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단편 소설

[단편 소설] 아픈 남자 아픈 여자

권정선재 2010. 1. 1. 12:16

 

“날 좀 사랑해줘.”


그녀는 간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 속에는 너무나도 많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나 당신이라는 사람이 정말로 필요해. 많은 것을 달라고 하지 않을게. 그냥, 그냥 나를 좀 사랑해 줘. 응? 그거 하나면 충분해. 당신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 그것 하나로도 나 충분해.”


“미안해.”


그의 답변은 그녀의 애절함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짧았다. 그러나 그 속에 담겨 있는 쓸쓸함은 그녀의 것과 비교해 적지 않았다.


“왜? 왜 나는 안 된다고 말을 하는 건데? 내가 당신에게 부족한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나는 들어갈 수 없다고 말을 하는 건데? 내가 뭘 당신에게 잘못해서, 나에게 그 마음 못 연다고 하는 건데!”


그녀는 애처롭게 외쳤다. 그녀의 눈에서는 그녀가 평생 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이상으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당신이라는 남자 뭐가 그렇게 잘나서 나한테 이렇게 행동을 하는 건데? 나라는 여자가 당신이라는 남자에게 뭐가 그렇게 부족해서 그렇게 행동을 하는 건데! 내가 뭐 어려운 거 부탁해? 그냥, 그냥 나를 사랑해달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


“너는 그게 쉽니? 네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사랑하는 것이 너는 그리도 쉽니?”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갈라지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너무나도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그리 담담하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아마도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그녀의 말이 계속되는 도중에도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시선을 주는 것은 커다란 죄라도 짓는 것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계속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반면 그녀는 계속 그의 시선을 맞추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시선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무의식인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간절하게 그의 눈을 마주치려고 한다는 사실은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너도 나에게 아주 마음이 없는 거 아니잖아? 네가 만일 나에게 전혀 마음이 없었다면 너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잖아. 너 아주 조금이라도 나에게 마음이 있잖아. 그런데, 그런데 왜 아닌 척 하는 건데? 왜 그렇지 않은 척 구는 건데?”


“나 단 한 번도 너에게 관심 있었던 적 없어. 내가 너에게 보였던 것은 그저 네가 나에게 보여주는 그러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어. 그 이상, 그 이하 어떤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고.”


답답했다. 도대체 그녀는 왜 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일까? 그는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그녀가 한심하고 안타까웠다.


“너도 알고 있잖아. 나 너를 절대로 바라볼 수 없다는 거 말이야. 그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네가 왜 이렇게 어린 아이처럼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건데? 못한다는 것 알고 있으면서 왜 그러는 건데?”


“왜 못 해?”


그녀는 너무나도 간절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녀 역시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사실 그가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를 사랑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늘 바보처럼 바라보기만 하고 한심하게 한 자리에 서있는 그가 안타깝고 불쌍했다.


그 마음이 커지고, 다시 또 커지다보니 지금 그녀가 그를 향한 마음으로 변해있었다. 사실 그녀 역시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다만 그의 곁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 보니 그 마음이 커져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변해있던 것뿐이었다.


다만 그것이 그가 가지고 있는 마음 못지않게 간절하고, 애절했기에 소중한 마음이었다.


“우리 서로 힘들잖아.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자는 것이 뭐가 그렇게 나쁜 건데? 너 평생 그 사랑 얻지 못하잖아. 그렇다면 그냥 나에게 기대면 되는 거잖아. 여기서 너에게 사랑을 주겠다는데 왜 자꾸 다른 쪽을 보려고 하는 거야? 왜 그렇게 행동을 하려는 거야?”


“너는 왜 그러는 건데?”


그는 거칠고 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질문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살폈다. 사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처럼, 혼자서 하는 사랑은 그리 유쾌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이 무너지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힘들고 버거운 것이 바로 그러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그녀 역시 그 마음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 마음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녀로서는 죄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제 마음을 접는다는 것은 제 마음을 펼치는 것이 힘든 것 이상으로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나, 그녀 모두 자신의 마음이 오롯이 전달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마음을 오롯이 상대방에게 전달을 하려고 노력을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내가 당신을 위해서 노래를 하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나를 위해서 노래를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야. 너 역시 내가 너를 위해서 사랑을 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잖아. 그러면서 왜 내게만 강요하는 건데?”


“아파보이니까. 당신의 마음이 내 눈에는 고스란히 다 보이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러는 거잖아.”


그녀는 애처롭게 외쳤다. 그의 마음이 그녀의 눈에 다 보인다는 것을 그는 왜 모르는 것일까?


그의 상처받아서 찢어지고 덧나서 곪아있는 마음이 그녀의 눈에는 그 어느 부분도 숨겨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마음이 더욱 안쓰럽고, 그의 모든 것이 더욱 그녀에게 가깝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 역시 어렴풋이 그녀의 그런 모습을 느끼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 더 가깝게 그녀에게 다가가지는 못했다.


자신과 닮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마치 자신의 드러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그 상처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누군가가 함께하고 싶다는 그러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 그는 그녀가 조금 더 그를 멀리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너무나도 닮아있었기에 더욱 아프고 가슴이 쓰렸다. 조금만 달랐더라도,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그녀가 그를 닮지 않았더라면, 정말 그녀가 바라는 것처럼 그녀를 사랑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너무나도 닮아 있었고, 그렇기에 그는 그녀를 멀리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괴로움이 그는 그녀를 볼 때마다 숨이 턱 막히는 것을 억지로 참아야만 했다. 그런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네가 아무리 이런다고 해서 나는 너를 바라보지 않아.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순간이 오면, 그녀가 나를 바라봐주니까 내가 너를 바라보지 않을 것이고, 그녀가 나를 바라봐주지 않을 때면, 나는 계속 그녀만을 바라봐야 하니까 너를 바라볼 수 없어. 그러니까 제발 너 혼자서 그 마음 제발 접어. 절대로 너에게 무언가를 줄 수 없으니까 그 마음을 접으란 말이야. 공연히 내게 미안한 마음 같은 것 가지게 만들지 마.”


“미안하면, 미안하면 나를 사랑하면 되는 거잖아.”


그녀가 젖은 목소리로 반문했다. 사실 그녀는 그가 이해가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늘 그는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일 그녀가 그의 상황이었다면 차라리 그를 택할 것이 분명했다. 미안하다면, 그 미안함이 느껴지지 않도록 행동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의 생각은 그녀의 생각과 다른 모양이었다.


그녀가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점점 더 많이 했다. 그러나 그 미안하다는 말과 반비례해서 그녀에게서 멀어지려고 자꾸만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그녀에게 다가설 수 없는 병에라도 걸린 모양이었다. 제발 바라봐달라고 말을 해도 절대로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왜 그러는 건데! 도대체, 도대체 내가 뭐가 부족해서 그러는 건데? 내가 너에게 뭐가 부족해?”


그녀는 슬픈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가 너에게 돈을 달래? 뭘 더 해달래? 그냥 나를 바라봐달라고, 나를 사랑해달라고 말을 하는 거잖아. 내가 뭐 힘든 거 부탁하니? 그냥 나를 사랑하라고!”


그 역시, 그의 그녀에게 이 말을 너무나도 많이 했었다. 그렇기에 그는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다른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이야기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랑을 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른 모든 일은 억지로 하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동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은 그렇게 되지 못한 부분이었다. 억지로 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마음은 자꾸만 어긋나려고 하고 비켜나려고 하는 것이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렇기에 힘들고, 그렇기에 숨이 막힌 것이었다.


“제발 마음 접어. 그녀가 나를 바라봐주지 않는 것도 나 너무 힘든데. 너까지 옆에서 보채니까 숨이 턱 하니 막히는 것이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아.”


“차라리 죽어.”


그녀의 큰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사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그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한 그 순간부터,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히지 않은 날은 없었다.


그녀는 매일 같이 울었고, 항상 눈초리에 눈물을 맺고 있었다. 슬퍼서도 울었고, 안타까워서도 울었고, 그가 불쌍해서도 울었다. 세상에 울 이유는 정말 많았다. 그 중에서 그녀는 그를 선택했다. 그리고 특히나 그를 선택한 것은 더욱 울 일을 많이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혼자서 바라보는 것도 너무나도 슬펐고, 그가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일도 너무나도 슬펐고, 그런 어긋남도 너무나도 슬펐다. 슬픈 일이 보태지고, 다시 또 보태지고, 그리고 또 보태졌다. 눈물은 그렇게 그녀의 마음을 타고 강이 되었고, 이제 그녀의 몸 안의 수분은 다 빠져나간 것처럼 심장 가장 깊은 곳부터 말라가고 있었다.


“나 정말 당신이 사랑해주지 않으면 죽을 지도 몰라. 당신이 그 여자에게 하는 거짓말처럼 말로만 죽어가는 것이 아니야.”


그녀의 목소리는 쉬어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 애절함은 점점 더 거칠게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너는 죽을 것 같다고 말을 하지? 나는 죽고 있어. 정말로, 여기가 텅 빈 것처럼 느껴져서 죽어가고 있단 말이야!”


그녀는 마치 제 자식을 잃은 짐승처럼 자신의 왼쪽 가슴을 오른손으로 두드렸다. 그녀의 그런 행동은 대장장이가 철을 제련하는 것처럼 점점 더 그녀의 마음을 단단하고 굳게 만들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었지만, 그 제련 중 실수로 그 마음이 부숴 질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끝까지 강하게 버티고, 다시 또 버티다가 보면 결국 그 끝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었지만 분명히 이 길은 끝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실이 더더욱 그녀를 힘들게하고, 그녀를 아프게 하는 사실이었다.


“당신이라는 사람 어쩌면 그렇게 잔인해? 당신이 몰랐다면, 지금 이 마음을 모른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억울하고, 이렇게까지 당신에게 어리광부리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당신을 알잖아. 지금 내 마음이 어떻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잖아. 그런데 왜, 왜 내 마음을 바라봐주지 않는 건데? 내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알면서 왜 닦아주지 않는 건데!”


“그걸 알면서 너도 똑같이 행동을 하고 있잖아.”


그는 다시 담담한 그의 본모습을 찾았다. 두 사람은 마치 시소와 같았다. 한 쪽이 감정을 다스리면, 다른 한 쪽의 감정은 흔들렸다. 사실 어느 한 쪽이 계속 다른 한 쪽을 바라보며 열을 낸다면 그 관계는 오래 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가 시소처럼 그렇게 마주보며 서로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이렇게 오래 이야기하고 그 감정이 닿을 수 있었다. 그도 말로는 이렇게 무조건 그녀를 밀어내는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 동안 그의 모습을 보면 그리 냉정하게 그녀를 밀어내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때로 그 역시 그녀의 눈물을 닦아준 적이 있었고, 때로 그 역시 그녀에게 어깨를 벌려준 일이 있었다. 물론 그로써는 절대로 그 일에 어떤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와 다르게 그녀에게 그 일은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아직까지 두 사람의 감정은 완전히 이어진 것도, 완전히 끊어진 것도 아닌 채로 지속되고 있었다.


“당신은 오래 아파왔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오래 아픈 거 당신 안 보고 싶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그냥 당신이 희생하면서 나를 바라봐주면 안 되는 거야? 나를 그냥 그렇게 사랑해주면 안 되는 거야?”


“안 돼.”


그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의 차분함은 어떻게 냉정한 무엇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나로 인해서 괴로워하는 그녀를 위해 진작 희생을 했을 거야. 더 이상 다가가는 그런 잔인한 짓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나는 그렇게 희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녀가 힘들어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에게 자꾸만 매달리고,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어. 내 탓에 괴롭다고, 힘들다고 말을 하는데 아직까지도 나를 희생하지 못해서 그녀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어. 그러니까 너도 나에게 희생을 말하지 마. 나는 그런 것 할 줄 모르는 인간이야. 희생 그런 거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단 한 번도 할 생각도 없는 그러한 인간이니까, 너도 내게 바라지 마.”


“아니, 당신은 나를 사랑할 거야. 너는 나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 알아. 나는 안다고!”


그녀는 애처롭게 외쳤다. 그녀의 외침은 사실 그에게 닿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씩 버겁고, 때로는 괴로운 이 사랑에 자신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외우는 주문과 같은 행동이 바로 이 외침이었다. 이 외침이 그에게 닿는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너무나도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고, 거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 그 닿음이, 그 외침의 닿음이 그녀에게 하나의 희망이고 하나의 등대와 같이 빛나고 있었다.


정말로 그가 그녀에게 아무런 마음도 없다면 그가 그녀에게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그는 자꾸만 그녀에게 관심을 주고 있었다. 그 관심이 정말로 사랑을 향한 관심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로서는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정도의 힘이 되주고 있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을 것이었지만, 그래도 언젠가 혹시나, 정말로 혹시나 자신을 봐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이 밀어내지 않고 바라본다는 것은 정말 어느 정도는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사실 그녀는 늘 그에게 사랑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지만, 그가 지금 당장 사랑을 하는 것 역시 별로 바라지는 않았다. 그가 진실로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마음을 한 순간 접고 그녀에게 온다면 오히려 실망할 것이 분명했다.


그 마음을 아주 오래 잊지 못하고, 천천히 그 마음에 삭아가며 무너져내리는 순간, 그 순간 그녀는 그를 안고 싶었다. 재가 되어, 그 마음이 불 타 재가 되어, 그 마음이 불 타 재가 되어 무너져 내린 그를 안고, 두 손으로 붙들고 싶었다. 그것이 그녀가 바라고, 진정으로 원하는 바였다. 무조건 그가 지금 응 하면서 사랑을 해준다면 그녀 역시 밀어낼 것이 분명했다.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가 자꾸만 그녀를 밀어내려고 하고 있으니까 그 점에 점점 더 그녀의 마음이 끌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픈 사람을 사랑하는 자신 역시 아픈 사람이었고, 이 사랑은 아픈 사랑이었다. 그렇기에 그 아픔은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슬펐지만, 그 슬픔의 아픔은 그녀에게 묘한 기쁨으로 다가오곤 했다.


“그 사람 아무리 오래 당신이 바라본다고 하더라도 당신을 봐주지 않을 거라는 거 이제 어렴풋이 느껴지지 않아요?”


“않아.”


그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말을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오지 말라고, 제발 자신을 찾아오지 말라고 말을 하는 그녀의 말에 괴로워하며 무너졌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알고 있었다. 이 힘듦의 끝은 무지개 색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지금 이 색과는 분명히 다른 색일 것이라는 것을. 지금 그의 목을 조르는 이 일이 그리 힘든 일이 아니라 조금은 나은 일이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사랑하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그녀를 간절히 바라보는 것처럼, 너 역시 나를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나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너도 알잖아?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어. 너를 사랑하게 되면 나에 대해서 잘못을 저지르는 거야.”


“지금 당장 큰 사랑 달라고 말하지 않아.”


“아니.”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 네가 큰 사랑을 달라고 말은 하지 않더라도, 너는 지금 충분히 큰 사랑을 바라고 있어. 내가 너에게 줄 수 없는, 영원히 줄 수 없는 그러한 것을 바라고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제발 다른 사람을 봐. 나 말고 다른 편을 바라보란 말이야. 내가 할 수 없는 것, 내가 줄 수 없는 것, 내가 볼 수 없는 것, 그런 것들을 보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 사람이 나보다 더 너에게 어울리는 사람일 거야. 그러니까 제발 나에게서 모든 것을 버리고 그 사람을 바라봐. 제발, 제발 그렇게 행동을 해 줘. 부탁이고, 다시 또 부탁이야.”


“사랑해.”


그녀는 젖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느낌으로 그에게 말했다.


“네가 아무리 고개를 젓고 피하려고 해도 너를 사랑해. 네가 아무리 외면을 하려고 해도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하.”


답답했다. 자신도 답답하고 그녀도 답답했다. 두 사람 모두 왜 이리 바보처럼 행동을 하는 것일까?


“내가 너를 사랑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 거야? 내가 너를 사랑하는 순간이 정말로 올 거라고 믿고 이렇게 행동을 하는 거야?”


“응.”


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희망이 없다면 이렇게 고통스러운 순간을 견딜 수 없을 것이었다. 그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아주 먼 미래라도 그것이 올 것이라고 믿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너는 아니야? 너는 그 여자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녀를 사랑하고, 바라보고 있는 거야?”


“아니. 나도 아니야. 나도 그녀가 나를 바라봐 줄 거라고 믿고 있기에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래.”


그녀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네가 나를 사랑할 거라고 믿어. 나는 네가 그 여자가 너를 사랑해줄 거라고 믿는 것 이상으로 나를 사랑해줄 거라고 믿고 있다고. 그러니까 나는 계속 너를 바라볼 거야. 너와 나는 같으니까.”


“우린 달라.”


다시 시소는 그녀에게 기울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그녀의 여유로움과 비교되며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절대로 너를 보지 않을 거지만, 그녀는 언젠가 나를 봐줄 거야. 그 사실은 확실해. 내가 너를 바라보지 않는 것과는 분명히 다를 거란 말이야.”


“하아.”


그녀는 묘하게 미소를 지으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그녀가 닮아있다는 것은 그녀에게 위안을 주는 또 다른 부분이었다.


“만일, 만일 정말 당신의 말대로 그녀가 당신을 바라본다면 그 순간 당신을 놓아줄게. 그러니까 그 전까지만 나를 바라봐 줘.”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그녀의 마음이 차분하게 변하는 것과 다르게 그녀의 목소리에는 긴장이 느껴지고 있었다.


“당신에게 평생 사랑해달라는 이야기 안 해. 아니 나 못 해. 당신이 얼마나 간절하게 그 여자를 좋아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내가 그런 말 하면 정말로 나쁘다는 것 나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전까지, 그 전까지는 나 사랑해줘도 되는 거잖아. 아니야?”


“응, 아니야.”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의 마음이 미친 듯 요동치는 것과 다르게 그의 표정은 차분하게 진정되고 있었다.


“내가 만일 너를 사랑하는 시늉이라도 보인다면, 내가 만일 너의 곁에서 너에게 어깨를 보여주는 그 모습을 그녀가 보신다면, 그녀께서 보신다면 혹여, 나에게 오려던 그 마음을 다시 접으실 것이 분명해. 내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을 하실 테니가, 분명히 그 마음을 다시 바꾸실 것이 분명하단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절대로 못 해. 나는 절대로 못 해.”


“그렇지 않을 거야.”


그녀는 젖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애처롭게 말했다.


“네가 정말로 그녀를 바란다면, 정말로 그 여자를 바란다면 그녀는 네가 어디에 있건, 너를 알고 너를 안아줄 거라고.”


“그럴까?”


그는 슬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금 이리도 간절하게 외쳐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내 마음, 그 마음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내가 그녀의 옆에 없는데, 그 간절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네가 간절하다면, 정말로 간절하다면 네가 무엇을 하던, 무엇을 행동하건 그 여자 너를 바라봐줄 거야. 그러니까 나를 사랑해 줘. 제발, 제발 나를 사랑해 줘.”


“하.”

마음이 무거웠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도대체 그녀는 왜 이렇게 행동을 하는 것일까? 자신은 그녀를 안쓰럽게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녀를 안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를 안는 것은 그 동안 자신의 행동에 모욕을 하는 것이었다. 그 동안 자신의 사랑에 모래를 뿌리는 격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 힘이 들었고, 아주 오랜 시간 버텨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를 안게 된다면 그 시간이 모두 사라질 것만 같았다.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다시 또 미안한데 나 정말로 너를 사랑할 수는 없어. 만일 그녀가 내가 어디에 있건 나를 사랑해 줄 거라는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 절대로 너를 안을 수는 없어.”


“어째서?”


그녀가 따지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나는 사랑할 수 없다는 건데?”


“나랑 닮았으니까.”


그는 이 말로 모든 것이 정리가 된다는 느낌을 담아서 그녀에게 전달했다.


“너는 나랑 너무나도 닮았어.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워. 그런 거 너무나도 힘들 게 분명하고, 그런 거 너무나도 버거울 것이 분명해. 그런데 내가 너를 어떻게 감히 사랑할 수가 있어? 어떻게 감히 좋아할 수가 있어? 나 못 해. 나 절대로 못 해. 나 그런 거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나도 못 버텨.”


그녀의 모습에 어렴풋이 가시가 없는 장미가 어울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너무나도 상처를 받기 쉬운 그런 모습이 그녀에게 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떨어진 가시 자리마다 수액이 흐르고 있었다. 장미를 마르게 하기 위해서 수액이 흐르고 있었다. 그 수액은 멈추지도 않았고, 양이 줄지도 않았다. 마치, 댐에 구멍이라도 난 모양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흘리고 있었다. 눈물이라도 해도 좋았고, 피라도 해도 좋았다.


아무튼 그녀라는 장미는 끝없이 무언가를 흘리고, 무언가를 비우고 있었다. 천천히 그렇게 죽어가며, 다시 또 죽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거, 그런 거 바라지도 않았었어. 당신이 절대로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거 알고 있으니까, 그런 마음 접었었어. 하지만 어느 순간 당신도 나를 바라봐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녀는 그녀의 작은 키만큼, 그리고 그의 큰 키만큼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사랑해.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미친 사람이라고 욕을 해도 좋고, 손가락질해도 좋아. 그냥 내 사랑을 인정하고, 내가 내미는 손을, 내 손을 잡아만 줘.”


“그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건지 아는데, 그 손을 잡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내가 어떻게 그 손을 잡을 수가 있어? 절대로 그 손 은 잡아.”


사실 그가 다짐을 한 것이 있었다. 그녀의 눈물을 보면 사실 그의 마음 역시 약해지곤 했었다. 남자이기에, 그의 몸에 남자의 피가 흐르고 있기에,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싶은 순간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것으로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알고 있으니까.


“사랑이라고 쓰고 아픔이라고 읽는 거래. 나는 네가 그걸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그걸 받아주고 싶지도 않아.”


“어째서?”


그녀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왜 그 마음을 받아주고 싶지 않다는 건데?”


“나도 너무나도 아파. 나도 그 사람이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서 너무나도 아프단 말이야. 그런데 내가 너까지 받아줘야 한다고? 나 못 해. 나 절대로 못 해. 그런 거 나 못 한다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우리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미소를 지으면 되는 거 아니니? 그렇게 쉬운 걸 왜 너는 못 한다는 거야?”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겠지만, 아픔을 나누면 고통이 돼. 고슴도치는 일정 이상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아. 서로의 가시가 서로에게 아픔이라는 것을 아니까. 우리도 서로가 얼마나 큰 가시를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밀어내는 것이 당연해. 더 이상 다가가서는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고슴도치. 그녀는 차라리 자신이 고슴도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녀가 고슴도치였다면 그녀는 자신의 가시를 모두 뽑아냈을 거였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갈 거였다. 그의 가시가 아무리 날카로워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다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피를 흘리더라도, 차라리 그렇게 그의 옆에 있고 싶었다. 그의 가시가 날카롭다면, 아무리 그가 애처롭게 그 여자를 바라본다고 하더라도 그 여자가 그에게 다가갈 일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은 아주 혹시라도, 그 여자가 그에게 다가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 그의 말대로 고슴도치라면,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고슴도치라면 그녀는 감히 그에게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다가갈 것이었다. 맨몸에 생채기가 나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온 몸이 곪아서 문드러져도 참을 수 있었다. 그의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이 다가오지 못하게, 다른 존재가 손을 뻗치지 못하게 막을 수만 있다면 좋았다. 그렇게 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너무나도 좋았다. 그것으로도 그녀에게는 충분하고, 다행스러운 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네가 이렇게 매달린다고 해도 나는 너를 바라보지는 않을 거야. 나는 평생 그녀만을 바라보기로 이미 나에게 약속을 했어.”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네가 나를 사랑하기 전까지 너를 계속 바라보기만 할 거라고 다짐을 했어. 애처롭게 외치고, 다시 또 외치다보면 결국 너도 보게 될 거야. 굶주린 늑대도, 울부짖는 어린 양을 잡아먹지는 않아. 나는 계속 울 거야. 네가 들어줄 그 순간까지 나는 계속 울 거야.”


“늑대와 어린 양은 공존할 수 없어.”


그는 낮은 목소리로 설교하듯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은 늑대가 그 어린 양의 울음이 듣기가 싫어서 먹지 않으려는 척, 잡지 않으려는 척, 그렇게 행동을 할 거야. 하지만 곧 그 어린 양이 울음을 그친다면 잡아먹고 말 거야. 그것이 바로 늑대의 본성이니까, 결국 네가 다칠 거야.”


“몇 번을 말하니? 다쳐도 좋아. 내가 죽어도 좋아. 그냥 나만 사랑해 줘. 그냥 나만 바라봐 달란 말이야. 더 이상 무엇을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아. 그냥 나를 사랑해. 그거면 돼.”


“그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그의 목소리는 공허했지만 힘이 있었다. 멀리 퍼졌지만, 한 가운데 응집해 있었다.


“나 더 이상 아픈 사람을 보고 싶지 않아. 너의 아픔을 보면 자꾸만 나의 아픔이 떠올라.”


“나를 사랑한다면, 네가 나를 사랑해준다면 너의 아픔까지 내가 다 가져갈게.”


그녀는 애처로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할 자신이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그의 모든 아픔을 다 가져갈 자신이 있었다. 물론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그의 아픔까지 그녀가 가져가게 된다면 정말로 힘이 들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그가 그녀를 바라볼 수만 있다면, 아무리 자신이 고통스럽다고 한들 괜찮았다.


“사랑해 줘. 사랑해 달라고, 이렇게 간절히 바라는데, 이렇게 간절히 원하는데 왜 그걸 못 해주는 거야? 왜 그러는 거야?”


“정말 모르니?”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알 수 없다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를 바라봤다.


“몰라. 나 정말로 아무 것도 알 수 없어.”


그는 결국 낮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일까? 왜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는 것일까?


“사랑, 너 정말 내가 너를 사랑하면 너의 아픔이 모두 달아날 거라고 믿고 있는 거야?”


“응.”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진실로 그리 믿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면 아픔은 달아날 것이 분명했다.


“네가 사랑해준다면 더 이상 나 안 아파. 그럴 자신 있어.”


그는 아래 입술을 물었다. 아마도 그녀의 이런 헛된 희망은 자신을 보고 생긴 것이 분명했다.


“눈이 온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정말 눈이 내리고 있었다.


“8월에 눈이 오면 너를 사랑할게.”


갑작스러운 그의 대답. 그러나 그녀는 알았다. 외사랑이 끝나지 않을 것임을.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여태 그렇게 사랑을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