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가 어디에 있는ㄴ지 알아?”
“왜?”
우석은 사나운 눈으로 지현을 응시했다.
“이미 충분히 망친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지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를 하고 싶어.”
“사과?”
“나는 아직 나에게 기회가 남아있다고 생각을 했거든. 그런데 지금 보니까 그런 기회 없는 거네. 정말로 나에게 기회가 없다는 거 알았어. 그래서 그 여자가 다시 태현이를 마주하기를 바라.”
“그러지 마.”
우석은 혀로 입술을 추이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네가 괜히 끼어들면 두 사람 더 어그러질 거야.”
“하지만.”
“그냥 두고 보면 되는 거야.”
지현은 한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았다. 자신이 괜히 끼어들면 더 망가질 수도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태현 정말로 행복한 거 맞아?”
“응.”
“그렇구나.”
우석은 그제야 지친 얼굴의 지현이 보였다. 입으로는 무엇이든 가능한 척 당돌하게 말하고 당당하게 행동했지만 지현의 얼굴은 많이 지쳐있었고. 거칠해져 있었다. 지쳐 보이고 아파보이는 얼굴이었다.
“너는 괜찮은 거야?”
“응.”
지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정말로 해야 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그게 무엇이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이제 겨우 알 것 같아. 뭐 그게 정태현하고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것이 조금 속상하기는 하지만 답은 없는 거겠지.”
“그래.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아니.”
지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우석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미안해.”
“김지현.”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게.”
우석은 그 손을 잡고 살짝 힘을 주었다.
“자살이라거나.”
“내가 그런 거 할 애로 보여?”
“아니.”
“그럼 된 거지.”
지현은 우석의 눈을 보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우석은 지현이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녀가 이전의 김지현과 아주 많이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였다. 우석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이 할 일은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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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냥 포기하고 있는 건데? 지금이라도 나라 씨에게 가서 네 마음을 다시 고백하면 되는 거잖아.”
“네가 그 표정을 보지 못해서 그래.”
우석의 말에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실망이 가득한 표현. 너는 모르잖아.”
“아무리 그래도 지금 너처럼 그냥 포기하는 거 말도 안 돼. 두 사람 쉽게 사귄 것도 아니잖아. 정말 돌고 돌아서. 온 동네 사람들 다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하고 나서 겨우 서로 바라본 거 아니야?”
“그런가?”
태현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게 안 되라는 증거였네.”
“정태현.”
“만일 우리 두 사람이 정말로 행복할 수 있는 사이였다면 그렇게 돌고 돌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우리가 어울리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맴돌고 서로 이루어지지 않은 거겠지.”
“네가 이래서 이러는 거지.”
우석은 태현의 얼굴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가볍게 검지로 그의 가슴을 쿡 찔렀다.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지금 네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거. 내가 더 잘 알고 있고. 그리고 나보다도 네가 더 잘 알고 있는 거 아니냐? 네 가슴이 지금 이나라 씨를 향해서 뛰고 있잖아. 이런 표현 자체가 되게 상투적이고 유치하다는 거 알고 있는데. 아무튼 지금 내가 하는 말 틀린 거 아니잖아. 아니야?”
“이미 늦은 거야.”
태현은 힘없이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늦은 거 아니야.”
우석은 태현의 눈을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제발 한심한 말 좀 하지 마. 도대체 왜 이렇게 답답하게 행동하는 건데? 네가 할 수 있는 일.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일이 바로 그 사람 잡는 거 아니야? 이나라 씨도 네가 잡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럴까?”
“당연하지.”
우석은 목을 가다듬고 태현의 눈을 바라봤다.
“한 번 더 용기를 내. 네가 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행동하는 거야. 쪽팔릴 것이 뭐가 있고, 창피할 게 도대체 뭔데?”
태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냥 싫어. 다.”
“멍청한 새끼.”
태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혀로 입술을 축였다. 우석의 말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옳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말처럼 행동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고, 자신이 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자꾸만 그녀에게 기회를 달라고 구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나에게 한 번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야.”
“그러니 또 달라고 하라고.”
“내가 또 아프게 하면?”
“그건 그때 생각을 해.”
우석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너 나 되게 한심하게 생각하지. 그리고 멍청하게 생각하고. 그런데 지금 네가 그래. 제발 네 마음 좀 똑바로 봐. 그리고 네가 지금 할 수 있는 그 일. 오직 너만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냥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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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거.”
“이나라 씨.”
편의점 문이 열리고 태현이 들어왔다. 나라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인가요?”
“아닌가요?”
“뭐.”
태현은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음료수를 들고 카운터에 섰다. 바코드를 찍고 익숙하게 계산을 하고 태현은 머뭇거렸다.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마요.”
“네?”
“그럴 수도 있죠.”
나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우석 씨가 왜서. 두 사람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 정말로 그런 거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안우석 씨가 그냥 정태현 씨의 친구니까. 그쪽을 위해서 그러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요. 지금 보니까 그냥 친구라서. 아무런 의미 없이 그러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정말로 아무런 사이도 아닙니다. 이전에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더 이상 그 사람 나에게 의미 없어요.”
“알아요.”
나라는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태현을 마주하는 것이 어색했다.
“다 알고 있으면 우리는.”
“끝인 거죠.”
“이나라 씨.”
“달라지지 않아요.”
나라는 입을 꾹 다물고 태현을 응시했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요. 우리 두 사람 사이. 이미 정해진 거고요. 나는 이거 바꾸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요. 마음에도 들지 않고요. 우스운 일이잖아요. 너무 한심하고 멍청해요.”
“도대체 왜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내가 이나라 씨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얼마나 마음에 담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안 되는 거예요.”
나라는 혀를 살짝 내밀고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사소한 걸로 나 막 화를 내고 그래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당신 지치게 할 거고요.”
“그래도 좋습니다.”
“거짓말.”
나라의 대답에 태현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나라는 가만히 고개를 흔들고 태현의 눈을 바라봤다.
“고마워요.”
“도대체 뭐가 고맙다는 겁니까?”
“나 말이에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정태현 씨를 만났고. 이제 누군가를 좋아할 수도 있게 되었어요. 그냥 평범하게. 행복하게. 그렇게 말이죠.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아니었던 거예요. 억지로 특별한 이야기를 할 것도 없고요. 무언가 더 의미를 부여할 이유도 없어요. 그냥 아니었던 거예요. 그게 전부에요. 별 거 아니라고요.”
“그냥 아닌 거. 그런 게 싫으니까 이러는 겁니다. 이나라 씨가 좋으니까. 지금 다시 시작하자고 하는 거라고요. 아니. 다시 시작도 아닙니다. 우리 두 사람이 끝을 낸다는 거 자체가 우스운 거 아닙니까? 단순한 오해입니다. 우리 두 사람 정말 힘들게 연애 시작한 거라고요. 그냥 끝을 내면 안 되는 거라고요.”
“그렇게 힘들게 시작해도 끝을 내는 건 이렇게 쉽잖아요. 다시 시작한다고 했을 때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나요?”
“그건.”
“없죠?”
나라의 물음에 태현은 입을 다물었다.
“나도 마찬가지에요.”
나라는 가만히 바코드를 만지작거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내 성격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잖아요. 지금처럼 그냥 좋게만 끝을 낼 수 없다는 거. 내가 알고 있어요.”
“이나라 씨.”
“우리 두 사람 끝이잖아요.”
나라의 말에 태현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진지한 눈으로 나라를 바라봤다.
“진심입니까? 정말로 그냥 끝을 내면 좋겠다는 겁니까? 이제 나에게 아무런 미련도 없다. 지금 그런 말입니까?”
“누가 그렇대요?”
나라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며 고개를 숙였다.
“나도 정태현 씨가 좋아요.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걸로 모든 것이 그냥 정리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뭐가 더 중요한지. 뭐가 먼저인지. 나도 되게 화가 나지만 방법이 없잖아요.”
“서로 그냥 좋아하면 되는 거죠.”
태현은 나라의 손을 잡았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내가 맹세하는데. 절대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겁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런 일 만들지 않을 거라고요.”
“이미 일어난 일은요.”
“한 번이잖아요.”
“아니요.”
나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태현의 손을 빼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면서 살짝 목을 가다듬고 고개를 저었다.
“그냥 한 번이라고 할 수 없어요.”
“도대체 왜 이렇게 답답하게 행동하는 겁니까? 이나라 씨. 우리 두 사람 여기까지 오는 거 쉽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마음에 대해서 인정하는 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다시 돌아간다는 거. 말도 안 되는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는 겁니다. 내가 아무리 이해를 하고. 이나라 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더라도 이건 아닙니다. 이대로 그냥 끝을 내면. 정말 최악입니다. 이렇게 그냥 정리할 수 없는 겁니다.”
“나도 싫어요.”
나라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하얗게 질릴 정도로 입술을 무는 그녀를 보면서 태현은 한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내가 말했잖아요.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더라도 정태현 씨는 나를 아프게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정태현 씨가 그 믿음을 깬 거예요. 나 이제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고요.”
“그러지 마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나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두 사람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이렇게 잘못된 걸까요? 알 수 있나요? 나는 알 수 없어요. 우리 두 사람의 잘못.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이 된 건지 알 수가 없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럼 그냥 좋아하면 안 되는 겁니까? 그냥 서로에게 더 소중한 마음을 품고. 그냥 그러면 안 되는 겁니까?”
“아프다고요.”
나라의 얼굴에 울음이 어렸다.
“나라고 해서 이 마음 다 버리고 싶은 거 아니라고요. 너무 화가 나는데. 짜증이 나는데.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럼 딱 한 번만 기회를 줘요.”
“무슨 기회요?”
“그 소설 거기가 끝이 아닙니다.”
나라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 소설. 한 번만 더요.”
“아니요.”
“이나라 씨의 이름이 들어간 소설이 책으로 나온다고요. 적어도 이나라 씨가 그걸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라는 물끄러미 태현을 바라봤다.
“그런다고 우리 사이가 달라질까요?”
“달라지지 않더라도 이나라 씨가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사실이 뭐죠?”
“내가 당신하고 이별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요.”
“이별이라.”
“나는 이나라 씨랑 끝을 내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아주 작은 호감이라도 있었다면. 그 호감. 그래도 그 호감에게 미안해서라도 이러면 안 되는 겁니다. 내 말 압니까?”
“그러니까.”
“기다릴게요.”
태현의 단호함에 나라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나라 씨. 사랑합니다.”
“사랑한다고요?”
“네. 사랑합니다.”
태현은 카운터 너머로 허리를 숙여서 나라에게 뜨겁게 입을 맞추었다. 나라는 입을 꾹 다문 채로 열어주지 않았다. 태현은 한숨을 토해내며 나라의 눈을 바라봤다.
“이나라 씨가 나를 얼마나 미워하고. 나에게 얼마나 큰 아픔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회를 줘요.”
“모르겠어요.”
“기다릴게요.”
나라는 멀어지는 태현의 뒷모습을 멍하니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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