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너도 그 사람 좋아하는 거잖아.”
“모르겠어.”
우리의 물음에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그 사람이 그냥 나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그게 좋았던 건지.”
“그게 그렇게 다른 거야?”
“응.”
나라의 어색한 미소에 우리는 한숨을 토해냈다.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잘 알고 있는데. 그래도 너도 그 사람을 좋아한다면. 그렇게 막 벽을 세우고 그럴 이유는 없지 않을까? 정태현 씨도. 나쁜 마음으로 그런 거 아니라는 거 알잖아.”
“알아.”
나라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어려웠다. 그 사람이 너무 좋았고 지금도 정말 좋아. 그래서 불안해. 이 사람하고 내가 지금 뭘 하려고 하는 걸까? 우리 두 사람 어떤 사이일까? 아무리 고민을 해도 거기에 대해서 명확한 답 같은 거 내릴 수가 없으니까. 너무 어려우니까.
“너 지금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나라를 응시했다.
“사람하고 사람 사이라는 거 자체가 그렇게 간단하게만 정리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복잡하고 힘들게만 생각해서도 안 되는 거 아닐까? 네 마음을 인정하는 게 우선이잖아.”
“내 마음이 뭔데?”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거.”
“아니.”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이나라.”
우리는 나라를 살짝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나 지금 너 되게 질투가 나거든?”
“어?”
“아니 소설가가 너를 좋아한다고 하면 좋은 거 아니야? 너를 주인공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충분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네가 왜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고 낯설게만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냥 너를 위해서. 네가 가장 좋은 거. 그냥 그것만 보면 되는 거. 그런 거 아니야?”
“그런가?”
나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그에 대해서 명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태현을 생각하면 좋았고. 그로 인해서 너무 아프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정말 좋은데. 나를 또 아프게 할까봐. 그게 겁이 나서 막 가까이 가지 못하겠어.”
“그게 왜 두려워?”
“상처를 받은 적이 없으니까.”
“그 사람 너에게 상처 다시 주지 않을 거야.”
“언니가 어떻게 알아?”
“그럼 내가 확 차로 밀어버릴게.”
우리의 과격한 대답에 나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고마워.”
“고마우면 네 마음을 봐.”
“모르겠어.”
“이나라.”
“그 사람 소설. 나랑 헤어지더라.”
“어?”
“결말이.”
나라의 말에 우리는 살짝 미간을 모았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 사람하고 내 이야기를 그래도 조금이나마 바라볼 수 있는 부분이잖아.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물론 그냥 소설 속의 상황이라고 말을 하면 그런 건데. 그래도 나랑 행복하지 않은 결말을 내니까. 되게 멍하고. 우리가 무슨 사이일까 싶기도 하고.”
“그러면 물어봐.”
“뭘?”
“왜 그렇게 쓴 건지.”
나라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묻고 싶었다. 따지고 싶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을 그냥 들을 자신도 없었다. 자신은 무슨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냥 그가 하는 말을 듣는 사람이었다.
“속상하다.”
“내가 더 속상하다.”
“언니가 왜?”
“네가 누구 좋아하는 거 처음 봐.”
“어?”
“네가 누구 좋아하는 거 정말 처음이라고.”
나라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사람 잡아.”
“언니.”
“언니로 명령이야.”
“그러지 마.”
“너 그 사람 좋아해.”
우리의 말이 나라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우리의 말은 옳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태현을 붙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겁이 나고 두려운 상황에서 무조건 그를 잡는다는 것 자체가 더욱 우스운 일이었다.
“어떤 확신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어.”
“이나라.”
“알아. 나도 내가 유치하다는 거.”
나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자신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확신이 필요했다. 그가 자신을 정말로 사랑한다는 증거. 그래서 자신을 아프게 하거나 버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 적어도 그런 것이 있다면 다시 한 번 그를 믿고 그의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네가 먼저 하면 안 되는 거야?”
“어?”
“네가 보이면 되는 거잖아.”
“언니.”
“나는 그렇게 생각해.”
우리의 말에 나라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서 아니면?”
“뭐가?”
“정태현 씨의 반응이. 내가 원하는 거. 내가 생각한 거. 그런 게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그걸 왜 지금 걱정을 하는 건데?”
나라의 말에 우리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잖아.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도대체 왜 고민을 하는 거야? 네가 겪고 나서 그 일에 대해서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그러는 거면 알겠는데. 지금 그런 거 아니잖아.”
“아플까봐.”
“그렇지 않아.”
우리는 나라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저었다.
“이나라 내딛어.”
“언니.”
“너 바보야?”
“응.”
“한심해.”
“알아.”
“알면 행동해.”
우리는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라의 눈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었다.
“이나라. 네가 할 수 있는 일. 적어도 네 마음을 숨기는 거 아니잖아. 지금 네가 이런 걸로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네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야. 그 사람이 좋아서 지금 고민하는 거야.”
“그런 거야?”
“그런 거야.”
우리는 힘을 주어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제발 너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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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정말 나에게 별 걸 다 시킨다.”
“부탁이야.”
태현의 부탁에 우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망할 새끼.”
“내가 부탁할 사람이 또 있어?”
“없지.”
“그러니까.”
“미친 새끼. 아우.”
우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태현을 바라봤다. 그리고 혀로 입술을 한 번 훑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이다.”
“응.”
태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너는 이제 확실한 거지?”
“어.”
태현이 힘을 주어 대답하자 우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작 그렇게 확신을 가지면 얼마나 좋냐? 왜 그렇게 네 마음에 대해서 보지 못하고 그러는 거야?”
“미련이 남아서.”
“또 김지현 이야기야?”
“어.”
“정태현.”
“그런 거 아니야.”
우석의 잔소리가 이어지려고 하자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이제 조금은 이해가 가려고 해서 그러는 거야. 우리가 나이를 먹었으니까. 내가 그 녀석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미워할 이유도 없었고. 붙들고 나 혼자서 아파할 이유도 없었던 거야. 우리는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던 건데. 나 혼자서 그 나이를 먹어가지 않고 있었던 거지. 과거에 빠져서. 그런 말도 안 되는 미련에 미쳐서. 그냥 그렇게 흘러갔던 거야.”
“그걸 이제 아냐?”
“그러게.”
태현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 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미련이 생긴 거였다. 그 사람에 대해서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부린 거였다. 자신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그렇게 되어버린 거였다.
“그 동안 왜 지현이를 놓지 못한 걸까? 왜 이렇게 한심하게. 붙들고. 또 아프게 그냥 가지고 있었던 걸까?”
“너 시간 탓 아니야.”
“어?”
“알잖아?”
우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너 그냥 지금 나이를 먹어서. 그냥 어른이 되어서 되는 거 아니라고. 김지현 잊을 수 있는 거 전부 다 이나라 씨가 있어서 가능한 거야. 힘들고. 지쳤던 모든 거. 누군가에게 가기 위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누군가에게 가기 위해서.”
“그리고 네 마음에 그 자리. 이나라 씨야.”
태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이 기뻤다.
“그 사람에게 가는 길이었구나.”
“그래. 그러니까 더 이상 방황하지 말라고. 이정표 딱 있겠다. 저기 목표물 보인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가는 길이 왜 이렇게 흔들리고 아픈 건데? 이해가 안 되지 않냐? 너 지금 놓치면 다시 후회해.”
“그러니 잡으려는 거야.”
“밀어내도.”
“안 밀려.”
우석은 태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제 말이 좀 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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