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오! 나의 공주님 [완]

여름 날의 판타지 - [여는 이야기]

권정선재 2009. 8. 10. 07:49

 

 

 

여름 날의 판타지

 

어느 여름날의 슬픈 기억

 

 

여는 이야기

 

 

 

나 있잖아요. 정말 죽을 것 같아요.

 

죽지 마.

 

나 좀 죽여줘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어느 여름, 우리는 그 여름이 우리에게 여름 날의 판타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 했다. 그 해 여름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따사로운 햇살을 내려 준 여름이었다.

 

 

 

, 이번 여름에 부산 한 번 어떠냐?

 

좋지.

 

상헌이 유쾌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뜨거운 여름을 멋지게 보낼 그러한 기회가 필요하지 않냐?

 

그나저나 부산 갈려면 돈 많이 필요하지 않나?

 

친구 녀석 하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상헌과 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미친 놈, 너는 여자 친구도 있는 놈이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그냥 놀러가는 거라고.

 

그냥?

 

그래.

 

나는 유쾌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번에 바다 가는 거는 여자 후리러 가는 거 아니야. 이 미친 새끼야. 그냥 놀러 가는 거야. 어차피 이제 군대 가고 그러면 우리 다 같이 놀러가는 거 다시는 못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

 

, 이 새끼 입맛 다시는 거 봐라.

 

상헌이 친구 녀석을 가리키며 익살스럽게 말하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나도 유쾌한 친구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럼 언제쯤 가는 게 좋을까?

 

여기서 알바 하는 녀석들 있으니까, 그 녀석들 스케쥴 이렇게저렇게 조절하고 그렇게 가야지.

 

뭐 그러시든지요.

 

친구 녀석은 더 이상 관심이 없는 듯, 나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다시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날이 좋았다.

 

하아.

 

너 왜 그렇게 축 쳐져 있는 거냐?

 

, 그냥. 이렇게 존나 좋은 날에, 우리는 학교에 나가야 하고 그러니까 조금 짜증 나고 그러잖아.

 

,

 

상헌이 녀석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도 이제 여자가 고프구나?

 

?

 

이 자식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나는 살짝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녀석을 바라봤다.

 

너 그런 실없는 소리 좀 하지 말라고 그랬지? 내가 무슨,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라.

 

.

 

상헌이 낮게 웃었다.

 

아무튼, 너희들 열심히 고민하고, 나중에 나한테 문자 날려라. 나는 이제 가련다. 여기서 할 것도 없고.

 

? 벌써 가게?

 

상헌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왜 벌써 가려고?

 

여기서 할 것도 없잖아.

 

나는 하품을 찍 하면서 대꾸했다.

 

너희들 전부 지금 다 자기 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고 있으니까, 어차피 더 할 것도 없지 않아?

 

이거 한 잔 해야지.

 

상헌이 술을 마시는 시늉을 하면서 고개를 꺾자,  나는 나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왜 웃냐?

 

술도 못 마시는 게 지랄은. 너 한 번만 더 술 마시면 너네 아빠가 너를 죽일 지도 모를 걸?

 

그러면 뭐 어쩔 거야?

 

상헌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나는 술에 뻗어서 우리 아빠가 지랄 하는 거 하나도 안 들릴 텐데 말이야.

 

미친 놈.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나 정말로 간다.

 

? 진짜로 가려고 하는 거야? 오늘 밤에 옆에 여고에서 애들도 몇 명 오기로 했단 말이야.

 

됐다. 아무튼, 나는 이번에 진짜 부산 그냥 놀러 가는 거거든. 그리고, 너희 한 번만 더, 여고 애들 꼬셨다가는 학사경고 받을 걸?

 

학사 경고는 무슨. 걔들도 좋자고 하는 건데.

 

상헌이 입에 담배를 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튼, 너 싫으면 말아라.

 

나는 싫다. 그럼 나 간다.

 

그래, 연락 할게.

 

그래.

 

나는 상헌이 녀석의 자취방을 나오면서 입에 담배를 물었다. 씁쓸하면서도 무언가 익숙한 연기가 폐를 깊숙이 채우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딩동

 

문자 메시지, 편리할 때는 너무나도 편리하지만, 귀찮을 때는 한없이 너무나도 귀찮은 존재.

 

흐음.

 

여진이었다. 공식적으로는 그의 여자친구이지만, 뭐 정작 사실을 따지자고 하면, 그를 늘 따라다니는 귀찮은 여자애에 불과했다.

 

오늘 밤에 쇼핑 갈 건데? 너도 같이 갈래?

 

역시나 별 건덕지 없는 문자였다. 나는 더 이상 여기에 흥미를 가지지 않고, 바로 베터리를 빼고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집어 넣었다. 베터리가 다 닳아서 문자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하면, 여진 역시 별 말 하지 못 할 것이다.

 

부산이라.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행?

 

.

 

흐음, 그래도 조금 위험하지 않겠어? 사람도 많고 말이야. 조금 더 지나고 가는 건 어때? ?

 

엄마, 지금 가야, 그게 바캉스지. 바캉스 시즌 다 지나서 가는 건 완전 청승이에요. 그리고 친구들하고 같이 가는 거니까, 위험할 것도 없고 말이에요.

 

하여간 너를 누가 말리겠니? 정말, 너는 내 아들이지만, 때때로 너 하는 거 보면 완전히 미운 거 알고 있어?

 

아니요.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럼 가도 되는 거죠?

 

나는 모른다. 아버지께 허락을 맡아 봐. 엄마는 너에 대해서 그런 거 허락했다가 나중에 공연히 너희 아버지께 혼이 나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야.

 

엄살은.

 

나는 물을 마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더 먹지 않고?

 

엄마 부산을 간다니까요? 가서, 알잖아요?

 

으유, 도대체 너는 누구를 닮아서 성격이 그런 거니? 엄마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고 너처럼 그렇게 노는 거 좋은 성격은 아닌데 말이야.

 

엄마랑 아버지한테 잠재되어 있는 뭐 그런 건가 보지. 아무튼, 그럼 나 가는 거예요. 알았죠?

 

그래.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내 방으로 향했다. 20년 가까이 내가 지내고 있는 공간, 아주 어릴 적 이 집으로 이사를 왔고, 그 이후 나는 계속 이 동네에서 똑 같은 녀석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운도 좋게 집 바로 뒤의 대학에 붙은 것은 어떻게 보면 행운이고, 또 다르게 보면 지옥과도 같은 것이지만.

 

 

 

8월 첫주?

 

그래.

 

흐음.

 

왜 그래?

 

탱크보이를 입에 물고, 상헌이 고개를 갸웃했다.

 

네가 다른 애들이랑 물어보고 날짜를 잡으라고 그랬잖아?

 

그랬지.

 

나는 시큰둥하게 대꾸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너무 그 때는 북적거리지 않나? 가서 팬션이나 그런 것 잡기도 되게 불편할 것 같은데?

 

세호도 같이 간대. 그 녀석 아버지가 여행사 하시니까, 팬션 같은 거 걱정은 안 해도 괜찮을 걸?

 

치밀한 것들.

 

나는 낮게 미소를 지으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그나저나 너 어제 여진이가 보낸 문자 다 씹었다며?

 

? 배터리가 나가 있었어.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대꾸를 했다. 그러나, 상헌은 그런 나를 너무나도 잘 안다는 미소를 지으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너 또 일부러 여진이 연락 안 받으려고, 핸드폰 배터리 빼 놓은 거지?

 

?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지금 네가 하는 소리 여진이가 들으면, 정말로 장난 아닐 걸?

 

. 귀신을 속여라.

 

너도 한 대 필래?

 

.

 

상헌이 나에게 담배를 받아서, 불을 붙였다.

 

여진이가 그렇게 싫은 거냐? 여진이 걔 집도 좀 살고, 몸매도 그 정도면 충분히 착하고, 얼굴도 괜찮지 않으냐? 그 정도 여자친구라면 다른 애들은 모두 감지덕지라고 말을 할 텐데, 너는 왜 그렇게 까칠하게 구는 거냐?

 

그럼 너 주랴?

 

미친 놈.

 

상헌이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튼, 이번 여행에 여진이도 같이 간다.

 

?

 

지금 이 녀석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누가, 지금 어디에 같이 간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야?

 

여진이가 우리들 놀러가는 데를 도대체 왜 따라와?

 

아니, 여진이를 데려가려고 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까, 여진이가 우리 여행 계획에 대해서 듣게 되어 버렸어. 그러니까 어쩔 수 있냐? 여진이 그거 듣고 포기할 녀석도 아니고 말이야.

 

어떻게 해서든 말렸어야지. 이 미친 놈들아, 걔를 데리고 가면, 가서 즐겁게 놀 수나 있겠냐?

 

여자 후리러 가는 거 아니라며.

 

상헌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여진이 공식적으로 네 여자친구니까, 여진이가 따라가면 우리 중에 불편할 사람 너 하나 밖에 없을 걸? 다른 사람들은 여진이가 같이 가는 거에 대해서 딱히 반대 하지 않더라고.

 

미친 놈들.

 

나는 낮게 욕을 내뱉으며 깊게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이번 기회에 여진이랑 기회를 확실히 해.

 

뭘 확실히 해?

 

헤어지던지, 아니면 더 확실하게 사귀던지, 지금 너희 둘을 보면 완전히 이상한 거 너는 모르냐? 두 사람 사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런 사이가 아닌 것도 아니고, 그게 도대체 뭐냐?

 

헤어지자고 말을 한다고, 여진이 걔가 나에게서 떨어질 녀석이냐? 말이 되는 소리를 좀 지껄여라.

 

솔직히 말해서 내가 보기에는 네가 별로 적극적으로 여진이를 떼려고 생각 안 하고 있는 것 같아. 어떻게 보면 너도 좋아하고 있는 것 같은데?

 

미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담배를 발로 비벼 껐다.

 

그런 쉰 소리 할 거면, 집에 가서 발이나 씻고 잠이나 자. 미친 놈,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너 정말 확실히 해. 여진이 그 녀석, 네가 확실히 한다면, 분명히 너에게서 물러날 그런 아이니까.

 

 

 

네가 여기에 왜 앉아?

 

왜 앉긴?

 

퉁명스러운 나의 목소리와 다르게, 여진은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내 옆에 턱 하니 달라붙었다.

 

너랑 나랑 사랑하는 사이인데, 당연히 옆 자리에 앉아야 하는 거 아니겠어? 너는 사람 서운하게.

 

미친.

 

왜 그래?

 

여진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백에서 음료수를 꺼냈다.

 

이거 마셔.

 

너나 마셔.

 

나는 마실 거 있어.

 

나는 그걸 받아서, 평상시 여진이를 좋아한다고 추측되는, 아니 이 녀석 표정을 보면 분명히 여진이를 좋아하고 있는 화남이에게 건넸다.

 

, 화남아. 이거 여진이가 너 마시라고 주는 거란다.

 

, 내가 준 거를 왜 화남이에게 줘? , 화남이 너 그거 도로 내. 왜 네가 그걸 받고 그러냐?

 

, , 미안.

 

그렇게 둘이 투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눈을 감았다. 이럴 때는 자는 게 속 편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