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새로운 기준
- ‘이기호’ 소설 분석 -
1. ‘이기호’는 누구인가?
1972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9년 월간지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버니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2009년 현재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작은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최순덕 성령 충만기] 등의 단편집과 장편집 [사과는 잘 해요] 등이다.
2. ‘이기호’의 소설이 독특한 이유
‘이기호’라는 작가의 이름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지도 모르는 작가이다. 비록 실험적인 소설을 쓰고 인터넷에 연재 등을 하기는 했지만 상을 많이 받은 것도 아니고, 작가로써의 삶이 긴 편도 아니니, 오히려 그의 이름을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결과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호’는 흥미로운 작가이다. 기존의 작가들과 완연히 다른 ‘이기호’만의 ‘이기호’스러운 특징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은 독특하다고 말을 할 수 있으며, 어느 한 편으로는 괴짜스럽기도 하다.
보통 대중문학의 작가들이 일정 시기를 거치면 문단과 타협을 한다거나, 다소 그의 독특한 생각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이기호’의 경우 그러한 경향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상상력을 더욱 자유분방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까지 상상력이 강해도 되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그는 다양한 이야기를 다양한 스타일의 글들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단순히 팔리기 위해서 쉬운 글. 아니면 유행을 타고 있는 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점 역시 그가 다른 작가들에 비해서 더욱 신선하다는 점일 것이다.
출판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은 당연히 상업적이어야 한다는 시선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책을 내고 안정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싶어하는 작가들은 어느 정도 타협점을 두곤 한다. 이 정도 이상은 더 이상 쓰지 않겠다. 이렇게 자신의 고집만을 부리는 소설이라면 팔리지 않을 것이기에, 이렇게까지 많이 나가지 않겠다 하는 등의 생각을 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기호’는 그런 작가들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물론, 그 역시도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모습이나 그의 문학의 특징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그에게 그러한 부분은 그리 큰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 역시 들게 만들고 있다.
실험적인 소설도 많이 쓰고 있는 그는, 현대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고 있으며, 다수의 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앞으로의 대한민국 문학을 이끌어나갈 인재로도 꼽히고 있다. 해외에 번역 등이 많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에 대해 공부를 하는 사람 등은 그의 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그의 소설이 단순히 ‘재미’ 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이상의 어떤 의미 역시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재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은 상업 소설이라는 것을 쓰는 그의 애매한 위치를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면서, 그가 양쪽의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작가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현대 한국 소설들이 주로 보이는 경향을 거의 보이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오늘날의 작가들이 인간 심리를 바탕으로 상상에 의존하는 소설들을 쓰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이기호’는 철저하게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상상이라거나, 미래에 관한 것은 극도로 자제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에는 현실적이라는 느낌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분명히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동시대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대를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그 속에는 오늘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그의 소설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신화적인 요소 역시 사용을 하고 있다. 소와 인간의 결합이라거나, 종교적인 느낌을 주는 소설도 쓰면서 그 어떤 작가와도 어울리지 않는 독보적인 자리를 잡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소재를 쓰게 되면 어느 정도 한계에 부딪힌다거나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인데, 그의 소설은 한 편 한 편이 모두 독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모두가 각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역시 그의 가치를 높여준다.
사실 ‘이기호’라는 작가는 아직 인기 있는 대중 작가의 위치에 있다고 말을 하기는 힘들다. 실제로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욱 많으며, 현대 작가 중에 그는 책이 많이 팔리는 작가의 축에도 들지 못 한다. 그러나 ‘공지영’과 함께 다음에서 연재할 기회를 얻은 그는 [사과는 잘 해요]라는 작품을 통해서 일반 대중들에게 그 이름을 각인 시켰으며, 그의 소설이 읽을만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아주 재미있는 소설은 아닐 지는 몰라도, 그의 소설은 독자들이 시간을 떼우기에라도 괜찮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을 한 것처럼, ‘이기호’의 소설에는 독특함이 살아있고,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적이고, 기존의 문단과도 닿아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 어떤 작가보다도 복합적이면서도, 단순한 결론일 수도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인 것처럼, 가장 ‘이기호’스러운 것이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가장 문학적인 의미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글에 있어서 자신감이 있으며,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려고 한다.
3. ‘이기호’ 소설의 특징
3-1 대화형 : [나쁜 소설]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 흙]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소설은 다른 작가의 소설과는 다르게 대화형 소설이 등장한다. 등장인물끼리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단편집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에 수록된 세 편의 단편은 이같은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나 [나쁜 소설]과 같은 경우는 적극적으로 독자에게 대화를 걸면서 독자로 하여금 소설에 더욱 몰입을 하게 만든다.
기존의 소설들이 독자를 수동적인 역할에 두는 것과 다르게, 능동적으로 행동을 하게 만들면서 소설을 더 이상 낯설게 느끼지 않고 친근하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행동은 굉장히 불친절한 행동일 수도 있다.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그 동안 생각도 하지 않았던 방법을 가지고 소설을 대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서 독자들은 책 읽기라는 것에 대해서 불편하게 생각을 할 수도 있으며, 어렵게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렇기에 그의 소설은 가치가 있으며, 의미가 있다.
[나쁜 소설]은 여태까지 나타났던 그 어떤 소설보다도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누군가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부제 때문에 생기는 특성이다. [나쁜 소설]은 독자가 소설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누군가에게 소설을 읽어주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특징을 하나 더 가지게 되는데, 바로 화자와 청자가 명확히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설은 작가가 화자의 입장에서 설명을 하고, 독자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청자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나쁜 소설]의 경우 독자가 소설을 읽게 되면 화자가 되고, 반대로 듣게 되면 청자가 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누가 이야기를 하고, 누가 듣고는 어쩌면 아주 크지 않을 문제일 수도 있다. 실제로 모든 소설들은 독자가 읽기 때문에 화자의 입장이 되는 것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특이한 이유는 듣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이 구절은 이 소설의 의미를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단순히 소설이란 읽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의 도구로 삼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소설이라는 것은 사실 누군가와 소통을 나누기 위한 도구는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하기 싫어서 읽는 경우가 보편적인, 사람들 간의 대화를 오히려 차단을 하는 효과를 가지고 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기호’의 [나쁜 소설] 같은 경우는 이렇게 사람들 간의 거리를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친밀하게 만들고 있다. 사람이 음성으로 누군가에게 전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말을 한다는 의미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사람이 말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는 것이고,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서로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 흙]도 특이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요리 레시피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이 소설은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로 먹지 않을 흙 요리법을 알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레시피라는 특성상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면서 소설을 전개하고 있다. 작가는 실제로 요리사와 대화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으며 소설을 읽게 된다.
방송 등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 요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나온 사람은 단순히 요리를 가르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요리만 단순히 가르치게 된다면 굉장히 지루하면서도 보고 싶지 않은, 아주 딱딱한 형식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 요리 프로그램 등에서는 요리사가 적극적으로 이 요리에 대한 옛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자신이 어떻게 이 요리를 만들게 되었는지 역시 이야기를 하곤 한다.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며, 요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 흙]은 소통을 위한 또 다른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이 친해질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에, 등산과 목욕. 그리고 식사가 있다고 한다.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굉장히 색다른 의미이다. 생존이라는 것과 직결이 되어 있는, 식량이라는 것을 나눈다는 것은 이 사람을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있으며, 내가 정말로 이 사람을 위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주고 싶은, 소설 속 화자는 독자들을 걱정을 하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나쁜 소설]과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 흙]은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액자식 구성이라는 것이다. [나쁜 소설]의 경우 누군가에게 읽어주기 시작하면서 주인공이 되고, 다시 주인공이 누군가에게 소설을 읽어주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구현하고 있다. 명확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첫 번째 액자이고, 또 몇 가지 액자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구분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나쁜 소설]은 명백히 액자형을 구성하고 있으며, 그 형식에 눈에 보이고 있다.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 흙] 역시 레시피를 알려줌과 동시에, 왜 흙을 먹게 되었느냐를 이야기하는 액자식 소설 형식을 갖추고 있다. 레시피를 알려주는 나라는 존재와 함께, 어떻게 흙을 먹게 되었는지를 이야기를 하는 부분은 다시 하나의 틀로 독자들에게 소설을 더욱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는 대화형 소설이기는 하지만 위의 두 가지 소설과는 다소 다른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작가가 직접 소설을 쓰게 되기까지의 경위를 설명하고 있는 이 소설은, 여러 법칙을 통해서 이야기를 나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짝 액자의 형태를 끼워두는 독특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의 일생을 이야기하는 일종의 전기 형식을 띄고 있으면서, 과연 작가가 화자일까? 아닐까?에 대한 궁금증 역시 함께 가지게 한다. 또한 위의 두 소설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틀 속에 사연을 집어넣는 구성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느낌의 소설이라면, 독자들은 단순히 소설을 읽는 데만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소설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며,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찾기 위해서 꼼꼼하게 책을 읽을 수 밖에 없게 된다.
3-2 참신형 : [버니]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 흙] [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의 경우 글의 스타일에 있어서도 그 누구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그의 등단작인 [버니]와 같은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소설 [최순덕 성령충만기]이다.
이 중 [버니]는 랩이라는 특이한 형식을 지니고 있다. 기존의 소설들이 서술 형 등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을 하고, 인물들이 대화를 하는 것과는 다르게, 랩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대화를 나누고 소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절을 반복적으로 삽입하면서, 마치 단편 소설 전체를 하나의 돌림노래와 같이 만들고 있다. 그리고 한 장을 제외하고는 매 장이 끝날 때마다 반복 삽입하면서, 더욱 음악적인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문체 역시 독특하게 구성한 점이 눈에 띈다. 흔히들 랩에서 라임이라고 하는, 각운을 맞추고, 읽을 때 리듬감을 주는 것 등이 소설에서 적극적으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것을 소리내어 읽게 되면, 의도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리듬을 살려 읽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버니]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설정 가운데 하나이며, [버니]를 특별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문체적 특징은 [버니]‘이기호’의 실험적인 정신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물론 [버니]가 더욱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랩이라는 소재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버니]가 아니었다면, 이 랩이라는 형식의 소설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오히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아이처럼 어색하고, 작가는 물론이고 읽는 독자들까지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버니] 속에서 랩이라는 소재는 아주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주인공이 래퍼가 되었다는 사실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랩’은 결국 다시 누군가에게 소통을 하게 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한 인물이, 랩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은 확실히 새로운 스타일이며,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해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만일 주인공이 ‘랩’이라는 소재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지 못하게 된다면, [버니]라는 소설에서 랩이 쓰이는 것은 훨씬 더 낯선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소통을 원하고, 그것이 랩이기에 [버니]는 랩이라는 형식이 딱 맞게 느껴지고 있다.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이보다 더 독특한데, 마치 성경처럼 구성을 한 것이다. [최순덕 성령충만기] 역시 [버니]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 않다면, 성경이라는 특성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낯선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느낌을 주는 이야기이기에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같은 문체는 기존의 소설에서 감히 볼 수 없는 신선한 시도로, 내용에 있어서의 특이함이 없더라도, 이미 스타일만으로도 독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참신함은 3-1에서 다룬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 흙]에서도 나타나는데, 요리 레시피라는 독특한 점은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갖게 만든다.
사실 이 소설들에 있어서는 소재에서는 그리 큰 특별함을 보이지 않는다. 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어린 계집 아이가 몸 파는 곳으로 와서 일을 하다가, 가수가 된다는 설정이나, 어쩔 수 없이 흙을 먹게 된 이후 거기에 중독이 된 사내. 미친 듯 종교에 구원을 원하는 여자의 모습은 사실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소재들을 랩이나 성경 등의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로 바꾸면서 ‘이기호’의 독창성은 빛을 발하며,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는 새로운 소설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3-3 상상형 : [백미러 사나이] [머리칼 전언]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
[백미러 사나이]의 경우 마치 [해리포터]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인을 보는 느낌이었다. 흔히 어른들이 말씀을 하는, ‘나는 뒤에도 눈이 달렸으니 허튼 짓 하지 마라.’가 실현된 모습으로, 머리 뒤에 눈이 달린 한 청년의 이야기다. 소재 자체로도 독특한 이 소설은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대와 어울리면서 사회소설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우리들이 흔히 생각을 하는 기본적인 이야기로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은, 시대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소설이며, 시대의 모습은 또 하나의 눈으로 더욱 또렷하게 세상을 그리고 있다. 화염병을 던지는 마지막 모습은 소설의 이미지를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머리칼 전언]은 다소 공포스러움을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 한 소녀가 가지고 있는 머리카락은 소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이 머리카락은 소녀의 말을 듣기는 하지만, 소녀의 명령을 고스란히 따르지 않는다. 머리카락은 인간의 길들여지지 않는 욕망을 상징하고 있는데, 성욕을 상징하고 있다. 만일 이 성욕을 억제한다면 소녀는 식욕이라는 또 다른 기본적인 욕구의 행태로 그것을 드러낸다.
현대인들에게도 누구나 자신의 욕망을 눌러야 하는 순간이 있고, 소녀의 무쇠 머리핀은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하는 도구이다. 세상이라는 곳과 타협을 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기운을 억지로 누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머리카락의 유혹에 무너지게 되는 사내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그리고 있다.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은 다소 신화적인 성격이 있는 소설이다. 소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한 소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겉으로 보이는 이러한 모습과 다르게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세상에 타협을 하지 못 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신이 살고 있던 터전을 잃게 된 한 여인의 모습은, 사회라는 커다란 폭력 아래에 무릎을 꿇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과도 닿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이끌어줄 영웅을 원하고 있지만 영웅은 부재하며, 그들의 고통은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을 색다른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정이라는 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 무조건 피켓을 든 채 구경을 오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목적과는 다르게 거기서 소주도 마시고 김밥도 먹는 다수라는 것들이 가진 이기적인 힘에 대해서 작가가 폭로하는 것은, 소설의 배경과 상관 없이 오늘날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4. ‘이기호’는 천재다.
‘김영하’ 작가와 마찬가지로 ‘이기호’ 작가는 앞으로의 대한민국 문단을 이끌어갈 작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김영하’작가가 해외에 번역도 되고, 상품성이 좋은 작가로 시선을 끌고 있다면, ‘이기호’는 한국 문단과 독자들에게 관심을 받으며 방송이나 영화계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소설에는 독특한 감성이 있다. 시대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묘하게 그것을 비켜나간다. 그리고 묘하게 비켜나가는 줄 알았던 그의 시선은 정확하게, 그 문제의 본질을 뚫고 있다. 오히려 돌려서 말을 하기에 현대는 그의 소설에서 더욱 잘 살아있으며, 우리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곳보다 더 현실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칫 적나라해서 뻔뻔해질 수도 있는, 뻔뻔하기에 식상할 수도 있는 사회적인 주제들을 그는 독특한 문체와 실험적인 도전으로 색다르게 바꾸어 버린다. 똑같은 민주화 운동의 이야기가 아닌 뒤통수에 눈이 달린 사내의 이야기로, 나라와 다수의 폭력 아래 무릎을 꿇는 한 여인의 삶을 소의 아이를 낳은 신화의 여인으로, 글도 배운 적 없고 공부도 한 적 없지만, 신앙심 하나로 모든 것을 이야기를 하는 한 여인의 삶 등은, 오직 ‘이기호’이기에 가능한 색다른 도전일 것이다.
시대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원로, 중견작가들에 이어서, 자신의 상상력의 나래를 마음껏 피는 젊은 작가들의 사이에 있는, 말 그대로 허리를 담당하며 시대의 아픔도 그려낼 줄 알고 상상력의 나래도 펼칠 수 있기에 ‘이기호’는 그 어떤 현존하는 한국작가보다 더 우수하며 뛰어난 작가이다.
현대문학사에서 그런 만큼 그의 위치는 아주 중요하다. 단순히 재미만을 쫓는 것은 아니면서도,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소설을 쓰고 있다. 현대에서 소설을 읽는 사람들의 수가 급속도로 줄어가고 있다는 점을 살필 때, 그런 사람들까지 모두 자신의 독자들로 가져오면서도, 작품의 수준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기호’는 그러한 일을 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작가적 모습은 앞으로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반드시 따라야 할 모습이며, 기존의 작가들도 닮아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이 되다. 무조건 힘이 잔뜩 들어가서 관념적인 내용으로만 가득 담긴 상징 소설은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거기에 재미가 있어서 대중들과 소통을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좋은 소설이 될 수 있고, 사람들에게 의미를 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 읽어주지 않으면 그 작품은 좋은 작품으로 인정을 받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다수가 읽을 수 있는, 조금 더 편안한 소재와 편안한 문체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 역시도 좋은 소설은 아니다. 소설 속에 분명한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하며, 독자들이 생각을 할 여지 역시 넓혀 두어야 한다.
‘이기호’라는 작가가 젊은 사람들에게 나름의 반응을 이끄는 것은 그가 젊은 작가라는 것도 있겠지만 그의 글이 굉장히 감각적이라는 것도 있을 것이다. ‘이기호’와 같은 작가는 젊은 독자들이 재미와 신선함이라는 것을 찾기 위해서, 일본 소설로 향했던 발걸음을 다시 돌리고 있다. 한국 소설도 재미있다 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그 속에서 생각을 할 것도 만들어주는 작가인 ‘이기호’는 현대문학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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