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장. 달려라 한나
“아니 그런 일들이 가능하지 않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제가 성주에 가서 촬영을 해야 하는데 그 정도 스케줄은 조정해주셔야 하는 거죠.”
한나의 당돌함에 선배 아나운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한나도 단호했다.
“제가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거 저보다도 선배님이 더 잘 알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스케줄을 막 잡으시면 안 되는 거죠. 저도 제가 해야 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거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럼 여기에서 그 일을 할 사람이 도대체 누가 있어? 아직 결혼도 안 한 네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식으로 정하면 안 되는 거죠. 저 말고 다른 후배들도 많이 있고요. 일단 저는 무조건 성주에 가서 촬영을 해야 합니다. 선배님께서 같이 하자고 하셔도 저는 절대로 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요.”
“김한나 너 정말.”
“왜 그렇게 열내고 있어?”
송아는 휴게실로 들어오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대충 상황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할게.”
“네? 그게 무슨?”
“어차피 누가 해도 되는 거 아니야?”
선배 아나운서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네가 하면 안 되는 거지. 이 일은 김한나 이 녀석이 해야 하는 거야. 너는 이제 기수도 있고.”
“선배는 아직도 그렇게 고리타분한 소리를 하고 있어요? 방송국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리 아나운서가 사무직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거지. 나 그런 거 싫어요. 그리고 아무리 내가 나이를 먹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일을 안 주는 것은 너무한 거지. 나 무슨 퇴물이야?”
“아니 퇴물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럼 그 일 내가 해도 되는 거죠?”
선배 아나운서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송아는 씩 웃으면서 한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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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요.”
“네가 뭐가 감사하니?”
한나가 사준 음료수를 마시며 송아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말을 한 그대로야. 나 요즘 퇴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안 그래도 스트레스였거든. 아무리 내가 선배라고는 하지만 다들 나에게 너무 일을 안 주는 거 아니야?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어쩔 수 없죠.”
“그러니까 그게 싫다고.”
송아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밖에서는 이 화려한 직업이 이따위로 굴러가는지 아무도 모를 거야. 그리고 네가 성주에 내려가서 일을 해야 한다는 거 이 방송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거라니?”
“선배님 왜 그래요?”
“내가 뭘 왜 그런다는 거야?”
“왜 제 편을 들어주시는 거냐고요.”
한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송아는 그런 한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김한나 너 이상한 거 알아?”
“제가 뭐가 이상한 건데요?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이 호의를 보여주는데 자꾸만 물러나려고 해. 그냥 그거 믿으면 되는 거거든. 그 호의 받으면 되는 거야.”
“그러다가 제가 다치면요?”
“그래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잖아.”
송아의 말에 한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네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렇게 겁을 내는 거야? 다른 사람들의 잘못이야. 네 문제가 아니라고.”
“아무리 그래도 겁이 나요. 그리고 선배님이 저에게 왜 이렇게 잘해주시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여태 저에게 잘해주었던 사람들은 다시 아프게 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괜히 겁이 나고 그래요.”
“나는 아니야. 이렇게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다들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서 속이겠지?”
송아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한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송아는 기지개를 켰다.
“나 같은 선배가 있었으면 해서.”
“네?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한 명은 이런 선배가 있어도 되는 거잖아.”
송아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브이를 그려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엄하고 뭔가를 하기를 바라는 선배라면 한 명쯤은 나처럼 여유롭기만 해도 되는 거 아니야?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폼을 잡고 그러는 것은 아무래도 아닌 거지.”
“그런가요?”
“그런 거야.”
한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송아의 말을 듣고 나니 때로는 그런 사람도 필요할 거 같았다.
“고맙습니다.”
“너도 이런 선배가 되어야만 해.”
“네. 꼭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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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제 일은 끝난 거 아이가?”
“그렇지. 그런데 왜 그런 소리 하는 기고?”
“그라믄 당장 서울로 가야 하는 거 아이가?”
득수의 말에 복규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식으로 한나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김한나 그 사람이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내가 더 잘 알고 있는데 햄은 무슨 말을 하는 기고? 내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슨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기가? 신경이나 써야 하는 사람이 될 기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이지. 그냥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넘기면 안 되는 거 아이가? 김한나 그 살마 지금 많이 지쳤을 기다.”
득수는 힘을 주어 말을 하며 복규를 바라봤다. 복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득수의 말이 맞았다. 그녀는 지금 많이 지친 상황일 거였다. 하지만 그냥 위로를 하기에는 그도 살짝 지친 상태였다.
“그래도 싫다.”
“도대체 뭐가 싫은데?”
“아직 여기 일이 안 끝났다.”
“끝이 날 거 같나? 여기 일 안 끝난다.”
순간 노크 소리가 나고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은숙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하우스로 들어왔다.
“여기는 덥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복규는 날을 세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에 오라는 소리 한 적이 없을 텐데요.”
“어머. 아들. 엄마한테 너무 심하게 하는 거 아니야?”
은숙은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조심하지 않고 그대로 밭으로 들어왔고 그 통에 참외 몇 알이 깨졌다.
“이봐요. 이런 식으로 들어오면 참외가.”
“겨우 이런 것을 가지고 지금 나에게 이러는 거니?”
은숙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득수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여간 시골에서 사는 애들은 이래서 안 되는 거라니까. 득수 너는 네 외숙모를 보고도 그렇게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있을 거야? 하여간 그 싸가지는 그 집안에서 가지고 있는 전매 특허라니.”
“그만 두시죠.”
복규는 미간을 모으며 은숙을 노려봤다.
“도대체 여기에 왜 오신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돌아가시죠. 저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돈 좀 주라.”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아무리 그래도 내가 엄마잖아.”
은숙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내가 빚을 지고 도망을 올 수도 없는 거고. 엄마가 빚쟁이가 되는 것은 우리 아들도 싫잖아.”
“저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건 제가 아니라 그쪽이 결정을 할 일이 될 테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엄마한테.”
은숙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일단 나는 살 곳이 필요하니 같이 살자.”
“제가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전혀 얽히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그냥 돌아가라 이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네 엄마야. 엄마에게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거지. 그나저나 그 아가씨는 어디에 갔는지 모르겠다. 혹시라도 거기에서 돈을 받을 수 있을까 같는데 없더라고.”
순간 은숙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누구일까 고민을 하던 복규는 그게 한나라는 사실에 곧바로 얼굴을 구겼다.
“당신이 도대체 무슨 자격이 있다고 그 여자를 찾아가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찾아가기만 해봐요. 용서하지 않아.”
“내 아들하고 사귀는 여자잖아.”
은숙은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내가 만나고 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내가 네 엄마라면 그 정도 자격은 가져도 되는 거 아니니?”
“엄마로 의무도 하나도 하지 않은 주제에 지금 갑자기 와서 권리만 누리겠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법은 없는 거죠. 돌아가세요.”
“아들. 정말 나에게 너무한 거 아니니?”
“아버지가 돈을 준 것을 모를 거 같아요?”
복규의 말에 은숙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은숙은 애써 미소를 지으려고 했지만 미소는 잘 지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들 엄마는.”
“내가 아무리 등신 같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속일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거죠. 나도 이미 다 들었는데. 아버지를 얼마나 괴롭게 했는지. 어머니를 얼마나 괴롭게 했는지 다 알고 있는데.”
“나는 그저 받을 것을 받은 거야.”
은숙은 떨리는 목소리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그 정도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거니?”
“그 정도도 할 수 없는 사람? 당신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거죠? 너무한 거 아닌가요?”
“나는 네 엄마라고. 그리고 너를 두고 가야만 했어. 이 엄마가 가지고 있는 아픔을 아들인 네가 이해를 못 한다는 거야? 나는 너를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네 아빠가 허락을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 씨부리지 마라!”
갑자기 난 고함에 세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실라가 다가와서 은숙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하우스 밖으로 끌고 나온 후에 바닥에 넘어뜨렸다. 은숙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시골 촌년이.”
“그래. 내 시골 촌년이다. 그래도 내가 인두겁을 쓰고 아들에게 그라믄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내가 뭘 했는데?”
“아무리 그라도 아들한테 이라믄 안 되는 기지.”
실라는 식식 거리면서 은숙을 노려봤다. 복규는 실라의 어깨를 부축하며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아팠다.
“어머니 왜 오셨어요?”
“우리 아들 밥 주러 왔다.”
“우리 아들? 너 되게 뻔뻔하다.”
은숙은 옷을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거지. 안 그래? 남의 집 정실부인 자리를 차지한 주제에 무슨!”
“내가 알아서 했나? 네가 비운 자리에 내가 들어온 긴데 그기 무슨 문제가 된다 지금 터진 입이라고 씨부리는 기가?”
은숙은 침을 꿀꺽 삼켰다. 실라의 기세가 대단했다. 은숙은 심호흡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일단 가기는 할 건데. 그래도 내가 이대로 가는 거 아니야. 나는 다시 돌아올 거라고.”
“어디를? 감히!”
은숙은 도망이라도 치는 것처럼 사라졌다. 실라는 허무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복규를 돌아보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복규는 그런 실라의 앞에 무릎 꿇었다.
“니 지금 뭐 하나?”
“어머니 죄송해요.”
“아들.”
실라도 복규에게 무릎을 꿇었다.
“와 이러노?”
“제가 그 동안 어머니에게 자격이 없는 아들이라서 그래요. 너무나도 감사한 분인데. 고마운 사람인데.”
“그런 말 하지 마라. 니가 도대체 무신 잘못을 했다고. 내가 니 엄마에게 이런 것 너무 미안하다.”
“아니요.”
복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덜 하신 거였어요. 저는 더 할 생각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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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나 그거 미친 거 아니야?”
“그러니까.”
“아주 상전이야.”
“건방지게.”
“채송아는 또 뭐니?”
“채 선배님 우습다니까?”
“누구 편을 드는 거야?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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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의 욕만 하는 거라면 괜찮았지만 송아의 욕까지 들을 수는 없었다.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고 나갔다. 세면대에 서있던 동료 아나운서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더 떠들지?”
한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안에서 들어보니 가관이던데 말이야.”
“아니 그건.”
“아무리 그래도 다 큰 어른들이 이런 식으로 뒷담화를 하는 것은 조금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한나는 그들을 밀어내고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 그리고 거울을 바라보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되게 유치하다.”
“우리가 뭐?”
“할 말이 있으면 지금 하지 그래?”
페이퍼 타올로 손을 닦으며 한나는 싱긋 웃어보였다.
“어차피 나에게 할 이야기라면 지금 하는 것이 맞지 않나? 그런 식으로 모르는 척 하는 것은 너무 우스운 일이잖아. 안 그래?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렇게 말을 하는 거지? 안 그래?”
“아니 그건.”
“나도 내가 여기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궁금하네.”
한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동료 아나운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도 자기처럼 재벌가 사모님이 되려고 안달이 나서 매주 선을 보러 다니지는 않아. 나는 그 정도는 아니거든.”
“내가 언제?”
“다 알고 있어요.”
한나는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여기 사람들은 다 자기 이야기도 하니까. 아무튼 나는 누구랑도 자지 않았으니까 이상한 생각하지 마. 그건 너무 유치하잖아. 애들도 아니고 다 큰 어른들이 그런 것으로 서로를 씹고 있다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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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님. 저 혼자서 너무 프로그램을 많이 맡는 거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좀 주셨으면 해요.”
“아니 여기에서 자기만큼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그래서 온갖 구설수에도 다시 불러온 건데.”
“그러니까요.”
한나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동료들까지도 그렇게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은 꽤나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여기 들어온 사람들 실력은 다들 비슷하잖아요. 다들 해보지 않아서 모르는 거라고요.”
“뭐라고들 해?”
“당연하죠.”
“알았어.”
국장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도 아니고.”
“그러게 말이에요.”
한나는 심호흡을 하고 국장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제 매주 목요일 저녁 성주 내려갈게요.”
“어?”
“금요일은 거기에서 촬영하고 그러고 올게요. 그게 제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하고 싶어요.”
“도대체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그러게요.”
한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네.”
“뭐?”
한나의 대답에 국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거기에 내려간지 도대체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연애를 다 하고 있어? 하여간 김한나 능력도 대단해.”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기획을 한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정말로 최선을 다 하고 싶어요. 제가 시작을 한 일 제대로 마무리를 짓고 싶어요. 국장님은 그런 거 없으신가요? 그런 거 있으시잖아요.”
“뭐, 그렇지.”
국장은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 도로 앉았다.
“그 일이 어떤 결과를 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 해. 그래도 그걸로 네가 다시 돌아온 거니까.”
“알겠습니다.”
한나는 눈웃음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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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뭐가 좋아요?”
“같이 별을 바라보는 거.”
한나는 복규의 손에 가만히 깍지를 꼈다. 성주에 내려올 적마다 복규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행복했다.
“나 그냥 여기에 와서 살까?”
“방송은 어떻게 하고요?”
“그러네.”
“내가 서울로 갈 수도 없고.”
“그러지 마요.”
한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여기에 오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만 오복규 씨는 서울에 오는 것이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왜 그래요?”
“그러게.”
“미안해요.”
한나는 몸을 돌려 복규의 얼굴을 바라봤다. 복규는 작게 미소를 지으면서 한나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매만졌다.
“뭐가 그렇게 미안합니까? 사람이 너무 미안하다는 말만 많이 하고 있다는 거 잘 알고 있는 거죠?”
“그러게. 그런데 왜 이렇게 요즘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할 것들만 자꾸 생기는 건지 모르겠어요. 나도 내가 답답하고 그렇다니까. 오복규 씨에게도 막 미안하고 나에게도 미안해지고 그래요.”
“일은 좀 어때요?”
“줄였어요.”
“다행이네.”
“너무 힘들잖아요.”
복규는 한나의 손을 조물락거렸다. 한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복규의 품에 조심스럽게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싱그러운 복규의 냄새에 한나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내가 서울로 가면 좋을 텐데.”
“그러지 마요.”
“더 오래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내가 이렇게 매주 내려오잖아요. 그리고 오복규 씨는 농사 때문에 주말에는 전혀 시간도 못 내는 거 내가 더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여기에서 이렇게 별이 잘 보이는지 몰랐어요. 서울에서는 거기에 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별 같은 것은 안 보이잖아요.”
“그러게요. 별 되게 많이 보이네.”
“별도 안 보고 살아요?”
“별 볼 여유가 어디에 있어요?”
“그러네.”
복규는 한나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렇게 한참이나 평상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보며 나란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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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요리 너무 잘 하시는 거 아니에요?”
“내가 무신.”
“정말 잘 하세요.”
한나의 너스레에 실라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도 요리를 좀 배워야 할 긴데. 우리 복규가 입이 되게 짧아요. 밖에서는 밥도 잘 안 먹는다니까.”
“저도 알고 있어요.”
한나는 입을 내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
“내가 잘못 키아 그렇지.”
“내 욕하고 있는 거야?”
“아니요.”
“아니다.”
한나와 실라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복규는 미간을 모으면서도 물을 마시고 부엌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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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뭐 하고 있나?”
“요리 하고 있네.”
“요리?”
“뭐 재밌네.”
득수는 웃음기가 가득한 복규의 얼굴을 보며 코를 찡긋했다.
“니 참말로 이상한 거 아나?”
“내가 뭐?”
“니가 그리 웃는 거 말이다. 내가 너를 그리도 오랜 시간 봐왔지만 한 번도 보지 몬한 거다. 그래서 되게 신기하고 그렇다.”
“자꾸 내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지 마라. 내도 알아서 다 잘 하고 있는 거거든. 내가 무신 문제가 있는 것처럼.”
“니가 뭘 잘 하노?”
득수는 낄낄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니는 참말로 고마워해야 한다.”
“뭐를?”
“김한나 씨.”
“와?”
“니 마음을 열어준 사람이니까.”
“그런가?”
복규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운 사람 맞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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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촬영 들어갑니다.”
“언니 바쁘지 않아요?”
“일도 줄였어.”
한나의 대답에 별나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한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면서 엄지를 들어올렸다.
“왜 감동했어?”
“왜 그래요?”
“어?”
“언니 그럴 이유 없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어차피 여기 사람 아니니까.”
“이거 내 프로그램이야.”
한나는 별나의 어깨에 손을 얹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한 번 하기로 마음을 먹은 거고 다른 사람이 끼어들 수 없는 나만의 일이라고. 이거 우리가 같이 만든 프로그램 아니야? 그런데 나 혼자 없어지면 그게 어떻게 우리의 프로그램이야?”
“그래도 힘들잖아요.”
“아니. 하나도 안 힘들어.”
한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정말로 내가 애착을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감사하고 뿌듯해. 그러니 별다른 말을 하지도 마세요. 유별나. 너는 그냥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면 되는 거야.”
“저 대구가요.”
“들었어.”
“무서워요.”
한나는 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다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은 겁이 난다는 거야. 하지만 유별나. 너는 무조건 잘할 수 있을 거야.”
“어떻게 그래요?”
“왜 그럴 수가 없는데?”
“거기 사람들은 다르잖아요.”
“하나도 다르지 않아. 같은 사람들이야.”
한나는 힘을 주어 말하며 별나의 손을 잡았다.
“대구 두웨이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네 나이 또래의 사람들 중에서 자기 프로그램 만들어본 경험 있는 사람 하나도 없을 거야. 그거 내가 장담할 수 있어. 다들 그냥 남들 밑에서 있고 말겠지.”
“언니.”
“네가 더 나아. 거기에서 텃세부리더라도 무시해. 그 사람들 실력이 우선인 사람들이니까. 내가 알아. 유별나 실력이 대단하다는 거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너무 걱정을 할 이유 하나도 없어.”
별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나는 그런 별나의 어깨를 두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촬영 들어가죠.”
한나는 씩씩하게 촬영장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정말로 이곳에서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는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현장. 이 현장 안에서 더 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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