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
“그거 어떻게 알았어요?”
은아의 얼굴이 굳었다.
“설마?”
“해나요.”
“저런.”
은아는 바로 서울의 손을 잡았다.
“미안해요.”
“아니요.”
이건 그 누구도 사과를 해야 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사과를 해야 하는 거였다.
“죄송해요.”
“서울 양이 왜?”
“제가 모자라게 굴어서 세인 씨가 그런 거예요. 나를 위해서. 나를 걱정해서 그런 걸 한 거니까.”
“아니.”
은아는 서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왜 그러세요?”
“내가 미안해.”
은아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 녀석을 말려야지.”
“아니요.”
“맞아.”
은아는 힘을 주어 말하며 싱긋 웃었다.
“내가 잘못한 거였어. 나는 그저 그게 좋은 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이게 한서울 양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그리고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 내가 먼저 생각을 했어야 하는 거였어.”
“아니.”
“내 말이 맞아요.”
은아는 다시 힘을 주었다.
“미안해.”
“어머니.”
“그래도 걔 안 미워하면 안 되나?”
“네?”
“나에게는 좋은 아들이야.”
“그게.”
“정말로.”
은아의 표정은 다소 쓸쓸하게 편했다. 아마 그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할 거였다.
“내가 그 녀석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고 있어서. 나는 그 녀석이 부탁할 때 너무 좋았어요.”
“그건.”
“그래서 그랬어.”
은아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우리의 눈을 응시헀다. 거기에 뭔가 담겨 있는 거 같아서 우리는 어색하게 웃었다.
“걔를 실어하지 말아줘요.”
“안 싫어해요.”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다행이네.”
“제가 어떻게 그래요?”
“왜?”
“자격이 없죠.”
“아니.”
서울의 대답에 은아는 순간 표정을 지우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서울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한서울 씨. 절대로 그런 생각은 하지 마. 자기는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야. 그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어.”
“그건.”
“아무나 못하는 거예요.”
은아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반대 손으로도 우리의 손을 감쌌다. 거기에서 어떤 온기가 느껴졌다.
“내가 비록 그 아이를 낳지는 않았더라도. 그 아이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그 아이가 스스로 나오기로 결정한 거. 모두 다 자기 덕이라는 거야.”
“아니요.”
서울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고개를 저었다.
“세인 씨 스스로 한 거예요.”
“그 아이는 전에 스스로 안 했는 걸?”
“그거야.”
“자기 덕이야.”
은아는 힘을 주어 말하며 싱긋 웃었다.
“정말로.”
“어머니.”
“부탁이야.”
은아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 아이 밀어내지 말아줘요.”
“안 그래요.”
“정말?”
“네.”
이런 이야기를 하러 온 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거였다. 그런데 마음이 마냥 불편하지 않았다.
“고맙네.”
은아는 손가락을 들고 씩 웃었다.
“그 돈은 그리고 괜찮아.”
“하지만.”
“어차피 그 녀석 결혼하면 내가 주려고 했어요. 그렇게 한 거로 생각해. 그 녀석 돈은. 내가 줄게요.”
“아니요.”
서울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해결할 게 아니었다.
“제가 이러면 너무 불편해서 안 돼요. 제가 도대체 무슨 자격이 있어서 그 돈을 받아요? 아니요.”
“걔 악 끊었어.”
“네?”
“이제 안 먹더라고요.”
은아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자세를 바꾸고 몸을 뒤로 젖혀서, 가만히 의자에 체중을 싣고 고개를 저었다.
“한참을 먹었어.”
“그래요?”
“응.”
은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입술을 살짝 내밀고 한숨을 토해낸 후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자기를 만나고 안 가.”
“그건.”
“정말로.”
은아의 말은 뭔가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받아줘요. 앞으로 내야 하는 병원비. 그 아이가 감당해야 하는 돈이라고 생각을 해줘.”
“그건.”
“응?”
서울은 입술을 꾹 다물고 어색하게 웃었다.
“아직도 화가 났어요?”
“아니요.”
세인의 물음에 서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한서울 씨.”
“미안해요.”
서울은 먼저 사과의 말을 건네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결국 자신의 문제인 거였다.
“내가 이세인 씨에게 제대로 된 믿음을 주지 못한 거야. 자꾸만 이런 말을 하고 망설이기만 한 거야.”
“아니요.”
세인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거짓말.”
“정말로요.”
세인은 혀로 입술을 축이고 살짝 헛기침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지금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예요. 당연히 나의 행동이 한서울 씨에게 불쾌한 일이 될 수 있는 거였는데. 그걸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왜 그래요?”
“정말입니다.”
세인의 목소리에는 어떤 진실함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사과할게요.”
“아니요.”
그가 사과할 일이 아니었다.
“내가 그랬어.”
“네?”
“이세인 씨 그렇게 만든 거.”
“무슨?”
“늘 돈 이야기.”
자신의 문제였다.
“내가 안 그랬어야 하는 건데.”
“그거야.”
“고마워요.”
진심이었다.
“내가 그 동안 이세인 씨에게 보인 모습들. 그 안에서 이세인 씨는 나를 도울 방법을 찾은 거였어요.”
“그거야.”
“물론 나에게 묻지 않은 것. 그것은 너무나도 큰 잘못이지만. 그게 아니면. 너무 고마운 거니까.”
“동정이 아니에요.”
“알아요.”
이 말을 묻고 싶었는데, 세인의 눈을 보는 순간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을 걱정하는 중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간절하게. 너무나도 아프고. 너무나도 힘들게. 그렇게 자신을 걱정하는 중이었다.
“왜 그럴까?”
“네?”
“나는. 도대체.”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한서울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지질한 사람이기도 하고, 이세인이라는 사람을 힘들게 해도 되는 건가요?”
“내가 할 게 더 많을 걸?”
“그래요?”
“응.”
세인의 말에 서울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뭐야?”
“정말.”
“그래요?”
“응.”
세인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가벼운 농담 같은 말. 이게 별 것 아닌 거 같으면서도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고마워요.”
“그럼?”
“이걸로 끝.”
서울의 말에 세인은 다행이라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거 환하게 웃는 것을 보며 서울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화해한 거야?”
“화해.”
부산의 물음에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해도 되나?”
“그럼 뭔데?”
“맞아.”
부산도 다행이라는 듯 밝게 웃었다.
“잘 한 거야.”
“뭘?”
“그 형.”
“뭐가?”
“너무 좋은 사람이야.”
부산은 무릎을 안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은환이가 그러더라고. 정말 별 것도 아닌 것으로도 상대를 배려하고. 그렇게 말을 해준다고.”
“그래?”
“응.”
그런 사람이었다.
“은환이가 지나가는 말로, 이 근처 가게의 마카롱이 좋은데 너무 줄이 길어서 못 먹는다고 했거든?”
“그런데?”
“사왔더라.”
“어?”
그런 걸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나?
“그건.”
“정말 대단하지? 그런데 되게 미안해하더래. 아는 사이라서 꼬끄가 깨진 거. 그걸 얻어다 준 거래. 아무래도 마카롱을 만들면 그런 게 생기니까. 그거 조금 더 예쁘게 생긴 거 부탁을 했더라고.”
“그렇구나.”
사람이 하는 말. 그냥 가볍게 하는 말도 그냥 지나가지 않는 사람. 그래서 자신에게도 그런 거였다.
“누나 좋은 형이야.”
“알아.”
서울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잘.”
“그럼 이게 끝이야?”
“어?”
“그냥?”
“무슨 말이야?”
“나는 그 사람이 자형이기 바라.”
“미쳤어.”
서울은 바로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세인은 아무 생각도 없는데 혼자서 이러는 거 너무 웃겼다.
“그 사람은 결혼에 대해서 생각도 없다고 했어. 그런데 나 혼자서 결혼 이야기. 너무 우스운 거잖아.”
“왜 우스운 건데?”
“어?”
“여자가 먼저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아니.”
세인이라면 거절할 수도 있었다.
“싫어.”
“뭐가 싫은 건데?”
“그러니까.”
지금 자신은 뭐가 싫은 걸까?
“전에도 말한 것처럼. 나는 누나가 너무나도 부러워. 누나는 어떤 선택을 가질 수 있으니까.”
“결혼은 다른 거야.”
“그래?”
“그럼.”
부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왜?”
“너는 자꾸 고민을 던져.”
“좋은 거지?”
“아니.”
서울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렇게 싸우다가 바로 결혼 이야기를 하는 거. 이거 그 사람 입장에서 웃기지 않을까?”
“좋지 않을까?”
“어?”
“그 형도 누나를 좋아하니까.”
“그거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자신이 제멋대로 구는 기분이었다. 세인의 기분을 완벽하게 무시하는.
“그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걸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거 같은데?”
“안 그럴 거야.”
세인의 대답에 서울은 입을 살짝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세인은 싱긋 웃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왜 그래?”
“너 무슨 노인처럼 말해.”
“그래?”
“그래.”
서울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모르겠어.”
“누나.”
“응?”
“내가 누나를 지금 평생 보면서. 누나 얼굴. 지금처럼 밝고 자신감이 넘치는 거 본 적이 없어.”
“그거야.”
세인 덕분인 걸까?
“누나가 다시 이전의 불행한 얼굴로 가는 거. 나는 그걸 바라지 않아. 누나 진심으로 생각을 해보지 않을래?”
서울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네?”
서울이 부르자 세인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요?”
“아니.”
세인은 어색하게 웃었다.
“왜 그런 거예요?”
“아니요.”
서울은 살짝 헛기침을 했다.
“내가 좋아요?”
“당연하죠.”
잠시도 망설이지도 않고 나오는 대답.
“왜 좋아요?”
“네?”
“내가 좋은 이유 있어요?”
“음.”
서울의 물음에 세인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없어요?”
“네.”
이유가 없다.
“그저 한서울 씨랑 있는 거. 이것 자체가 좋은 것이지. 이걸 가지고 다른 의미를 갖거나 그러지 않아요.”
“그래요?”
신기한 사람이었다.
“내가 이렇게 자꾸 짜증을 내도요?”
“내가 실수를 한 거니까.”
“아니.”
이 와중에도 자신의 탓을 하다니.
“내가 계속 이세인 씨를 괴롭힐 수도 있어요. 자꾸만 투정을 부리고, 이세인 씨를 지치게 할 수도 있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 걸요.”
세인은 서울의 눈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누구라도 마찬가지에요. 비단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아니라고 해도 그럴 수 있는 거죠.”
이 와중에서도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나를 만난 거 후회하지 않아요?”
“한서울 씨는 나를 만난 걸 후회합니까?”
“아니.”
“나도 후회하지 않아요.”
세인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밝게 웃었다.
“너무 좋아하는 사람인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
서울은 혀로 입술을 축였다.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세인의 눈을 보며 싱긋 웃었다.
“결혼해 줄래요?”
“네?”
서울의 물음에 세인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러니까.”
“뭐.”
서울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코 아래를 검지로 비볐다.
“어차피 우리 사귈 때 프러포즈도 내가 했던 거니까. 결혼도 내가 한 고백으로 하면 되는 거죠.”
“저기 연애는 내가 먼저였는데.”
“어허.”
세인의 대답에 서울은 입술을 내밀었다.
“그건 다르죠.”
“뭐가 다른 건데요?”
세인도 입을 내밀고 짧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가 거절했잖아. 이세인 씨는 바로 오케이를 한 거고. 안 그래요?”
“아니.”
서울의 말에 세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세인은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한서울 씨를 이길 수 없어.”
“나를 이기려고 했어요?”
“아니요.”
세인의 반응에 서울은 입을 내밀었다.
“실망이야.”
세인이 당황하자 서울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세인에게 손을 내밀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늘 말을 하잖아요. 이세인이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서울이라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그래서 나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한서울이라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이세인이라는 사람이 없었을 거라고.”
서로에게 너무나도 완벽하게 맞는 사람이었다. 외로움과 쓸쓸함. 이 모든 것을 서로 기대는 거였다.
“내가 지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웃겨요. 하지만 이세인 씨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서 같이 살지 않았다면. 내가 엄마가 아니어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면 이런 순간은 전혀 오지 못했을 거야.”
“나도 그래요.”
세인은 혀를 내밀어서 살짝 입술을 적셨다.
“늘 집에만 있고.”
“그게 나빠?”
“나빠.”
세인은 이를 드러내고 밝게 웃었다. 그리고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도 그런 그를 보며 밝게 웃었다. 그리고 다급히 주머니를 뒤져 반지를 꺼내 부산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세인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이 세인의 손에 반지를 끼우고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누군가와 새로운 길을 걷는 것. 이것을 가지고 어떤 결심을 하는 것에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길. 앞으로의 시간이 서로에게 더욱 중요했다.
[보편적 연애 2018]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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