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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송이 - [다섯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8. 1. 3. 18:16
 




-5번째 눈꽃송이-




모두가 출장을 간 금요일 오후 너무나도 밝아 보이는 민성이의 모습. 왠지 좋아 보이는 걸요?


“우리 내일은 뭐 할래요?”


“내일?


“토요 휴무제하는 토요일이잖아요.


별다른 일이 없고 시간은 천천히 흘러 어느 덧, 일주일이 넘게 우리는 연인으로 사귀고 있습니다.


“너랑 함께면 다 좋아.”


“헤헤.” 


녀석의 웃음을 보니, 가슴이 편안해 집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 


갑자기 심장이 조여 왔습니다.


“선배.” 


“아무 것도 아니야. 나 잠깐. 화장. 실 좀 다녀. 올게”


힘겹게 말을 쥐어짜고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이제 조금은 행복해지려고 하는 데, 이렇게 아프다니요. 안 됩니다.




제 앞에서는 아픈 거 숨기지 않아도 되는데 선배는 계속 숨기기만 합니다. 제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에효” 


정말 답답합니다. 그냥 저에게 말하면 될 걸 가지고요.


“어?” 


“나나 누나”


나나 누나가 사무실에 웬일이죠? 출장 후에 바로 퇴근한다고 했는데요/


“어쩐 일이에요?”


“나 서류 두고 가서. 너는?”


“오늘 사무실에서 일 해야 하거든요.”


“아.”


“혼자 있던 거야?”


그제야 생각이 났습니다.


“아!”


“왜?” 


“나나 누나 화장실 가 봐요.”


“왜?” 


“민아 누나가 살짝 비명을 내고 화장실로 갔어요.”


나나 누나의 긴장한 눈빛이 보입니다.


“얼마나 됐어?”


“2분도 되지 않았어요.”


“알았어.” 


나나 누나는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그녀가 아프지 않아야 하는 데 말입니다.




“민아야!” 


민아가 바닥에 앉아있습니다.


“너 여기서 뭐해?”


“나 심장 더 고장났나봐.”


민아가 울먹거리며 말합니다.


“응?” 


“너무. 아파.”


민아가 살짝 눈물을 보이며 말합니다. 마음이 아파옵니다.


“약은?” 


“먹었어. 조금 나아. 진 것 같아.”


민아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민아의 팔을 잡아 부축을 하는데, 마른 나뭇가지를 잡는 느낌입니다.


“넌 어쩐 일이야?”


조금 정신을 차린 듯 민아가 물었습니다.


“서류 가지러 왔어.”


“그래?”


민아의 미소가 쓸쓸해 보이는 건, 저만의 생각인가요?


“야.”

“응?”

“민성이에게는 나 아픈 거 숨겨줘.”


“민아야.”


아직 민성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르나 봅니다.


“알았지?”

“응.”

마지못해 대답했지만, 너무나도 미안합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볼멘소리를 하는 민성이 귀엽습니다.


“내가 변비가 있어.”

저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건 그렇고”


저는 나나를 바라보았다.


“뭐?” 


“이번에 구조조정 있을 거래.”


나나의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저도 실력이 없지만 나나 역시 그렇습니다. 특별한 성과를 올린 적도 없을뿐더러, 몇 번의 사고도 쳤었습니다. 게다가 예전부터 연예 부는 가장 먼저 정리가 되는 곳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버틸 수 있을까?”


“모르겠다.” 


답답합니다. 


“고맙다 친구.”


분명히 심장이 엄청 아픈데 아프지 않습니다. 민성이랑 함께 있으면  나나와 함께 있으면 웃음이 납니다. 잠시 동안이지만 고통이 사라집니다.


“하하하하” 


“왜 웃어요?”


“그냥. 좋아서.”


“하하하” 


민성이 녀석도 저를 따라 웃습니다.


“너는 왜 웃냐?”


“저도 좋아서요.”


나나도 우리를 따라 웃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간만에 모든 것을 다 잊고 웃었습니다. 삶도. 직장도 사랑도 추억도 다 잊고 웃었습니다. 너무나도 해맑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아직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저 죽기 싫은데 어떡하죠?


“너 왜 울어?”


눈물이 한 방울 흘렀나 봅니다.


“너무 기뻐서.”


정말입니다. 


“선배.” 


“응?” 


“고마워요.” 


“뭐가?”


“나랑 사귀어 줘서.”


바보 같은 녀석이죠?


“나야 말로 고맙지.”


“뭐가요?”


제가 민성이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나처럼 늙고 볼 것 없는 여자 사랑해 줘서.”


“아주 꼴값을 떤다.”


나나가 옆에서 빈정거립니다.


“알았어. 이 년아”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죽는 게 서럽습니다. 죽기 싫습니다. 죽기 너무나도 싫습니다.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을 남기고. 혼자서만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냥 모든 것을 계속 가지고 있고 싶습니다. 이런 행복들을 조금 더 누리고 싶습니다. 많은 것들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부, 명예, 재력 아무 것도 저에게는 필요 없습니다. 그냥 조금의 추억을 만들고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시간만 딱 그만큼만 제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 짧다고 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이 허락을 해서 정말 조금만이라도 저에게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술이나 마시러 가자.”

“술이요?”

“그래.”


저는 빙긋이 웃었습니다.




“너 미쳤냐?”

“뭐가?”

나나와 민성이 녀석이 저를 위험한 듯 쳐다봅니다. 물론 이 추운 날 한강에서 맥주를 마시자는 게 조금은 미친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번쯤은 꼭 해보고 싶었는 걸요? 그리고 여름에는 하면서 겨울에 안 한다는 것은, 겨울에 대한 차별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궤변입니다.


“앉아. 앉아.”

저는 바닥에 앉았습니다. 차가운 기운이 스며 올라왔습니다.


“조금 차다?”


“선배, 잠시만요.”

민성이 녀석이 어딘가로 뛰어갑니다. 그리고 이내 돌아온 녀석의 손에 들려있던 것은 벼룩시장 한 부입니다.


“오, 너 똑똑하다.”


“네.”

민성이는 벼룩시장을 저와 나나에게 나눠주고 자신도 자리에 앉습니다.


“이제마실까요?”


“오케이!”

“마시자!”


한강을 보며 마시는 맥주는 달빛처럼 맑았습니다.




“히” 


민아가 갑자기 절 보더니 웃습니다.


“너 왜 웃어?”


“나나야. 나 너무 행복해.”


민성이 녀석은 이미 술에 취해 곯아 떨어져 있습니다.


“나도 너무 행복하다,”


민아의 표정을 보니 왠지 모르게 질투가 납니다.


“나는 네가 부러워.”


“뭐가?” 


“다.” 


뭐가 부럽다는 거지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혼자인 내가?”


“너는 인생이 있잖아.”


“…….” 


갑자기 할 말이 없어집니다. 인생이라.


“너는 앞으로 가족도 만들 수 있고 엄마도 될 수 있고 할머니도 될 수 있고 새로운 친구도 만들 수 있고 행복을 만들 수도 있잖아.”


민아의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 흘렀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 


“나는 끝이야.”


“…….” 


“나는 얼마 후면 다 잃어버려.”


너무나 가슴이 아립니다. 이런 말을 웃으며 하는 민아를 보니 가슴이 아립니다. 미안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제 자신이 밉습니다.


“아무 것도 남지 않아.”


저는 민아를 안았습니다. 일주일 새 조금 더 여윈 듯 합니다.


“왜 아무 것도 남지 않냐.”


“…….” 


“나도 있고 민성이도 있잖아.”


“…….” 


“너는 우리 추억 속에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잖아.”


“…….”


민아의 어깨가 가늘게 떨립니다.


“너는 영원히 내 가장 좋은 친구야.”


“나나야.” 


민아가 저의 품에 안겨서 흐느낍니다. 그 눈물이 제 가슴에 강을 이루어 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