이제 한서울 씨 나이가 되면 남자들 킁킁거리고 먹지도 않아요.”
“머라고요?”
서울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지금 그 말 사과하세요!”
“뭐가?”
“무슨 말이야?”
두 중년의 반응에 서울은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말을 함부로 할 수가 있는 건지.
“지금 그 말 사과를 하시라고요.”
“그냥 농담 좀 한 거 가지고.”
“그러니까. 한서울 씨 너무하네.”
“그러니까 그게 지금 성차별이라고요.”
처음에는 심장이 미친 듯 두근거렸다. 하지만 말을 이어나갈수록 오히려 머리가 더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지금 하신 말 사과하세요. 안 그러면 보고할 겁니다.”
“증거 있어?”
“네?”
갑자기 증거라니.
“정확한 워딩도 모르고 말이야.”
“그러니까요. 역장님.”
부장까지 역장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다.
“한서울 씨 이상하단 말이야.”
“아니 아무리 요즘 사람들이 자기 주장이 강하다고 해도 이렇게 회사랑 무조건 부딪치려고 하고 말이야.”
“아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왜 자신에게 화살이 다시 올아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제가 녹음을 다 했습니다.”
그때 용주이 손을 들었다.
“저 있어요.”
“뭐?”
용준은 스마트폰을 들어서 방금 있었던 일을 틀었다. 역장과 부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러니까 두 분 한서울 씨에게 사과를 하셔야 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도 증언을 할 수 있고요.”
“무, 무슨 증언?”
“신고한다잖아요.”
용준은 꽤나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서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런 거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거 모르시는 겁니까? 특히나 부역장님은 따님도 있으시면서요.”
“아니. 지금 한서울 씨가 여자라서 그런 거지.”
“저도 불쾌합니다.”
“뭐?”
“남자 나이는 뭐 다른 가요? 어서요.”
용준이 다시 채근하자 역장과 부장은 서로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미안하네.”
그리고 서울의 답도 듣지 않고 두 사람은 사무실을 나갔다. 서울은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머리가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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