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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송이 - [여섯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8. 1. 4. 20:34
 




-6번째 눈꽃송이-



“우리 어디 놀러가지 않을래요?”


“놀러?” 


시간은 무섭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덧 이 아이와 사귄 지도 한 달이 가까운 시간이 흘러버렸습니다. 다행히, 저의 몸은 잘 버텨주고 있었고, 아직은 이 아이와 더 지내도 될 것 같습니다.


“바다 갈래?”


“바다요?”


“응” 


녀석이 밝게 웃습니다.


“알았어요. 언제 갈까요?”


저를 위해 항상 배려하는 민성이. 너무나도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내일 모레”


“알았어요. 준비는 내가 다 할게. 거기서 자고 올 거죠?”


“그래” 


“히히.”


“자식, 응큼하긴.”


그리고 정말로 다행이도 민성이에게 뒤를 돌아서는 순간 심장이 조였습니다.


“나 간다.”


“내가 데려다 줄까요?”


“괜찮아.” 


이 모습을 숨겨야 합니다. 민성이가 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 괜찮습니다.”


“아.” 


의사선생님 말씀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장 이식만 가능하다면 말이죠”


저의 병은 조금 희귀합니다. 심장이 조금씩 느려지는 병입니다. 그래서 심장만 이식하면 괜찮아 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이식해 줄 사람이 없잖아요.”


“그렇죠.” 


“저 갈게요”


“몸조리 잘하세요.”


항상 똑같은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의사를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네.” 


항상 똑같은 대답입니다. 저는 시한부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차분합니다. 아무도 제가 시한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저는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왔습니다.




“나나야” 


“응?” 


일요일 오후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며 잡지를 보는 나나. 저는 다행히 회사에 남았지만 나나는 회사에서 잘렸습니다. 뭐 다행이도 본인은 간만에 휴식이라며 편안히 지내고 있습니다만 미안한 마음이 항상 제 마음 한 구석이 남아 있습니다.


“나 자살할까봐”


“푸” 


나나가 커피를 내뿜었습니다.


“뭐라고?” 


“나 아파서 죽는 거 민성이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 


나나는 말이 없었습니다. 아마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민성이는 네가 나중에라도. 설사 그게 마지막이라도 진실을 보여주는 걸 더 기뻐할 거야.”


“고마워” 


저에게 친구이지만 언니같은 나나는 저의 가장 큰 상담가입니다.


“나나야.” 


“응?” 


“내 옆에 있어줘서 너무 고맙다.”


저는 나나를 껴안으며 말했습니다,


“고맙기는” 




민아 누나와의 즐거운 여행길. 그런데 이게 누군가요?


“어라? 나나 누나도 가는 거예요?”


“응.”


“설마, 내가 너랑 단 둘이 갈 줄 알았니?”


민아 누나가 싱긋 웃으며 말합니다. 물론 저와 단 둘이 간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휴.




“가슴이 탁 트인다.”


겨울바다는 정말로 멋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지도 않고. 바람도 그리 차갑지 않으면서, 제가 죽을 사람이라는 것 까지도 잊을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바닷가를 천천히 거닐었습니다.


“너무 좋다.”


“응” 


한 30분 동안 나나와 수다를 떨며 걸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찰칵’ 


응? 무슨 소리죠?


‘찰칵’ 


저는 돌아보았습니다. 민성이가 저와 나나의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너 뭐해?”


“사진 찍어요.”


“우리를?” 


“네.” 


민성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왜?” 


“추억이잖아요.” 


추억이라는 단어가 아직 세상에 존재했었군요. 저는 잠시 잊고 지낸 모양입니다.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추억을 남기는 중이에요.”


민성이는 저와와 나나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어졌습니다. 그냥 이 사진을 꺼내서 펼쳐보기만 하면 저는 밝게 웃고 바닷가를 거닐고 있을 것입니다. 나나도 함께 말이죠. 언젠가는 아니 금방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래도 남은 시간이라도 아끼고 또 아껴서 사랑을 하고 또 사랑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 사랑하고 싶어지지 않을 때까지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진짜로 바라는 사랑입니다.




“너 요리 잘한다.”


“제가 요리 수준급이거든요.”


입이 조금 까다로워진 민아 누나도 제 요리는 잘 먹었습니다. 다행입니다.


“너 요리사하지 왜 사진 기자 했냐?”


언제나 사람들이 묻는 말입니다.


“한 순간 먹으면 사라지는 요리보다는 영원히 가슴에 남는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


“오, 너 좀 멋있다?”

민아 선배와 나나 누나가 싱긋 웃습니다. 그 순간 민아 선배의 눈이 살짝 흔들렸습니다.


“나 사진 좀 찍어줘.”


“네?”


또 증명사진을 부탁하는 건가요? 아니 증명사진이 아니라 영정사진이었군요.


“또 증명사진이요?”


“아니. 그냥 사진.”


민아 선배가 밝게 웃습니다.


“나도 추억을 남기고 싶어.”


너무나도 밝은 웃음입니다. 정말 곧 죽을 사람이 맞는 지 의심이 갈 만큼 밝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볼 수 없었던 민아 선배의 웃음. 그 웃음을 이제 영원히 볼 수 있다.


“나나 누나도 같이 찍어요.”


“너도 같이 찍자.”


민아 선배가 손짓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순간이 영원하도록 말이죠.


“선배 무슨 생각해요?”


“아니야.” 


‘너무 행복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을 억지로 가져가려는 당신 아니 하늘. 너무나도 원망스럽습니다. ’


선배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민성이와 저, 나나는 더욱 친해졌습니다.


‘전화왔다.’


“여보세요?”


“선배.”

“어, 민성아.”

나나도 귤을 내려놓고 저의 옆에 와서 귀를 가져다댑니다.


“잠깐 나올 수 있어요?”


“지금?”

나나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그럼, 선배 집 앞 편의점으로 와요.”


“그래.”

전화기를 끊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무슨 일이지?”

“가보면 알지. 어서 가보셔요.”


“그래.”

나나가 밝게 웃으며, 제게 외투를 건넸습니다.


“올 때, 프렌치 카페!”


“그래.”




“민성아.”


“선배.”


민성이의 미소가, 달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왜 불렀어?”


“짜잔” 


민성이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 있습니다.


“그게 뭐야?”


“맞춰 봐요.”


민성이 녀석이 생글거리면서 말했습니다.


“뭘까?” 


“헤헤” 


민성이가 손을 펼쳐보았습니다. 반지였습니다.


“무슨 반지야?”


“우리 둘 커플링이요.”


“정말?”

정말 예쁜 커플링입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커플링을 손 위에 올려 보았습니다. 반짝이는 작은 반지. 가슴이 행복으로 차오릅니다.


“왜 안 해봐요?”


“이런 거 불편하잖아.”


“그래도 해봐요.”

“어우, 내가 나이가 몇 갠데? 그냥 너랑 연인이면 되는 거지.”


이렇게 말하자 민성이가 볼을 부풀립니다.


“치. 내가 이 반지 만드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지금 민성이가 뭐라고 말한 거죠?


“만들었다고?”


그제야 민성이의 손에 반창고들이 보였습니다.


“설마. 그 손”


민성이가 재빨리 손을 등 뒤로 숨겼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손을 모두 보고 말았습니다.


“헤헤, 아무 것도 아니에요.”


“나 때문에?”


눈물이 벅차올랐습니다. 이 사람 너무 착합니다. 정말 착합니다.


“울지 말아요.”


민성이가 저를 안아주자, 눈물이 더 흘렀습니다. 미안해서, 너무나도 고맙고도 미안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바보야. 왜 그랬어? 바보야. 너 아프면서 왜 했어?”


“부담 갖지는 말아요.”


민성이가 밝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반지를 줄 수 있어서 너무나도 기쁘니까요.”


너무나도. 정말 너무나도 착한 아이입니다.


“고마워.” 


제가 살짝 미소 짓자 민성이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어났습니다.


“껴봐요.” 


저는 조심스럽게 반지를 꼈습니다. 반지는 백금으로 만들어져서 심플하면서도 예뻤습니다.


“치.” 


“왜요? 선배?”


민성이가 제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물었습니다.


“알이 없잖아?”


“네?” 


민성이가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죄송해요.”


그런 민성이가 너무나도 귀여워 보입니다.


“하하하” 


“왜 웃어요?”


“너 어쩜 그렇게 귀엽니? 고마워.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야.”


“선배.” 


우리는 잠시 동안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가만히 있었다.


“민성아. 정말 고마워. 그런데 나는 해줄게 없는데?”


“선배가 있잖아요. 선물 같은 건 필요 없어요.”


“그래도 주고 싶은데?”


저는 장난스럽게 웃었습니다.


“뭘요?”


순수한 표정.


“잠깐만 이리와봐.”

민성이는 순순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쪽’


“!”


민성이의 볼이 붉어지는 것이 보입니다. 저도 처음이지만, 잘 한 거겠죠?

“선배, 키스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그 순간, 민성이가 저의 허리를 감싸 안았습니다. 달콤하면서도 향긋한, 커피의 향이 입안 가득히 퍼졌습니다.


“사랑해요.”

“응.”

행복합니다. 정말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