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살다.
Season 6
열 번째 이야기
“저는 이제 집에 들어가서 아버지께 보고를 드려야 하는데, 서 선생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도 집에 가야죠.”
민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도 아버지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그래요?”
“네.”
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이 선생님. 우리 두 사람, 걸리지 않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면서 그렇게 행동을 해요.”
“네.”
민용이 싱긋 웃었다.
“저도 윤호 아프게 하는 것 싫으니까요.”
“그럼.”
민정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 멀어졌다.
“하아.”
민용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서 선생.”
여전히 마음에 남는 여인이었다.
“그냥 이렇게 되는 거군요.”
그 때 잡았어야 했던 걸까?
민용은 점점 그 때의 기억으로 돌아갔다.
“유, 윤호가 정말로 떠났단 말이에요?”
“네.”
민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다고 하더니, 기어코 가 버렸더라고요.”
“하아.”
민정이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마, 말도 안 돼.”
“왜 그럽니까?”
“아니.”
민정이 아래 입술을 꽉 물었다.
“이제, 이제 나도 좋아한다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
민용의 눈이 흔들렸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도 마음 정했단 말이에요.”
민정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제 겨우 나도 마음을 정했는데.”
“그게 윤호입니까?”
“네.”
민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민용이 한숨을 토해냈다.
“서 선생은 정말, 왜 항상 그 사람이 가고 나서 자꾸만 그 사람을 원하고 원하는 겁니까?”
“그러게요.”
민정이 슬픈 미소를 지었다.
“나도 항상 그렇게 늦게 하고 싶은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나는 늘 늦게 무언가를 하게 되네요.”
“그럼 나도 바보가 되겠군요.”
“네?”
민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게 무슨?”
“이거 가져요.”
“!”
민정의 얼굴이 굳었다.
“이, 이게 뭐예요?”
“받아요.”
민용이 내미는 것은 작은 케이스였다.
“서, 설마.”
“열어보면 알잖아요.”
민용이 억지로 민정의 손에 쥐어주었다.
“내가 서 선생에게 주고 싶은 물건입니다.”
“하, 하지만 이 선생님.”
“오늘 고백을 하려고 했어요.”
민용이 엷게 웃었다.
“그런데 그렇게 서 선생이 갑작스럽게 고백을 할 줄은.”
“죄, 죄송해요.”
“아닙니다.”
민용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이 선생님.”
“정말 서 선생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민용이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거렸다.
“누군가가 고백을 하려고 할 때마다 다른 일을 벌이는 군요.”
“죄송해요.”
“그럼 전 갈게요.”
“저, 저기.”
민정이 황급히 민용을 불렀다.
“이 반지는 받을 수가 없어요.”
“받아요.”
민용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 반지, 나도 받을 수 없으니까.”
“이 선생님.”
민정이 아래 입술을 물었다.
“도대체,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몰라서 묻는 겁니까?”
민용이 슬픈 눈으로 민정을 바라봤다.
“이제 그 반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라고요.”
“의, 의미요?”
“그래요.”
민용이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좋아하는 서 선생에게 주려고 했던 반지니까.”{
“!”
민정의 눈이 흔들렸다.
“이, 이 선생님.”
“이제 저는 정말로 가겠습니다.”
민용이 엷게 웃었다.
“그럼.”
“가, 가지 마세요!”
민정이 황급히 외쳤다.
“이 반지 낄게요.”
“아니요.”
민용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저를 정말로 원하시는 게 아니잖아요.”
“이 선생님.”
“그러니까 됐습니다.”
민용은 싱긋 웃었다.
“그 정도 사랑, 아픔, 못 버텨낼 놈 아닙니다.”
“그래도, 그래도 제가 너무나도 죄송하잖아요.”
“죄송해 하지 말아요.”
민용이 작게 웃었다.
“그러면 내 마음이 더 아프니까.”
“하아.”
그 때 다시 한 번 잡았어야 했는데.
“바보 같은 놈.”
하지만 이미 민정은 멀리 간 후였다.
“하아.”
다시는 잡을 기회가 없을 거였다.
“너 얼굴이 왜 그래?”
“어?”
정수가 걱정스럽게 민정을 바라봤다.
“떨어진 거야?”
“아, 아니.”
민정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거 발표 나려면 아직 멀었어요.”
“그런데 너 얼굴이 왜 그래?”
“내 얼굴이 뭐?”
민정이 조심스럽게 손을 얼굴에 가져갔다.
“너 지금 무지 굳어 있어.”
“밖이 좀 더워서 그런가 봐.”
민정이 귀엽게 혀를 내밀었다.
“내가 더우면 짜증 좀 내잖아요.”
“아무리 더워도 그렇지. 그건 좀.”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에요.”
민정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 있으면 나 엄마에게 다 말하는 거 알면서.”
“정말이지?”
“네.”
민정이 힘주어 답했다.
“내가 언제 엄마 속인 적 있나?”
“아휴.”
정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속인 적은 없어도, 늘 아파하니까 그러지.”
“이제 안 그래요.”
민정이 씩씩하게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잖아요.”
“엄마 눈에는 어려.”
정수가 고개를 저었다.
“너 아직 많이 어린 아이야.”
“헤헤.”
민정이 싱긋 웃었다.
“엄마 그런데 좀 피곤한데, 쉬어도 될까요?”
“아, 그래. 쉬어.”
정수가 황급히 비켜주었다.
“엄마가 또 우리 딸 귀찮게 했네.”
“아니요.”
민정이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나 걱정되서 그러시는 건데 뭐가 귀찮게 해?”
“그래도.”
“아니에요.”
민정이 싱긋 웃었다.
“그럼 엄마, 저 좀 씻을게요.”
“그래.”
정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은 먹을 거니?”
“아니요.”
민정이 크게 대답했다.
“먹고 왔어.”
“벌써?”
“네.”
“그래.”
정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쉬어.”
“네.”
‘철컥’
민정의 문이 닫혔다.
“제가 왜 저러지?”
정수는 걱정스런 눈으로 민정의 방 문을 바라봤다.
“저런 애가 아닌데.”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거였다.
“그런데 왜 나에게도 말을 못 하는 거지?”
정수는 민정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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